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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0

       그나저나.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민망하긴 했다.

        

       내가 아제르나에 있을 때, 내가 입은 복장 중에는 엄한 복장도 있긴 했다. 바니걸이라던가.

        

       그때는 얼굴에 아예 철판을 깔아서 부끄러움을 어떻게든 중화시키려고 노력했었다. 그리고 사실, 내 모습은 내가 일부러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지 않을 수 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지만 않으면 뭐, 까진 내 윗가슴이 보이지는 않았다는 소리다.

        

       ……아니, 굳이 내리지 않아도 조금은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자세하게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그날은 버텨낼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내 모습을 누군가 사진으로 찍어 간직하고 있었다면 진짜 죽어버릴 만큼 쪽팔렸을 것이다.

        

       시간을 몇 번이라도 되돌려서 사진을 빼다가 태워버렸을지 모른다.

        

       지금 화면에 나오고 있는 ‘실비아’의 모습은 굳이 따지자면 그렇게까지 쪽팔린 모습은 아니었지만—

        

       “실비아, 꽤 어울리네. 네 결혼식 복장으로 쓰면 되겠다.”

        

       능글맞게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앨리스라든가,

        

       “결혼식 복장으로 쓰기에는 조금 애매하지 않은가요? 윗부분이 조금 더 드러나야죠. 어깨라던가.”

        

       옆에서 한술 더 뜨는 샤를로트라든가,

        

       “그런데 진짜 그대로 써도 되겠다.”

        

       대놓고 놀리는 두 사람과는 다르게 꽤 진지한 표정으로 턱에 손을 댄 채 그렇게 말하는 클레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저기 있는 건 나 아니잖아. 그냥 폴리곤 덩어리라고. 최신 게임 그래픽이랑 비교하면 엄청나게 차이 나는 모습이라고.

        

       파●널 판●지 최신작 같은 거라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미아, 역시 진지한 사람은 당신뿐이군요.”

        

       “네? 네?”

        

       내가 다짜고짜 그렇게 말하며 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자 미아가 몹시 당황했다.

        

       “그런 식으로 말을 넘기려고 해도 이미 늦지 않았어? 화면에 저렇게 나오고 있는데.”

        

       “너무 노골적이라 다른 귀족들이면 바로 약점을 파고들었을 거예요.”

        

       “나라도 바로 알겠다.”

        

       하지만 세 사람 모두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 미아의 머리로 손을 가져갔다.

        

       “뭐예요?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예요? 갑자기 다들?”

        

       미아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당황해서 외쳤다. 얘는 머리 쓰다듬어 줄 때마다 이러네.

        

       역시 부모가 문제다. 어린 시절부터 애정을 받으며 자랐어야 했는데 그게 안 되었으니 이런 거지.

        

       ……이미 예전에 애 앞에서 패드립을 해본 나였으니 다시 그런 소리를 하지는 못하겠다만.

        

       나머지 세 사람이 나의 의도를 알아챘건 알아채지 못했건, 미아의 머리를 희생하여 어떻게든 얼버무리는 데는 성공했다.

        

       그나저나.

        

       저 실비아는 어떻게 싸우려나? 솔직히 저 복장으로 총기를 사용하는 것도 조금 이상한데. 여고생들이 총 들고 나오는 미소녀 모바일 게임도 아니고.

        

       [그러면, 오십시오.]

        

       [언니, 잠깐—]

        

       클레어가 실비아를 만류하기도 전에, 화면이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질서의 화신]

        

       조금 전까지 실비아라고 나오던 캐릭터의 이름이 그렇게 변해 있었다.

        

       게임의 최종 보스가 나오면 으레 그렇듯, 질서의 화신 실비아도 딱 한 명뿐이었다. 전투 장소는 평소 싸울 수 있는 공간보다 한정된, 한마디로 말하자면 적의 광역기가 아군 모두를 휩쓸어버리기 딱 좋은 공간이었다.

        

       얼핏 보면 매우 불합리해 보이는 전투였지만, 사실 밸런스 상으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원래 이 게임 시리즈는 이런 최종 보스는 생각보다 피통이 물렁하다. 장소가 제한되고 적의 공격력이 강하다는 것을 제작진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격을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면 이길 수 있다.

        

       “이유는 다 끝나고 알려주겠다는 건가?”

        

       “이 게임 시리즈가 그러니까요.”

        

       [아제르나특)엔딩 다 읽으면 한시간임]

        

       맞는 말이라 부정할 수가 없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전투에 돌입했다.

        

       *

        

       이 게임의 스킬 중에는 ‘궁극기’라고 불리는 스킬이 있다.

        

       사실 따로 그렇게 분류된 건 아니고, 모든 캐릭터에게 ‘거의 맵을 꽉 채우는 범위’, ‘각종 상태 이상을 걸거나 해제’, ‘큰 데미지, 혹은 광역힐과 전투 불능 회복’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캐릭터마다 그 스킬의 특성들도 다르기에 때와 장소에 따라 잘 고르는 것이 중요했다.

        

       물론 강력한 만큼 치러야 하는 대가도 꽤 커서, 제한적인 아이템이 아닌 이상 오로지 적을 치거나 이쪽이 피격당하는 것으로만 오르는 스킬포인트를 모두 다 써야지만 쓸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렇다. ‘제한적인 아이템’으로만 회복이 가능하다.

        

       바꿔말하면 그 제한적인 아이템을 플레이하는 내내 미친 듯이 모아 쌓아두었다면 얼마든 사용이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클레어에게 세팅해둔 ‘속도 버프’를 샤를로트에게 주기적으로 걸어두고, 레오와 앨리스로 어그로를 끌면서 공격을 맞아준다.

        

       샤를로트의 차례가 올 때마다 스킬 포인트를 회복하는 아이템을 무조건 사용한다. 샤를로트는 ‘아이템을 광역기’로 바꿔주는 세팅이 되어있었기에 이런 좁은 맵에서는 아군 모든 캐릭터의 체력과 스킬포인트가 회복된다.

        

       “……뭔가 치사하네.”

        

       “규칙의 허점을 이용하는 것 같은 기분이야.”

        

       앨리스와 클레어가 한마디씩 했다.

        

       하필이면 상대가 ‘실비아’라서 더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물론 정작 컨트롤러를 쥐고 있는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코이츠 본인 흑역사를 지워버리고싶은wwwww]

       [아 눈앞에서 쪽팔리게 웨딩드레스 입지말라고ㅋㅋㅋㅋㅋ]

       [다리를 드러낸 하얀 옷이 그렇게 부끄러우셨습니까 황녀님]

        

       채팅창에서 대놓고 나를 놀리는 말들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나는 말끔하게 무시했다.

        

       부끄러워서 그렇다면 뭐 어쩌라고.

        

       “최종 보스전은 괜히 페이스 놓치면 시간만 질질 끕니다.”

        

       [팩트)다]

       [그건 반박할 수 없지…]

        

       적어도 게임을 플레이해본 시청자들은 모두 나의 말에 동의했다.

        

       턴제 게임이라니까.

        

       시간 끌었다가 얻어맞기 시작하면 너무 길어진다고. 캐릭터 쓰러졌다 일어났다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 과정에서 마력이나 스킬포인트가 죄다 날아가서 그거 회복하느라 또 시간이 다 간다.

        

       그렇다고 평타를 치면 피는 찔끔찔끔 떨어지고.

        

       그러니 한꺼번에 몰아붙여야지.

        

       샤를로트의 회복기로 캐릭터들이 자기 궁극기를 미친 듯이 난사하자, 실비아의 피통도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내가 직접 아제르나에 있을 때는 ‘현실’을 상대해야 했기에 여러 편법을 썼지만…… 게임의 연출은 이래서 좋다. 내가 직접 뭔가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도, 특별히 설정 같은 것을 논하지 않아도 되니까.

        

       ‘주인공 일행이 힘내서 쓰러뜨렸다!’라니, 얼마나 훌륭한 연출이란 말인가.

        

       [큭…….]

        

       체력 게이지를 끝까지 밀자, 실비아가 그렇게 말하며 뒤로 물러나는 컷신이 나왔다.

        

       쩌적.

        

       실비아 머리 뒤에 광배처럼 떠 있던 지보에 금이 갔다.

        

       [언니, 이제 그만해……!]

        

       [무슨 이유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실비아, 아직 늦지 않았어!]

        

       클레어와 앨리스가 외쳤다.

        

       질서가 만들어낸 공간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실비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레오 일행을 노려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이어지는 2차전.

        

       뭐, 2차전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게 강하진 않았다. 제작진들도 여기서 더 강한 2차전을 넣는 게 뇌절이라는 건 알았으니까.

        

       아이템도 다 쓰고, 더 이상 회복기를 쓸 마력이나 스킬 포인트도 남지 않은 캐릭터들로도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는 이벤트 전.

        

       그렇게 체력 한 줄을 더 깎고 나자,

        

       쩌적.

        

       실비아 머리 뒤의 지보가 완전히 깨졌다.

        

       [……후.]

        

       실비아는 마침내 안도했다는 듯, 웃음소리를 흘렸다.

        

       [잠깐, 실비아……!]

        

       [감사, 합니다. 여러분. 이것으로, 전부 끝…….]

        

       [그게 무슨 소리야, 실비아! 끝나다니!]

        

       하지만 레오가 그렇게 외치면서 손을 뻗어도, 실비아는 그저 말없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뒤로 쓰러질 뿐이었다.

        

       [안 돼, 안 돼…… 언니!]

        

       [클레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원래 당신의 삶에서는 있을 수 없었던 존재. 아쉬워할 것 없습니다.]

        

       ……쓰러지고는 있는데, 아주 느리긴 했다.

        

       [실비아?]

        

       앨리스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실비아를 불렀다.

        

       [여신의 화신으로써, 질서를 위하여 여러분의 곁에 만들어진 인공적인 존재, 그게 저였습니다만…….]

        

       실비아는 웃었다.

        

       마치 질서가 모두 깨져버린 것처럼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공간 속에서, 실비아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심연을 향해 끌려들어 가고 있었다.

        

       [여러분과 함께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달까요. 저라는 불청객이 없었어도, 여러분은 이미 충분히 해냈었는데—]

        

       [잠깐, 설마.]

        

       샤를로트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제가 여신의 화신으로서, 여러분께 처단당하는 것. 그게 ‘질서’의 의지를 무너뜨리는 것이었기에.]

        

       실비아는 만족했다는 듯 눈을 감았다.

        

       [……여러분 모두 평안하시길. 여러분이 해낸 모든 일들을 여러분의 손으로 돌려—]

        

       하지만, 클레어가 말을 마치기 전에—

        

       저 심연 너머에서 뭔가 뾰족한 것이 빠르게 올라와, 실비아의 등을 찔렀다.

        

       새빨간 피가 사방으로 튀기고, 실비아가 그대로 그 검은 창에 관통당하는 것을 보여주고—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그대로 암전.

        

       “……어.”

        

       “아마 끝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나는 컨트롤러를 조작해 세이브하며 말했다.

        

       “어째 덤덤하네?”

        

       앨리스가 그렇게 물어보길래,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전작에서도 이런 연출이 종종 있었으니까요.”

        

       솔직히 1편에서는 좀 심하긴 했어.

        

       그래 놓고 후속작은 거의 2년 만에 나왔었고.

        

       [그래도 이제 최종장이에요]

       [몇 시간만 더하면 끝남]

        

       최종 보스 비슷한 걸 잡아놓고 다른 게임이면 엔딩을 봤을 시간만큼 더 해야 하는 것도 이 게임 특징이긴 하지.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로 할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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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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