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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

       하늘에 꽃비가 가득하다.

         

        정말로 만천화우라는 말이 어울리는 장관이 펼쳐졌다.

         

        독과 깃털. 그리고 털 속에 숨겨둔 암기들이 계속해서 쏟아진다.

         

        피해야 한다.

         

        어떻게든.

         

        파바바바밧!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쿠웅.

         

        그대로 균형을 잃고 말았다.

         

        놈에게 당한 부상이 생각보다 심했다.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피.

         

        데스롤을 시전 할 때 놈에게 받은 데미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도 피해야 한다.

         

        어떻게든….

        

       [경고! HP가 부족합니다.]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몸이 멀쩡하더라도 저 공격을 전부 피하진 못했을 거다. 지금 같이 최악의 몸 상태에서, 어떻게 저 공격을 피하란 말인가.

         

        하늘을 바라봤다.

         

        수백수천 개의 독과 암기.

         

        백독불침으로도 저 공격을 막을 순 없었다.

         

        잔혹하지만 역설적으로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저 공격에는 사각이 없었다.

         

        만천화우.

         

        살면서 만천화우를 보게 될 줄이야.

         

        게다가 다른 누구도 아닌, 딜로포사우루스가 쓰는 만천화우를 보게 되다니.

         

        죽기 전에 좋은 광경을 보고 가는구나!.

         

        수많은 암기들이 점점 가까워진다.

         

        여기까지구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이게 주마등이라는 거겠지.

         

        이상하게 아쉽지 않았다.

         

        삶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거다.

         

        그래도 의미 없는 삶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코 도마뱀으로 태어나, 바실리스크가 되고, 결국엔 왕도마뱀까지 됐다.

         

        투스랑 푸스도 나름 잘 키웠다고 생각한다.

         

        처음 만났을 땐 코흘리개였는데, 덩치도 꽤 커졌고.

         

        나는 몰랐는데 내공을 다룰 수도 있다고 하니 어딜 내놓아도 안심일 거다.

         

        마침 당소영이 데려간다고 했으니까, 알아서 맡아주겠지.

         

        당소영.

         

        이상한 점이 몇 개 있긴 한데, 나름 똑 부러지는 여자다.

         

        투스랑 푸스를 데려가서 잘 키워주길.

         

        …내 독을 주지 못한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잘 해낼 거다.

         

        공룡들도 실제로 보고, 심지어 잡아먹기도 해보고.

         

        도마뱀의 몸으로 무공이란 것도 써봤다.

         

        그래, 무공.

         

        백연영.

         

        은룡굴에서 만난 나의 스승.

         

        그때 따라갔다면, 이렇게 죽진 않았겠지.

         

        평생 작은 도마뱀인 채로 편하게 지내다 수명을 다해 죽었겠지.

         

        조금 더 대화를 해보고 조금 더 알아보고 싶긴 했지만, 배부른 돼지가 될 바에 배고픈 왕도마뱀이 되는 게 나았다. 그녀를 따라가지 않은 걸 후회하진 않는다.

         

        돌이켜 보면 나쁘지 않은 삶이었던 거 같다.

         

        어이없게 시작된 두 번째 삶.

         

        다시는 도망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끝까지 지켰으니 후회는 없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네필라 쥐라시카.

         

        네가 남았지.

         

        내가 이 세계에 오고 처음으로 맺은 인연.

         

        서로 싸우기도 하고, 같이 등을 맞대기도 하고.

         

        덕분에 죽을 뻔하기도 하고, 덕분에 목숨을 건지기도 하고.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게코 도마뱀에서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두 번째 삶의 첫 번째 반환점이라고 하면, 네필라 쥐라시카겠지.

         

        거미야.

         

        다시 보게 된다면 사과하려고 했는데.

         

        이번 일만 끝난다면 얼굴이나 한번 보려고 했는데.

         

        조금, 잘 안됐네.

         

        미안해.

         

        스아아악!

         

        암기가 내 목을 향해 날아든다.

         

        이제 작별 인사를 하는 것도 끝이겠지.

         

        ….

         

        …….

         

        “키에에에엑!”

         

        투두둑.

         

        하늘을 가르며 날아오던 암기들이 별안간 멈췄다.

         

        암기를 막아 세운 건, 엄청난 양의 거미줄.

         

        그리고 내 앞에 서 있는 건.

         

        붉은 눈.

         

        검은색 다리.

         

        호랑거미를 닮은 생김새.

         

        “키에에엑!”

         

        네필라 쥐라시카였다.

         

        …도대체 어떻게?

         

        촤아악!

         

        네필라 쥐라시카가 쏘아대는 거미줄이 날아오는 암기들을 막아냈다.

         

        투두두둑!

         

        그녀의 점도 높은 거미줄은 만천화우를 막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카강!

         

        놓친 암기는 그녀의 강철 다리가 빠르게 쳐냈다.

         

        “게겍!”

         

        환호성이 가득 찬 울음소리를 내었다.

         

        네필라야!

         

        지금 보니까 되게 반갑다.

         

        “키에엑!”

         

        그래.

         

        희망이 생겼다.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네필라 쥐라시카라면 이 상황에서도….

         

        푸확!

         

        “키에엑….”

         

        내 눈이 잘못된 걸까.

         

        분명 네 몸이 가리고 있어야 할 부분이 왜 훤히 보이는 걸까.

         

        있으면 안 될 거 같은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카각!

         

        다리도 멀쩡하지 않았다.

         

        투확!

         

        날아드는 암기 세례에 두 개의 다리가 박살 나고 말았다.

         

        거미 한 마리가 만천화우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전에 볼 때보다 크기가 커졌다지만, 지금의 나보단 작았다.

         

        나도 막지 못하는 걸 작은 거미가 어떻게 막을 수 있겠나.

         

        “게게겍!”

         

        당장 비켜!

         

        이 멍청한 거미가.

         

        왜 끼어들어서 개죽음을 당하려는 거야.

         

        지금이라면 네필라를 살릴 수 있다.

         

        마지막 힘을 담아, 꼬리를 휘둘러 멀리 보내버리자.

         

        촤아아악!

         

        거미줄이 쏘아졌다.

         

        그녀의 거미줄은 정확히 내 발목을 묶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움직일 수 없도록.

         

        내게 거미줄을 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투확!

         

        그렇기에 그 잠깐 사이에, 그녀의 팔 하나가 더 떨어져 나갔다.

         

        “게에에엑!”

         

        왜.

         

        대체 왜.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고작 하루 동안 알고 지낸 사인데.

         

        왜 저런 꼴이 되면서까지.

         

        내가 죽는 건 두렵지 않다.

         

        하지만 아무 죄 없는 저 거미가 휘말려 드는 건 바라지 않는다.

         

        제발.

         

        “게게게게게겍!”

         

        투타타타!

         

        딜로포사우루스는 질리지도 않는지 계속해서 맹공을 쏟아부었다.

         

        투확!

         

        다리 하나가 더 날아갔다.

         

        더 이상 거미줄을 쏠 수도 없었다.

         

        암기를 쳐낼 손도 마땅히 없고 다른 능력도 잃은 상태다.

         

        아직 다리가 몇 개 남았을 때, 제발 도망가 줘.

         

        네가 여기 있는다고 해도 변하는 건 없어.

         

        “키에에에엑!”

         

        네필라 쥐라시카는 처음 보았을 때처럼 울부짖었다.

         

        그렇게 울부짖더니, 다리가 얼마 남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점점 내게 다가왔다.

         

        다리가 얼마 남지 않은 몸에는 상처가 점점 더 많이 생기더니, 여덟 개의 보석 같은 눈도 이제 두 개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날아드는 암기 세례들.

         

        저 몸 상태로는 움직이는 것조차 기적일 거다.

         

        억지를 부리더라도 이번 건 막을 방법이 없다.

         

        파바바박!

         

        네필라 쥐라시카는 남은 다리를 힘겹게 이끌며 내 위에 올라탔다.

         

        처음 보았을 땐 그 어떤 것보다 커 보였던 그녀의 몸이 너무나 작게 느껴진다.

         

        “게게게겍!”

        “키오옹….”

         

        이젠 울음소리를 낼 힘도 없으면서, 멍청하게도 등으로 적의 모든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

         

        그러니 제발.

         

        너라도 살았으면.

         

        만약 기적이라는 게 있다면, 이 거미를 안전한 곳으로 보낼 수 있는 힘이 생기길.

         

        네필라 쥐라시카의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감정이 극에 달할 때.’

         

        순간, 당소영이 했던 말이 뇌리에 스쳤다.

         

        ‘어떤 방향으로든 그것이 극에 달했을 때.’

         

        진정한 환골탈태.

         

        ‘그중에서 제일은, 무언가를 지키고자 할 때.’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외피가 단단한 거미가 될 수도 있을 거고 독이 통하지 않는 거미가 될 수도 있을 거다.

         

        그래.

         

        이거라면 그녀가 살 수 있을 거다.

         

        사아아아악!

         

        강한 빛이 늪지대 전체를 감쌌다.

         

        네필라 쥐라시카의 모습이 변했다.

         

         

        *

         

         

        네필라 쥐라시카의 감정이 극에 달했다.

         

        그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도마뱀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자신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어떤 형태로 변화할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는 걸.

         

        수많은 선택지가 보인다.

         

        빠른 속도를 가진 거미, 전갈과 같은 독침을 가진 거미, 외피가 철갑처럼 단단한 거미.

         

        모두 강한 종이었다.

         

        그녀가 그토록 바라왔던 진화였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사랑하는 이를 지킬 수 없었다.

         

        작았던 도마뱀은 커졌고, 자신의 그에 비한다면 작았으니까.

         

        힘이 아무리 강해진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그를 지킬 수 없었다.

         

        그를 살리기 위해선, 몸이 커져야 했다.

         

        도마뱀의 몸을 완전히 가릴 수 있는 몸을 가져야 했다.

         

        그 선택지는 분명 존재했다.

         

        그것은 생명체라면 절대 고르지 않을 비효율적이고 미련한 선택지였다.

         

        감정이 없는 거미는 비효율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다.

         

        비효율적이고 미련한 행동.

         

        네필라 쥐라시카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배웠다.

         

        그녀는 사랑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사랑을 탐한 자는 암컷에게 잡아먹힌다는, 잔혹한 진실만 보았을 뿐이었다.

         

        그렇기에는 그녀는 망설여왔다.

         

        나뭇가지에서 헤어졌을 때, 망설이지 않았다면 도마뱀을 잡을 수 있었을까.

         

        몇 번이고 이곳을 맴돌 때, 망설이지 않았다면 만날 수 있었을까.

         

        도마뱀을 지켜본다는 걸 들켰을 때, 망설이지 않고 나섰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까.

         

        네필라 쥐라시카는 거대한 도마뱀을 바라봤다.

         

        지금의 몸으로는 차마 다 감쌀 수 없을 정도로 커진 도마뱀.

         

        옆구리에선 피가 흘렀고 한쪽 눈은 완전히 뭉개졌다.

       

       조금 더 빨리 나섰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이번에도 망설인 거다.

         

        그녀는 다짐했다.

         

        이제는 망설이지 않겠다고.

         

        그래.

         

        네필라 쥐라시카에게 사랑이란.

         

        더는 망설이지 않는 것이다.

         

         

        *

         

         

        기적이란 말을 함부로 한 대가일까.

         

        네팔라 쥐라시카의 모습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변했다.

         

        단단한 외피도 없었다. 피를 토하는 걸 보면, 독에 대한 면역 역시 없었다.

         

        왜, 왜 이런 모습으로 변한 거야.

         

        그녀가 가진 것이라곤 두 개의 붉은 눈. 그리고 금색의 짧은 머리카락뿐이었다.

         

        네팔라 쥐라시카의 상반신은 연약하디 연약한 인간의 것으로 변했다.

         

        이 상황에 있어서 그녀의 진화는 퇴화라고 부르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른다.

         

        육체가 더 약해졌고 오히려 몸이 커져 날아드는 암기에 더욱더 잘 맞을 뿐이었다.

         

        파바바밧!

         

        그녀의 등에 박히는 암기의 수가 늘어났다.

         

        인간의 연약한 살은 딜로포사우루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곳곳이 터져나갔다.

         

        주륵.

         

        네필라 쥐라시카의 입가에서 피가 흐른다.

         

        잘못된 선택이다.

         

        미련한 선택이고 멍청한 선택이었다.

         

        죽음 앞당기는, 아주 바보 같은 선택이었다.

         

        그런데.

         

        그런데도.

       

       

       

       네필라 쥐라시카는 웃고 있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주제에.

         

        바보 같은 꼴로 진화한 주제에.

         

        몸도 성치 않은 주제에.

         

        뭐가 그리 좋은지.

         

        그냥, 웃고 있었다.

         

        해맑게.

         

        나를 묶고 있는 거미줄이 점점 헐거워지고 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건 단 하나였다.

         

        네필라 쥐라시카의 몸이 기울어진다.

         

        툭.

         

        작은 꽃잎이 지듯, 그녀의 상체가 내 가슴팍에 떨어졌다.

         

        거미는 심장이 없다고 했던가.

         

        두근.

         

        아니, 거미도 심장을 가지고 있다.

         

        두근.

         

        아주 미약하지만, 분명하게도 심장이 뛰고 있었다.

         

        그래.

         

        네필라 쥐라시카는 아직 살아있다.

         

        그녀의 팔이 올라갔다.

         

        차가운 손이 내 눈가를 어루만진다.

         

        고작 눈 하나 다친 걸 걱정하는 걸까.

         

        자기가 무슨 꼴이 되었는데.

         

        아니.

         

        그녀는 아직 살아 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툭.

         

        네필라 쥐라시카의 팔이 떨어졌다.

         

        아주 힘없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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