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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

   아침 햇살이 내리쬐자 크라슈가 눈을 떴다.

   베르크만과의 전투로 피로가 남아서일까.

   

   크라슈는 자신이 또다시 잠들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 나이에 여자애나 끼고 자다니. 망측한 녀석 같으니.”

   

   그러는 순간 크라슈는 들려온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침대맡에 앉은 까마귀, 크림슨가든이었다.

   

   “그게 뭔 개소리야.”

   “네 옆이나 보아라.”

   

   어이없다던 반응을 보이던 크라슈의 눈에 자신의 왼편에 누운 이가 보였다.

   그녀는 다름 아닌 비앙카였다.

   

   자기 왼팔을 꼭 붙든 그녀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새벽에 그렇게나 울었으니 당연한 거겠지.

   

   있다가 일어나면 눈이라도 얼굴에 부어줘야겠다.

   하덴하르츠는 사시사철 눈이 오니 딱 알맞겠지.

   

   “팔은 어떠냐.”

   

   크림슨가든의 질문을 듣고, 크라슈는 자기 오른팔을 보았다.

   텅 비어 있는 오른팔이다.

   어떻고 자시고도 없었다.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그야, 팔이 없으니 당연한 거 아니겠느냐?”

   

   그럼 왜 물어본 거지.

   

   “그럼 이제 어쩔 것이냐.”

   

   크림슨가든은 또 다른 질문을 던져왔다.

   최강이 되어 그녀가 지닌 불사를 훔쳐주겠다고 약속했던 크라슈였다.

   

   그런데 팔이 잘려 버렸으니.

   당연히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걱정하지 마.”

   

   하지만 크라슈는 지금의 상황에 관해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팔을 복구할 방법이야. 알고 있으니까.”

   “하하.”

   

   크림슨가든이 크라슈를 보며 키득거리듯 웃음을 흘렸다.

   

   “회귀자의 여유라 이것이냐?”

   “애초에 팔 같은 건 당장 신성 왕국만 찾아가도 해결될 일이야.”

   

   4대 왕국 중 하나이자 신성 왕국 프리만.

   그곳에는 죽은 자조차 살려낸다는 성녀가 있다.

   

   ‘죽은 자를 살려낸다는 건 신성 왕국이 만들어낸 프로파간다지만.’

   

   어쨌든 성녀가 그만한 힘을 지닌 것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아기 때부터 신성 왕국이 직접 성유물 성배에 목욕시켰다.

   덕분에 그녀는 신의 힘을 듬뿍 머금은 신성력의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성녀의 힘을 당장 빌릴 수는 없으리라.

   최근에 취급이 조금 바뀌긴 했어도 자신은 반푼이.

   

   가문이 성녀를 고용하는 거금을 발하임이 내줄 리가 없었다.

   발하임은 반푼이에게 돈을 쓸 만큼 자비로운 가문이 아니니까.

   

   기껏해야 신관을 불러 주는 게 한계겠지.

   

   “그렇지만 신성력의 힘을 빌릴 생각 없다는 소리겠군.”

   

   크림슨가든이 흥미로운 반응을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보고 크라슈는 회귀자 취급이 찝찝하긴 했지만 팔을 복구할 방법을 내놓았다.

   

   “기왕 잃게 된 오른팔이야. 가장 좋은 걸로 갈아 끼울 거다.”

   “하하, 팔이 그렇게 쉽게 갈아 끼워지는 거라면 세상 모두가 그렇게 했을 거다.”

   “그걸 해줄 녀석이 있잖아.”

   

   크라슈가 씩하니 웃자 크림슨가든이 빈정대던 말을 멈추었다.

   

   “……그러려고 그 녀석을 구한 게냐?”

   

   크림슨가든이 가리킨 것은 다름 아닌 에벨아스크였다.

   

   세계의 유일한 네크로맨서.

   죽은 시체도 다루는 여자다.

   팔 하나 달아 주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우연이야.”

   

   아무리 크라슈라도 일부러 팔을 자르는 미친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 건은 어디까지나 우연한 일치.

   

   때마침 에벨아스크가 있었고, 자기 팔이 잘렸다.

   그러니 그녀를 이용한다 그뿐이다.

   

   ‘그 녀석이랑은 한 번 더 거래하게 되긴 하겠지만 말이야.’

   

   팔을 달아 준다는 조건으로 뭘 요구할지 걱정이 된다만.

   당장은 팔이 더 급하다.

   

   “그래서 무슨 팔을 달 작정인 게냐.”

   “검귀(劍鬼).”

   

   크라슈가 즉답한 순간 크림슨가든이 몸을 굳혔다.

   크라슈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웃었다.

   

   검귀.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강자이자 거합술의 귀재라 불리던 이.

   그가 휘두르는 거합술을 쫓을 수 있는 이는 이 세상에 어느 사람도 없다고 평할 만큼 뛰어난 검객이었다.

   

   “이 썩을 놈의 자식이.”

   

   그리고 그 검귀는 다름 아닌 크림슨가든의 종이었다.

   그녀가 가장 아끼던 종, 말이다.

   

   “그러니까 팔 좀 주라.”

   “싫다! 외팔이로 살아라!”

   “우리 거래했잖냐. 날 강하게 만들어줘야 할 거 아니야.”

   “검귀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젖 먹여 키운 종이다!”

   “나도 젖 먹여 좀 키워 봐라.”

   

   크라슈는 맨날 혼내기만 하고 하는 게 뭐냐는 듯 크림슨가든을 쏘아 봤다.

   그러자 크림슨가든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날개를 활짝 펼쳤다.

   

   “이 배은망덕한 놈이! 기껏, 모자란 재능을 살려 둔검까지 가르쳤건만 감히 스승을 그런 눈으로 봐!”

   “크림, 너야말로 너무 좀생이처럼 구는 거 아니냐? 검귀는 애초에 한참 전에 죽은 인물이잖냐.”

   

   검귀는 죽었다.

   그가 죽은 이유는 다름 아닌 노화.

   나이가 들어 죽은 것이다.

   

   크림슨가든은 불사의 힘을 나눠줄 수 있다.

   실제로 그녀는 시즐리의 수행원인 세라에게 불사를 나눠줬었으니까.

   

   ‘아니, 솔직히 그건 불사랑은 거리가 멀지.’

   

   크림슨가든이 지닌 불사와 다르게 그녀가 세라에게 넘겨준 불사는 반 틈 짜리 불사다.

   정확히는 초고속 재생 능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리고 그런 불사의 단점은 대상의 생명력을 태워 발동된다는 거겠지.’

   

   그렇기에 크림슨가든이 건네주는 불사가 반푼이라는 것이다.

   불사란 절대 죽지 않아야 하니까.

   

   생명력을 전부 잃으면 죽는 불사 따위 진짜 불사가 아니었다.

   

   그러니 크림슨가든은 자신이 소중히 아끼던 검귀도 불사로 되살릴 수 없었다.

   

   “네가 네 종에게 집착하는 건 알아.”

   

   크림슨가든에게 있어 종들은 세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창구다.

   그러니 크림슨가든은 그들에게 무심코 감정을 쏟고 만다.

   

   그걸로 자신이 힘들어할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자꾸만 종들에게 감정을 쏟는다.

   그러니 크라슈는 크림슨가든의 약점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종임을 잘 알았다.

   

   ‘크림슨가든의 본체 위치를 알아내는 방법을 아서가 직접 말해줬으니까.’

   

   아서가 크림슨가든을 찾기 위해 알려준 방법.

   그것은 크림슨가든의 종들을 사로잡아 직접 고문하는 것이었다.

   

   이쪽은 성녀가 있다.

   어떤 고문을 하던 그녀의 종들은 죽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알기에 크림슨가든은 제 입으로 직접 본체의 위치를 말할 거라 하였다.

   

   그 말을 하던 아서의 눈동자에는 조금의 색채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라는 듯이 반복적으로 할 뿐.

   

   그는 애저녁에 망가져 있었다.

   

   “그렇지만 검귀는 오래전에 죽었어.”

   

   크림슨가든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의 거합술은 죽지 않았지. 그 거합술은 네가 전부 알고 있을 테니까.”

   

   크라슈는 자신의 텅 빈 오른팔을 들어 보였다.

   

   “검귀의 팔이 있다면 나는 그 거합술을 다시 재림시킬 수 있을 거야.”

   

   비술을 익히는 데는 도가 튼 크라슈다.

   크림슨가든의 도움이 있다면 반드시 검귀의 거합술 또한 배울 수 있으리라.

   

   “검귀도 그걸 바라지 않을까?”

   “…….”

   

   크림슨가든이 날개를 펼친 상태로 굳어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이내 날개를 접더니 크라슈를 노려보았다.

   

   “이 세 치 혀 같은 아이가. 혀만 제멋대로 놀리면 콩고물이 뚝 하니 떨어지는 줄 아느냐?”

   

   실패인가.

   어떻게 해야 크림슨가든의 회유가 가능할지 크라슈가 고민하는 사이 그녀가 창문 앞에 섰다.

   

   “……이틀 정도 기다리고 있어라.”

   

   그러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결국 승낙해줬나.

   

   크라슈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고맙다. 크림슨가든.”

   “부탁할 때만 본명으로 부르다니. 고얀 놈.”

   

   크림슨가든은 삐친 듯이 날개를 펼치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크라슈는 한결 안심했다.

   

   팔이 없는 채로 발하임에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문제는 하덴하르츠가 발하임에 이 소식을 전했을 거란 건데.’

   

   이곳은 하덴하르츠의 본관인 북해빙관이다.

   그 말은 즉, 하덴하르츠도 자신의 상태를 안다는 소리.

   발하임에 이 소식을 전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어떻게 둘러댄다.’

   

   팔을 잃었다고 보고 받았는데 팔을 되찾아서 돌아와 버리면 본가 입장에서도 황당할 테니 말이다.

   

   ‘하덴하르츠와 입을 맞추면 대충 해결될 거 같긴 한데. 문제는 그 입을 맞출 방법이란 말이지.’

   

   팔 쪽이야 어떻게든 둘러댈 자신이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원래 청송관에 있을 거라 보고 되었던 자신이다.

   그런 자신이 대뜸 하덴하르츠에서 나타났다고 하면 발하임에서도 이야기가 나오리라.

   

   ‘알리오드 쪽이 걱정인데.’

   

   크라슈는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털었다.

   당장에 고민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면 길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게 자신이었다.

   그쪽 일은 어떻게든 둘러대면 해결될 일.

   

   여차하면 망나니 본성 좀 꺼내 들면 된다.

   

   ‘내가 망나니짓 좀 했다고 하면 지들이 뭘 할 수 있겠어.’

   

   애초에 내놓은 자식, 어디서 튀어나오든 뭐 그리 신경 쓰겠는가.

   지금은 크림슨가든이 검귀의 팔을 들고 올 때까지 기다릴 뿐이었다.

   

   ‘멸화침식도 좀 더 연구해 보고 싶고.’

   

   이그니스와 극혈침독을 합쳐 만들어낸 멸화침식.

   어찌 보면 크라슈에게는 자신이 만들어낸 오리지널 비술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때의 화력을 보면 앞으로 엄청난 카드가 되어 줄 것은 분명했다.

   

   ‘문제는 유지 시간이겠지.’

   

   지금 수준으로는 육체가 한계를 돌파한다 한들 3초밖에 되지를 않으니.

   이래서는 일검과 같이 제약이 너무 많았다.

   

   ‘단련밖에 답이 없나.’

   

   하지만 그래도 극혈침독의 문제점인 광증은 해결했다.

   비앙카에게서 훔친 저주 눈인형이 그 광증을 억눌러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눈인형의 효과는…….’

   

   크라슈는 시험 삼아 몇 가지 엿 같은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확실히 이전보다 치밀어 오르는 화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앙카처럼 감정 자체가 없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마치, 감정이 강제로 약간 억눌리는 느낌이었다.

   

   ‘저주는 대상이 바뀌면 그 효력이 줄어드니까.’

   

   거기다가 크라슈는 이번에 눈인형을 얻고 깨달았다.

   

   ‘눈인형은 감정을 완전히 지우는 것보다는 억누르는 거였나.’

   

   비앙카가 종종 완전히 감정이 없지만은 않게 느껴졌던 건 아무래도 이러한 이유였던 모양이다.

   

   ‘그때는 눈인형보다 더한 저주가 눈인형을 집어삼켜 버려 아예 체감 못했었으니.’

   

   막연하게 감정을 지우는 거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크라슈 입장에서는 이쪽이 더 환영이었다.

   

   ‘이거라면.’

   

   크라슈의 눈이 번뜩였다.

   

   ‘제어할 수 있어.’

   

   크라슈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저주를 몸에 담았다.

   그 결과, 저주 중 최고위 등급의 저주 같은 건 그로서도 어찌할 방법이 없었으나 그 아래 등급의 저주라면 다룰 줄 알았다.

   

   괜히 저주 전문가를 자처한 게 아니다.

   

   그러니 선뜻 눈인형을 크라슈가 훔치려고 했던 것도 있었다.

   크라슈는 제 육감으로 억누르고 있던 광증을 서서히 일깨워 보았다.

   

   ‘광증과 함께 눈인형을 같이 상쇄시킨다.’

   

   그러자 그는 점차 세상이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 감각을 느꼈다.

   제 육감을 풀자마자 날뛰려 하는 것이 광증다웠다.

   

   하지만 여기서 크라슈는 눈인형의 저주를 일깨웠다.

   마치, 날뛰는 들개에 목줄을 채우듯 눈인형이 광증을 강제로 억눌렀다.

   

   그러자 붉게 변해가던 세상이 점차 짓눌러 가며 원래의 색깔로 돌아왔다.

   크라슈의 입에서 핫하고 웃음소리가 한차례 흘러나왔다.

   

   그 웃음은 그가 눈인형을 완전히 제어한다는 증거였다.

   

   “별거 없구만.”

   

   광증은 크라슈가 보유한 세계 침식의 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 힘이 더 강해질 것이다.

   언젠가 눈인형조차 짓누르지 못할 날이 오기는 하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다른 저주나 스킬로 상쇄시키면 그만이었다.

   

   적어도 당분간은 눈인형도 광증의 걱정 없이 지낼 수 있겠지.

   그러니 비앙카도 자신이 감정이 없는 것에 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되리라.

   

   꼼지락-

   

   그러던 순간이었다.

   크라슈는 자신의 왼쪽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비앙카가 몸을 움츠리며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다.

   

   “……크라슈 님.”

   

   그녀는 일어나자마자 크라슈부터 찾았다.

   하지만 눈이 퉁퉁 부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지 그녀는 더듬거리며 크라슈를 찾았다.

   

   그걸 본 크라슈가 어이없는 기분과 함께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제야 비앙카는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앞은 보이냐.”

   “눈이 아파요.”

   

   그야, 저렇게 부으면 당연히 아프겠지.

   

   “배는.”

   “고파요.”

   

   다행히 그쪽도 참, 성실하다.

   

   “밥이나 먹자.”

   

   배는 채워야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삽화 및 일러스트를 총정리해서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인스타에 ‘무화꽃란’ 입력하시면 업로드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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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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