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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

    처참하게 부서진 황금뿔 합금 컨테이너, 그리고 그 안에서 진득하게 퍼져 나오는 핏물.

    소장의 실험은 또다시 실패했다.

    “합금 비율 조절만으론 한계가 있는 것 같군. 특별한 오브젝트가 상대이니만큼 이쪽에서도 특별한 재료를 준비해야 할 것 같아.”

    책상 위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기면서 소장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시간의 틈새에서 봤던 수많은 오브젝트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관측하는데 성공한 과거의, 혹은 미래의 오브젝트 중에 쓸 만한 것들을 마구잡이로 떠올렸다.

    오브젝트의 진입을 막는데 탁월하면서 지금 당장 손에 넣을 만한 오브젝트.

    그리고 소장은 한 가지 행사에 생각이 미쳤다.

    ‘오브젝트 박람회’

    조만간 그곳에서 굉장히 쓸 만한 오브젝트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소장은 연구원들을 부려, 부천 연구소 명의로 박람회 참가를 준비시켰다.

    인류를 위해서 꼭 필요한 오브젝트를 얻기 위한 준비였다.

    ***

    하늘을 올려다보니 보기 드물게 화창한 날씨였다.

    따뜻한 햇살이 피부를 따끈따끈하게 데웠고, 그 위로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이 좋았다.

    애옹.

    품안의 유령 고양이도 기분이 좋아보였다.

    구름 고기들이 하늘을 자유롭게 헤엄쳤다.

    보기 드문 구름 고래도 보였다.

    세희 연구소가 가져온 짐들을 풀어놓고 나면, 구름 고래를 안주 삼아 차가운 탄산음료를 마셔야지.

    여기는 오브젝트 박람회장.

    예린이가 기대된다고 호들갑을 떨던 곳이다. 

    한국 내의 많은 연구소들이 참여하고, 외국의 연구소 중 몇 곳도 참여한다는 대형 축제였다.

    보기 드문 오브젝트들도 많이 반입된다던데, 나름대로 기대가 되었다.

    한번쯤 가보고 싶던 곳이 이곳에서 실현된 셈이다.

    언제나 가고 싶었던 곳은 ‘오브젝트 동물원’이었다.

    이제까지 생각보다 자주 시도된 ‘오브젝트 동물원’이었지만, 그 ‘오브젝트 동물원’에는 슬픈 징크스가 있었다.

    오픈 첫날에 대규모 인명 사고가 나서 설립이 취소된다는 슬픈 징크스였다.

    몇 번쯤 그런 징크스가 반복되자, 더 이상 허가가 나지 않는다는 슬픈 마무리까지….

     

    이런 징크스를 딛고 서서 이번 행사는 잘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다.

    오브젝트 박람회의 성공적인 마무리가 오브젝트 동물원 설립 허가로 이어지길 기대했다.

    즐거운 오브젝트 박람회가 되기를 기대했다.

    히히.

    ***

    박람회장으로 들어서자, 시야 멀리 한 구석에 거대한 황금 나무가 우리를 반겨줬다.

    “와, 언니. 저거 무슨 나무에요? 저런 거대한 나무 오브젝트를 격리 중인 연구소가 있었어요?”

    예린의 질문에 안내책자를 펼쳐서 확인해보자, 그 내용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부천 연구소에서 가져온 오브젝트라고 하네. 근데 부천 연구소 망한 곳 아니었나?”

    뭐, 누가 인수해서 다시 운영중인건가?

    굳이 망한 연구소를 인수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의문이 가볍게 머리 안에서 맴돌았지만, 금세 잊어버렸다.

    세희 연구소에게 할당된 전시 장소로 향하는 도중 부천 연구소 부스를 볼 수 있었다.

    피곤해 보이는 표정의 직원들이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저 연구소는 직원들 잠을 안 재우기라도 하는 건가? 다들 표정이 왜 저래?

    그래도 거대하고 자체적으로 빛을 뿜어내는 나무는 꽤 인상적인 오브젝트였다.

    저런 눈에 띄는 오브젝트가 알려진 적이 없다는 게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말이다.

    ***

    “안녕하세요. 혹시 의뢰할 거리가 있지 않으신가요?”

    숨을 고르고 있자니, 선배가 앞뒤 문맥을 모두 자른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다짜고짜 저러면 의뢰할 사람도 도망가겠다!

    “네! 의뢰가 있어요!”

    그게 또 통했다!

    “언니를 찾아야 해요!”

    왜 저런 선배의 이상한 소리가 통하는 경우가 많은 걸까?

    의뢰 이야기는 비가 추적추적 오는 밖에서 하기는 힘드니까, 우선은 탐정 사무소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한밤중에 택시를 잡아타고, 도착한 탐정 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선 사무소는 평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언제나 태양빛을 비춰주는 큼직한 창문은 밤이 되자 음산함이 느껴졌고, 그 위를 때리는 미약한 빗소리는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선반 위에 놓인 왓슨은 평소와 변한 것이 전혀 없는데도,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몇 초 전만 해도 가스램프에 불이 들어와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선배는 이런 분위기의 사무실이 익숙하다는 듯, 전등을 켜는 등 자연스럽게 의뢰인을 자리로 안내했다.

    흠뻑 젖은 의뢰인에게 커다란 수건을 넘겨주기까지 했다. 

    아니 저런 수건 탐정 사무소에 있었나? 난 처음 보는데?

    선배는 능숙하게 따뜻한 커피를 내리고 의뢰인에 한 잔 권했다.

    의뢰인의 말을 들어보니 터무니없는 선배의 권유가 통한 이유가 있었다.

    의뢰인은 이미 선배를 TV에서 보고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긴 노란색 양복을 입고, 파이프를 물고 다니는 사람은 TV에서 한번만 봐도 뇌리에 깊숙이 남겠지.

    “언니를 찾아야 해요. 서울로 향했는데, 향했는데… 갑자기 연락이 안 돼서.”

    의뢰인은 자신도 생각이 잘 정리가 안 되는지 횡설수설했다.

    “아! 그러고 보니 절 납치하려고 했던 브로커가 언니도 납치했다고 했어요.”

    “차… 찾을 수 있겠죠?”

    의뢰 내용을 정리해보니, 꽤 어려운 의뢰로 보였다.

    납치된 지 시일이 그리 많이 지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생존 가능성은 희박했다.

    황금뿔 관련 실종 피해자는 대부분 10시간 안에 살해당한다.

    황금뿔을 노린 범죄가 너무 많아지자, 형량을 대폭 늘린 뒤 생긴 경향이었다.

    황금뿔 관련 범죄를 저지르면 살인에 준하는 형을 받게 되는데, 그렇게 하니 그냥 뿔을 자를 때 피해자를 죽여 버리는 것이다.

    어차피 뿔 자르다가 걸리면 인생 망하는데, 그냥 죽여서 어디 파묻어버리는 쪽이 걸릴 확률이 낮으니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아마 조만간 법이 한 번 더 바뀌지 않을까?

    뿔을 자르고 살인을 동시에 저지르면 엄청난 형량을 구형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럼, 그 브로커부터 찾아보도록 하죠!”

    선배는 그런 문제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의뢰를 수락했다.

    아니 선배 의뢰비는요?

    ***

    검은 요원은 아직도 중국 땅에 머물고 있었다.

    황금뿔이 반입된 연구소를 조사하던 검은 요원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는데, 그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중국 땅에 남아 조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아저씨, 그게 뭐라고 계속 보고 있는 거예요?”

    “조사한 연구소에 대한 의견이 맞물리지 않는 부분이 많아서 그 부분을 확인 중입니다.”

    이곳으로 황금뿔을 실어 나른 ‘연구소 전문 배송 기사들’의 녹취록만 봐도 이상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배송 때 방문한 연구소는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어요.”>

    <“건물만큼은 새것처럼 멀쩡했던 것 같네요.”>

    <“사실 망하기 전부터 배송을 해왔던 연구소였는데, 새로 개장한 뒤에 가보니 전혀 다른 건물이 되어 있어서 좀 놀라웠습니다.”>

    <“청소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먼지 하나 없더라고.”>

    첫 번째 공통점은 건물이 깔끔하고 흠 잡을 곳이 없었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좀 이상했어요.”>

    <“직원들이 너무 불친절한 게 기분 나쁘더라구요.”>

    <“직원들이 하나같이 피곤함에 찌들고 우울해보였습니다.”>

    <“경비실에 있던 직원조차 연구소 출입하는 차량에 관심이 없었어요.”>

    <“내가 보기에도 속 터지게 답답한 직원들이 꽤 많았어요.”>

    두 번째 공통점은 직원들이 불친절하고 우울해 보였다는 것이다.

    직원은 만나본 적이 없으니 판단할 수 없다고 해도, 직접 확인한 연구소의 모습은 그런 깔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폐허, 무너지기 직전의 건물.

    관리가 되지 않아 노후화가 심각하게 진행된 건물.

    그게 이상해서 조사를 심도 있게 해나가자, 더욱 이상한 점들이 발견됐다.

    인수와 설립 과정 자체가 이상했다는 것이다.

    인수와 설립을 허가해준 공무원들이 그 연구소를 기억하지 못 했다.

    그 연구소를 팔아치운 땅 주인도 돈을 받지도 않고 그냥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아예 그 땅을 팔았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 했다.

    기억이 애매하다는 점도 공무원과 같은 증상이었다.

    검은 요원은 수첩에 의문점들을 적었다.

    <최면 오브젝트?>

    <현실 조작 오브젝트?>

    <어느 쪽이든 성가신 오브젝트다.>

    <사용처를 범죄로 한정하더라도 더욱 좋은 활용처가 있을 텐데.>

    <왜 굳이 황금뿔인가?>

    <리스크에 비해 얻는 것이 너무 적다.>

    <한국인 범죄자를 중국까지 와서 활용.>

    <황금뿔 증후군은 한국에서만 발생.>

    <한국에서 주로 활동할 확률이 높음.>

    <한국 연구소 중, 갑자기 인수되거나 재개장한 곳들을 조사해야 봐야 한다.>

    검은 요원은 수첩을 덮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금발 소녀도 따라서 일어났다.

    “아저씨, 결론이 나온 거 맞죠? 표정이 뭔가 정해진 것 같은 표정이에요.”

    무표정한 요원이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아가씨. 여기서 조사 할만 한 건 다 조사한 것 같군요. 나머지는 한국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검은 요원은 이제야 황금뿔 사건 원흉의 윤곽이 희미하게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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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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