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1

       나는 개새끼가 될 준비를 마쳤다.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스태프의 수평면으로 황자를 내려찍은 뒤 교정에서 미친년 소리를 간간이 듣긴 했지만, 그렇다고 법적인 조치가 들어오거나 하진 않았다. 교정결투는 법망의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황자와 나 모두가 기사도 정신에 근거하여 결투에 동의했다. 일이 다 끝난 다음에 황실에서 피해보상을 하라며 따질 만한 명분은 없었다. 보험 처리도 다 됐고.

         

       합법적인 참교육이 끝난 뒤, 내가 할 일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버멜의 표정을 시시각각 관찰하며 다음 사건이 언제 일어날지 유추해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플레어의 개발을 진척하는 것이었다.

         

       조례시간이 다가왔다. 주말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황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오는 사람은 이제 하스펠트 교수가 유일했다.

         

       하스펠트의 낯빛은 날이 갈수록 어두워졌다. 눈그늘이 진 것도 모자라, 머리칼은 만지면 푸석거릴 듯한 질감이었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의 몰골은 아니었다.

         

       나는 저 면상이 어떨 때 나오는지를 알고 있었다. 저 얼굴 배합을 완성하려면 딱 세 가지만 지키면 된다.

         

       첫째, 매일 믹스커피를 1리터씩 퍼마신다.

         

       둘째. 하루 세 번 이하로 세안한다.

         

       셋째. 밀폐된 공간에서 하루 여덟 시간 이상 상주한다. 그러면 저 몰골이 튀어나온다.

         

       [그걸 주인님이 어찌 아세요?]

         

       그니까.

         

       “…오늘 조례사항은 여기까지입니다.”

         

       하스펠트 교수는 무언가에 쫓기듯이 밖으로 나갔다.

         

       “선생님 왜 저러시는지 알아?”

       “몰라. 요즘 피곤해 보이시던데.”

         

       [플레어 연구라도 따로 하고 있는 거 아녜요?]

         

       그럴 가능성이 높기는 하다. 하스펠트는 제 연구를 위해서라면 대학원생도 개처럼 굴려먹는 인간이었으니까. 내가 모르는 사이에 좋은 노예를 하나 장만해서 감금연구플레이를 즐기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고보니 로테가 화계마도 조교로 있잖아. 조교 일은 할만 해?”

       “몇 가지 더 시키는 거 빼곤 그럭저럭 괜찮아.”

         

       하긴. 로테야 잘 버틸지도 모르겠다. 학구열이 뛰어나니까 하스펠트 밑에 있어도 어지간해선 군말 않고 일하겠지. 로테는 감정 표현이 즉각적으로 나오는 아이니까 정말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것이다.

         

       그때까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겠다. 그것보다도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오전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

         

       4월이 다가온다. 이제 제국에선 북부를 제외하고는 한랭전선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교정은 슬슬 꽃밭으로 변모할 때였다. 종자를 퍼뜨리려는 온갖 종류의 나무와 화초가 아카데미 교정을 칠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교정을 걷다 보면 교내 연애가 금지인 줄 알면서도 몰래 염장질을 해대는 커플을 만나볼 수 있다.

         

       과연, 저런 게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이란 것인가. 별로 신경쓸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중앙광장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이맘때가 되면 선배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분수대 근처에서 무언가를 설치하곤 했다.

         

       바로 동아리 부스였다.

         

       학교생활 하면 동아리를 빼놓은 수는 없다. 선생님에게서 벗어나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시간 아니던가. 비록 저쪽 세계의 모 나라 고등학교에선 생기부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지만….

         

       여긴 아카데미다. 동아리라고는 해도 학교에서 전폭적인 자금 지원을 해주는 탓에 많은 동아리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동아리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예술이나 오락으로 분류되는 취미 동아리와, 추가적인 배움을 위해 학생들이 자진해서 만든 학술 동아리가 있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물론, 학술 동아리였다.

         

       점심식사가 끝난 후 나는 로테와 프레이를 데리고 다니며 중앙광장의 여러 부스를 둘러보았다. 로테는 나와 의사가 같은 듯했다.

         

       “마음대로 실험하고 연구할 수 있는 곳에 들었으면 좋겠다.”

         

       누가 보면 기겁할 만한 발언이었다. 아직 1학년인데 벌써 학업에 관한 동아리를 든다? 이거 완전 공부벌레거든요.

         

       나야 플레어 연구를 위해 학술 동아리를 들어야만 했지만, 로테는 아니었다. 1학년은 재학생에게 매우 소중한 시간이다. 양껏 놀고 실패도 해 보며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때였다.

         

       로테는 그 기회조차도 날려먹고 나와 의사를 같이하려는 듯했다. 어느 측면에서는 불쌍했지만, 내 입장에선 잭팟이었다.

         

       삑! 삑! 삑!

         

       “학생회에 입부하실 분 있으신가요!”

         

       분수대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커다란 부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르가나 공작 가문의 영애인 샤디엘이었다. 그녀는 이 학교의 풍기위원장이었다.

         

       학생회도 홍보를 하는구나. 관심 없지만….

         

       “거기, 금안족 소녀!”

         

       아, 제발.

         

       “저요?”

         

       나는 멍하니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샤디엘 선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연단에서 내려왔다.

         

       “금안족은 머리가 똑똑하다는 설화가 있던데, 설마 사실이니?”

       “네! 에테르는 완전 천재에요! 원주율도 62조 8천억 자리까지 외울 수 있다구요!”

         

       내가 무어라 말할 틈도 없이 프레이가 끼어들었다. 나는 프레이를 콱 쥐어박았다. ‘아얏!’하는 단음을 낸 프레이가 챙이 넓은 마녀모를 고쳐쓰며 나를 노려보았다.

       

       뭐 어쩌라고.

         

       “그럼 암기나 속독에도 자신있겠네?”

       “왜, 왜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턱, 하고 내 어깨에 양손이 얹어졌다. 샤디엘이 눈을 반짝거리며 내게 제안을 걸어왔다.

         

       “학생회 서기나 회계로 딱이겠네, 그럼!”

       “…예?”

       “잠시 나 좀 따라와. 학생회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직접 보고 느끼게 해줄 테니까!”

       “저…. 학생회에 들고 싶은 생각은 없는데요.”

       “일단 견학을 받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지. 자, 잠깐만 시간을 내줘!”

         

       샤디엘은 내 손목을 잡아채고는 교실이 밀집되어있는 맞은편 건물로 데려갔다.

         

       “저 진짜 학생회에 들어갈 생각 하나도 없는데요!”

       “포기해! 학생회 권력은 절대적이니까 거스를 수 없어! 히히!”

         

       내가 멍청한 소리를 연발 내고 있자, 로테와 프레이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대충 잘 다녀오라는 소리였는데, 금세 멀어져서 잘 들리진 않았다.

         

       그렇게 나는 뜬금없이 풍기위원회의 일을 견학하러 3학년 교실로 올라가게 됐다.

         

       염병할.

         

       **

         

       틸레트 아카데미에는 수많은 동아리가 있다.

         

       대부분은 오락이나 학술적인 연구를 위해 마련된 동아리지만, 그렇지 않은 동아리들도 소수나마 존재한다. 그중에는 신문부나 방송부와 같이 학생들이 풍부한 학교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서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성격을 지닌 동아리…는 아니고, 그보다는 규모가 큰 교내 자치단체에 속하는 곳이 딱 하나 존재했으니. 바로 학생회였다.

         

       학생회의 하위부서에 속하는 선도부는 면학분위기 조성을 위해 매일 교내를 순찰하며 학교의 풍기를 책임지곤 했다. 당장 나조차도 책을 보며 걸어다닌다고 지적을 받았을 정도로 그 수준이 엄격하게 유지되는 편이다.

         

       삑! 삑! 삑!

         

       힘찬 호루라기 소리…는 아니다. 공계마도로 그와 비슷한 소리를 내고 다니는 완장 세 명이 남학생들이 밀집되어있는 반으로 들이닥쳤다. 나는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불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거기, 모여서 뭘 보고 있는 거죠?”

         

       팔짱을 낀 샤디엘은 이미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던 머리칼을 더 단정하게 쓸어내리며 남학생 무리 사이로 걸어들어갔다.

         

       학생회의 검문은 이사장이 뒤를 봐 주고 있었으므로 거절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남학생들 사이에서 ‘좆됐다’라는 부류의 탄식이 터져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샤디엘은 남학생들에게서 책 한 권을 빼앗아와 우리에게로 되돌아왔다.

         

       “이게 뭐죠?”

       “소설책 같은데요….”

         

       양 사이드에서 질문하는 선도부원들을 두고, 샤디엘이 작게나마 침음을 흘렸다. 패기 어린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그 책으로 향했다. 나는 세 사람 사이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책의 제목을 훑어보았다.

         

       [6974]

         

       ─ 죠지 오일

         

       시발, 이게 뭐야.

         

       “제목만으로는 잘 모르겠군요. 이 책 내용이 뭘까요?”

         

       샤디엘의 물음에 한 남학생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그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암울한 미래상을 담은 디스토피아 소설인데요…. 그, 철학적인 내용으로 유명한…….”

         

       거기까지 말하던 남학생은 곁에 있던 친구들에게 곧장 입막음을 당했다. 그것은 샤디엘의 눈가를 좁아지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책은 두꺼웠다. 대략 7백 페이지 가량일까. 내가 들고 있는 양장본보다는 가볍지만, 무시할 수 없는 분량이었다. 적어도 이 자리에서 전부 읽고 판단하기엔 무리였다.

         

       샤디엘도 그리 생각했는지, 날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에테르, 당신이 읽어보세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요?”

       “속독 하면 금안족 아니에요? 선도부는 항상 바빠요. 야한 만화라면 몰라도, 책 몇 쪽만을 읽고 관능소설인지 아닌지 바로 판단할 시간은 항상 부족해요.”

       “그, 관능소설의 기준이 뭔가요.”

       “성적인 묘사가 나온다고 해서 다 관능소설인 건 아니에요. 문학적으로 심오한 가치를 담고 있다면 저희도 제재하진 않아요. 선도부에서 제재하는 건 원초적인 쾌락만을 쫓아 아카데미의 학구적인 분위기를 망치는 것들뿐이죠.”

         

       아, 네. 그러세요.

         

       그러니까 나보고 야설 판독기를 하란 소리지? 강제로 견학하게 된 학생에게 이런 걸 시키다니, 이 학교 학생회는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

         

       “부탁할게요.”

         

       샤디엘은 그런 말과 함께 나에게 책을 건넸다.

         

       정면을 쳐다보자 남자들의 반응이 영 좋지 못했다. 꼭 도살장에 끌려나와 처분당할 위험에 처한 소들을 보는 듯했다.

         

       선도부에게 징계를 먹으면 그 결과는 학적부에 영원토록 남는다. 징계 수위는 그렇다치고, 그 징벌을 받은 이유가 대문짝만하게 기록되겠지.

         

       관능소설을 읽다가 징계를 먹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뻔하다. 학생부로 치면 ‘이 아이는 야설 보다가 선생님에게 걸렸음’이라는 문구가 적히는 꼴이 될 것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풍기위원장의 부탁을 들어주기만 하면 여기를 빠져나갈 수 있겠지? 그런 생각으로 책의 첫 장을 살펴보았다.

         

       ─ 맑고 쌀쌀한 4월의 어느 날, 그것이 13번 진동했다.

         

       첫 문장을 읽자마자 고개를 들어 남학생들을 쳐다보았다. 열 쌍에 달하는 동공이 격한 지진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공진 주파수를 맞추려는 라디오들 같았다.

         

       나는 책상을 고속으로 넘기며 열심히 눈동자를 굴렸다. 그 모습을 본 선도부원들이 빠르다며 감탄을 내뱉었다.

         

       활자가 점차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됐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괜히 금안족의 몸으로 들어와서 이런 고통을 받는구나….

         

       촤라락, 하고 페이지가 재빠르게 넘어간다. 소설의 말미에 다다르면 다다를수록 남학생들의 얼굴이 절규와 비탄으로 물들었다.

         

       탁.

         

       “흐음.”

       “무슨 내용인가요? 관능소설에 해당하나요?”

       “줄거리를 듣고 싶으시다면 별 거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마지막에 여주인공의 인격이 거세당하는 장면을 남주인공 시점에서 보여주는 장면은 나름 문학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쨌건 문제가 될 장면은 보지 못했다는 거죠?”

       “네, 없었어요.”

         

       아마도.

         

       “그런가요. 그럼 돌려주고 오세요.”

         

       나는 가장 앞쪽에 있던 남학생에게 책을 내밀었다.

         

       “샤디엘 선배, 정말 저희가 따로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금안족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거짓말을 잘 못하는 종족이라고 들었어요.”

       “으음, 선배가 그리 말씀하신다면요….”

       “그나저나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도 끝이네요. 에테르 양, 우리와 어울려줘서 고마워요. 학생회 업무에 생각이 있다면 다시 저희 부스를 찾아와 주세요.”

         

       그렇게 세 사람은 등을 돌려 교실 밖으로 나갔다. 세 사람의 어깨에 달린 학생회 완장을 보고는 참 고생하는구나 싶었다. 난 저런 데 안 가야지.

         

       “휴우…. 좆될 뻔했네.”

       “미친 새낀가! 그러게 야설을 왜 학교에 가져와? 너 진짜 취직 못하고 싶어?!”

       “보고 싶다고 졸라댄 건 니들이었잖아!”

         

       서로 티격태격하며 선배들이 책임전가를 하는 사이에, 나는 뒷걸음질을 치며 오후 수업을 준비하러 갔다.

         

       아무래도 학술 동아리에 드는 건 오후에 해야 할 듯싶었다. 쓸데없이 시간만 잡아먹었네.

         

       교실을 빠져나가려고 할 때 학생 두 명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뭐…. 여러 사람의 인생을 구했으니까 마냥 쓸모없는 시간이라고 볼 수는 없겠다.

         

       “후배, 누군진 잘 모르겠지만 정말 고맙다.”

       “뭐 그럴 수도 있죠.”

         

       남자와 남자 사이에서 긴 말이 필요치 않다. 나는 엄지를 치켜세우는 것으로 뒷말을 대신했다.

         

       내 따봉을 받은 학생들은 얼떨떨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똑같은 제스처를 취했다.

         

       “즐거운 하루 되시길.”

         

       우리는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3학년 교실을 도망치듯 빠져나온 건 그 직후의 일이었다.

         

       아, 진짜 피곤하다. 플레어 한 번 연구하기 더럽게 빡세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