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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

    선택에 대한 결과는 빨랐다.

     

    온 마을이 새로운 소식에 웅성거렸고, 대원들은 다음 원정을 준비하기 바빴다.

     

    하루 아침에 온 마을이 시끌벅적해졌다.

     

     

    기이한 사실 중 하나는 다행히 누구하나 의문을 품지 않았다는 거다.

     

    그게 아담 형과 내가 결정한 미래라면 다들 따르겠다는 분위기였다.

     

    외려 내가 아름다운 부인을, 그것도 엘프를 얻게 되었다며 반쯤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부단장님 아주 한순간에 여복이 터져나네.”

     

    “그러게나 말이다. 저렇게 예쁜 귀족 두명을 아내로 두다니…참나, 이래서 여태 다른 여자들은 밀어냈던 건가?”

     

     

    나는 단원들의 중얼거림을 가만히 들었다.

     

    여복이 터져난다라…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평범히 살았다면 도무지 나와 이어질리 없는 두 귀족이 내 아내가 된 것이니.

     

     

    바랬던 적은 없다지만, 어쩌면 더 감사해야하는 걸지도.

     

     

    아직은 껄끄러웠으니 말이다.

     

    상대가 누구인지를 떠나, 이 과정이 모두 껄끄러웠다.

     

    혼인을 맺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다 뛰어넘고, 이렇게 함께한다는게.

     

    서로 사랑하게 되어 결혼하는게 아니라, 지장부터 찍어버리는게.

     

     

    그것 때문에 아직은 네르와도 삐걱대지 않았던가.

     

    여기에 새로운 아내까지 포함된다고 하니, 기대감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가정을 잘 지켜낼 수 있을까 궁금하다.

     

     

    차라리 두 아내가 인간이었다면 또 달랐을지도 모른다.

     

    맞춰야하는 문화도 적었을거고, 일부다처제도 이해해주었을지도 모르니.

     

    하지만 그런게 아니다보니 자꾸만 생각이 깊어진다.

     

     

    네르는 어젯밤 괜찮다고 했으니 그렇다치고, 아르윈 셀레브리엔은 괜찮은걸까?

     

    늑인족처럼 한 명만을 사랑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일부다처제를 지지하지도 않을 터였다.

     

     

    그 콧대높기로 유명한 엘프가 나의 두 번째 아내가 된 것에 대해 불만이 없을까.

     

    나는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리가 없을거다.

     

     

    …어제 잠시 교환했던 시선만 생각해보더라도 그건 아닐 듯 했다.

     

    아르윈 셀레브리엔도 내 나름대로 어떠한 매듭을 지어야할거라는 걸 알수 있었다.

     

     

     

    아담 형은 이른 아침 나의 선택을 들은 이후부터 엘프 장로와 기나긴 회의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먼저 취합할 수 있는 정보를 있는대로 취합해, 작전을 짜고 있는게 분명했다.

     

    나는 또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

     

     

    끝내 난,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생각을 털어냈다.

     

    지금의 고민들은 지금에 한정될 뿐이다.

     

     

    시간이 지나가면 네르도, 새로운 엘프 아내와도 적절히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이다.

     

     

    처음 네르와의 만남을 생각하면 얼마나 나아졌나.

     

    그때 그녀는 나만보면 뒷걸음질을 치고 눈을 깔았다. 다가가는 걸로 눈물도 흘렸다.

     

    하지만 이제는 내게 술도 따라주고, 손을 잡아도 밀어내지 않는다.

     

    가끔은 그녀에게 팔을 두른채 잠에서 깰때도 있다.

     

     

    그러니 이렇게 한발자국씩 나아지면 될 것이었다.

     

    물론 뚫어야할 길은 험난하겠으나…그렇게 천천히 다가가다 친해지면 될테니, 나는 앞서 걱정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

     

     

    하루가 꼬박 흘러 저녁이 된다.

     

    네르는 이번에도 베르그 뒷마당에 있는 작은 숲에 들어서 있었다.

     

    네르가 베르그에게 했던 제안으로 인해 촉발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네르는 아직 알수가 없었다.

     

     

    싫을 이유는 분명 없는 이야기였다.

     

    수많은 엘프들과 아르윈을 살리며, 끝내 베르그를 떠나갈 명분을 만들 수 있는 이야기다.

     

    이런 기회는 두 번은 안온다고 봐도 무방했다.

     

    “…”

     

    하지만 네르는 좋은 일이라 말하는 이성과 반대로, 마음이 답답했다.

     

     

    일부다처제라는 문화에 이렇게나 거부감이 컸나 싶을만큼.

     

    친구의 관심을 조금 빼앗기는게 이렇게 불안했나 싶을만큼.

     

     

    그녀가 생각해내는 어떤 이유도 지금 마음의 상태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니 네르는 속으로 혼잣말을 되뇌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이게 맞잖아.’

     

    어젯밤부터 시작해 하루종일 되뇌었던 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그 말을 하며 그녀는 시간을 축였다.

     

     

     

    -파스락.

     

     

    그때, 뒤에서 수풀이 헤쳐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

     

    네르가 뒤를 바라보자… 서 있는 아르윈이 보였다.

     

    “아르윈님?”

     

    “…네르.”

     

    어떻게 찾아온건지는 모르겠으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둘에게는 남아있었다.

     

     

    아르윈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네르는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같이 베르그의 아내가 될거라는 사실이 어째서인지 어색했다.

     

     

    아르윈은 스스럼 없이 네르 옆에 착석했다.

     

    “…결국 이렇게 됐네.”

     

    그녀가 말한다.

     

    “네.”

     

     

    아르윈은 고개를 살짝 돌려 네르를 바라보았다.

     

    “부단장의 마음이 하루아침에 바뀌었더라고.”

     

    “…”

     

    “혹시 네가 부탁한거야?”

     

    네르는 멈춰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숨겨야하는 사실도 아니었다.

     

     

    “…그렇구나.”

     

    아르윈은 그 사실을 음미하듯 조용히 속삭였다.

     

    그리고는 네르에게 말한다.

     

    “고마워.”

     

    “네?”

     

    “네 덕분에 엘프들과 세계수를 살릴 수 있게 된 거니까.”

     

     

    아르윈이 이렇게까지 감사를 전하니 마음이 보다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역시나 틀린 선택을 내린게 아니었을 것이다.

     

    네르는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몰라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윈은 긴 한숨을 내쉬며 몸을 살짝 뒤로 눕히고는 하늘을 바라봤다.

     

    잠시 숲의 풍경을 구경하던 그녀가 물어온다.

     

     

    “그래서? 결혼 생활은 어때?”

     

    “네?”

     

    “여기는 우리들만 있으니까 솔직해져도 돼.”

     

     

    아르윈의 분위기가 가볍게 변한다.

     

    마치 본래의 색을 드러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네르조차도 생소한 그녀의 모습이었다.

     

     

    네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날 그녀들을 두르던 용병단의 인파는 없었다.

     

    그런만큼, 누군가가 자신들을 평가할 일도 없었다.

     

     

    네르는 ‘솔직’해져도 괜찮다는 아르윈의 말에는 어떠한 의도가 담겨있음을 충분히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아르윈이 설명을 보탠다.

     

     

    “너도 원해서 맺은 혼인은 아닐테니까.”

     

    “….그렇…죠.”

     

    “이제 혼인한지 얼마나 된거야?”

     

    “…이제 한달 쯤 지났을까요.”

     

    “그런데 새로운 아내를 들이게 됐구나.”

     

    네르는 어째서인지 아르윈이 베르그에 대한 오해를 쌓아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자신이 그랬듯, 인족이라 편견이 깔려있는 느낌.

     

     

    네르는 본인도 모르는 사이 베르그를 위해 입을 열었다.

     

    “너무…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베르그는…”

     

    “…?”

     

    “베르그는 인족 중에서는 굉장히 좋은…편이니까요.”

     

     

    그 말에, 아르윈은 뒤늦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쿡쿡대던 그녀가 말한다.

     

    “벌써 부단장을 좋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건 아니지?”

     

    “…!”

     

    전에 없을만큼 노골적으로 변한 아르윈.

     

    하지만 네르가 놀라는 모습을 보며 아르윈은 그녀를 진정시켰다.

     

     

    “걱정하지마. 아무도 주변에 없다니까.”

     

    “아니…그러니까…”

     

    “늑인족인 네가 벌써 그럴 리가 없잖아.”

     

    “…”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아르윈의 부정적인 태도에 네르는 문득 의아해졌다.

     

    자신은 블랙우드 가문에서 가장 어렸기에, 혹은 미움을 받았기에 희생양이 된거라지만.

     

    아르윈은 이렇게 선택받을 필요가 어디에도 없었다.

     

    장로에게 사랑 받는 딸이었고, 엘프의 나이는 타 종족을 뛰어넘기에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테니.

     

     

    그러니 네르가 물었다.

     

    “…아르윈님은 어째서 셀레브리엔에서 선택받으신거예요?”

     

    “내가 자원한거야.”

     

    “…네?”

     

    아르윈의 태도에 그녀가 자원했을거라고는 도무지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르윈은 당연한 일이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야 지긋지긋한 영지를 벗어날 수 있으니까.”

     

    “…”

     

     

    아르윈은 따라가기 힘들정도로 너무도 솔직했다.

     

    이게 그녀의 성격일지, 아니면 주변에 사람이 없기에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짐을 한꺼번에 던져버리는 걸지 알수는 없었다.

     

    아르윈이 천천히 말한다.

     

     

    “…너도 알잖아. 우리들은 성년이 될 때까지 세계수의 안녕을 위해 희생해야한다는 걸. 자그마치 170년간…난 그 영지에 있어야만 했고.”

     

    “…”

     

    “앞으로 30년이나 더 거름이 되어야 했는데, 이 결정으로 나는 그 의무에서 자유로워졌어. 부단장이 죽고 난 이후에는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될 거고.”

     

    “주, 죽고 난-”

     

    “-60년 정도 후에는 죽겠지. 그렇지 않을까?”

     

    네르는 얼핏 엘프의 차가운 일면을 염탐할 수 있었다.

     

    오래사는만큼 타종족을 무시한다고 많이 들어왔다.

     

     

    지금 아르윈도 노골적으로 인족을 무시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나, 기저에 깔려있는 인족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느낌이 전해져왔다.

     

    사람이 죽는 이야기를 마치 가축이 죽는 것마냥 말한다.

     

    거기에는 어떠한 죄책감도 없어보였다.

     

     

    “…”

     

    네르는 결국 아르윈을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말만을 곱씹는다.

     

     

    “…근데 30년 기다렸으면 끝날 의무를, 60년 이상으로 늘리게 된 것 아닌가요?”

     

    그리고 묻게 된 의문에, 아르윈은 잠시 멈칫한다.

     

    그렇게 침묵을 유지하던 아르윈이 말했다.

     

    “…대신 이렇게 바깥 세상을 탐방할 수 있잖아? 이런 곳이 존재할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걸.”

     

    “…”

     

    네르는 아르윈의 표정에 담긴 기분을 읽으려 애썼다.

     

    정말 이 숲에 감탄하고 있는 느낌은 아니었다.

     

    외려 실망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네르조차 만족하지 못하는 숲에, 아르윈이 만족할리 없다. 어찌어찌해도 엘프니 말이다.

     

    아르윈은 긴 한숨을 내쉬며 다시 네르를 바라보았다.

     

    “한달간 계속 여기에만 있던거야?”

     

    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윈의 녹색 눈동자가 잠시 탁해진 느낌이 들었다.

     

    “네르. 앞으로 서로 의지하자.”

     

    이내 아르윈이 말한다.

     

     

    네르에게도 사실 나쁠 것 하나 없는 제안이었다.

     

    가슴속에 담긴 숨은 마음을 말하는 건 언제나 후련함을 선사한다.

     

    그걸 잘 아는 네르였기에, 여태 달을 보며 대화를 나눴던 것이다.

     

     

    “…친구처럼 잘 지내자.”

     

    다시금 제안하는 아르윈에게, 네르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 부탁드려요.”

     

     

     

    ****

     

     

     

    아담은 아스칼 셀레브리엔과 협상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우두머리에 대한 이야기도 잠시.

     

    동맹을 어떻게 맺을지에 대한 세부사항을 조정한다.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둘이 아이를 낳으면 아이는 저희가 데리고 있어도 괜찮다는 이야기겠죠?”

     

    “그렇지. 하프엘프는 자네들이 키우게.”

     

    “…”

     

    “아, 착각하지 말게나. 우리도 분명 그 하프 엘프를 우리의 식구라 생각하고 챙겨줄 테니.”

     

     

    감정이 끼어들 수 없을만큼 차가운 대화.

     

    협상이란 무릇 이런 것이었다.

     

     

    모든게 마무리 돼간다 느끼던 아담은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럼 여기까지군요. 장로님은-”

     

    “-잠시, 이야기하지 않은게 하나 있네.”

     

    하지만 아스칼은 아담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분명히 하고 가야할게 있어서 말이야.”

     

    “…말씀하시죠.”

     

    아스칼은 턱을 쓸며 아담을 응시했다.

     

     

    “만약의 이야기도 해둬야하니 하는 말일세. 기분 나쁘게 듣지 말게나.”

     

    “…”

     

    “…용병단인만큼 죽음이 드문 것은 아니겠지. 그런만큼…부단장이 혹여 사고로 죽었을때의 아르윈의 거취도 결정해둬야겠어.”

     

    아담은 순간 그 민감한 이야기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베르그가 죽는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노골적으로 해올줄은 몰랐다.

     

    물론 이해할 순 있었다.

     

     

    그의 말대로 용병단에서 누가 어떻게 죽을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그러니 아담은 천천히 감정들을 진정시켰다.

     

    “베르그가 죽었다고 셀레브리엔이 저희를 버리는 일은 없어야겠죠.”

     

    “그야 당연하지. 난 우리의 동맹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라, 다시 말하지만 아르윈의 거취를 묻는 것이네. 과부가 된 그녀가 계속 홍염단에 남아있어야하냐는 말이야.”

     

    아담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동맹에 영향이 가지 않는다면, 아르윈 양은 놓아드리겠습니다.”

     

    아스칼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는 문제가 없군. 내가 확인할건 이게 다일세.”

     

    “…”

     

    둘은 악수를 나누었다.

     

    아스칼은 천천히 일어나 몸을 돌린다.

     

     

    장로가 아담의 집을 나서려던 그때, 아담은 아스칼을 불렀다.

     

     

    “아. 한가지.”

     

    “…말해보게.”

     

    “저희도 만약의 이야기를 해두겠습니다. 정말 그럴일은 없겠지만…그러니 기분 나쁘게 듣지 마십쇼.”

     

    “…?”

     

     

    아담은 아스칼을 곧장 응시하며 말했다.

     

    “베르그가 사고로 죽었을 때만, 아르윈 양을 놓아드리겠습니다.”

     

    “…”

     

    “제 말, 이해하셨죠?”

     

     

    아스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당연하지. 우리도 그렇게 극악무도하지는 않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천박해님! 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따라와주세요! 감사해요!

    e삼승님! 3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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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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