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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

       이슬비가 추적추적.

         

       내 마음도 추적추적.

         

       파스텔은 비몽사몽인 정신 상태로 말고삐를 건네받았다. 백마가 멀뚱히 쳐다봤다.

         

       으아.

         

       너도 자다 깼니? 난 자다 깼어. 침대 속 온기가 아직도 선명해. 따끈따끈 폭신폭신 어디 간 거야~.

         

       “순한 애라 타기 쉬울 거예요.”

         

       멜리사가 혼자만 멀쩡한 상태로 말했다. 해도 제대로 뜨지 않은 새벽이건만 평소대로 우아한 외견이었다.

         

       으에.

         

       분명 우리 같이 밤 산책도 하지 않았어? 몇 시간 자지도 못한 건 똑같은데 왜 이런 차이가? 이것이 태생적 귀족인걸까?

         

       파스텔은 부스스한 머리를 손으로 빗었다. 붕 뜬 분홍 머릿결을 누르자 다시 띠용 튀어나왔다.

         

       우왕, 까치집.

         

       벚꽃 나무에 누가 까치집 지어놨어. 집주인은 분명 난데 어떤 까치 친구가 이런 무단거주를?

         

       악마가 머리 정리도 못 해줄 정도로 이른 시간이었다.

         

       흐엥.

         

       백마가 다가왔다. 그리고 입을 벌리더니 분홍 까치집을 우물거리려 했다.

         

       으아아.

         

       파스텔은 기겁하며 피했다.

         

       “내가 맨날 벚꽃거리지만 진짜 벚꽃인 건 아니라구우. 관상용으로만 봐아.”

       “이런 미안해요.”

         

       멜리사가 백마를 문질렀다.

         

       “엘리자베스, 여물은 금방 줄 테니 기다리세요.”

         

       엘리자베스?

         

       백마 친구 이름이 엘리자베스야?

         

       겨우 새벽부터 일어났다고 부스스한 상태가 된 파스텔보다 더 귀족적인 이름.

         

       기가 죽는다아.

         

       멜리사가 건조 여물과 사과 특식을 가져오더니 엘리자베스와 다른 말을 먹였다.

         

       “크래프트, 혹시 평소에 이런 시간에 일어나지 않나요?”

         

       끄덕끄덕.

         

       “빈둥빈둥 파스텔은 아침 햇살이 반겨줄 때 일어나.”

         

       하품을 길게 했다.

         

       “정말 그래 보이네요…….”

         

       멜리사가 우물쭈물거렸다.

         

       “미안해요, 크래프트. 각종 모략을 꾸미는 크래프트라면 조용한 새벽에 일어나는 전통을 가진 줄 알았어요. 새벽이 아니라 밤늦게 일을 꾸미는 가문이었군요. 하나 배웠어요.”

         

       멜리사아, 뭘 배웠다는 거야. 파스텔은 음흉한 크래프트처럼 밤늦게 일을 꾸미는 나쁜 짓은 안 한다구우.

         

       파스텔은 비몽사몽한 상태로 그리 생각하다가 문득 깨닫고 깜짝 놀랐다.

         

       파스텔 ← 밤 중에 남의 사과 농장 도굴한 애.

         

       허억.

         

       사실 나, 크래프트 그 자체?

         

       그럴 리가 없어어.

         

       파스텔은 양볼을 부여잡고 절망했다.

         

       우와앙.

         

       생계형 범죄예요오.

         

       모략도 배신도 꾸미지 않았어요오.

         

       그냥 정정당당하게 밀무역과 도굴을 했을 뿐이에요오.

         

       멜리사가 엘리자베스에게 사과 특식을 먹였다.

         

       『새벽 기상인가. 좋은 생활 습관이군. 너도 배울 필요가 있다. 일찍 일어나 이불 개는 습관을 들이면 삶이 편해질 거야.』

         

       으어.

         

       갑자기 잔소리 타임.

         

       반항심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기분.

         

       “맞아 멜리사! 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고 있어. 앞으로 평생 지킬 테야!”

       『뭐?』

         

       악마가 경악하며 잔소리를 멈췄다.

         

       멜리사가 돌아봤다.

         

       “그렇군요. 늦은 밤엔 그에 걸맞은 기회가 있겠죠. 역시 크래프트예요.”

         

       잉.

         

       이거 칭찬 맞겠지?

         

       어젯밤 도굴한 애로서 양심이 콕콕 찔려.

         

       파스텔은 어색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양심이 아야아야 하고 있지만 비자금 친구를 땅속에서 구해내기 위한 별수 없는 희생일 거야.

         

       멜리사가 살포시 웃었다.

         

       “고마워요, 크래프트. 계속 밀어내던 저와 어울리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고. 혹시 피곤하다면 돌아가셔도 좋아요. 오늘만 날인 건 아니니까요.”

         

       멜리사의 배려배려 빔~!

         

       까치집 파스텔은 으아아.

         

       양심이……!

         

       파스텔은 양팔을 파닥였다.

         

       “아니야아니야! 새벽에 일어나니 공기도 깨끗하고 정신도 맑은 게 아주 좋아!”

         

       숨을 크게 들이셨다.

         

       “우와! 새벽 공기! 너무 좋다!”

       『맞다, 아주 좋지.』

         

       악마님 이때다 싶어 긍정하지 마세요.

         

       팔을 번쩍 들었다.

         

       “함께 적멧돼지를 토벌하러 가자!”

         

       멜리사가 웃으며 긍정했다.

         

       “좋아요.”

         

       오예.

         

       완전 친구친구가 됐어!

         

         

         

       #

         

         

         

       으아아.

         

       그냥 곱게 돌아갈걸.

         

       백마에 탑승한 파스텔은 이슬비를 맞으며 말고삐를 부여잡았다.

         

       그러고 보니 나 승마를 해 본 적이 없었지.

         

       후회.

         

       격렬히 후회.

         

       가주로서 당연히 익혀야 할 교양이자 생존기였지만 백치 가주에게 위험한 승마는 아무도 가르치지 않았다. 너무 당연한 조치긴 해.

         

       『시선은 억지로라도 정면을 유지해라. 시선을 내리면 머리도 내려가고 자연스럽게 등까지 굽어진다. 등을 펴는 버릇을 들이기 전까진 시선에 주의해야 해.』

         

       처음 말 타고 실시간으로 승마 배우기.

         

       『어깨와 허리를 적절히 이완시켜. 말의 발돋움에 따라 저항하지 않고 박자를 맞춰야 근육이 피곤하지 않아. 그거다. 몸 쓰는 건 역시 잘하는군. 말도 좋으니 한 시간 정도 탑승하다 보면 기본은 금세 익힐 수 있을 거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데요오.”

         

       말이 지면을 박찰 때마다 몸이 가벼운 파스텔은 들썩였다. 안장과 가랑이가 부딪히자 고통 어린 신음을 흘렸다.

         

       “어으윽!”

         

       옆에서 말을 타고 평온하게 달리는 멜리사에게 들리지 않는 한 최대의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원래 승마가 이렇게 아프나요?!”

       『흠.』

         

       악마가 잠시 생각했다. 위로의 말을 고심하는 듯했다.

         

       『원래 그렇다. 최대한 양 허벅지에 힘을 주고 충격을 상쇄해 봐라. 굳은살이 베기 전까진 아플 수밖에 없어.』

         

       굳은살?

         

       파스텔은 자기 손을 펼쳤다. 검사답지 않게 말랑한 손바닥이 보였다.

         

       부들부들 말랑말랑.

         

       사람을 벗어난 신체는 굳은살 같은 건 만들지 않는다.

         

       으아아.

         

       내 고통!

         

       평생 이어질 고통!

         

       “설마 마차를 쓸 수 없는 장거리 이동 때마다 이런 경험을 해야 하는 건 아니죠?!”

       『흠.』

         

       악마가 당혹스러워했다.

         

       『……승마 기술이 경지에 오르길 비는 게 좋겠어. 그래도 아프긴 하겠다만.』

         

       네에?!

         

       “악마님 절 포기하지 마세요! 앞으로 말 잘 들을게요! 착한 애가 될게요! 버리지 마세요오!”

         

       악마가 머뭇거렸다.

         

       『미안하다.』

         

       으아아.

         

       가슴이 찢어지는 절망이……!

         

       보호자에게 버림받는 공포가……!

         

       멜리사가 힐끔 보더니 말을 붙여왔다.

         

       “크래프트? 어디 아픈가요?”

         

       가랑이가 아파아!

         

       라고 말하기엔 멜리사에게 여러모로 양심에 찔린 구석이 많은 파스텔은 고개를 휙휙 저었다.

         

       “아니야! 엘리자베스가 너무 훌륭해서 감탄하고 있었어!”

       “다행이네요.”

         

       승마 따윈 고통스럽지도 않은지 멜리사가 살포시 웃었다.

         

       “엘리자베스는 똑똑한 숙녀지만 너무 하얀지라 쉽게 눈에 띄어 파트너로 선호 받진 않았거든요. 어차피 눈에 띄는 당신과는 어울리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잘 맞아서 다행이에요.”

       “그렇네에!”

         

       정작 나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난 엘리자베스가 너와 더 있고 싶어 하는 거 같아! 그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

         

       왠지 엘리자베스를 선물해 줄 거 같은 분위기라 파스텔은 단칼에 끊었다.

         

       원래 인기인은 친구에게 냉정해야 할 때도 있는 법.

         

       “앗, 그런가요.”

         

       멜리사가 시무룩해졌다. 두근두근거리며 준비한 선물을 거절당한 모습이다.

         

       미안, 멜리사.

         

       이런 고통은 감당할 수 없어.

         

       엘리자베스도 마구간에서만 지내는 것보단 너와 지내는 걸 좋아할 거야.

         

       장거리 이동 수단은 나중에 말 말고 다른 걸 어떻게 구하든가 해야지. 설마 마법이 있는 세상에 말만 타고 다녀야겠어?

         

       파스텔은 고통을 견디며 말을 몰았다. 대수림을 방비하는 성문을 지나쳐 계속 이동했다.

         

       성벽 밖의 일부 평지엔 여러 민가가 형성돼 있었다.

         

       원래라면 대수림 야수들의 서식지와 겹치진 않은 위치라 나름 살만한 곳이었지만 몇 년 동안 상황이 변했다. 가끔 야수가 마을 어귀를 돌아다녔다. 이번엔 적멧돼지다.

         

       헤에.

         

       성벽 밖이면 세금 안 내나?

         

       세율 0%인가?

         

       왜 굳이 위험한 곳에 사는지 공감이 된다.

         

       끄덕끄덕.

         

       끄덕끄덕 수프 냠냠.

         

       작은 마을에 도착한 파스텔은 여관 테이블에 앉아 감자수프를 먹었다. 마석 가루 첨가다.

         

       응, 나쁘진 않은 맛.

         

       용병으로 변장한 멜리사가 맞은 편 자리에서 수프를 먹다가 수저를 놓았다. 귀족 아가씨 입맛엔 별로인가 봐.

         

       “여긴 성벽 밖이라 저희 가문이 보호해 줄 의무까진 없는 곳이지만 종종 이렇게 방문해 몰래 야수를 잡아주고 있어요.”

       “몰래?”

         

       그래서 용병 분장?

         

       “네. 회색지대인 곳이라 병력을 이끌고 오거나 캐머롯이 방문하거나 어느 쪽이건 큰 소요가 벌어질 테니까요.”

       “그런가?”

         

       파스텔은 고개를 갸웃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마을의 유일한 여관 겸 식당엔 테이블이 많았다. 사람들이 식사하며 이쪽 테이블을 힐끔거렸다. 긴장한 눈빛이다.

         

       용병 변장 전혀 소용없는 거 아니야? 아무리 봐도 멜리사 캐머롯이라는 걸 알고 있는 분위기.

         

       하긴 야수가 등장할 때마다 웬 마법사 소녀가 토벌하러 오는 기현상이 벌어지면 의심 어린 눈길이 갈만하다. 영주 가문이니 멜리사의 외형과 마법 실력도 유명할 테고.

         

       간단한 식사를 마치자 여관 딸인 듯한 또래 소녀가 테이블로 다가왔다. 엄청나게 긴장한 태도로 그릇을 수거했다.

         

       “잠깐만요.”

         

       멜리사가 품을 뒤적였다. 그리고 금화를 꺼내더니 소녀에게 팁인 양 건넸다.

         

       금화가 반짝반짝.

         

       허억.

         

       자칭 용병이 팁이라고 주는 금화.

         

       누가 봐도 귀족.

         

       여관 소녀가 격렬히 감사 인사를 표하더니 그릇을 수거해 떠났다.

         

       파스텔은 혼자 빵 터졌다.

         

       “아하하!”

         

       멜리사 완전 사차원이라니까.

         

       평범한 나는 이해하기 어려워~.

         

       “왜 그러세요, 크래프트?”

       “아무것도!”

         

       멜리사가 의아하게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잠시 여관에서 쉬고 계세요. 마을을 나가 잠시 적멧돼지의 흔적을 살펴보고 올게요.”

       “나도 갈게!”

       “아니에요. 쉬고 계세요. 새벽에 깨운 게 미안해서 그래요.”

         

       잉.

         

       멜리사가 여관을 떠났다.

         

       파스텔은 혼자 남겨졌다.

         

       의자에 앉아 양발을 동동 움직이다가 한 팔을 번쩍 들었다. 밝은 얼굴로 여관 주방을 향해 외쳤다.

         

       “감자수프 더 주세요!”

         

       혼자 다 먹어야지~.

         

       오예.

         

       여관 소녀가 수프를 건네줬다. 그러더니 가지 않고 슬쩍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왜 그래?”

         

       파스텔은 숟가락을 입에 물고 고개를 갸웃했다.

         

       귀족답지 않은 선선한 태도와 분홍분홍한 외견에 용기가 났는지 여관 소녀가 입을 열었다.

         

       “적멧돼지를 잡으러 오신 거죠?”

         

       흐아.

         

       역시 다 들켰다니까.

         

       “맞아!”

         

       여관 소녀가 눈을 빛냈다. 친화력 좋게 앞자리에 슬쩍 앉았다.

         

       “어떻게요? 적멧돼지는 집채만 하대요. 어떻게 잡을 수 있는 거죠?”

         

       파스텔은 으스댔다.

         

       “그거야 당연히……!”

         

       당연히…….

         

       비공정을 날아오며 봤던 멧돼지가 떠올랐다. 대포에 직격하고도 터프하게 성벽에 부딪히던 통바비큐 친구.

         

       잉.

         

       어떻게 잡지?

         

       정적이 흘렀다.

         

       “수, 수성 친구라거나……?”

         

       파스텔은 대답하곤 혼자 깜짝 놀랐다.

         

       아앗, 맞아!

         

       수성 친구는 중력 부족으로 죽은 상태지!

         

       여관 소녀가 눈동자를 떨었다.

         

       “못 잡으세요?”

       “그럴 리가!”

         

       파스텔은 눈이 빙빙 돌았다. 품에서 마석 나이프를 꺼냈다. 손가락을 휘젓자 나이프가 비행했다.

         

       “이걸로 얍얍얍!”

         

       백사 때와는 장비가 달라!

         

       마왕 파스텔이야!

         

       여관 소녀가 감탄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가죽이 두껍다고 하던데 나이프로 충분해요?”

         

       오잉.

         

       파스텔은 멈칫했다.

         

       둥둥 떠다니는 나이프를 바라봤다.

         

       으이잉.

         

       그런가?

         

       호르몬 친구, 아이디어를 내봐.

         

       뭔가 들려왔다.

         

       속닥속닥.

         

       호르몬 친구: 윤리 의식을 버려봐.

         

       허억.

         

       너 그 무슨 사악한 소리야?

         

       분홍분홍 파스텔에게 뭘 요구하는 거야?

         

       파스텔은 끙끙댔다.

         

       전혀 모르겠어.

         

       헤헤.

         

       그때 여관 문이 벌컥 열렸다.

         

       자경대인 듯한 사람이 황급히 들어왔다.

         

       “울타리가 뚫렸어! 모두 도망쳐!”

         

       혼란이 일었다.

         

       으아아.

         

       호르몬 친구우!

         

       할 수 있지?!

         

       할 수 있는 거지?!

         

       너만 믿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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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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