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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

       *

         

         

         “이자벨 양, 진짜 혼자 가시게요?”

         “네! 걱정 마세요. 증명해야 할 게 있거든요. 후후.”

         “증명이요…?”

         “각오 단단히 하셔야 할 거에요. 유리 양도 아차 하는 순간 낙제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자벨은 무시무시한 웃음을 지으며 숲속 너머로 달려갔다. 사실상 그녀가 첫 선을 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여전히 공터에서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에서, 이자벨의 행동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시험이 시작하자마자 혼자 숲으로 달려갔다고?

         

         무언가 믿는 바가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숲에서 기다리고 있을 미지의 습격자도 그렇고, 홀로 다니며 같은 학부생들까지 경계해야 한다는 점에서.

         

         학부생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곧 삼삼오오 모여 들고는, 천천히 숲 깊은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광경을 내려보던 이반 또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반, 어디 가게?”

         “직접 봐둘 것이 있어서.”

         “으음…? 아주 수상해? 누구야. 어떤 놈팽이가 우리 ‘작은’ 이반의 관심을 끌었을까?”

         

         

         엔리케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반이 대답 없이 등을 돌려 떠나려 할 때, 엔리케가 입을 열었다.

         

         

         “애들 시험엔 개입하지 마. 어련히 잘하겠지만. 너, 무장 상태가 좀 과해서 그래.”

         “만일을 대비하는 거다.”

         “프리첸카야에서 네가 만일을 대비한다고 하면 꼭 쿠데타라도 일어날 것 같잖아. 어깨에 힘 좀 풀어, 제자야. 그거 편집증이야.”

         “글쎄.”

         

         

         이반은 굳이 이 전근대 고집불통 노인을 설득할 생각이 없었다.

         

         아카데미에서 가장 습격받기 쉬운 행사 셋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입학식, 현장 실습, 축제.

         

         그것도 어서 테러해 달라고 간청하는 듯한 시험 커리큘럼을 짜 놓고 이렇게 태평한 이유는, 저들에겐 상식이 부재한 까닭이다.

         

         이반은 몹시 현실적인 사람이었으므로 가능한 일만을 시도 한다. 그리고 그의 가능 범위 안엔 한 세기를 넘긴 노인에게 상식을 가르치는 일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반은 별 말없이 나무 위로 뛰어올라 숲 저 너머로 사라졌다.

         

         

         “요새 좀 뭔가… 얄미워졌는데…?”

         

         

         엔리케는 이반이 지었던 표정을 곱씹으며 울컥했다.

         

         

        *

         

         

         “진짜 아저씨 뭐 하는 사람이지?”

         

         

         이자벨은 숲속을 뛰어다니며 중얼거렸다.

         

         이반의 수업에 배웠던 모든 것들이 눈앞에 선명히 비치고 있었다.

         

         

        -자연엔 직선이 없다. 낮에 볕이 드는 각도에서, 직선으로 반짝이는 모든 것들은 함정이다.

         

         

         실로 그랬다. 이자벨은 벌써 여섯 개 째의 부비트랩을 해체하며 거침없이 달리고 있었다.

         

         거기에 하나 더.

         

         

        -잘 훈련 받은 요원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하나의 함정은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가정해 봐라. 네가 함정을 피했을 때 어디로 피하게 될지.

         

         

         함정의 유도. 매복형 함정을 회피할 수 있는 가장 깔끔한 동선상엔 반드시 두 번째 함정이 존재한다.

         

         그 수업 또한 적절했다. 엔리케의 제자라는 이 요원들은 이반의 기준으로도 충분히 훈련 받은 이들이었던 모양이다.

         

         함정을 해체하고 머릿속에 회피 경로를 그려 본 뒤엔, 반드시 그 자리에 두 번째 함정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이자벨의 귓가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구 있어요?”

         

         

         학생이다. 이자벨은 수풀 속에 몸을 웅크리고 칼자루를 조용히 쥐었다.

         

         곧 바스락, 바스락 하는 소리가 들리며 학생 하나가 나타났다. 이름이 뭐였더라. 알렝? 아마 그녀와 같은 틸레스 출신 신입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저 녀석은 나름 인맥이 튼튼한 편이었다.

         

         그런데 혼자 나타났다고? 그럴 리가.

         

         이자벨은 싸늘하게 웃으며 주위를 살폈다. 과연, 알렝의 뒤 멀찍이서 흔들리는 그림자가 보였다. 나무 뒤에 숨어 있는 모양이지만, 저렇게 어설픈 은폐는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괜히 경계심만 더 올리는 법이거든.

         

         이자벨은 피식 웃고 말았다. 저런 꼴을 보면 아저씨가 얼마나 대단한 남자인지 다시 깨닫고 만다. 이래서 어린애들은 못 만나겠다니까.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고는 움찔 놀라고 말았다. 아니 만나긴 뭘 만나.

         

         

         ‘그냥 고마움, 딱 그 정도지!’

         

         

         적어도 고백은 하는 게 아니라 받는 거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졌어도, 유구한 역사가 증명하는바.

         

         틸레스의 궁중 예법에 따르면, 여성 측에서 먼저 고백하는 경우는 오직 하나뿐이다. 여성의 부친이 정략혼을 추진하기 위해 접근하는 것.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자벨에겐 아버지가 없다. 막시밀리앙은 지금 벌써 4년째 실종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자벨은 틸레스의 역사와 전통에 따를 수밖에 없다. 이반이 먼저 고백하면 고민은 해 보겠지만, 좀 긍정적으로 검토할 의향도 충분히 있지만.

         

         

         ‘먼저 고백한다? 이건 좀 아니거든요. 아무리 아저씨라고 해도, 내가 훨씬 아깝잖아. 용사 딸이고, 귀족이고, 예쁘고, 어리고.’

         

         

         평소라면 이자벨이 주접을 부릴 때 에시디스나 유리가 적절히 저지해 주었겠으나, 안타깝게도 지금 그녀의 곁엔 아무도 없었다….

         

         

         “야, 아무도 없나 본데?”

         “이상하다 분명 소리가 들렸는데.”

         

         

         알렝이 투덜거리자 나무 뒤에 숨은 한 무리의 학생들이 나타났다. 익숙한 얼굴들, 알렝의 무리들이다.

         

         다섯. 정면에선 피해 없이 감당하긴 어려운 숫자다.

         

         하지만 이자벨은 칼자루를 쥐고 조용히 나무 위로 타고 올라갔다.

         

         암습 대응 훈련이란 것은 반대로 말하자면, 암습 훈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암습에 대응하기 위해선 우선 암습하는 방법에 정통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크라실로프 최고의 현장 요원에게 직접 실전 훈련을 받은 이자벨은 지금. 대학 신입생 수준에선 대응할 수 없는 수준을 지녔다고 할 만하다.

         

         

         ‘우선 하나.’

         

         

         이자벨은 가장 뒤에 있는 남자의 입을 막고, 곧장 목덜미에 칼을 들이밀었다.

         

         

         “읍…읍?!”

         “쉿. 이거 날 서 있어요.”

         “이, 이자벨 양…?!”

         “어허, 조용히 안 하면 어디 다칠 수도 있다니까.”

         

         

         그녀는 이름 모를 동기의 품에서 구슬을 꺼내 들고 바로 뒷목을 후려쳤다.

         

         

         “커흑!!”

         “어, 아저씨는 이렇게 해서 사람 기절 시키던데.”

         “습격…! 습격이야!! 내 구슬 가져갔어!!”

         “아, 이건 반칙이죠. 탈락 했으면 조용해야지.”

         

         

         이자벨은 투덜거리며 칼을 들었다. 뒷목을 맞은 동기는 고통 속에서 버르적거렸지만, 그 덕에 넷이 그녀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이자벨…! 혼자 달려간 주제에 선수를 치다니! 용감한 거냐, 무식한 거냐?”

         “오, 알렝. 이제 나랑 말 놓기로 한 거야?”

         

         

         이자벨은 히죽거리며 칼을 들었다. 뭐, 다섯보단 넷이 나으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 녀석이고 저 녀석이고, 그녀를 보며 억지로 방실방실 웃는 꼴이 마음에 들지도 않았었고.

         

         거기에 더해서.

         

         

         ‘뭐야, 저 자세.’

         

         

         덤벼드는 자세, 달려오는 기세, 서로 합도 맞지 않는 엉성한 동선까지.

         

         하나하나 우습기 짝이 없어서.

         

         목숨을 걸고 테러범과 맞서야 했던 입학 열차, 그리고 지난 일주일간 실전처럼 그녀를 공격하던 이반의 모습에 비하자면 따분할 정도다.

         

         그녀는 비죽 웃었다. 하여간, 진짜로. 떠올려보면 다 그 아저씨 뿐이라니까. 심각해 정말.

         

         

         “구슬 다섯이면 수석이 되려나 몰라? 이번엔 진짜 1등 하고 싶거든요.”

         

         

         이자벨은 실실 웃으며 마주 달렸다.

         

         

        *

        

        

        시간히 흘러 시험을 시작한 지 2시간이 지났을 무렵.

        

        이제 학생들 중 절반이 낙제점을 받고 숲밖으로 인솔 받아 떠나갈 때쯤.

        

        그러니까, 엔리케의 제자들이 각자 담당해야 했던 학생수가 줄어 더욱 습격이 가열차게 진행되어 갈 때.

        

        

       -쿠구구구구….

        

        

        지하 깊은 곳에서 땅 울림이 시작되었다.

        

        

        “꺄악?!”

        

        

        유리는 한창 달리던 중에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그녀는 곧장 일어나서 칼자루를 쥔 채로 주변을 경계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습격의 징후가 느껴지지 않았다.

        

        

        “뭐지?”

        

        

       *

        

        

       -쿠구구구…!!

        

        

        땅 울림이 거세어진다. 점점 더 무겁게, 숲의 나무들이 휘청이며 바스스, 잎을 떨어 댄다.

        

        엔리케는 인상을 찌푸리며 곧장 나무 위로 뛰어올랐다.

        

        

        “…뭐지?”

        

        

       *

        

        

       -구구구구…!!

        

        

        지반이 흔들림과 동시에 이반은 나무를 박차고 뛰었다. 그는 가장 높은 나무의 끝으로 뛰어올라서 주변을 훑었다.

        

        드넓은 숲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어디냐.”

        

        

        갑작스런 지진에도 이반은 놀라지 않았다. 습격이 일어날 것은 상수였으므로, 그는 상식대로 펼쳐지는 일에 하나하나 놀랄 정도로 여린 사람이 아니다.

        

        목표가 어딜까.

        

        이반은 싸늘한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범위가 너무 넓었다. 이자벨과 오스칼의 위치는 이미 파악하고 있지만, 지진이 일어나는 방향은 단지 그들의 위치에 한정되고 있지 않았다.

        

        숲 전체가 떨리고 있었다.

        

        

        “하, 이거.”

        

        

        이반은 곧 피식 웃었다. 그의 눈에 익숙한 형상이 보였기 때문이다.

        

        드워프가 맞았군. 예상대로야.

        

        이반은 빠르게 숲을 훑었다. 갑작스런 지진에 당황하지 않았다면, 넓은 시야로 전장 전역을 관조한다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진이란 결국 파장이다. 진앙지라 불릴 만한 곳이 가장 거칠게 흔들리는 법이다.

        

        따라서, 추론해 보자면.

        

        흔들리는 나무들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표지기가 된다. 흔들림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면 진앙지를 살필 수 있었다.

        

        언젠가 회고했듯이, 숲이란 결국 난상형 미로에 가깝다. 무작위적으로 자라난 나무와, 다 자란 나무들이 서로 얽혀 만들어진 복잡한 기관이다.

        

        그런 형태에 현혹되지 않고 보자면, 흔들리는 나무의 각 객체를 독립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면.

        

        

        “거미집이군.”

        

        

        거미줄 모양으로, 원형을 그리며 뻗어 나간 기나긴 진앙지가 보인다.

        

        제 5 용장 공병대, ‘웹메이커’ 특유의 습격 방식.

        

        오랜만이군. 이반은 거의 그리움까지 느낄 정도였다. 굉장히 정석적인 습격이었고, 이건 과거의 ‘갱도 전쟁’을 떠올리게 만들었으므로.

        

        그때 그 시절보단 훨씬 규모가 작긴 했지만, 어쨌건.

        

        

       -콰과과과과과—!!

        

        

        산사태가 울리는 듯한 폭음과 함께, 숲 전역이 풀썩 내려앉았다.

        

        나무가 뒤엉키며 쓰러지고 흙이 뒤집히며 깊은 토굴을 드러낸다.

        

        그 위에 있던 모든 것들이 토사 속에 휘말려 쓸려 내려가고,

        

        흙먼지와 부서진 목재들이 풀썩, 큰 반향을 이루며 튀어 오른다.

        

        자욱한 전장 속에서, 이반의 귀엔 많은 학생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학생 구출은 엔리케에게 맡긴다.’

        

        

        엔리케라면 이 상황을 보는 즉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드워프의 습격은 그녀에게도 익숙한 일일 테니까.

        

        거기에 학생 대부분은 ‘위치추적 마도구’를 소지하고 있다. 즉, 학생 구출 자체는 골든타임 내에 가능하리란 전망이다.

        

        외부 실습, 그것도 실전에 가까운 ‘암습 대응’ 시험이었으니 사제들도 대기하고 있을 터. 어지간한 부상이 있더라도 회복할 수 있다.

        

        이반은 즉시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더 가까운 건 오스칼인가.’

        

        

        이자벨과 오스칼 둘 중 하나가 놈들의 타겟이라고 생각한다면, 우선 가까운 쪽부터.

        

        이반은 머릿속으로 동선을 그리며,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토굴의 틈으로 몸을 던졌다.

        

        전장이 가깝고 목표는 확실했으며 무장은 충분했다.

        

        절멸부대 장교에겐 그 이상의 명제가 필요하지 않았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우실아 님, 로알리 님, dokirby 님, 지나가나는나비 님, 세라턴 님, 정웅_794 님, 쿠로버 님, 재밌는게좋아요 님!! 후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지난 후기 이후로 많은 분들의 걱정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 하나 알려드릴까요…?

    글 쓰기 전에 저는 퇴근 후 배달 일을 했었습니다…? 사실 수면 시간 자체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하하! 이건 몰랐지!

    불쌍하라고 쓴 글은 아니었는데 너무 많은 분들이 놀라셔서 저도 좀 놀랐어요. 이제부터 신변잡기는 줄이겠습니다.

    소설 내용으로 승부하는 작가가 되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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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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