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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

       

       서연이 홍정희를 연기할 때, 깊은 감정 연기.

       예를 들자면 메소드 연기와 같은 걸 하기 싫어서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정보가 부족했다.

       결국 서연의 일반적인 감정 연기는 베테랑 연기자의 연기와 같다.

       

       즉, 이미 직접 겪어보거나, 보았던 정보를 토대로 연기한다.

       반대로 말하면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이나, ‘보통’을 벗어난 독특한 캐릭터라면 그 감정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든다.

       

       본디 서연에게 전생에 감정이란 학습적인 것.

       환생한 지금은 그런 단점이 사라졌지만, 의식적으로 느껴보지 못하거나 경험 못한 감정은 이해하기 어려운 건 동일하다.

       

       말하자면 ‘홍정희’라는 캐릭터는 서연에겐 어디까지나 대본의 존재.

       그녀의 말도, 행동 양식도 납득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니, 최대한 대본에 쓰인 감정을 자신 나름 해석하여 나타낸 것이, 서연의 ‘홍정희’.

       

       ‘당연히 그것만으론 완벽히 캐릭터를 이해한 표지우를 이길 수 없어.’

       

       답지는 눈앞에 있다.

       그러니, 표지우의 행동을 봤다.

       

       연극은 동작으로 캐릭터의 심리를 나타낸다.

       과격한 그 동작이 홍정희라는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줬다.

       

       ‘좋아, 해보자.’

       

       호흡은 한번.

       감았던 눈을 뜨며, 심사위원들을 본다.

       

       「송민서.」

       

       홍정희는 송민서를 부른다.

       이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행동이다.

       

       송민서는 청각에 장애를 지니고 있고, 말을 한다고 해서 듣지 못한다.

       그런데, 홍정희는 수화를 곁들이지 않고, 오직 말로만 송민서에게 이야기했다.

       

       어쩌면 연극이기에, 관객들에게 홍정희의 말을 전하기 위해 그런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극의 인물들은 송민서와 대화할 때 간단한 수화를 섞어 이야기한다.

       

       즉, 홍정희의 행동과 말은 어디까지나 혼잣말이다.

       송민서가 듣든 말든, 아무래도 좋다는 뜻이다.

       

       「넌 그래봐야 귀머거리일 뿐이야.」

       

       빈정거리는 말이 아니다.

       놀랍게도 이 대사에 나타난 감정은 열등감이다.

       

       그런 홍정희.

       서연의 연기를 보며 조도율은 생각했다.

       

       ‘이전의 연기와 달라. 근데, 또 완전히 다른 건 아니야.’

       

       처음에는 표지우의 것을 모방했나 싶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마치, 표지우를 보고 캐릭터를 이해한 것처럼 연기의 감정선이 훨씬 깊어졌다.

       아마 그렇게 느낀 건 조도율만이 아닐 거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저마다 무언가를 적으며 서연의 연기를 홀린 듯 보고 있었으니까.

       

       

       「응? 생각해 봐. 진심으로 오빠가 너에게 호감을 품었을 것 같아?」

       

       청각 장애를 가진 송민서에게 열등감을 품었기에, 홍정희는 더더욱 송민서를 매도한다.

       폭력을 휘두르고, 그녀가 자신의 말을 듣지 못하도록 만든다.

       

       「네 비열한 술수에 어울려준 것뿐이야.」

       

       그곳에서 얻는 우월감.

       그 저열한 마음을 이해하며 서연은 대사를 내뱉었다.

       

       「가진 장애를 내세워, 타인의 호의를 이용하는 비열한 년.」

       

       결국 홍정희의 대사는 송민서를 깎아내리는 것 뿐이다.

       그리고, 동시에.

       

       「추해.」

       

       그 말은 자신에게 내뱉는 말이기도 했다.

       추하다.

       홍정희는 자신이 추하다는 걸 안다.

       그래도 상관없다.

       

       송민서를 배제하고, 어떻게든 배성학에게서 떨쳐낼 수 있다면.

       그의 빈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음습한 마음을 숨긴 채, 매도하지만 송민서는 그런 홍정희의 말에 의연히 대응한다.

       그것을 본 홍정희의 행동은 한층 과격해진다.

       

       언성이 높아지고, 폭력을 휘두른다.

       

       서연은 그 연기를 표지우의 블로킹을 따라 움직이고.

       그 동작을 흉내내며, 즉석에서 일부 행동을 교정한다.

       

       ‘이건 표지우의 것. 홍정희라면…… 조금 다를 거야.’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서연의 해석이다.

       하지만, 그 해석은 전과 달리 이해에서 나온 해석이다.

       

       결은 같지만, 서연은 표지우의 색깔에, 자신의 색을 붓질한다.

       바다의 물살로 빚어낸 그림이.

       수족관에 멋지게 장식될 수 있도록.

       

       서연이 새롭게 이해한 감정.

       그 감정을 통해 연기한, 새로운 ‘홍정희’가.

       

       비로서 완벽히 그려졌다.

       

       “끝났습니다.”

       

       서연은 담담히 답했다.

       늘어졌던 머리칼을 쓸어 올린다.

       

       격한 동작에 주름진 옷깃을 가다듬으며 정면을 보자, 심사위원들은 저마다 입을 벌린 채 생각에 빠진 얼굴이었다.

       

       ‘이거.’

       

       난감하네.

       가끔 이런 일이 있다.

       누구를 뽑아야 할지 망설여지는 그런 오디션이.

       

       ‘둘 다, 홍정희에 맞아.’

       ‘외견은 오히려 표지우 쪽이죠?’

       ‘주서연 배우는 외견이 너무 화려하지. 근데, 그건 분장으로 커버가 가능해.’

       

       연기는 저마다 특색이 있었다.

       누굴 뽑아도 홍정희 역은 흠잡을 것이 없을 테지.

       

       ‘괴물이군.’

       

       조도율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분명, 서연은 첫 번째 연기까진 표지우보다 ‘홍정희 역’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졌다.

       훌륭한 연기였고 시선을 빼앗는 존재감도 있었지만, ‘홍정희’라는 느낌은 표지우가 쪽이 위였다.

       

       ‘동선은 거의 같았어. 동작도 처음에는 흡사했지.’

       

       표지우의 동작을 보고 곧바로 외운 건가?

       거기다 진짜는 그 후다.

       서연의 색이 거기에 덧칠되며 나타난 ‘홍정희’.

       

       ‘연기를 나중에 하겠다고 한 게…….’

       

       심사위원들은 처음, 서연이 했던 말을 상기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먼저했으니, 이 다음 연기는 뒤에 하고 싶다.’

       

       단순히 부담을 가져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거 서러워서 배우 일 하겠나.’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두 배우, 그중 민서호는 헛웃음을 흘렸다.

       배우이기에 더욱 확실히 느꼈다.

       서연이 방금 표지우의 연기를 보고, 즉석에서 캐릭터를 해석해 연기했다는 걸.

       

       천재 아역.

       10년 전, 주서연에게 붙었던 별명이다.

       

       민서호는 그 별명이 왜 붙었는지, 지금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아, 시간이 됐네요. 결과는 후에…… 문자나 메일로 통보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조도율은 시간을 살핀 뒤 말했다.

       아직 남은 배우들도 있는데, 시간을 너무 낭비한 탓이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말과 함께, 서연의 복귀 후 첫 오디션이 끝났다.

       

       ***

       

       “하아.”

       

       서연은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숨을 토했다.

       머리에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홍정희에는 너무 감정을 몰입하면 안 좋겠네.’

       

       아직도 저릿한 감각이 가슴에서 느껴졌다.

       열등감.

       그 저열한 음습함이 가슴 속에 남은 느낌이다.

       

       이해하고, 답습하며 표현한 연기는 서연에겐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다.

       

       “너, 너어어!!”

       

       그때, 서연을 뒤따라 나온 표지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표지우는 억울했다.

       오직 이 연기를 위해 1년을 연습하며 계속 기다려온 배역이다.

       그런데, 그런데!

       

       ‘졌어.’

       

       느꼈다.

       표지우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가에 흐른 눈물을 닦았다.

       

       분명 연기는 비슷했다.

       아니, 어떤 부분에선 여전히 표지우가 나았다.

       

       홍정희는 표지우의 연기가 가장 잘 어울린다.

       그렇게 자신할 수준은 됐다.

       

       하지만.

       

       ‘발성.’

       

       그리고, 연기의 능숙함과 발전성.

       ‘주서연’이라는 이름이 가진 파급력.

       

       반대로 말하면 조금 더 ‘어울린다’라는 게 표지우가 내세울 수 있는 장점.

       그 외에는 모든 부분이 서연이 나았다.

       

       당연한 일이다.

       1년.

       표지우에겐 긴 시간일지 모르나, 서연은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연습했다.

       기술적으로 차이가 나는 건 당연했다.

       

       분명 캐릭터의 해석에서 압도했을 텐데.

       그것을 순식간에 따라잡혔다.

       

       “으, 으으으!!”

       

       분노를 참지 못하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표지우를 보고, 서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시선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표지우를 살폈다.

       

       ‘……무기는 없겠지?’

       

       특히 칼.

       

       서연은 가녀린 표지우의 다리를 봤다.

       로우킥을 한번 세게 걷어차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너.”

       

       서연이 그런 불온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다가온 표지우가 서연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것을, 서연은 가볍게 잡아챘다.

       

       “어?”

       

       딱히 공격하려던 의사가 있던 건 아니다.

       어째선지 슬슬 멀어지는 서연을 붙잡고자 손을 내밀었을 뿐이다.

       

       ‘뭐야. 힘이 왜 이렇게 강해.’

       

       표지우는 깜짝 놀라 팔을 빼려 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는 팔에 두려움을 느꼈다.

       무슨 여자애의 힘이 이렇게 세단 말인가.

       

       억울했다.

       배역을 빼앗기게 생긴 것도 억울한데, 이런 수난까지 당하다니.

       

       그냥 조금, 아주 조금 대화를 나누려 했을 뿐이다.

       조금, 아주 조금 협박할 마음이 있었다거나.

       해코지할 생각은 정말 아주 조금밖에?

       음, 살짝 겁을 주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조금은 했지만!

       

       미성년자이고, 아직 애니까.

       그냥 정말 조금이다.

       조금이었다고…….

       

       표지우의 눈에서 눈물이 솟아 나왔다.

       

       “으허어엉!!”

       “엑.”

       

       당연히 서연으로선 그런 그녀의 눈물에 질색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모로.

       

       “훌쩍.”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혹시, 수상한 짓 하면 신고할 거예요.”

       

       그런 서연의 말에 표지우는 다시 서러워졌다.

       아직 아무런 짓도 안 했는데 서연은 마치 자신을 범죄자처럼 취급했다.

       물론 이건, 서연의 본의가 아니긴 했다.

       

       전생의 기억이 너무 강렬했을 뿐이다.

       

       ‘사람 한 명을 회 떠버린 사람인데…….’

       

       말했듯, 서연이 이 ‘눈을 감고’라는 연극을 접한 건 다름 아닌 뉴스다.

       

       한 상해사건에 관한 뉴스.

       

       그 뉴스에서 피의자는 눈앞의 표지우.

       피해자는 민서호였다.

       어찌 보면 민서호의 업보로 벌어진 사태였지만, 표지우가 칼 한 자루를 들고 클럽에 쳐들어가.

       지인들과 함께 있던 민서호를 쑤셔버린 건, 한동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였다.

       

       ‘그 상황에서 살아남은 민서호도 대단하지만.’

       

       아무튼 클럽 가드도 뚫고, 그걸 해낸 표지우는 한동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소드마스터 표’라고 불렸을 정도다.

       오늘 칼을 가지고 왔다면…… 서연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래도.’

       

       서연은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는 표지우를 보았다.

       적어도 아직은, 뉴스에서 본 그 표지우가 아니다.

       

       거기다, 그녀의 연기를 본 입장에서 그런 파멸적인 미래가 닥치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

       

       “표지우…… 언니.”

       “으응?”

       

       역시 언니라는 말은 아직 조금 어색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서연은 말을 이었다.

       

       “괜찮으시면, 3일 후에 저랑 어디 좀 가실래요?”

       

       적어도 지금 안다면, 과거와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표지우가 민서호와 연인이 되기 전인 지금이라면.

       

       ***

       

       “서희야. 슬슬 드라마든 뭐든 하나 해야하지 않겠어?”

       

       커다란 벤의 안에서, 느긋하게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 조서희를 보며 매니저인 신유경은 잔소리를 내뱉었다. 이미 둘은 10년이 넘게 알고 지내, 언니 동생 같은 사이였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신유경은 최근 조서희의 행동에는 여러모로 불만이 많았다.

       그러니 참다참다 이런 말을 내뱉은 거다.

       

       “요즘, 그냥 의욕이 안나요.”

       “……뭐어, 네가 그동안 너무 열심히 하긴 했어.”

       

       열일곱.

       학교도 거의 나가지 않고, 일에 매진한 조서희는 동년배 중에 단연 최고라 부를 수준이었다.

       비교할 수 있는 건 3살 연상의 박정우.

       단 한 명뿐.

       

       ‘아니, 비슷한 연배만이 아니지. 적어도 현 여배우들 중에 조서희보다 잘 나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흥행보증수표.

       그 말을 단 게 1년 전이다.

       즉, 조서희가 중학교 3학년.

       

       2편의 영화, 네 편의 드라마.

       전부 경이적인 성적을 거두며 히트했다.

       

       그중 주연은 단 하나 뿐이지만 뭐 어떤가.

       결국 이름값이 올랐으면 그만이지.

       

       아마 학교에 가면 학생들이 말 한 번 붙여보려고 달라붙을 것이다.

       그 정도의 인기와 인지도를 손에 넣었다.

       

       그런데, 조서희의 얼굴은 심히 무료해 보였다.

       

       “별로, 연기할 마음이 안 들어요.”

       “너 번아웃 온 거야. 그럼 차라리 몇 달 쉬는 게 어때?”

       

       쉰다.

       대략 10년 전부터 조서희에게 쓰이지 않았던 말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열심히 했을까.

       

       조서희는 그 계기가 된 인물을 떠올렸다.

       

       ‘정말 은퇴한 거야?’

       

       주서연.

       그 이름을 몇 번이고 중얼거린다.

       실제로 만나서 대화한 건, 몇 마디조차 안 되는데.

       이토록 강렬히 자신에게 영향을 준 이가 있을까.

       

       “쉬면서 연극이나 뮤지컬도 좀 보면서, 문화생활 해봐. 혹시 알아? 다시 의욕이 생길지.”

       

       뮤지컬, 영화.

       대충 신유경의 의도가 보였다.

       

       그래도 조서희의 천성이 배우이니, 그런 걸 보면 의욕이 생기지 않을까 싶은 거겠지.

       

       ‘언니 말이 맞아, 조금 쉬자.’

       

       연극이라.

       드라마나 영화를 위주로 활동한 조서희에겐 조금 낯선 말이었다.

       그래서, 조금 관심이 있었다.

       

       그래, 아주 조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밤을 새어버렸어요… 큰일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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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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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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