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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

   여기가 도대체 어디냐는 조이의 물음에 나는 답을 해줄 수 있었다.

   

   이 곳이 어떤 곳이고, 어떤 몬스터가 나오고, 공략은 몇 레벨에 들어와 어떤 식으로 하면 되는 지까지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지금은 무의미했다.

   

   몬스터를 알면 무얼하는가. 쓰러트릴 수 없는데.

   

   또 던전의 공략법을 알면 무얼하는가. 그걸 실행하는 게 불가능한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쓸데없는 지식놀음이 아니었다.

   

   나는 조이의 맞은편에 무릎을 꿇고 앉아선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치켜들었다.

   

   조이는 눈물이 맺힌 모습마저도 배신을 당하고 치욕에 떠는 악역영애 같았으니 그녀의 외모는 가히 메스가키 스킬과 비견될 저주라 할만 했다.

   

   ‘겁먹지 않아도 돼요.’

   “얼빵영애. 겁먹은 건가요? 방금 전까진 자신만만했으면서.”

   

   “그렇지만.”

   

   ‘괜찮아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얼빵영애가 아무리 허접해도 제가 있으니까요.”

   

   “네?”

   

   ‘우린 멀쩡히 빠져나갈 수 있을 거에요.’

   “겁쟁이에 울보에 허접한 얼빵영애님을 대신해 제가 노력을 하죠. 우린 돌아갈 거에요.”

   

   오늘은 메스가키 스킬의 과할 정도로 당당한 태도가 고마웠다.

   

   나의 근거없는 자신감을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주었으니까.

   

   가만 내 말을 듣던 조이는 어느새 눈물을 그친 채였다.

   

   다시금 몸을 일으킨 나는 조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움직이죠.’

   “가죠. 울보영애. 설마 여기서 울다가 뒈져버릴 생각은 아니겠죠?”

   “누가 울보 영애라는 거에요!”

   

   이 정도면 괜찮겠지.

   

   일단은 제이콥부터 찾아내야 한다.

   

   나조차도 공략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게 이 던전인데 허약하기 그지없는 제이콥이 이 곳에서 홀로 생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가만 내버려 두면 몬스터에게 붙잡혀 비명횡사를 당할 게 분명하다.

   

   그리고 제이콥이 죽는다면 그 책임은 절대적으로 나에게 존재하겠지.

   

   이 던전에 아그라가 개입한 건 온전히 나 때문이니까.

   

   나는 아직 사람의 목숨을 등에 짊어질 자신이 없다.

   

   몬스터 하나를 죽이고 나서도 며칠 동안 마음앓이를 했고 지금도 영향을 받고 있는 나다.

   

   만약 사람의 목숨을 짊어지게 된다면 난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우울해 해야 할까.

   

   그런 일은 사양이다.

   

   제이콥도 우리와 비슷한 위치에서 낙하를 했으니 아마 이 근방 어딘가에 떨어졌을 거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지만 기절을 한 상태였으면 좋겠네.

   

   잔해 사이에 널부러져 있으면 아르고스가 그를 찾아내지 못 할 테니까.

   

   내 손을 붙잡고 일어선 조이가 먼지를 털어내는 동안 난 방 안을 둘러보며 이 곳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물건을 찾았다.

   

   여기가 ‘연금술사가 머무르는 곳’이라면 분명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팻말이 있을 텐데.

   

   여기 있네. 잔해에 깔려 있었구나.

   

   어디 보자 A – 01이면 이 던전 초입 부근인가.

   

   팻말의 글귀를 확인한 나는 머릿속으로 던전의 지도와 우리가 있는 위치를 그렸다.

   

   최악은 면했나.

   

   이 던전의 초입은 몬스터를 만나는 빈도가 그리 높지 않다.

   

   잘만 움직이면 몬스터와의 전투를 피하고 안전구획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몰라.

   

   ‘할아버지. 방금 전처럼 몬스터의 기척을 잡는 거 어느 정도 거리까지 가능해요?’

   <지금은 그리 멀리까지 특정할 순 없다. 지금 네가 서 있는 곳에서 저 문까지의 거리겠구나.>

   

   그렇단 소리는 대충 반경 5M내외에서 다가오는 몬스터는 감지할 수 있다는 거지?

   

   이것도 게임 속에서는 표현되지 않았던 기능이지만 뭐 할배가 깨어나면서 생긴 새로운 기능 비스무리한 거겠지.

   

   알게 뭐야.

   

   어쨌든 간에 써먹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해.

   

   난 이 던전의 어디에 어떤 몬스터가 있고 그들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 지를 완벽히 외우고 있다.

   

   여기에 할배의 색적능력이 합쳐진다면 던전 안에서 일어나는 전투를 모두 다 회피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조이님…’

   “얼빵 영애. 움직이죠.”

   

   “알겠어요.”

   

   우리 둘은 색적에 주의를 하면서 주변의 방을 둘러보았다.

   

   <골목을 돌면 바로 몬스터가 있다.>

   

   ‘조이…’

   “얼빵 영애. 멈춰요. 앞에 역겨운 괴물이 있어요. 여기서 12초간 대기하다가 앞으로 움직일 거에요.”

   

   “알겠어요.”

   

   방금 입학시험 던전을 공략하면서 신뢰를 쌓아둔 덕분에 조이는 내가 선두에 서서 지시를 내리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녀가 나를 믿지 못하고 설명을 요구했다면 일이 귀찮아졌을 테니까.

   

   그렇게 몇 개의 방을 뒤졌을까.

   

   어딘가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철과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

   

   남자의 기합 비스무리한 목소리.

   

   그리고 아르고스의 울음소리.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겠네.

   

   제이콥이 눈을 뜬 후에 아르고스랑 만나서 싸우고 있는 거겠지.

   

   그 녀석은 아르고스를 상대로 오래 버티진 못할 거다.

   

   당장 입학시험 때 만났던 골렘조차도 압도하지 못했던 녀석이 상위 던전의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빨리 도우러 가야 해.

   

   다급히 몸을 움직인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르고스와 맞서고 있는 제이콥을 발견했다.

   

   제이콥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기괴한 방향으로 꺾여버린 왼 팔.

   

   서있는 것도 버거워 보이는 다리.

   

   죽음을 직감하고서 절망에 빠져 있는 눈.

   

   누가 보더라도 오래 버틸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조이님. 섬광마법 쓸 수 있죠?’

   

   “얼빵영애. 섬광마법 쓸 수 있죠?”

   “네. 가능해요.”

   

   ‘준비하고…’

   “당장 준비하고 신호 주면 써요. 바보처럼 눈 뜨고 있다가 자기 섬광에 당하지 않게 주의하고요!”

   

   나는 조이에게 마법을 준비하라 이야기를 하고 나서 바로 안으로 뛰어 들었다.

   

   아르고스는 침입자 따위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제이콥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지만 내가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눈만 많은 병신♡ 뒤에 있는 사람도 눈치 못 채는 거야?♡ 그럴 거면 그냥 허접한 눈깔을 다 뽑아버리지 그래?♡”

   

   아르고스의 몸에 박힌 무수한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좋아. 어그로는 끌었고.

   

   ‘제이콥!…’

   “조무래기! 멀쩡해?!”

   “영애님.”

   

   대답을 할 정신도 있는 것 같네.

   

   다행이야. 안 늦었어.

   

   내가 제이콥에게 소리를 침과 동시에 아르고스가 내게 달려왔다.

   

   제기랄. 눈만 많은 병신 주제에 움직임은 더럽게 빠르네.

   

   내 머리의 족히 두 배는 될 법한 아르고스의 주먹이 내질러진다.

   

   철벽이 고한다.

   

   방패를 들라고.

   

   방패 숙련도를 한계까지 올린 나의 몸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철벽의 지시를 따랐고 방패는 완벽하게 아르고스의 공격을 막는데 성공했다.

   

   “크윽!”

   

   막아냈다는 게 그 공격을 상쇄시켰단 소리는 아니었다.

   

   방패를 쥔 팔이 후들거린다.

   

   충격을 버티는 다리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이를 악물고서 버티고는 있지만 점차 밀려나는 게 느껴진다.

   

   이대로 대치를 이어나간다면 나는 분명 아르고스에게 패배하겠지.

   

   대치를 이어나간다면 말이야.

   

   “얼빵 영애!”

   “빛이여!”

   

   아르고스는 너무나도 눈이 많은 나머지 앞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결함성 몬스터지만 어쨌든 몸에 박힌 무수히 많은 눈은 하나 같이 제대로 기능하는 것들이다.

   

   그러니 그 무수히 많은 눈에 눈뽕이 박히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는 소울 아카데미를 게임으로 즐길 당시에 써먹었던 방식이다.

   

   아르고스는 다른 놈들보다 섬광에 대한 저항이 한참 떨어지는 건 물론이고 기절 시간도 다른 몬스터보다 길었으니까.

   

   섬광에 당한 아르고스가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난 순간 나는 바로 제이콥 쪽으로 달렸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서 있는 것조차 한계인 이 녀석이 달릴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제이콥을 구하려면 그를 들쳐 매야만 했다.

   

   ‘제이콥. 아프겠지만 참아요!’

   

   “조무래기. 아프겠지만 허접마냥 비명을 지르진 마!”

   “예?!”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어깨에 짐짝 마냥 매달고는 조이가 있는 쪽으로 내달렸다.

   

   ‘조이! 달려요!’

   “얼빵 영애! 허접한 다리로 최대한 달려요!”

   

   *

   

   연락을 받고서 다급히 아카데미로 달려 온 칼이 보게 된 것은 던전의 입구에서 해주를 진행하고 있는 사제들의 모습이었다.

   

   “칼. 왔나? 오랜만에 보는 군.”

   

   입구 근방에서 해주의 과정을 보고 있던 전투학 교수 안톤은 칼을 보고는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칼은 그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대신 안톤의 앞까지 걸어온 그는 당장에라도 물어뜯을 것처럼 사나운 목소리를 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아카데미의 던전에 아그라가 개입했다. 그 탓에 입구가 틀어막혔고 안의 관측은 물론이고 일체의 연락을 할 수 없게 됐지. 우린 다급히 사제를 불러 해주를 시작했고…”

   

   아그라.

   

   그 단어를 들은 순간 칼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눈치 챘다.

   

   일전에 알른 영지의 교회에 루시와 함께 방문했던 그는 루시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지금 아그라가 던전에 개입한 이유는 분명 아가씨를 노리기 위함이겠지.

   

   빌어먹을!

   

   “해주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사제 측에서 말을 하길 대략 한 시간 정도라는 군”

   “한 시간이라뇨?!”

   

   지금은 한 시가 시급한 상황이다.

   

   저 던전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어쩌면 지금쯤 루시 아가씨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을 수도 있단 말이다.

   

   그런데 삼십분이나 기다리라고?!

   

   “칼.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네. 소울 아카데미가 최악의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는 곳이 아님을 자네도 알잖나.”

   

   소울 아카데미에 재학했으며 졸업을 한 칼은 이 곳이 무능한 인간들로 가득한 곳이 아님을 알았다.

   

   다른 여러 개의 아카데미에 설립된 지금도 여전히 소울 아카데미가 최고라 불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칼은 자신의 안에서 솟구치는 감정을 조절하기가 어려웠다.

   

   자신이 평생을 맹세한 아가씨께 무슨 변고가 생길 지도 모르는 상황에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니.

   

   이 얼마나 무능한 기사란 말인가!

   

   칼은 안톤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서는 해주가 진행 중인 던전을 가만 바라보다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곤 자신의 손등에 새겨진 맹약의 문양을 보며 아르마디에게 기도했다.

   

   부디 제가 도착할 때까지 저의 주인께서 안전하기를.

   

   *

   

   필사적으로 내달린 끝에 그나마 아르고스가 나타나는 빈도가 가장 낮은 곳에 도착한 나는 달리는 것을 멈추고 제이콥을 바닥에 내렸다.

   

   <방금 그 괴물에 주먹에 여러 번 얻어맞은 것 같구나. 상태가 좋지 않아.>

   ‘아르마디의 자비로 치유할 수 있을까요?’

   <가능할 거다.>

   

   나는 할배의 확답을 얻은 후에 제이콥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의 심장에 손을 가져다 댄 후 아르마디에게 기도를 올렸다.

   

   이 녀석이 다시금 멀쩡해 지기를 바라면서.

   

   그 마음을 품은 순간 내 몸 속에서 마력이 빠져나감과 동시에 서서히 제이콥이 몸에 새겨진 상처들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건 도대체?”

   

   제이콥은 급격히 멀쩡해 진 자신의 몸이 신기한 듯 비틀거리며 일어나선 자신의 몸을 움직여 보였다.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움직이는 데 지장은 없어 보이네.

   

   좋아. 지금 이걸로 제이콥을 구해낸다는 목표는 달성했어.

   

   이제는 소울 아카데미의 구조가 올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냐.

   

   내 지식과 할배의 색적을 합쳐서 최대한 싸움을 피하고 다니면 되니까.

   

   어쩌다 변수가 생기더라도 조이의 섬광마법으로 도망치면 그만이고.

   

   문제는 소울 아카데미에서 구조를 올 때까지 얼마나 걸리는 가 인데…

   

   이건 고민하지 말자. 어차피 언젠가는 구하러 올 거야.

   

   그렇게 믿는 게 마음 편해.

   

   괜찮아. 아무런 문제도 없어.

   

   우린 멀쩡히 이 던전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여아야. 또 다시 괴물이 다가오고 있다.>

   ‘알겠어요. 할아버지.’

   

   그러니까 당장은 살아남는 것만 신경 쓰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루시는 아무런 문제 없이 탈출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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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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