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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

     

    “아셀라의 주치의였나? 고르, 뭐였지?”

     

    게오르크가 대놓고 나를 무시하며 꺼드럭거렸다.

    나는 그를 향해 싱그러운 미소를 지어주며 대답했다.

     

    “고트베르크입니다. 앞으로는 기억해주시면 좋겠군요.”

     

    “그래서, 내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감히 말을 걸어 관람을 방해한 건 무슨 생각이야? 아셀라는 부하 교육도 똑바로 못 시키나?”

     

    나는 뒷짐을 지고 그에게 질문했다.

     

    “황녀님의 마법 시연을 지켜보셨지요. 방금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아시겠습니까?”

     

    “뭐? 그야.”

     

    게오르크가 미간을 찌푸렸다.

    마법 이해도는 없으니 적당히 황제의 반응을 보고 좋아했던 것뿐이겠지.

     

    “공간 계열 마법에는 몇 가지가 있다.”

     

    여태 조용히 있던 헤이케 1황녀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이를테면 브링어는 타인 소유의 물건은 가져올 수 없고 서먼은 계약한 정령만을 소환하는 마법이다. 아셀라가 보여준 건 완전히 새로운 마법이었다.”

     

    헤이케가 날카롭게 나를 노려본다.

     

    “주치의, 자네는 저 마법의 어디가 위험한지 알겠는가?”

     

    내가 핵심을 짚으며 대답했다.

     

    “아무 생물이나 시전자의 곁으로 즉시 데려올 수 있는 마법입니다. 중요한 건 물건이 아니라 생물을 가져온다는 점이지요.”

     

    “주치의답게 교양은 갖추었군.”

     

    헤이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마법이 범용화된다고 상상해보라. 당장 적국에서 황제 폐하를 납치해 신위에 위험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헤이케의 설명에 그제야 이해됐다는 듯 라우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헤이케가 설명을 이었다.

     

    “심지어 소환한 건 적룡의 해츨링이었지. 중간계에만 서식하는 마물이다. 범위도 어마어마하게 넓은 게 분명해.”

     

    헤이케가 단호한 눈빛을 쏘아냈다.

    기세를 업은 게오르크가 머리를 쓸어넘기며 으스댔다.

     

    “그래, 내 말이 그 말이야. 아셀라가 제국을 배신하기라도 하면 무슨 일이 생기겠어?”

     

    “황녀님은 황가의 일원이십니다. 황녀님이 배신하실 대상은.”

     

    나는 힘을 주어 말했다.

     

    “지식도 없이 경박하게 떠들어대는 무뢰한뿐이겠죠.”

     

    “풋.”

     

    내 조롱에 라우가가 웃음을 터트렸다. 이해하지 못한 게오르크가 주변 눈치를 보았다.

     

    “무슨 소리야?”

     

    “제 얘기입니다. 항상 경박한 태도를 조심하라고 황녀님께 혼나곤 하거든요. 그런데, 황자 전하.”

     

    내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섰다.

     

    게오르크와 아주 가까운 거리.

     

    아셀라의 형제자매들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런 태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행여 치명적인 부상을 입으셨을 때 팔켄하인 경이 꼭 곁에 있으리란 보장도 없잖습니까.”

     

    내 말에서 드디어 의도를 파악한 게오르크가 표정을 싹 굳혔다.

    차가운 분노를 내비친다.

     

    “지금 황실 주치의가 짐을 협박했는가?”

     

    “무슨 말씀을요. 주치의로서 전하의 신위가 염려되어 드리는 간언이었을 뿐입니다.”

     

    능글거리며 그에게 각인시켜준다.

    아셀라도 나도 너한테 조롱받을 급은 아니거든.

     

    “저희 황녀님이 새 마법을 쓰시면 전하께서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십니다. 다른 전하들께서 왜 말씀을 아끼고 계신지 모르시겠습니까?”

     

    “뭐라고.”

     

    게오르크의 이마에 슬쩍 공포가 내비쳤다.

     

    아셀라의 리콜 마법.

     

    저걸 사용하면 대륙 어디에 존재하는 인간이 어떤 호위를 받더라도 순식간에 불러내 암살할 수 있다.

     

    게오르크는 살짝 쫄긴 했지만 그 정도로 꼬리를 말지는 않았다.

    오히려 붙은 불꽃에 부채질을 한 꼴이다.

     

    “불경이다. 주치의, 너는 당장 목을 치겠다.”

     

    “제가요? 전하께 불경한 발언이나 행동을 한 기억은 없습니다만.”

     

    “방금 했잖아! 감히 제국의 황자인 내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해?”

     

    “오, 그랬던가요? 라우가 전하, 혹시 제가 불경한 발언을 했는지 증언하시겠습니까?”

     

    라우가는 나와 게오르크의 싸움을 보며 연신 키득대며 대답했다.

     

    “으응, 난 잘 모르겠는데?”

     

    “뭐…! 아니, 그 외에도 들은 사람이!”

     

    주변을 둘러본 게오르크가 이를 악물었다.

     

    내 발언을 들은 건 다른 승계권자뿐, 전부 게오르크의 적이다.

     

    그에게 협력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너, 너…!”

     

    게오르크가 나를 손가락질하며 목에 핏대를 세우지만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적진 한복판이기에 오히려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기묘한 상황이다.

     

    게오르크의 투견 같은 성질은 좀 죽여놓을 필요가 있다.

     

    ‘제국의 멸망 배드엔딩은 아셀라가 황궁에 가진 증오 때문에 발생해.’

     

    당장 눈에 거슬리는 요소는 안 보이게 치워둘 필요가 있다.

     

    “그 황녀에 그 주치의군…! 하, 어차피 아셀라는 그 마녀의 딸이야. 아셀라가 차기 황제로 즉위하는데 베팅해 막 나오는 모양인데, 그럴 일은 천하가 뒤집혀도 없다!”

     

    와, 그렇군요.

     

    “머잖아 아셀라에게 삽입된 재능의 대가가 그녀를 집어삼키겠지! 월광궁이 무너지면 네놈의 목도 반드시 쳐주마, 주치의!”

     

    조금 신경 쓰이는 내용이 들렸다.

     

    그러고 보니 게오르크는 아셀라에게 삽입된 두 번째 마법 재능에 대해 알고 있었다.

     

    “흠, 황녀님의 대가 말이군요.”

     

    “그래! 그 마녀의 저주야. 손댈 일도 없이 자멸하게 되어있어! 멍청한 놈 같으니.”

     

    이건 조금 자세하게 듣고 싶은데.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갈까 생각하던 찰나.

     

     

    ―화아악!!

     

    하늘이 어두워졌다.

     

    커다란 그림자가 우리를 뒤덮는다.

     

    “뭐…?”

     

    당황하며 고개를 드는 게오르크.

     

    나팔 소리와 함께 다급한 외침이 들려온다.

     

    “적습! 적습이다!!”

     

    순식간에 관객석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호위기사들이 들이닥쳐 황자와 황녀들을 데리고 나가려 하고, 일반 기사는 전투 태세에 들어가며, 주치의와 시종들도 발이 엉켜 북새통이 됐다.

     

    잘은 몰라도 지금이 타이밍이겠어.

     

    “전하, 위험합니다! 몸을 피하십쇼!”

     

    “으억?!”

     

    호위기사들이 달려오기 전에 나는 게오르크게에게 달려들었다. 그를 보호하는 척 껴안으며 바닥에 엎어진다.

     

    ―쿠웅!

     

    “아이고!”

     

    [진단이 발동합니다]

    [부상 상태 : 타박상]

    [부상 위치 : 뒤통수]

     

    의도치 않게 태클을 걸어버렸네. 게오르크가 바닥에 힘차게 뒤통수를 찧었다.

    나중에 약 발라주면 되겠지.

     

    가득한 인파에 우리의 모습이 묻힌다.

     

    머잖아 호위기사들이 우리를 찾을 테니 주어진 시간은 별로 없다.

    버둥대는 그를 양팔로 붙드니 꼼짝을 못 한다. 나만큼이나 근력이 약한 친구였다.

     

    “아악! 이 미친, 미친놈이!”

     

    “전하, 한 가지 질문에만 답해주시면 아셀라 황녀님께 전하에 대해서는 좋게 말씀드려 놓겠습니다.”

     

    “뭐! 무슨 질문인데?!”

     

    바로 물어보는 걸 보니 속으로는 아셀라가 꽤 무서웠던 모양이다.

     

    혼란 상황이라 아드레날린이 과다 분비 상태다.

     

    “황녀님께 마법의 재능은 어떻게 주입되었습니까?”

     

    내 질문에 게오르크가 입꼬리를 찢었다.

     

    “하하하, 주치의면서 모르고 있었나? 아셀라는 처음부터 마도병기로 만들어졌다. 내가 어릴 때 직접 봤어. 그래서 걔는 황제감이 아닌 거야!”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게오르크는 머리끝까지 아드레날린이 차올랐는지 잔뜩 흥분하며 외쳤다.

     

    “집어넣었다. 카밀라 황비가 흑마술로 대마녀의 영혼을 그 뱃속에 쳐넣었단 말이다! 덕분에 재능과 저주를 그대로 이어받았지!”

     

    그런 거였나.

     

    게오르크가 유난히 아셀라를 조롱한다 했더니 어릴 적에 본 흑마술 장면이 인상에 남아 무섭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자신의 겁을 숨기고는 싶은데 강해진 아셀라가 뭘 할지 모르니 잘 보이기는 해야겠고, 그래서 월광궁에 금전 지원도 해왔었나.

     

    “대답 감사합니다. 몸 조심히 대피하시길.”

     

    게오르크의 멱살을 잡아 일으킨다.

     

    “황자 전하는 여기 무사히 계십니다!”

     

    그를 호위기사들에게 인계한다.

     

    한 가지 비밀이 풀렸다.

     

    아셀라의 마법 재능은 온전히 그녀만의 것이 아니었다.

     

    ‘흑마술이라.’

     

    마족의 마법이다.

     

    그 저주 때문에 내 진단으로도 확인할 수 없었던 듯하다.

     

    뭐, 자질구레한 건 잠깐 미뤄두고.

     

    우선 아셀라를 찾아야 할 때였다.

     

     

     

    ***

     

     

     

    마법 시연을 마친 아셀라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지팡이를 쥔 양손에 무심코 힘이 들어갔다.

     

    ‘…윽.’

     

    동시에 통증이 일었다.

    복부, 좌측 아래였다.

     

    상위 4위계의 마법. 아셀라가 사용하기에는 마나도 집중력도 너무 많이 필요했다.

     

    마법을 많이 사용하면 이렇게 재능의 대가가 그녀를 덮쳐오곤 했다.

     

    움직이지도 못할 것 같은 통증에 허벅지가 후들거린다.

     

    ‘…그래도 폐하가 고득점을 주신다면.’

     

    충분히 감내할 가치가 있다.

     

    아셀라는 멀리 관중석의 황제를 바라본다.

     

    어릴 적부터 사적인 대화 한 번 섞어보지 못한, 1년에 한 번 얼굴을 보면 다행인.

    자신의 부친이라고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노인이다.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모양에서, 어떤 감상이 흘러나왔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괴물이군.

     

    아셀라를 내려다보던 황제는 고개를 젓고는 친왕들과 대화로 돌아간다.

     

    ‘그게 전부야?’

     

    아셀라는 시선을 내렸다.

    다른 황자와 황녀들이 있는 관중석.

     

    게오르크, 라우가, 헤이케, 권터.

     

    모두가 자신을 두려워한다.

     

    새로운 마법을 선보이면 칭찬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인정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한참이나 연습하고, 반복하고, 노력해서.

     

    오늘 비무대회를 위해 빈틈없이 준비하는 와중에 준비한 마법이었는데.

     

    ‘…아프네.’

     

    배가 아팠다.

     

    아니, 그보다는.

     

    황가에 기대라는 걸 품어버린 자신에게 화가 나서 치욕감에 심장이 아픈 것이리라.

     

    아셀라는 비로소 인식했다.

     

    ‘황가는 적.’

     

    이곳에 형제는 없다.

     

    친척은 없다.

     

    어머니는… 보류하기로 했다.

     

    그래도 낳아주고 길러준 사람이니까.

     

    자신이 황제가 된다면, 안정적인 국정을 위한 황가의 숙청 정도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아니지.’

     

    그게 아니라 그냥 황궁이 통째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걸지도.

     

    복부에서 퍼져오는 고통이 점점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만든다.

     

    분노가, 증오가, 불합리함이 뇌세포 하나하나를 깊숙하게 잠식해간다.

     

    그 끈적한 감각에 지배되어갈 때.

     

    “적습! 적습이다!!”

     

    누군가 외치고, 비상사태를 알리는 커다란 나팔 소리가 울렸다.

     

    콜로세움에 모인 모든 기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검을 뽑는다.

     

    황제의 호위기사들이 그를 보호하며 우선 자리를 피한다.

     

    ‘뭐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기사들이 전투 태세를 취하기도 전에 하늘이 새카매지고,

     

    ―화아악!

    돌풍이 휘몰아치며 아셀라의 머리 위에 거대한 존재가 나타났으니까.

     

    “…아.”

     

    그 위용을 목도하고 아셀라는 짧은 신음을 흘렸다.

     

    죽음의 마나, 검은 마나를 방출하는 드래곤.

     

    사룡이 한 마리, 콜로세움 위에서 거대한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드래곤! 드래곤이 나타났다!”

    “갑자기 어디서 드래곤이?!”

    “황녀가 불러낸 게 틀림없어!”

     

    관중석이 혼란에 휩싸였다.

     

    사룡이 만들어내는 돌풍에 머리칼을 휘날리던 아셀라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내가 아니야.’

     

    자신은 저런 거대한 드래곤은 불러낼 수 없었다.

     

    누군가 방금 자신의 마법을 보고 바로 흉내 내 시전해본 것일까.

     

    하지만 어지간한 대마법사가 아니고서는 한 번 봐서 주문진의 결합식도 이해할 수 없었을 텐데.

     

    아셀라는 잡념을 치우려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중요한 건.’

     

    상황을 이해하고 움직이면 늦는다.

     

    드래곤이 좋아하는 건 마나가 가득한 먹이다.

     

    이 자리에는 시모어도 없으니 아셀라가 가장 부합했다.

     

    반대로, 드래곤에게 가장 효율적인 공격은 마법이기도 하다.

     

    ‘내가…!’

     

    아셀라는 본능적으로 스태프를 휘둘러 마법을 시전했다.

     

    얼마 남지 않은 마나가 말라붙은 마력회로를 억지로 불태우며 얼음창을 만들어냈다.

     

    ―콰콰콰쾅!!

     

    사룡을 향해 쏘아지는 창들.

     

    하지만 얕은 공격은 오히려 용을 화나게 했을 뿐이다.

     

    ‘뭐야, 대체.’

     

    왜 갑자기 하늘에서 용이 나타났는지도 모르겠다.

     

    왜 열심히 준비한 비무대회에서 이렇게 무시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황녀라는 이유로 이 분한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는 것조차 금기시되는 현실도 싫었다.

     

    …이럴 바엔, 차라리 전부 멸망해버리면.

     

     

    “황녀님.”

     

     

    아셀라의 귓가에 목소리가 들렸다.

     

    매일 아침, 매일 점심, 매일 저녁 듣는 목소리였다.

     

    아셀라 역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라스.”

     

    “예, 접니다.”

     

    라스가 아셀라의 팔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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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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