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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

       결과적으로 우리가 이겼다.

        

       귀족 반의 3분의 1 이상이 전사 판정을 받았지만, 거기 나와 같은 조였던 애들은 없었다. 사실 절반 이상이 전사 판정이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이 정도로 끝날 수 있었던 데는 미아 크로우필드가 써준 마법이 큰 역할을 했다.

        

       갑자기 자기네 머리 위로 날아오는 엄청나게 밝은 빛 덩어리에 혼비백산했던 평민 반 애들이 많은 모양이다. 이 상황에서 진짜로 위험한 마법이 날아올 리는 없다…… 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실제로 눈으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니까.

        

       게다가 그 마법에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시야 하나는 확실하게 가릴 수 있었다. 덕분에 멀리서 총에 맞아 전사 판정이 난 애들은 처음 돌격을 시작했던 귀족 반 애들로 좁혀질 수 있었다.

        

       사실, 모래주머니를 넘어가기 직전에 손에 검만 들고 있었다면 다시 피해가 일어날 수 있었지만…… 나와 같은 조였던 애들은 죄다 손에 엽총을 들고 있었으니까.

        

       딱 두 발 들어있긴 했지만, 쏠 때 펌프질이 필요 없는 2연발 엽총이다. 코앞에 있는 적을 사살하기에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거다.

        

       그리고 곧장 검을 뽑아 들고 들어갔으니, 평민 반 애들은 더더욱 당황했겠지.

        

       총검술이라는 게 그저 검이라서 근접전에 훌륭한 것이 아니다. 검에 베이는 것, 그리고 살기가 충만한 사람이 검을 들고 달려드는 것 자체가 당하는 처지에서는 공포 요소가 된다. 거기다 귀족은 대체로 검을 잘 다룬다는 인식도 있었고.

        

       여러모로 심리적으로 위축된 평민 아이들을 상대하는 것이 마냥 어렵지는 않았을 거다.

        

       그래서 내가 모래주머니를 넘었을 때쯤에는 귀족 반 애들이 거의 승기를 잡은 뒤였다.

        

       내가 한 건 넘어간 뒤 두세 사람을 쏴서 쓰러뜨린 정도. 뭐 진짜 총에 맞은 게 아니라서 물리적으로 쓰러진 것은 아니었지만.

        

       “네 사격이 대단하긴 했어.”

        

       전투가 끝난 뒤 앨리스가 말했다.

        

       “우리가 뛰어들 때 쯤에는 다들 모래주머니 뒤에 엎드려 있더라. 들어보니까 ‘머리를 내밀면 총에 맞는다’라고 생각했다는 것 같던데.”

        

       ……사실 나로서는 이미 위치를 알고 있었던 것이 컸지만.

        

       그리고 상대방이 맞지 않을 때마다, 그리고 아군에게 맞을 때마다 시간을 돌렸을 뿐이다. 물론 상대가 보기에는 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는 몰라도 그냥 바로바로 사살한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을 거다.

        

       “……그렇지.”

        

       전투가 끝나고 평민 반 측 모래주머니 근처에 서서 앨리스와 대화하는데, 우리 대화에 불쑥 끼어든 사람이 있었다.

        

       “빛 때문에 거의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상대방을 쏴 맞출 수 있었는지 궁금하군.”

        

       마법으로 만든 빛 덩어리라고 해도 사거리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평민 반 애들의 모습이 빛 때문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보내지는 못한다. 단상 위 높은 곳에 서 있던 제니퍼 기준으로는 대부분의 평민 반 애들의 상황이 보였기에 탈락 선언을 할 수 있었을 거다.

        

       그리고 제니퍼의 눈으로 보기에는, 내 사격이 평민 반 애들한테 맞은 것이 이상하게만 보이겠지.

        

       “…….”

        

       “……흠.”

        

       문제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거다. 시간을 돌렸다고 하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하다. 같은 반 애들한테 말하면 그냥 농담 취급하겠지만, 제니퍼는 겉보기와 다르게 모든 것을 진지하게 보는 성격이었다. 당장 나의 말을 믿지는 않더라도 그걸 ‘가능성’으로 두고 따질 정도의 사람이긴 했다.

        

       제니퍼뿐만이 아니라 황제나 다른 형제, 자매들도 마찬가지였고. 내가 농담으로라도 누구에게 내 능력을 말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뭐 좋다.”

        

       제니퍼는 팔짱을 낀 채로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평소의 나였다면 이런 위험한 작전을 실행한 데 대해서 한마디하고 넘어갔을 거다. 얼핏 보면 순전히 운에 맡긴 채 달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니까.”

        

       ……정작 그거 외에 따로 방법도 없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박격포나 곡사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런 것을 쏘기에는 거리가 많이 가깝기도 했다. 사실 ‘참호’라고 만들어뒀을 뿐, 실제로는 시가전에 더 가까운 상황이었다.

        

       아마, 제니퍼는 ‘전장은 이렇게 위험한 곳이다’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원작에서도 결론이 그랬다. ‘하지만 전장에서는 그 우연도 결국 결과. 잘했다.’ 원작에서 제니퍼는 아마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아주 선명하게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하지만…… 네 사격.”

        

       제니퍼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봐도 그냥 감으로 쏜 것 같지는 않더군. 거기서 나타날 거라는 걸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래, 이걸 두고 ‘우연’이라고 하면 네가 억울하겠지.”

        

       우연 맞는데요.

        

       물론 그 우연을 몇 번이나 되돌리면서 필연으로 만들긴 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쏜 총알은 고작 일곱에서 여덟 발은 아닐 것이다. 그것보다 훨씬 많았으면 많았지.

        

       달리는 일행 중 한 사람이라도 탈락 처리가 될 때마다 시간을 돌려서 총알이 날아왔을 것 같은 곳을 향해 미친 듯이 사격했으니까.

        

       실전과 다른 점은 여기에도 있었다. 화약이 들어가지 않은 총에서는 총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 어디서 누구 총을 맞았는지 알 수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시간을 되돌리며 천천히 총을 움직여가며 상대가 맞기를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그게 우연이 아니면 뭘까.

        

       뭐, 그렇다고 실전을 원했던 건 아니다. 내가 애정을 가진 캐릭터들이 진짜로 총에 맞아 다치거나 죽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덕분에 내 계획이 다 어그러졌군.”

        

       제니퍼는 저쪽에서 이쪽을 조금 질린 표정으로 보고 있는 평민들을 보며 말했다.

        

       평민들조차 총기를 사용하며 귀족을 갈아버릴 수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했던 건데, 역으로 우리 쪽 피해가 훨씬 적었으니 오히려 ‘귀족은 그런 상황조차 뒤집을 수 있다’라는 결론이 나와버린 거다. 심지어 평민 반은 숫자가 귀족 반의 두 배였으니까.

        

       몇 명 정도, 원작에서 주인공 일행이 되었던 애들이 보였다. 그중 일부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는 아이들에 포함되었고, 몇 명은 굉장히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저 애들한테도 다음에 말이나 걸어볼까.

        

       나의 애정에는 평민이고 귀족이고 없으니까. 아니, 오히려 평민이라서 더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도 있었고.

        

       “뭐, 좋다. 평민이라고 장교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 오히려 그런 입장에서 생각하면 오늘의 일도 교훈이 되겠지. 전장에는 말도 안 되는 실력을 갖춘 괴물들이 넘쳐난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점에선.”

        

       그것도 그렇긴 해.

        

       실제로도 검 한 자루 꼬나쥐고 전장을 누비는 괴수들이 넘치는 세계였으니까.

        

       “아무튼,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에게는 그만큼의 보상이 필요한 법이지.”

        

       제니퍼는 그렇게 말하고는, 재킷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오.

        

       과연, 원래는 그냥 ‘그런 아이템을 얻었습니다’하고 알림으로 뜨던 것이, 이 세계에서는 사람이 하는 말로 바뀐 모양이었다. 하긴, 그냥 어느 사이에 주머니에 들어와 있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자연스럽지.

        

       “받아라.”

        

       제니퍼가 나에게 건넨 것은, 구슬처럼 깎아낸 루비 같은 형태의 보석이었다.

        

       마르마로스(Marmaros).

        

       마블, 그러니까 대리석의 어원이 된 그리스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이 보석은, ‘빛나는 돌’이라는 이름답게 은은하게 붉은빛을 내고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마법적인 힘이 작용하는 보석이었다.

        

       제니퍼의 손바닥에 올라가 있는 그 돌을 집자, 닿은 부분이 은은하게 따뜻했다. 막 뜨거워서 화상을 입을 것 같지는 않았고, 한겨울에 손난로로 쓰면 딱 좋을 것 같은 온도였다.

        

       물론 손난로로 쓰기에는 많이 비싼 물건이긴 했지만.

        

       마르마로스는 정제된 마력석이다. 마력석에는 기본적으로 ‘속성’이 있는데, 보통 이 속성을 가진 부분들이 마구 섞여 있어서 그냥 썼을 때는 특정한 용도로만 쓰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 속성이 지나치게 많은 종류가 자잘하게 섞여 도저히 정제할 수 없는 마력석은 그대로 연료로 쓰이지만, 간혹 거의 순수하게 하나의 속성만을 가진 마력석이 있다. 그 속성 부분만 깨끗하게 깎아내고 추가로 마법적인 가공을 하여 사용할 때 위험하지 않게 한 것이, 바로 이 마르마로스.

        

       원작에서는 무기에 장착하는 것으로 무기 속성을 바꾸거나 추가 데미지를 줄 수 있었다.

        

       아마 여기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고.

        

       “불 속성의 마르마로스다. 이제 네 것이니 원하는 대로 쓰도록.”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후반부에 가면 종류별로 넘치는 것이 마르마로스다. 심지어 두세 개의 속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하나의 속성을 지닌 것만큼이나 강력한 것도 얻게 된다. 물론 그건 땅에서 파낸 마력석이 아니라 고위 마물을 잡아 얻게 되는 것이지만.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유용하다는 뜻이다. 게임에서야 날짜가 순식간에 넘어가니 그 후반이 비교적 빠르게 다가오지만, 여기서 살아가는 내 처지에서는 1년은 1년이니까.

        

       “원한다면 장인을 한 사람 소개해주겠다. 네가 개인적으로 맡긴 총기도 돌려주고. 솔직히, 네가 그 마르마로스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 여러모로 궁금하니까.”

        

       ……원작에서는 없었던 이야기인데.

        

       뭐, 소개해 줄 장인이 누군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나는 제니퍼 쪽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했다.

        

       *

        

       “그래서, 그건 어디 사용할 거야? 역시 총이지?”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떤 총기를 쓰게 될지는 고민 중이다.

        

       원작과 이 세계가 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게임에서는 아무 무기나 사용할 수 없던 사람들이, 여기서는 당연하다는 듯 총기와 검을 함께 쓰고 있었다. 그러니 ‘총알’도 물리법칙을 따를 것이 분명했다.

        

       원작에서는 총에 속성을 가진 마르마로스를 장착하여 공격에 속성을 추가했다. 그러니 여기서도 거기까지는 똑같이 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불 속성’의 총알을 대체 어떻게 내뿜는가?

        

       총알을 뜨겁게 하는 것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 같은데. 총알은 어차피 뜨거운 채 날아가니까.

        

       그렇다고 일정 수준 이상으로 뜨거워지는 것도 곤란하다. 총열이 지나치게 뜨거워지면 그건 총기 고장으로 이어진다. 전장에서 총기가 고장 난다는 건 죽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아무리 시간을 돌릴 수 있더라도, 죽는 건 사양이다.

        

       게다가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죽어서 시간을 돌려본 적이 없다. 처음 시간을 돌렸을 때? 그때도 죽었던 건지는 불확실하다. 얻어맞고 그냥 정신을 잃은 것인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일단 죽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뒤로 미룰 것이다. ‘그리고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당연히 내가 인지도 하지 못하고 죽는 상황을 말한다.

        

       웬만하면 그 상황 자체를 만들면 곤란하지.

        

       “조금 더 천천히 생각해보고, 어떤 총기에 장착하는 것이 유리한지 고민해보겠습니다.”

        

       “뭐, 어차피 재활용도 가능하다는 것 같으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 없지 않아?”

        

       ……그것도 그렇네. 그건 다행이다. 원작에서도 필요하다면 빼서 다른 장비에 끼울 수 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

        

       “…….”

        

       그리고 우리는 잠시 말없이 걸었다.

        

       걷는 인원은, 조금 전에 운동장에 함께 뭉쳤던 그 여섯 명이었다. 나, 앨리스, 클레어, 레오, 샤를로트…… 그리고 미아 크로우필드.

        

       우리 근처에 있다가 얼떨결에 따라온 건지, 미아 크로우필드의 표정이 엄청 어색했다.

        

       그리고 그 어색한 분위기가 전염되어 우리도 말없이 걷고 있는 것이다.

        

       다들 귀족 사회에서 살았으니 눈치가

        

       “아, 맞다!”

        

       없을 수도 있겠구나, 응.

        

       갑자기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밝은 목소리로 말을 꺼낸 사람은 클레어였다.

        

       “우리, 수업 끝나고 같이 카페나 갈까? 지난번에 파르페가 맛있는 곳을 찾았는데.”

        

       “……그럴까?”

        

       그리고, 분위기가 영 껄끄러웠는지 그 말을 반갑게 받은 사람은 앨리스였다.

        

       “파르페인가요. 루테티아에도 훌륭한 카페가 여럿 있었습니다만…… 좋습니다. 론다리움과 루테티아 중 어느 쪽이 더 훌륭한지 따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그리고 세 사람은 나와 레오와 미아 크로우필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

        

       세 사람 다 잠깐 아무 말도 안 하기는 했지만.

        

       뭐, 거절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

        

       전부 내가 좋아하던 캐릭터들인데, 이런 상황에서 따라가지 않는 것은 씹덕으로서 예의가 아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

    오늘 아침에 출근해서 쓰다 보니까 결국 두 화를 다 써버렸네요.

    그래서 그냥 그대로 두 화 다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후원 감사는 내일 연재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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