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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

        

        ……다들 평안하십니까? 아나스타샤 발렌타인, 전투경찰 관문경비대 소속 사이버 엔지니어입니다.

         

         이런 질문을 하기 뭐한데… 혹시 경력(Career)을 쌓을 때는 시간이 너무 모자라지만, 반대로 일(Job)을 할 때는 시간이 뒤져라 안 간다는 말. 살면서 들어보셨습니까…?

         

         메가 코프의, 그것도 이 도시의 대표이자 대장이나 다름없는 파라다이스의 임원을 상대로 협잡질까지 감행해서 따낸 보직임에도 불구하고.

         이 일자리를 간절히 원했을 불특정 다수에게는 미안하지만… 저는 벌써 집에 돌아가고 싶네요… 네.

         

         …출근한지 대체 얼마나 됐길래 벌써 그러냐고요?

         

         

         “아샤…? 또 다리에 힘이 풀렸어?”

         “……아니.”

         

         주차된 오토바이 위에서 뭉개고 있는 나를 본 헬레나가 다가오길래 재빨리 손사래를 치고, 쓰고 온 헬멧을 벗어 그녀의 헬멧이 걸린 반대편 빈 손잡이에 걸어 두었다.

         

         아… 어지럽다. 소파가 그립다….

         

         본격적인 일터는커녕 직원전용 주차장에만 들어왔는데도 숨이 아주 턱턱 막힌다.

         

         면접 때의 무모한 도박수가 잘 먹혀서 안전보장과 더불어 어찌저찌 헬레나와 앤이 속한 조에 배속 받는 것까지도 성공. 추하게 짐처럼 운반되는 미래를 피하기 위한 생활 패턴 조정도… 성공.

         

         …그런데 내가 여기서 열심히 일한 걸 바탕으로 어디 기업에 이직할 것도 아니니 이게 참 곤란하다. 더군다나 내가 알고 있는 전투경찰 지식은… 굉장히 일천하다.

         

         네오 헤이븐을 플레이할 때, 퀘스트의 일환으로 변장하는 걸 제외하면 플레이어가 경찰직을 체험해볼 방법 같은 건 전혀 없었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데.

         

         …모르겠다. 조장이 헬레나고 엔지니어 사수가 앤이니 어떻게든 잘 적응하겠지.

         직무교육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이수 안 한 낙하산의 무서움을 느껴봐라 이 기업의 앞잡이들아…!

         

         “안에서는 절대 이름으로 부르면 안 되는 거 기억하지?”

         

         “아, 그건 기억하는데… 난 비밀결사나 국정원에 가입한 적은 없는데….”

         

         “……국정원이 뭐하는 곳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조심해.”

         

         이건 합격한 후에 헬레나로부터 직접 배운 사실.

         난 당연히 일반 시민들에게만 직업을 숨기는 줄 알았는데… 자기들끼리도 신원을 감춘 채 근무한다고 한다. 무려 조장인 그녀도 정확한 신원을 아는 건 나와 앤 둘뿐이라고 했다.

         

         설령 우연히 출근길이나 퇴근길에 변장없이 마주치더라도 아는 체도 안 하는 게 예의라나 뭐라나.

         

         그럼 상급자나 근무조도 서로 구분 못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건 식별장치가 부착된 바이저를 지급받으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고.

         

         …용병 업계는 무슨 닉네임까지 만들어가면서 확실하게 이름을 떨치려고 안달이었는데, 무슨 비교체험 극과 극인가?

         

         탕… 탕….

         

         공허한 발소리를 울리며 널찍한 지하 주차장을 가로질러 설치된 승강기로 향했다.

         효율과 지출관리에 미친 기업답지 않은 낭비라고 생각했지만 여기가 곧 도시 안과 바깥의 경계라는 게 떠올랐다. 땅값이 공짜니 일단 넓혀 놓고 봤겠지 그래….

         

         “…어라?”

         

         막힘없이 앞길을 선도하는 헬레나를 따라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는데… 어째 안에 있는 버튼에는 층을 나타내는 숫자 대신 다양한 알파벳이 표시되어 있었다.

         

         열림, 닫힘을 제외하면 5개밖에 없는 주제에 왜 이런 식으로 돼있는 건지.

         

         HQ… 이건 뭔지 알겠고, B? B는 지하가 아닌가…? 하지만 우리가 있는 층은 P인 것 같은데….

         

         호텔에서 1층을 L -로비- 로 표시하는 건 얼마전에도 보긴 했지만 이렇게 모든 층을 약어로 표기한 건 역시 보안문제 때문일까?

         

         분류상으론 공공기관이 분명함에도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치밀하기 그지없는 기업에 혀를 내두르느라 바쁜 내 기색을 눈치 챈 그녀가 부끄럽다는 듯이 설명해주었다.

         

         “그… 단순하게 숫자로 적혀 있으면 권한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함부로 출입하려는 대원이 생긴다고 몇 년 전 대규모 공사 때 대대적으로 교체했어.”

         

         “…별 이상한 직원복지가 다 있네.”

         

         기업식 해괴망측한 친절심이라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한 나에게 헬레나의 부연설명이 이어졌다.

         

         “……자꾸 예정에 없던 영구 결원이 발생하는 건 위쪽이나 우리나 비슷하게 싫어하니까. …응.”

         

         “영구 결원…? ………아?!”

         

         …이런 미친! 근무지를 탐험하다가 사살당한 경찰이 있다는 건 조금 더 분명히 말해줬으면 좋겠다. 절대 어색한 웃음으로 넘길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엘리베이터가 P층에서 B층으로. B층에서 내려서 탈의실로 향하는 동안 간략하게 의문의 버튼들에 대한 뜻풀이를 들었다.

         

         맨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HQ는 기업의 지휘부(Headquarters), B는 막사구역(Barracks Floor), M은 의료구역(Medical Floor), P는 평범하게 주차구역이라고.

         

         “…응? 그럼 층이 하나 남지 않아?”

         

         “최하층인 HA는 관문이 공격당했을 때만 접근 가능한 중화기 보관고(Heavy Armory)니까, 아샤도 조심해. …뭐, 이제 HQ랑 HA층은 허가 없이는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도 않으니까 괜찮겠지만. 자, 손 내밀어봐.”

         

         “윽…?!”

         

         뻗어진 팔 위로 차곡차곡 경찰 장비가 쌓아 올려진다.

         

         군화부터 출발해서 제복 겸 진압복… 진압봉… 테이저 건…? 그나마 경찰이라 그런지 무력화의 개념을 아주 올바르게 이해하는 모양이다.

         

         달칵….

         

         “오….”

         

         최후는 상징과도 같은 대망의 바이저까지 확실하게 지급받았다.

         …보급물품 사이즈는 대체 어떻게 때려 맞춘건가 잠깐 고민했으나, 생각해보니 난 헬레나 손에 이끌려 이런저런 가게들을….

         

         …그만 떠올리자. 상상만 했는데도 체력과 정신력이 실시간으로 줄어드는 게 느껴지니까.

         

         훌렁훌렁, 어딘가 흐뭇한 표정으로.

         기념비적인 나와의 첫 근무가 기대되는 것처럼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 그녀에게서 후다닥 시선을 돌렸다. 동거하면서 조금은 익숙해졌다고 여겼는데, 내겐 여전히 자극이 너무 강했다.

         

         배정된 사물함에 입고 온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살짝 빳빳한 신품 느낌이 남아있는 보급품에 팔다리를 끼워 넣었다.

         

         그리고… 머리를 들이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어두컴컴한 경찰 헬멧 입구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일과 시간동안 개인은 사라지고 집단만이 남는 체제, 막사구역이라는 공식적인 명칭.

         거의 재입대에 준하는 결정을 내린 이 무거운 마음을 헬레나와 앤, 그녀들이 알아주는 날이 과연 올지 모르겠다. ……에라이!

         

         – 주간 근무 3조, 아나스타샤 발렌타인 사이버 엔지니어님. 정시 출근 확인되었습니다. –

         

         한국 남자라면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씁쓸한 기억을 억지로 떨쳐버리고 모든 장비를 착용했다. 그러자 생체신호를 감지했는지 무미건조한 음성안내와 함께 바이저에 전원이 들어왔다.

         

         “…….”

         

         한데 부팅되자마자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게 근태 안내라니… 정말 끝내준다.

         사물함에 달린 거울을 바라보자 바이저 안쪽에 ‘DS3-CE2’ 라는 식별문구가 출력된다.

         

         …주간 근무(Day Shift), 사이버 엔지니어(Cyber Engineer)라… 알기 쉬워서 좋네.

         

         고개를 돌려 어느새 완전무장을 마친 헬레나를 바라보니 ‘DS3-1’ 이 나타났고, 그 뒤로 들어오는 다른 경찰은… ‘DS3-CE1’?

         

         “아…! 동생 분! 정말로 오셨네요…!!”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 그럼요, 후배님…!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 가르쳐 드릴게요…!”

         

         분명 훈훈한 장면인데도, 시꺼먼 외형과 자동으로 변질된 음성이 앤의 푹신한 말투와 합쳐지자 숫제 저세상 진풍경을 연출했다.

         안에 들은 내용물들을 아는 헬레나야 하나뿐인 절친와 하나뿐인 동생의 화합에 그저 만족스럽게 팔짱을 끼고 구경하고 있었고.

         

         “그러면 우선… 근무수칙부터 간단하게….”

         

         – 3번 게이트에서 차량충돌 사고 발생, 새벽 근무 3조 및 교대 대기중인 주간 근무 3조 전투원은 즉시 대응하기 바람. –

         

         예고도 없이 귓가를 때리는 긴급 통신에 조장님의 말씀이 뚝 끊겼다.

         흐름을 방해한 것도 모자라… 듣기만 해도 피곤한 상황이 발생했다면 그 누구라도 기분 좋을리가 만무했다.

         

         “……근무수칙은 거기 1번 엔지니어님이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는 걸로 대신하겠습니다.”

         

         끼긱…!

         

         헬레나의 몸이 팩 돈 다음 오싹할 정도로 쿵쿵거리면서 탈의실로부터 멀어져간다. 앤은 걱정말라는 듯 내 어깨에 손을 집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분명 통신은 특별히 누구를 지목한 게 아니라 대기중인 3조 인원 전체를 부르지 않았나…?

         

         “이럴 게 아니라, 저희도 가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선배님…?”

         

         “응? 우리는 기술직이라 전투원 호출이나 통상 경비업무는 지원요청이 오기 전까지는 없답니다?”

         

         ……설마! 사이버 엔지니어는… 행정병이었나…?

         

         “…그럼 그 지원요청을 하는 주체는 누구죠.”

         

         “지휘부나… 3조 조장님…? 아! 관련 근무수칙부터 전송해줄게요.”

         

         세상에 둘도 없을 꿀보직의 기운에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아무리 법 체계가 뒤집힌 동네여도 이건 용서받지 못하겠지만… 이러면 여유 시간을 모두 다가올 위협조사에 투자해도 괜찮겠다는 구상과 함께 나는 앤으로부터 전송받은 파일을 열었다.

         

         

         [ 경찰 근무수칙 제1조1항, 근무 도중 임플란트를 이용한 사적인 사이버웨어 구동 및 네트워크 접속은 정직 처분을 내린다. ]

         

         

         “아.”

         

         이 가혹한 기업 새끼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직원과 합체했어도 금지다!

    …무려 한 시간 지각…! 정말 죄송합니다. 차라리 연재 시간을 고칠까 싶네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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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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