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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

   

    화경보다 윗줄의 경지.

   

    춘봉이 턱을 긁적이다 입을 열었다.

   

    “현경, 혹은 반신지경이라 많이 부르지. 애초에 그 정도 무인은 온 무림을 뒤져도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밖에 없을걸?”

    “그 정돈가?”

    “당연하지. 으음….”

   

    고개를 갸웃갸웃 기울이던 춘봉이 설명을 보충했다.

   

    “아니다. 진짜 다 뒤지면 의외로 꽤 있을 수도 있겠네. 전전전전전대 고수 같은 사람들이 어디 조용히 살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아니, 그 정도면 늙어서 죽었겠다.”

    “현경쯤 되면 수명에 제한이 없어. 본인 정신력이 허락하는 한 영원히 살 수 있거든. 뭐, 나도 들어만 본 거지만. 그건 그렇고 아무튼.”

   

    ‘화경’

   

    바닥에 글자를 쓴 춘봉이 옆에 덧붙였다.

   

    ‘조화경’

   

    “말 그대로 자연의 기와 조화를 이루는 경지가 화경이야. 내가 알기로는 아예 자신의 신체와 멀리 떨어진 기까지도 다룰 수 있다 하더라.”

   

    화경의 대표적인 상징 중 하나가 이기어검以氣馭劍이다.

   

    기로써 검을 다룬다는 것인데, 이것은 심상의 파편화와 더불어 자연의 기를 다룰 줄 알아야 비로소 입문할 수 있다 알려져 있는 기술이었다.

   

    “넌 그걸 어떻게 아냐?”

    “아버지가 말해줬는데.”

    “아하.”

   

    문득 궁금해진 서준이 물었다.

   

    “그 혹시…, 너희 아빠는 경지가 어떻게 되셨냐?”

    “초절정과 화경의 문턱에 걸쳐 계셨지.”

    “가문 최고수셨나?”

    “아니. 가문 최고수는 먼 선조 분이셨지. 그냥 할아버지라 부르긴 했는데….”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춘봉이 울 듯이 웃었다.

   

    “할아버지는 현경의 고수셨어. 신검금가라는 이름에 걸맞는, 그야말로 검의 신이셨지.”

    “어…, 음….”

   

    서준은 그러면 도대체 무슨 수로 신검금가를 멸문시킨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저 춘봉이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니 그녀가 삐죽 웃었다.

   

    “근데 왜 신검금가가 멸문당했냐고?”

    “뭐야. 독심술도 하냐?”

    “니가 뻔하지 뭐.”

   

    춘봉이 픽 웃으며 설명했다.

   

    “어느날 갑자기 할아버지가 사라지셨거든. 습격을 당했을 리는 없고, 아마 등선하신 거겠지.”

    “아하….”

    “하필 아버지도 온전한 화경에 오르느라 상당히 무방비한 상태였으니까…. 취약한 순간에 제대로 당한 거지. 그 정보를 빼돌린 누군가 있다는 뜻이겠고.”

    “쳐죽일 놈이네.”

    “응. 씹어죽일 놈이지.”

   

    빠득, 춘봉이 이를 갈았다.

   

    서준이 그녀를 안아들어 둥기둥기 흔들어주니 귓가에서 픽 터져나오는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됐어. 그만해. 이제 한참 지난 일인데 뭘.”

    “어허. 해줄 때 받도록.”

    “시끄러워.”

   

    계속 피식피식 웃던 춘봉이 서준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무튼 그러니까 곤란할 때 말해. 내가 할아버지 제자 취급이라 배분이 말이 안 되거든? 무림맹주를 제외하면 정파에서 나보다 배분 높은 사람 몇 없을걸?”

   

    물론 실질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지만, 어느 정도의 존중은 받을 수 있었다. 

   

    “음, 그러니까….”

   

    서준이 대충 계산했다. 

   

    그러면 춘봉이는 그냥 꼬맹이지만, 신검금가의 금희는 아주 푹 익은 틀딱 취급을 받는다는 건가?

   

    “헉! 금춘봉 이 자식! 사실 할머니였잖아?”

    “개새끼가.”

   

    쳐맞았다.

   

   

    *

   

   

    이어진 춘봉이의 설명에 의하면 금희의 신분이라도 틀딱 취급을 받는 건 아니란다. 

   

    신검금가는 문파가 아닌 하나의 가문이기도 하고, 애초에 다른 문파끼리는 배분을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모양이다. 

   

    배분이라는 것 자체가 그냥 같은 문파 사람들끼리 아빠, 동생 하는 느낌이라나?

   

    물론 나 검신의 제자요, 하면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아무튼 대충 납득한 서준은 객잔으로 돌아가며 춘봉의 설명을 곱씹었다.

   

    ‘현경.’

   

    심즉무心卽武. 마음이 곧 무가 되는 경지.

   

    그 유명한 심검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현경쯤 되는 무인들이 쓰는 기술이란다.

   

    수중무검手中無劍 심중유검心中有劍

   

    말만 들어도 간지가 철철 넘친다.

   

    손에는 검이 없으나, 마음에는 검이 있으니.

   

    대사 한 번 쳐주고 심검 한 번 날리면 주변 사람들이 그냥 다 자지러지는 거다.

   

    물론 지금 당장은 턱도 없는 소리였다.

   

    현경은 무슨 놈의 현경. 일단 초절정에 대한 단서를 얻는 게 먼저다.

   

    “흠…. 초절정.”

    “아서라. 서두르면 오히려 늦어질 거야.”

    “아니, 그냥 단어가 야하다고.”

    “…미친 새끼.”

   

    사실 전부터 생각하던 거다.

   

    초절정 미소녀. 이건 뭐 그냥 음란죄로 잡혀가도 할 말 없는 거 아닌가?

   

    물론 개소리다.

   

    “아무튼 예선이 다음주라 그랬지? 그동안 수련이나 해야겠네.”

    “도와줘?”

    “그럼 같이 안 할 거였어?”

    “그건 아니지.”

   

    흥-, 콧방귀를 뀐 춘봉이 서준의 손을 꼭 붙잡았다.

   

    “길 잃지 말라고 잡아주는 거야.”

    “예예. 까라면 까야죠.”

    “음. 그러도록.”

    “네이-.”

   

    그렇게 됐다.

   

   

    *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

   

    아침에 도를 깨우친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그래. 이른 아침에 우리 춘봉이의 말랑한 볼따구를 만질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음. 아주 좋아. 양호하군.”

    “이게 뭐 하는 건데.”

    “몸 상태 검사하는 건데?”

   

    금춘봉학 박사쯤 되면 볼만 만져도 오늘의 컨디션을 알 수 있는 법이다.

   

    면사 너머로 춘봉이의 볼따구를 마음껏 탐닉한 서준이 만족스레 콧김을 내쉬었다.

   

    그런 서준을 보고 춘봉이 미간을 구겼다.

   

    “어떻게 그놈의 지랄을 하루도 안 빠지고 할 수가 있지?”

    “왜나하면, 그것이 나니까.”

    “어휴.”

   

    서준과 춘봉이 객잔을 나섰다.

   

    오늘은 비무 대회의 예선이 치러지는 날이다.

   

    그래서 그런지 거리로 나오자마자 보이는 바글바글한 인파에 서준이 이마를 탁 쳤다.

   

    “와…. 이건 좀 아닌데 진짜.”

    “그러게. 이거 뚫고 가기는 쉽지 않을 거 같은데.”

   

    – 비무 대회 관람객들께서는 질서를 지키며 이동해주시길 바랍니다!

   

    보아하니 화산파의 인원들이 교통 정리를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솔직히 턱도 없었다.

   

    “근데 이건 평상시가 아니잖아. 우리 지붕으로 갈까?”

    “그래. 보니까 이미 그런 사람들도 꽤 있네.”

   

    지붕 위로 몇몇 무인들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서준이 춘봉이를 안아들었다.

   

    “가자, 금춘봉!”

   

    드디어 기다리던 비무 대회의 시작이다.

   

   

    *

   

   

    예선이 치러지는 장소로 이동하자 그곳은 그나마 한적했다.

   

    화산파에서 나온 인원들이 관람객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덕분이다.

   

    “칠십팔七十八이로군. 저쪽에 칠십팔 자가 크게 쓰여있으니 그리로 가시면 되오.”

    “넹.”

   

    통나무 베기 시험을 통과하고 받은 패에는 숫자가 쓰여있었는데, 그걸로 우선 조를 나누는 모양이었다.

   

    “금 씨는 몇 번인고?”

    “백이십오 번.”

    “지랄났네 진짜.”

   

    인간적으로 참가자가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서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난 일단 저기로 간다?”

    “어어. 이기고 오도록, 금춘봉.”

    “오냐. 너나 이기고 와.”

    “당연하지.”

   

    오랜만에 춘봉이와 떨어져 단독 행동이다.

   

    서준은 참을 수 없는 충동에 덜덜 떨리는 손을 갈무리하며 칠십팔이라 크게 쓰여있는 깃발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여긴가?”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푸른 도복을 입은 사내 하나가 그를 불렀다.

   

    “칠십팔 번이면 이쪽이오.”

    “아, 맞네.”

   

    사내 앞에는 이미 사람이 다섯 명 모여 있었다. 전부 참가자인 것으로 보인다.

   

    서로 경계하는 듯 예리한 시선이 오가는 가운데, 서준이 대충 바닥에 퍼질러 앉았다.

   

    “저기, 혹시 몇 명 모이면 시작하는 건가요?”

    “칠십팔 조는 여덟 명이니 두 명만 더 오면 되오.”

    “아하.”

   

    저 화산파 친구는 조금 무뚝뚝하다. 저번에 만났던 친구는 좀 싹싹했던 것 같은데.

   

    멍하니 앉아 인원이 모이길 기다리고 있으니 저 멀리서 한 명이 급하게 달려왔다.

   

    “칠십팔 조 여기 왔습니다!”

    “이쪽에 서시오.”

   

    이제 일곱 명.

   

    아직 마지막 사람이 오지 않았으나, 시간이 된 듯 화산파의 무인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되면 한 명은 부전승이 되겠군. 우선 연무장으로 이동하겠소.”

   

    무인의 뒤를 따라 잠시 걸으니 깔끔한 연무장이 하나 나왔다.

   

    무슨 재료를 쓰고 어떻게 만든 건지는 몰라도 딱 보자마자 돈 좀 썼겠거니 하는 생각이 드는 연무장이었다.

   

    ‘화산도 아니고 앞마당에 있는 도시에 이런 걸 만들어두네.’

   

    하긴, 굳이 따지자면 화산파는 어디 왕국쯤 되는 위치일 테니 못 할 것도 없다.

   

    “부전승은 제비 뽑기로 정하겠소. 왼쪽부터 차례대로 일부터 칠이오.”

   

    화산파의 무인이 뭔가 통을 꺼내들더니 나무젓가락 같은 걸 넣고 흔들었다.

   

    그 중 하나를 뽑아드니 그 끝에 쓰여있는 글자가 칠七. 가장 오른쪽에 서있던 서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이고, 딱히 필요 없는데.”

   

    오히려 아쉽게 됐다. 

   

    서준이 혀를 차자 옆에 있던 사내가 씩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려보이는 친구가 운이 좋구만. 그래봤자 곧바로 떨어지겠지만 말이야. 하하하!”

   

    뭐 하는 새끼지?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화산파의 무인이 다시금 여섯 명 사이에서 대진을 정해줬다.

   

    아무래도 인원이 너무 많은 예선이라 반쯤은 가라로 진행하는 것 같았다.

   

    “서복우, 명주암 나오시오. 대련인 만큼 살초는 엄금하며, 혹 살초를 펼칠 시….”

   

    길지 않은 안내 끝에 곧장 대련이 치러졌다. 

   

    보아하니 조마다 한 명씩 있는 화산파의 무인들이 안전 역시 책임지는 것 같았는데, 그들의 경지가 대충 절정쯤 돼보였다.

   

    즉 화산파에는 절정쯤 되는 무인이 못 해도 백 명이 넘게 있다는 소리였다.

   

    ‘크긴 진짜 큰가 보네.’

   

    멍하니 생각하는 사이 첫 번째 대련이 끝났다.

   

    “승자, 서복우! 다음은….”

   

    아까 헛소리를 하던 아재의 차례였다.

   

    “박이홍, 담제일 나오시오. 규칙은 이전과 같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름이 담제일이었네. 어떻게 사람 이름이 제일? 그러면 동생은 담제이인가?

   

    “담제일? 담제일이라면 마단현의 그 담제일?”

    “박력패도迫力覇刀 담제일! 빌어먹을. 이번 대회도 글러먹었군.”

   

    그런데 놀랍게도 조금 유명한 아재인 모양이다.

   

    다른 참가자들의 의욕이 뚝 떨어지는 게 눈으로도 보였다.

   

    “시작!”

   

    심판이 시작을 외치자마자 담제일이 빠르게 앞으로 치고나갔다.

   

    육중한 덩치와는 달리 상당한 속도다.

   

    쿠웅-!

   

    “크윽…!”

    “하하하! 순순히 항복하시게!”

   

    담제일의 커다란 도가 휘둘러질 때마다 상대가 휘청인다.

   

    그리고 일순, 담제일의 눈이 빛나며 그의 도가 빠르게 찔러들어갔다.

   

    “허억…!”

   

    목 바로 앞에서 멈춘 도에 사내가 주저앉았다.

   

    “내, 내 패배요.”

    “하하하! 싱겁구만!”

    “승자, 담제일!”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웃는 담제일을 바라보던 서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 정도 고수는 아닌 것 같은데.’

   

    사실 이 새끼들 이거, 별호 그냥 아무한테나 막 붙여주는 거 아니야?

   

    ‘진짜 모르겠네.’

   

    무림인이라는 족속들 생각을 알 수가 있어야지, 원.

   

    아무튼 도를 쓴다라….

   

    왕씨반검법…, 이 아니지. 왕씨도법으로 상대해주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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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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