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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

       당장 건물을 무너트린다 한들 무너지는 건물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 걸 테지.

       

       왜 저런 고민을 하는 것일까. 실패하면 깔려서 죽으면 되는 것 아니더냐. 실제로 죽는 것도 아닌데.

       

       “좋아. 하자. 부수고 바로 문 쪽으로 뛰자.”

       

       혼잣말을 하던 그녀는 두 손으로 창을 꼭 쥐고는 기둥을 향해 휘둘렀다.

       

       이미 금이 가 있던 기둥은 엔리가 펼치는 무를 감당하지 못했다.

       

       중앙을 지지하던 기둥이 무너지자 흙먼지가 흘러 내렸다. 거기에 겁을 먹은 엔리는 다급히 바깥으로 도망쳤다.

       

       그렇지만 건물은 멀쩡했다.

       

       “왜 이리 바보 같아 보이는 것일까”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현실의 엔리는 지성적인 여성인데 게임에서 보는 엔리는 뇌가 아주 순수한 아이 같으니.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거라. 기둥 하나가 부서졌다 하여 무너졌을 건물이라면 이미 오래 전에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았을 것 아니더냐.

       

       – 또 능지 발적화가.

       – 아드득. 빠드득. 그르케 하능거 아닌데!…

       – 왜 태평한 거야! 조금 있으면 그림자 사냥꾼이 오잖아!

       

       답답함을 느낀 건 나나 시청자들이나 다르지 않았다.

       

       화를 내는 부분이 같지는 않았지만 엔리의 행동에 열이 받았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하나나 다름 없었다.

       

       채팅창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늘 속에서 튀어나온 그림자 사냥꾼이 엔리의 목에 단검을 꽂으려 한 것이다.

       

       깜짝 놀란 엔리가 뒤로 물러났기에 치명상은 피했지만 엔리의 체력은 확실하게 줄어있었다.

       

       받은 공격을 되갚아주기 위해 엔리가 창을 내질렀지만 그림자 사냥꾼은 공격을 받아주지 않고 어둠 속으로 물러나 버렸다.

       

       “숨지마! 맞서 싸워!”

       

       그대 같으면 싸워 주겠느냐.

       

       툭툭 건드리기만 해도 상처 없이 승리를 거둘 수 있는데 자신의 유리를 포기하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당연 그림자 사냥꾼은 엔리의 말을 무시한 채 엔리의 빈틈을 찌르고 도망치기만을 반복했다.

       

       본래 저런 상황에서는 선택을 해야 한다. 피해를 각오한 채 그림자 속으로 뛰어들지. 아니면 상대의 기척에 집중해 기습을 받아낼지.

       

       허나 엔리는 제 삼의 선택지를 택했다.

       

       그녀는 자신이 부수려던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맨 앞에 있는 기둥부터 박살을 내기 시작했다.

       

       “급해지니 그제야 과감해지는구나.”

       

       저 과감함을 조금 더 빨리 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추적하듯이 엔리를 따라 붙은 그림자 사냥꾼은 건물을 마구잡이로 부서대는 엔리의 모습에 잠시 굳어버렸다.

       

       허나 그건 잠시였을 뿐이다. 그는 움직이는 표적이 되어버린 엔리를 향해 쉴 새 없이 공세를 펼쳤다.

       

       평소의 엔리였다면 제 분을 못 이겨 반격에 나섰을 터이나 지금은 묵묵히 공격을 받아내며 기둥을 부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건물의 기둥 중 절반 가량이 부서졌을 무렵 천장에서 불길한 소리가 흘러 나왔다.

       

       드디어 중심이 무너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진 못한 듯 그림자 사냥꾼은 두 눈을 크게 뜰 뿐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건 엔리도 마찬가지였다. 탈출구를 바라보던 그녀는 거리가 너무도 멀다는 걸 깨닫고는 체념한 듯 한숨을 내뱉었다.

       

       “야랄났네.”

       

       엔리의 외마디 욕설과 함께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워낙에 낡은 곳이었기에 건물은 무너지는 과정에서 가루가 나버렸다.

       

       덕분에 엔리는 압사를 당하는 건 면할 수 있었다.

       

       고생 끝에 간신히 햇빛을 마주하게 된 엔리는 몇 번이나 기침을 하다 자갈 더미 위에 섰다.

       

       건물 하나가 완벽하게 무너진 덕분에 그녀의 주변은 공터나 다름없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갈더미에서 그림자 사냥꾼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을 가리던 후드는 이미 어디론가 날아간 뒤였고, 차갑던 그의 얼굴엔 흙먼지가 잔뜩 묻어 날카롭기보다는 웃음이 새나오는 모습이 되었다.

       

       “건물을 부수는 정신나간 사람이 어딨습니까!”

       

       그는 악에 받힌 듯 엔리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게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자고 했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

       

       상대의 분노에도 엔리는 뻔뻔했다.

       

       열받는 사람을 더 화나게 만드는 데 도가 튼 본인이 평가하자면 방금 엔리의 말은 그림자 사냥꾼의 눈을 뒤집기에 충분했다.

       

       “죽여버릴테다.”

       

       사실 지금 그림자 사냥꾼은 이미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

       

       건물을 부수며 허를 찌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서 체력의 소모가 너무 컸다.

       

       그림자 사냥꾼이 마음을 먹고 시간을 끌기 시작한다면 엔리에게 체력의 격차를 따라잡을 방법은 없다

       

       허나 사람이라는 건 언제나 이성으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다.

       

       오늘 보았던 영상 속의 엔리가 그러했듯 분노에 눈이 돌아간 자는 이성보다는 가슴이 시키는 바에 따라 움직이기 마련이니까.

       

       이거 잘만 하면 승기를 잡을 수 있겠구나.

       

       “죽여봐요. 숨어서 기습 밖에 못하는 암살 충이 그런 걸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혀가 잘 돌아가는 구나.

       

       의도적으로 도발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화가 나 되는 대로 내뱉는 것이지는 모르겠으나 그 도발은 분명 효과적이었다.

       

       – 진짜 열 받은 거 같은데.

       – 저 사람에겐 일부러 도발을 할 지능이 없어요.

       – 그렇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었으면 실버에서 헤매지도 않았음.

       

       다들 후자라 생각하는 모양이구나.

       

       실은 나도 그리 생각한단다. 다만 엔리의 명예를 위해 언급하지 않았을 뿐이지.

       

       도발을 듣다 못한 그림자 사냥꾼이 먼저 발을 움직였다.

       

       엔리는 분노에 휩싸인 와중에서 침착하게 창수의 거리를 유지했다.

       

       방금 전 실수를 했을 때 다그친 덕분일까.

       

       그에 반해 그림자 사냥꾼은 자신의 본능에 휩싸여 창수의 거리 안으로 들어가는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

       

       상황이 역전됐다.

       

       그림자 사냥꾼은 이제 물러설 수도 앞으로 갈 수도 없다.

       

       도망치려하면 창의 추적이 들어오고, 앞으로 나서려 하면 창의 견제와 함께 엔리가 뒤로 물러나니 어찌할 수가 없었다.

       

       잔뜩 찌푸려진 그림자 사냥꾼의 표정과는 반대로 엔리는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멀리서 쿡쿡 찔러대며 상대를 괴롭히는 그녀의 얼굴엔 미소가 피어 있었다.

       

       “나보고 비겁하다며! 근데 넌 왜 비겁하게 하는데! 정정당당하게 싸우란 말야!”

       “싫은데요? 화나나봐요? 으쯔라구요.”

       

       더 볼 것도 없었다.

       

       이미 엔리는 승리를 거뒀다.

       

       중간에 판단이 늦은 게 답답하기는 했으나 결국 도박수 끝에 승리를 거두었으니 무어라 할 것은 없겠구나.

       

       “그런데 말이다. 엔리는 평소 방송을 할 때 저런 느낌이더냐?”

       

       사람을 놀리는 것이 어디 한 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듯 하다만.

       

       – 언제나 저래요.

       – 다른 사람을 놀릴 때 가장 즐거워 하는 스트리머임.

       – 절대 져서는 안 될 스트리머 중 하나란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님.

       

       방송을 할 때의 엔리는 평소와 많이 다른 모양이었다.

       

       평소의 그녀는 다소 기분파 적인 부분이 있기는 하다만 그래도 남을 배려하는 사람인데 지금의 그녀는 어떻게 하면 상대가 화날지를 고민하는 소악마 같지 않은가.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엔리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빈곤한 가슴을 내밀었다.

       

       그에 응답하듯 채팅창의 이들도 엔리를 찬양하는 말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호응하는 이나 찬양하는 이나 즐겁다 못해 광기에 빠진 것처럼 보여서 나는 차마 그 풍경에 끼어들지 못했다.

       

       한바탕의 광기가 지나간 후 시청자들은 엔리에게 내가 했던 일들을 고해 바치기 시작했다.

       

       이 놈들. 이리 입이 가벼워서야.

       

       “화령 씨. 대체 뭘 하신 거에요?”

       “그냥 포인트 배팅을 열려 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엉뚱한 사람이 밴이 돼있고, 방송 설정이 바뀌어 있는 거죠?”

       “원래 성공에는 시행착오가 따르는 법이니라.”

       

       당당히 말을 하자 엔리가 얇은 눈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무어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입으로 하거라! 그런 식으로 쳐다볼 것이 아니라!

       

       “나중에 방송 기능에 관해서도 알려 드릴게요.”

       “…부탁하마.”

       

       엔리의 눈을 보고 있자니 차마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순순히 고갤 끄덕이자 엔리가 미소를 흘렸다.

       

       “그래서 이번엔 어떠셨나요?”

       “잘했다.”

       

       너무 난장판이어서 지적할 거리가 한 둘이 아니다마는 겨우 어깨를 핀 엔리의 기를 죽이면서까지 해야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렇죠? 저 잘했죠?”

       

       꼬리가 있었다면 신나게 흔들렸을 것처럼 기뻐하는 엔리의 모습에 나도 웃음이 샜다.

       

       “한 번만 더 해보고 넘어가자꾸나.”

       

       처음은 평가할 가치가 없는 싸움이었고, 두 번째는 변수로 가득한 싸움이었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된 싸움을 보고 싶구나.

       

       엔리는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야 손이 풀린 것 같다면서 의욕을 보였다.

       

       [매치가 준비되었습니다.]

       [용사냥꾼 VS 신창]

       

       이번 상대는 신창이라는 캐릭터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저것은 장창을 다루는 무인이었을 것이다.

       

       창 대 창인가. 분명 용사냥꾼의 창보다 신창의 창이 길었지. 어려운 싸움이 되겠구나.

       

       – 쟤 어제 그 신창 저격러 아님?

       – 맞네. 부캐 저격충.

       – 저 악질 아직도 정지 안 당했음?

       

       상대 유저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채팅창에서 여러 말이 튀어 나왔다.

       

       저 자가 누구이기에 사람들이 이토록 발작을 하는 것일까.

       

       – 저 사람 요즘에 골플구간 스트리머 저격하면서 방송 창 내는 새끼임.

       

       일부러 패배를 하며 점수를 유지하고, 스트리머들을 만나면 상대를 농락하며 방송의 분위기를 어지럽하는 작자라며 시청자들이 성토했다.

       

       그러니까 자기보다 약한 이를 괴롭히는 걸 즐기는 자라는 소리 아니더냐.

       

       크게 특이할 것도 없는 일이구나.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 무림에서도 자신의 경지를 믿고 패악질을 벌이던 이들이 어디 한 둘이던가.

       

       확실히 시청자들의 말대로 신창 유저의 실력은 엔리보다 위였다.

       

       아무리 신창의 창이 조금 더 길다지만 창과 창의 싸움이다. 나는 닿고 상대는 닿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는 건 그리 쉽지 않다.

       

       허나 신창 유저는 그 거리를 착실히 유지하며 엔리를 괴롭혔다. 그 모습은 정석적인 창수의 모습 그 자체였다.

       

       엔리가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아니구나. 안 좋은 버릇을 여러 가지 가지고 있다만 엔리에겐 그 버릇을 노릴 실력이 없으니까.

       

       애당초 엔리는 내가 말해주지 않으면 그런 버릇이 있다는 것조차 모를 것이다.

       

       실력과는 별개로 신창 유저는 그리 인성이 좋지는 않았다.

       

       “진짜 허접하네. 화령이 가르쳐 준다던데 그 사람 창은 잘 못 다루나 봐?”

       

       엔리를 가지고 놀며 내 이름까지 들먹이는 것이 그리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니었다.

       

       – 참교육 마렵네. 진짜.

       – 지 티어에서 벽 느끼고 양학하러 온 거면서 아가리는.

       – 현실 담당일진 어디서 뭐하냐. 저 새끼 관리해야 할 거 아냐.

       

       엔리는 제대로 된 반격 한 번 하지 못하고 패배라는 글자를 보고야 말았다.

       

       무척이나 분한 듯 엔리가 촉촉해진 눈동자로 신창 유저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그 눈빛에 오히려 기뻐할 뿐이었다.

       

       흐음.

       

       마음에 안 드는 구나.

       

       저 놈의 행동이 잘못되었다 말하지는 않겠다.

       

       세상은 강자존으로 되어 있는 법. 약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죄이니 말이다.

       

       그러니 같은 의미에서.

       

       강자인 내가 저 자를 괴롭히더라도 그 죄는 상대에게 있는 것 아니겠는가.

       

       “엔리.”

       

       나가기 버튼을 누르려는 엔리에게 말을 걸었다.

       

       “네?”

       “한 번 더 싸워 보자꾸나.”

       

       원래 이유 없이 개같이 구는 상대에게는 개같이 굴어야 할 이유를 만들어주어야 하는 법이다.

       

       이대로 물러서면 분하지 않겠느냐.

       

       엔리. 그대는 상대가 핏줄을 벌겋게 세우고 발악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끝자락이지만 in100에 들어간 걸 봤습니다. 너무 기쁘더라고요.
    이게 다 표지를 그려주신 작가님 덕이고 보러 와주신 독자님들 덕이겠죠.
    더 높이 올라갈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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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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