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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

       전생 시절 그는 군인이었다.

       그것도 10년 동안 말뚝 박은 직업 군인.

       훈련에 이골이 났다는 뜻이기도 했다.

         

       무수한 훈련을 했다.

       혹서기·혹한기 훈련은 물론이고, RCT(연대전술훈련)도 해봤다.

       천리행군은 물론이고.

         

       군 생활 10년이라 하면 훈련이란 훈련은 거의 다 해볼 수 있는 법.

         

       …그다지 자랑스럽진 않다.

         

       훈련이 끝날 때마다 피폐해지고, 건강이 타버리는 기분인데, 자랑스러울 게 무얼 있으랴.

       그냥 사람 괴롭히는 거지.

         

       그러니 이한은 군대 훈련만큼 비합리적인 게 없다고 본다.

       모든 군대가 그런 건 아닐 거다.

       분명 제대로 된 훈련도 있을 테고, 시스템을 확립하는 곳도 있을 테니까.

         

       ‘다만 내가 있던 부대나 사단은 그런 적이 없을 뿐이지.’

         

       그냥 2년 간 끌려온 병사들 괴롭히고 병을 주는 훈련뿐.

       하여 이한은 그러한 훈련을 싫어한다.

       무작정 괴롭히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훈련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무박7일이 진짜 개 같았지.’

         

       개 같은 대대장 새끼, 지는 몰래 BOQ(간부 막사)가서 자면서 그들은 잠도 안 재우더라.

         

       …하여간,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는 비합리적이고, 병만 남는 훈련을 극도로 증오한다.

         

       뭐라도 남아야 한다.

       어떠한 기술이라도 배워서 훗날 써먹을 재주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자신이 내린 ‘훈련의 정의’다.

         

       하니.

         

       ‘내가 지금부터 하는 건 괴롭히는 게 아니야. 다 너희 잘되라고 이러는 거지.’

         

       이한은 지금부터 하려는 훈련에 대한 타당한 명분을 확보했다.

         

       그렇게.

         

       “-모두, 오침도 잘 취했을 테니, 가볍게 땀이나 낼 겸 체조를 시작하도록 하지.”

         

       -?

         

       검은 팔각모를 쓴 그가 목소리를 내리깐 채 명령을 내렸다.

         

       “가볍게 할 거다, 가볍게. 자, 그럼, ─가볍게 팔 벌려 높이뛰기 100회만 해보도록 하지.”

         

       -!!?

         

       “대답이 없군, 500회다! 알겠나, 500회!!”

         

       -하,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대답이 늦군. 그리고 구호는 ‘악’으로 통일하도록, 정신 사납다. 자, 1,000회를 실시하겠다.”

         

       -아, 아악!!

         

       “목소리가 작다! 이번은 넘어가지만 다음번엔 각오하도록. 아, 참고로 횟수를 정확히 세야 할 것이고, 마지막 구호는 없다, 알겠나!”

         

       -아아아악!!

         

       “좋다, 300회, 실시!”

         

       가벼운 몸풀기 운동이 시작됐다.

         

       다만, 이 몸풀기의 함정은.

         

       “…3백…! 허억!?”

         

       ‘그래, 무조건 나올 줄 알았지.’

         

       불변의 법칙마냥 항상 나오는 마지막 구호가 마음을 따스하게 할 따름이었다.

         

       이한은 어디까지 갈까 싶어 심히 흐뭇했다.

         

         

       그날, 가벼운 체조였을 팔 벌려 높이뛰기는 마지막 구호를 외치는 이들 때문에 장장 2시간 동안 이어졌다.

         

       * * *

         

       ‘몸 풀기’ 이후에도 그들은 배워야 할 것이 많았다.

       교관이 일명 [PT체조]라 부르는 14개의 체조 동작을 하나도 빠짐없이 외워야 했기에.

       한데 어느 순간 체조의 순서나 동작은 그들에게 절로 각인되었다.

       이를 단번에 외울 만큼 머리가 좋은 이들은 없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체조는 강제로 외우게 됐다.

         

       어떻게 가능하냐고?

       간단하다.

         

       “14번 훈련생은 열외 합니다.”

       “아, 아악!”

       “1부터 14번 동작을 역순으로 30번씩 채웁니다. 알겠습니까?”

       “아, 악!!”

         

       어느새 훈련생으로 불리기 시작한 새싹 생도들이었고, 교관의 검은 팔각모와 다른 붉은 팔각모를 쓴 조교들 다섯이 그들을 감시하며 동작이 틀린 이들을 열외 시켰다.

         

       그리고 ‘열외’를 경험한 이들은 하나같이 열외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득바득 동작을 외우고, 동작을 틀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발악했다.

         

       어느 순간 18명의 새싹 생도들 전원은 열외를 한 번씩 경험했고, 이후부터 동작을 틀리는 이들은 차츰 줄어들었다.

       다만 동작만 틀리지 않을 뿐.

         

       “사, 삼십…, 으읍!?!”

         

       “12번 훈련생은 열외. 나머지 인원은 1번 동작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악…!

         

       그들은 마지막 구호를 외친 생도를 노려보았다.

       이 지옥 같은 체조를 끝내기 위해선 14개의 동작을 차례대로 모두 완수해야 됐고, 횟수를 외칠 때 마지막에는 구호를 붙이지 않거나, 혹은 붙여야 했다.

         

       교관은 악랄했다.

         

       ‘빌어먹을! 그냥 마지막에 계속 하지 말라고 하든가! 왜 계속 구호를 붙였나 안 붙였다 하는 거야!’

         

       ‘돌대가리 같은 놈들! 저 머리로 입학시험은 어떻게 친 거야!’

         

       ‘젠장! 젠장-! 젠장-!!’

         

       온몸이 타들어가는 듯한 더위.

       흙바닥을 구르며 땀과 먼지 등이 뒤섞여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무거운 몸.

       아득해져만 가는 정신.

         

       그들은 이 순간 지옥이 있다면 이러하리라 확정하였다.

         

       …교관과 조교들은 지옥에서 죄인을 괴롭히는 악마들이었고.

         

       허나 그러한 상황 속에서.

         

       “훈련생들은 지금부터 모두 일어서서 물을 마시고, 40분 간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한다. 실시!”

         

       -아, 아아아아악!!

         

       신의 말씀을 접한 신도들마냥 감동하며 어디서 힘이 난 것인지 최선을 다해 소리쳤다.

         

       그래, 악마는 악마지만 교관은 착한 악마였다.

       어찌도 이리 잘 아는 건지, 그들이 정말 혼미해지고 죽을 것 같을 때마다 가뭄의 단비처럼 휴식을 내렸으니까.

         

       “으아아악….”

       “주, 죽을 것 같아.”

       “…zzz.”

       “이 자식 벌써 잠든 거야?”

       “…지금이라면 나도 바로 잠들 수 있을 것 같다만.”

         

       물을 마시고, 물통 옆에 마련된 살이 떨릴 정도로 달달한 대추야자를 먹는다.

       이 순간 천상의 감로수와 과일이 있다면 이러하리란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들은 나무가 우거진 그늘에서 뻗어버렸다.

         

       극락의 휴식.

       이 순간 그들은 어떠한 움직임도 취하지 않았고, 전력으로 휴식을 취한다는 게 뭔지 몸소 깨우쳤다.

         

         

         

       “-교관, 이런 훈련은 대체 어떻게 생각해낸 거요?”

         

       가란드. 붉은 팔각모를 쓰며 조교 감투를 쓴 그가 감탄스럽다며 교관을 보았다.

         

       험난하고도 악랄하기로 유명한 전설적인 용병대, 황야의 늑대들의 훈련.

       이를 질리도록 겪은 가란드이기에 느낀다.

       이 훈련은 황야의 늑대들 입단희망자들이 받는 훈련과 몹시 흡사하다고.

       아니, 어떤 의미에선 더욱 체계적이고 안정적이다.

         

       “온몸의 근력과 유연성을 한계까지 쥐어짜내게 하고, 부상의 우려가 느껴진다 싶으면 바로 휴식을 취하게 해버리는군요. 마치, 철을 두드리는 것 같습니다.”

         

       아르노의 비범한 관찰력은 가란드처럼 이 훈련이 마냥 불합리하지 않음을 알았다.

       분명 정신적인 고통과 스트레스는 있을지언정, 몸이 망가질 정도로 굴리진 않는다.

         

       열외도 마찬가지다.

         

       “교관 말대로 쿤타, 다칠 것 같은 사람 있으면 열외 시켰다. 잘한 건가?”

         

       가끔 사소한 트집을 잡아 열외 당하는 훈련생이 있는 이유였다.

         

       “…교관님 말대로 몰래몰래 마지막 구호를 제가 하긴 했거든요? 근데 이거 들키면 저 아무래도 역적 될 것 같은데….”

         

       이상하리만큼 구호 실수가 잦은 이유.

       데미안 폴렛의 활약이었고, 만약 들킨다면 생도 전원에게 린치를 당하리라.

       뭐, 들킨다고 해도.

         

       “들켜도 내가 시켰다고 하지 마. 네가 장난쳤다고 해.”

       “…그럼 칼 맞을 텐데요.”

       “어쩌라고?”

       “!!?”

         

       임시 조교들과 달리 사람 취급을 못 받는 데미안이었다.

         

       “근데요, 교관님. 이 훈련은 계속하는 거예요?”

         

       그리고 오늘의 MVP 조교.

       더위를 비롯하여 열사병이 생기는 것을 마법으로 미연에 방지해준 아이린 윈들러였다.

       참고로 귀족들의 간식인 대추야자가 간식으로 있는 것도 그녀 덕이다.

       역시 수양녀라지만, 공작 가문 영애다운 씀씀이.

         

       “모두 잘해줬다. 지금처럼 해서 일주일만 굴릴 거다.”

       “목적이 있습니까?”

       “체력증진이나 근육 단련은 뒷문제고, 일단 경험시키는 거야. 온몸의 힘을 쥐어짜내는 게 어떤 건지 몸에 강제로 새겨주는 거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리 적절한 휴식과 한계선을 정하여 훈련시킨다고 한들, 일주일 동안 이것이 반복된다고 하면 아무래도 좀….

         

       “그건 걱정 마. 마침 좋은 게 있거든.”

       “좋은 거요?”

       “흠, 잠시 시간도 있으니 보여주지.”

         

       이한은 조교들을 데리고 자리를 벗어났다.

       생도들을 내버려뒀다가 도망가면 어쩌냐고?

         

       ‘그럼 도망가라지.’

         

       힘들다고 도망갈 놈들은 필요 없다.

       강해지고자 하는 데 편법이 어디 있는가.

       모든 것이 노력이지.

       한데 최소한의 노력도 못 할 거면 그냥 지금 꺼져주는 게 도리어 이한도 시간을 아껴 좋다.

         

       그는 그들을 강제할 마음이 추호도 없음이다.

         

       다만.

         

       ‘확실한 보상을 줘야지.’

         

       화악.

         

       “…이건?”

       “오, 온천?”

         

       이한이 조교들을 데리고 간 곳에는 천연온천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컸다.

         

       운동장 정도의 넓이와 2미터 신장의 쿤타조차 자칫 빠져 허우적거릴 깊이.

       그 모든 넓이와 깊이를 채운 건 맑고도 따스한 김을 모락모락 내뿜는 온천수였음이다.

         

       “세상에….”

         

       놀라는 그들을 뒤로 하며 이한이 말을 이었다.

         

       “옛날에 어느 노예 상인 녀석이 자기 별장 만든다고 비밀 장소를 알아보다가 우연히 불칸에 온천 수맥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더군.”

       “…노예 상인 따위가 신성한 산에다 별장을 만들었다는 겁니까?”

       “뭐, 결국 온천만 만들고 끝났지. 집을 지으려던 중 덜미가 잡혔거든.”

       “누구한테…. 아.”

         

       누구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가 이 장소를 알고 있는 이유가 뭐겠는가.

         

       “노예 상인이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어?”

       “…아니요.”

         

       그의 불길한 미소를 보고 있자니 왠지 안 듣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장소를 저희에게 보여줘도 되는 겁니까? 훗날 나쁜 마음을 먹는 자들이 있다면….”

         

       이토록 아름답고도 웅장한 온천이다.

       귀족들도 탐낼 환경인데, 자칫 잘못 걸린다면 빼앗길 우려가 있을 터.

       아니면 누군가가 소문을 내거나.

         

       그러나 이한은 피식거렸다.

         

       “여기? 알고 있어도 다른 녀석은 못 찾아올 걸? 불칸이 괜히 영산이라 불릴까, 오를 때마다 환경이 미로처럼 바뀌는 산이야. 학자들이 말하기론 불칸 자체가 가진 신비의 마력 때문에 산이 사람을 내쫓거나 죽이려고 든다더라. 아마 욕심 가지고 올라오면 그날로 불칸은 다시 화산활동을 시작할걸?”

         

       마력이나 신비는 인류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 곳곳에 존재하는 법.

         

       전설적인 대마법사이자 현자 멀린이 남긴 말이었다.

         

       그러한 신비를 품은 자연 중 하나가 불칸일지니.

         

       “저, 저희는 올랐지 않습니까?”

       “그거야 내가 여기 오를 방법을 알고 있는 데다, 딱히 산에 피해를 주려는 마음이 없는 것도 있을 테지.”

       “…그렇군요.”

         

       조교들은 마냥 그런 게 아니다 싶었다.

       신비를 품은 산이 개인을 허락한다는 건, 그가 때려잡은 노예상인이 불칸을 불쾌하게 만들 만큼 혐오스러운 ‘악인’이었다는 뜻이리라.

         

       그리고 이러한 악인을 거침없이 때려잡았기에 불칸은 그가 산에 오를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고, 그와 함께했기에 그들 또한 오를 수 있었을 터.

       이건 예측이 아니라 확신이다.

         

       가문이나 용병대, 부족을 통해 전해지는 기록이 근거가 되어주니.

         

       …그리고 기록대로라면 자신들이 산에 피해를 입힌다면 어느 순간 추방당하거나 저주를 받을 테지.

         

       ‘대단한 사람이야.’

         

       [신비]를 품은 산에게 총애를 받는 위대한 업적.

       한데 이를 업적이라 여기지도 않는다.

         

       전사들이 업적을 쌓은 남자를 향해 존경을 품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리라.

         

       “말이 딴 길로 새긴 했다만, 어쨌든 이 온천만 있으면 저놈들이나 너희나 몸이 망가질 일은 없을 거다.”

       “…이 온천에 무슨 특수한 효능이라도 있습니까?”

       “상처회복이랑, 관절 치유, 자연 치유력 활성화, 그리고 피부미용이랑 건강증진 효과 정도? 그밖에 몇 개 더 있었는데, 기억이 잘….”

       “…….”

         

       조교들은 생각했다.

         

       어떻게든 이 사람한테 잘 보이자고.

         

       그래야 다시 이곳에 방문할 기회라도 있지 않겠는가.

         

         

       의도치 않게 제자들에게 충성심을 얻게 되는 기사였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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