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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

       그거 아는가. 나와 유하늘이 있는 반의 담임은 대머리다. 원래 어디 학원의 유명한 선생이었다는데, 솔직히 이쪽 세계에서 인터넷 강의 같은 것을 들어본 적이 없는 나에게는 그냥 배 나오고 머리까진 의욕 없는 아저씨로 보일 뿐이었다. 1교시에 유하늘에게 수학 문제를 몇 번이고 풀도록 지시한 선생이기도 했다.

        

       그리고 학교 창고에는 작은 사다리도 하나 있었고. 놀랍게도 창고는 열려있었다. 돈 많은 학생들이 창고에서 뭔가 훔칠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일까? 하긴, 창고 주변에는 CCTV가 몇 개나 있었으니 굳이 문을 잠글 필요도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 CCTV에 찍힌 나도 투명 인간 취급일까? 아마 그럴 거라고 본다. 그래서 나는 당당하게 창고로 들어가 사다리를 훔쳐 나왔다. 사실 훔쳤다기보다는 대놓고 들고나왔다는 것에 가깝긴 하지만.

        

       원래는 남는 의자가 있나 싶어서 갔는데, 오히려 좋다. 학교 의자는 접을 수 없거든. 그리고 예사라의 몸으로 들고 다니기에는 조금 무겁기도 했다. 반면에 이 사다리는 접어서 들고 다니면 그럭저럭 들고 다닐 만했다. 무거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의자처럼 들고 다니기 불편하게 생기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게 작은 사다리를 찾은 나는, 다시 교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업 중일 담임을 찾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창문 밖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윤기 흐르는 스킨헤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두 교시 동안 온갖 뻘짓을 하고 다니면서 나에게 반응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아주 확실하게 깨달은 나는, 당당하게 교실 앞문을 벌컥 열었다.

        

       칠판에 뭔가 적고 있던 선생이 흠칫 놀라더니 나를 보았다.

        

       그리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래, 첫 교시에 그렇게 당했으니 저런 표정을 지을 만도 하다.

        

       그런데 어쩌나.

        

       아직 추락할 교권은 한참 남아있다.

        

       아니, 인권이라고 해야 할까.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인격을 부정하는 짓이다. 그런데 그런 짓을, 무려 어른이, 그것도 선생이라는 사람이 학생에게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인간에게 교권이니 인권이니 하는 것이 필요할까?

        

       나는 저벅저벅 걸어가, 교탁 근처에 사다리를 척 세웠다.

        

       그리고 그 사다리 위로 올라갔다.

        

       남성 평균 키와 비교했을 때는 꽤 작은 예사라였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니 그 반짝이는 머리가 그대로 눈에 들어왔다.

        

       대체 또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것인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선생에게, 나는 창고에서 가지고 온 물건을 하나 더 들이댔다.

        

       분무기였다.

        

       화분에 물을 줄 때 쓰거나, 안에 세제를 넣어서 청소할 때 뿌리거나 하는데 쓰는.

        

       물론 사람에게 뿌릴 것이었으므로 세제가 아니라 그냥 수돗물을 받아왔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교사의 머리 위에 분무기를 칙칙 뿌렸다.

        

       “자라나라 자라나라~”

        

       음정 박자 모두 제멋대로인 노래를 부르면서.

        

       !!!!!!

        

       교실에 앉아있는 모두의 머리 위에,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느낌표가 떠올랐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듯했다.

        

       아무리 수업을 제대로 듣는 아이가 별로 없다고 하더라도, 유교가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가에서 교사의 머리에 물을 뿌리는 것도, 심지어 교사의 탈모를 놀리는 것도 상상도 하지 못 할 일이니까.

        

       아무리 그래도 이 학교 교사들도 학생들 시험을 채점하고 점수를 준다. 대학을 갈 수 있는 최소한의 점수를 유지하려면 역시 최소한의 예의라도 지켜야 한다.

        

       물론 나는 그럴 필요 없지만.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 사람이니까.

        

       그렇다고 모르는 척 이 사다리를 치울 수도 없다.

        

       나를 무시하는 것은 되지만, 괴롭히거나 다치게 하는 쪽은 또 별개거든.

        

       예사라의 유서를 읽으며 한가지 확신한 것이 있다. 예사라가 무슨 짓을 하건, 주위의 인간들은 무조건 무시하는 것으로만 일관했다. 절대로 육체적인 제한을 하거나, 힘으로 누르려고 했다는 묘사는 없었다.

        

       그렇다는 건 그런 지시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생을 힘으로 제압하는 것 정도야 간단한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소리니까.

        

       회장은 예사라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지만, 반대로 예사라가 다치는 것 또한 극도로 꺼렸다.

        

       그러니, 내가 이 사다리에 올라와 있는 이상, 그리고 이 사다리와 나를 동시에 옮기면서 내가 떨어져 다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상, 이 교실 안에서 이 사다리를 치울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교실 맨 앞줄의 학생 중 몇 명이 몸을 부들거리며 떨고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는 모양이었다.

        

       놀랍게도 선생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으면서도 수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실로 경이로운 직업의식이었다.

        

       ……아니지, 학생을 무시했던 것을 생각하면 딱히 직업의식이랄 것도 없나.

        

       지금, 이 순간에도 무시하고 있기도 하고.

        

       뭐 언제까지 그렇게 깔끔하게 무시할 수 있을지 보자고.

        

       *

        

       결국 선생은 경이로운 인내심을 발휘하여, 끝까지 나를 무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아니었다. 대놓고 웃음소리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배를 붙잡고 끅끅거린 학생은 나왔으니까.

        

       나는 물을 뿌리면서도 학생들 쪽으로 물이 튀지는 않게 조심했다. 딱히 잘 보일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반감을 사는 것도 내 목적은 아니었으니까. 원작의 예사라는 모든 것을 다 박살 내버리는 식으로 깽판을 쳐 결국 한 명의 공감도 얻지 못하고 공공의 적이 되고 말았지만, 이 세계의 나는 아니다.

        

       나를 절대로 무시할 수 없게 만들되, 그렇다고 함부로 괴롭히지도 못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아군, 그러니까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인간이 있어야 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예사라를 학대하는 데 동참한 녀석들에게 잘 보이려고 최소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런 논리라면 나는 이수아도 내쳐야 할 것이다. 이수아도 마지막에 마음을 바꾸어 나의 아군이 된 아이였으니까.

        

       최소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뉘우칠 줄 아는 아이라면, 얼마든지 내 편으로 끌어들일 생각이 있었다.

        

       그걸 아는 건지, 아니면 어떻게든 나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던 건지, 선생은 학생들 사이로 들어갔다. 당연히 나는 그 사이로 물을 뿌릴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내가 올라가 있는 것은 사다리였기에 그 높이를 유지하면서 따라가는 것도 힘들었고.

        

       하지만 도망가는 것 정도는 예상하였다.

        

       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하나 꺼내 얼른 사다리를 내려와 선생의 뒤를 쫓았다.

        

       나와 그 선생은 서로 키 차이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손을 위로 뻗으면 간신히 머리에 손이 닿는 위치에 있었다.

        

       얼른 선생의 뒤로 따라붙은 나는, 그대로 손수건으로 선생의 머리를 문지르며 말했다.

        

       “뽀득뽀득하게 닦아야지!”

        

       !!!!!!

        

       다시 한번, 주변 학생들의 머리 위에 보이지 않는 느낌표가 떠오른다. 아랫배에 힘을 꽉 주는 것이 눈에 보이는 아이도 있었다.

        

       모두가 나를 무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선생은 나로부터 허둥지둥 도망갔지만, 그래봐야 교실 안이다. 나는 얼른 그 뒤를 쫓았다.

        

       사실, 뭐.

        

       결국 선생은 수업 내내 나를 무시하긴 했지만, 이게 진짜 무시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로부터 엄청나게 도망 다녔잖아?

        

       뭐, 이쯤 되면 첫날치고는 완벽한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분무기에서 나간 물에 맞아 비 맞은 생쥐 꼴이 된 선생과 교탁 옆에 놓인 사다리를 그대로 두고 교실을 나왔다. 수업 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참이다. 슬슬 유하늘에게로 돌아가야지.

        

       교실 수습이야, 뭐…….

        

       그게 ‘보이는’ 사람들이 알아서 하지 않겠어?

        

       *

        

       그렇게 세 번째 수업 시간이 끝났다.

        

       “또 가려고?”

        

       수업 끝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교실로 돌아온 내가, 쉬는 시간이 끝나자마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자 유하늘이 내게 물었다. 이제 4교시였으니, 이번 수업마저 빼먹으면 나는 오전 수업을 모조리 빼먹는 것이 된다. 물론 출석 체크야 되겠지만, 유하늘이 걱정하는 것은 내 성적일 것이다.

        

       아니, 성적이라기보다는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더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하늘은 성실한 주인공이었으니까.

        

       “응.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으니까.”

        

       그렇다. 해야 할 일이 남았다.

        

       이수아네 교실로 가서 이수아와 학생들을 웃기고, 그러는 김에 수업도 방해했다.

        

       오전에 유하늘을 간접적으로 갈궜던 담임의 수업을 찾아가 개망신을 줬다.

        

       하지만 그러고도, 아직 해야 할 일이 하나 남은 것이다.

        

       “수업 끝나기 전에 돌아올 테니까 걱정하진 마.”

        

       “아니, 내가 걱정하는 건 그게 아닌데…….”

        

       하지만 유하늘은 그 이상으로 나를 막지는 않았다. 내가 그만큼 확실하게 마음을 먹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겠지.

        

       나는 다음 수업 선생이 잔뜩 긴장한 채로 교실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유하늘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준 뒤 바로 교실 밖으로 나왔다.

        

       *

        

       이번에 내가 향한 곳은 다른 반의 교실이 아니었다. 그보다, 원래 찾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던 것을 찾을 생각이었다.

        

       외부에서 예사라를 도와주던 인물.

        

       물론 그 인물이 당장 학교에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예사라와 연락할 수단 정도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장소부터가 달랐고, 나는 그 연락 수단을 알지도 못했기에 진짜로 찾을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긴 했다.

        

       그래도 꽤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진 상태라면, 어떻게든 나에게 연락할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을까?

        

       내가 혼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쪽에서 먼저 접근해오지 않을까?

        

       그런, 다소 부질없는 가능성에 희망을 걸어본 것이다.

        

       뭐, 어쨌거나 내가 들어오기 이전의 예사라가 학교 내에서 연락을 취했다면, 상대방이 고등학교에도 직통 라인 비슷한 걸 만들어주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은—

        

       “예사라 님?”

        

       아무래도 제대로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학교 부지를 열심히 돌아보다가, 결국 건물 내부가 아니라 건물 밖, 하지만 학교 내 부지에 있는 공원까지 왔다가, 공원 의자에 앉아있는 한 성인 여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그 여성은 내 얼굴을 보자 아주 밝은 표정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여성용 정장 위에 얇은 코트를 걸친, 조금 젊어 보이는 인상의 여성이었다. 머리는 뒤로 가지런히 모아 동그랗게 말아 묶었다. 대놓고 ‘나 회사원이오’하고 말하는 것 같은 모습이 학교 내에서 조금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다.

        

       ……아니, 그 전에, 대놓고 외부인처럼 생겼는데 학교 안으로 들어올 수가 있나?

        

       여성은 가슴에 손을 얹고, 다소 과장되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진짜 큰일 나신 줄 알았다고요. 고객님이 저희와 완전히 연을 끊어버린 줄 알았다니까요.”

        

       “…….”

        

       아무래도 내가 찾는 그 ‘외부인’이 맞는 것 같다.

        

       맞는 것 같기는 한데…….

        

       …….

        

       이거 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너무 쉽게 찾은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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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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