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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0

    루크의 말대로, 냉장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루크와 파이리스 때문이었다.

    그 아이들이 먹는 양 때문에 현재 쓰고 있는 냉장고만으로는 식재료들을 보관하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성인 남성보다 더 많은 식사를 섭취하는 루크와, 그런 루크보다 더 많은 음식을 먹어치우는 파이리스.

    이 둘의 조합으로 일어나는 시너지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심지어 루크는 요 며칠간 평소보다도 훨씬 더 많이 먹고 있었다.

    거의 파이리스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까?

    몸이 자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인지, 그동안 먹었던 양은 오히려 어느정도 억제를 한 게 아닐까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식사의 양이 눈에 띄게 늘었다.

    그런 이유로 다이튼은 그 압도적인 소비에 맞추기 위해 매일마다 한 끼에 30인분이 넘는 식사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이제는 자신이 숲지기인지, 아니면 식당 주인인지 혼란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와중에 원래 사용하고 있던 냉장고는 작았다.

    이사를 하기에도 자금이 빠듯해서 기존의 마도구들은 새로 구매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 혼자 살던 예르나가 사용하는 냉장고는 당연히 작은 크기였고, 다이튼 역시 자신과 여동생이 먹을 음식만 보관할 수 있으면 되었기에 사정은 마찬가지.

    이제 냉장고는 음식이 상하지 않게 장기 보관을 시킨다는 목적으로 한다기 보다, 먹기 전에 잠깐 시원하게 수납해 둔다는 느낌의 물건으로 변질되고 말았던 것이다.

    게다가 두개의 냉장고 중에서 예르나의 냉장고는 가끔 온도가 제대로 유지가 안 되는 경우까지 있어서 문제는 더하다.

    일단은 그 냉장고는 조금 더 빨리 먹어야 하는 것 들을 보관하는 데에 쓰이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불편한 건 사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퇴근길이 되면 반드시 식료품점에 들리는 것이 어느새 예르나와 다이튼의 생활 루틴으로 자리잡을 정도였다.

    정 힘들 때는 루크에게 부탁해서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도 흔히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매 끼니마다 일일이 장을 보는 것은 상당히 지치는 일이다.

    가끔은 그냥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뭔가를 대충 편하게 만들어 먹는다는 감각이 그리워지곤 한다.

    그런데 새로운 냉장고라니.

    다이튼은 두팔을 벌려 환영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저 냉장고, 박스만 봐도 꽤나 용량이 큰 것임을 짐작케 했다.

    박스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적당히 디자인도 무난해서 나쁘지 않아 보이고, 눈대중으로 보니 크기도 남는 공간에 딱 맞을 것 같다.

    하긴, 루크가 평범한 10살짜리 애도 아니고, 다 알아서 잘 샀겠지.

    루크는 오히려 이런 쪽으로는 자신보다 더 섬세한 부분도 있다.

    그것은 자신과 냉장고의 수요에 대한 상담 같은 건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여러모로 흠 잡을 데가 없는 선택이었다.

    뭐, 지금은 갑자기 받은 선물에 기분이 좋아져 무조건 좋게 보이는 중이라 흠을 찾지 못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루크는 보통 때는  어른보다도 어른스럽지만, 또 어떨 때는 그 나이에 걸맞게 제멋대로라서 역시 어린 아이긴 어린 아이구나 싶은 때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이런 부모로서의 호사를 누려보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루크의 효심이 갸륵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

    보통 남들은 애들 20년 넘게 키워서 신발 한 켤레 사주면 자식농사 성공이라고 하는데, 1년 안되게 키워서 냉장고라면 대체 부모로서 얼마나 성공한 삶인가?

    다이튼은 현관 앞에서 택배기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루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매지스틱 냉장고, 주문자는 루크 리스핀드 게네퍼 이루시씨. 맞나요? 혹시 그분과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본인일세.”

    “아하… 죄송합니다. 이름이 조금 특이하시네요. 자가설치 옵션 맞으시죠? 그럼 여기에 사인 좀…”

    “그러지.”

    그렇게 택배기사가 건넨 종이에 루크가 사인을 하고 있을 때, 다이튼이 다가와 물었다.

    “뭐야, 자가설치 옵션으로 했어?”

    “그래. 그대도 있고, 나도 있는데 굳이 돈을 더 낭비할 필요는 없지. 냉장고가 뭐 그리 설치하기 어려운 마도기기인 것도 아니고.”

    “하긴, 그건 또 그렇겠다.”

    옮기는 건 애초에 문제가 안 된다.

    숲지기인데다 근육도 단련한 자신이라면 냉장고 쯤 들어올리는 건 그리 어려운 게 아니고, 루크는 더더욱 그렇다.

    저래 보여도 루크는 완력이 자신보다 강하니까.

    사실 냉장고 쯤은 루크가 혼자서 옮겨도 되겠지만, 아무래도 택배기사 앞이라서 내숭을 좀 떠는 것 같다.

    괜히 이상한 시선이 쏠리는 게 싫어서 말이다.

    게다가 자신은 마도기기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루크는 그런 거 설치하는 게 그리 어렵지도 않을 거고.

    그렇게 새로운 냉장고를 들여놓은 후.

    “휴우, 밥도 안 먹었는데 아침부터 힘썼네.”

    다이튼은 손으로 땀 난 이마를 닦으며 몸을 풀었다.

    그런 다이튼의 모습을 바라보던 루크는 수건을 건네며 말했다.

    “힘든가? 그러게, 내가 옮긴다니까.”

    “괜찮아, 운동되고 좋지 뭐.”

    그래도 냉장고를 들고 옮기는 작업은 상체와 하체를 조지는 데에 꽤나 탁월한 운동이었다.

    그렇기에 힘들긴 해도 불만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운동이라는게 근육을 키우기 위해 일부러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는 거 아닌가.

    힘든 일이 있으면 찾아서 해야지.

    뭐, 운동과 노동은 엄연히 다른 말이지만, 어쨌든.

    “그럼 이제 남은 건… 냉장고에서 꺼낸 이 음식들 정리하고 박스에서 나온 쓰레기를 치우는 것만 남았네.”

    루크가 구매한 냉장고가 용량과 마력 소비 효율도 상당히 좋은 제품이었기에, 기존에 사용하던 냉장고 중에서 평소에 시원찮은 퍼포먼스로 사용자의 복장을 터트리던 예르나의 냉장고를 이번 기회에 처분키로 했다.

    그렇다보니  식탁으로 사용하는 테이블에는 처분하기 위한 냉장고의 내부 정리를 위해 잔뜩 꺼내놓은 음식물들로 가득했고, 그 밑에는 박스와 보충재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이것들도 다 치우고 정리하려면 또 시간 꽤나 걸리리라.

    다이튼은 땀을 닦던 수건을 목에 걸고는 루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루크. 이제 정리 좀 도와줘.”

    “아, 미안하네만. 나는 할 일이 있어서. 정리는 그대 혼자서 하게.”

    “어?”

    루크의 단호한 거절에 다이튼은 살짝 벙찐 표정을 지었다.

    “뭐야? 지금 나 도와주려고 기다리고 있던 거 아니었어? 할 일이 있다고?”

    “아니, 그냥 이게 필요해서 기다리고 있었지.”

    “그거, 버리기로 한 거 아녔어?”

    “이왕 버리는 거, 내가 쓰면 좋잖아.”

    그렇다.

    루크에게는 냉장고의 코어가 필요했다.

    아무래도 새로 구상중인 아린세이아의 연결 디바이스는 발열이 상당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리고 루크가 그 발열을 잡기 위해 떠올린 것이 냉장고에 사용되는 냉각코어다.

    그래서 냉장고를 하나 사야 했는데……, 이왕 새 냉장고를 사야하는 김에 루크는 예전에 다이튼이 냉장고가 구리다며 투덜댔던 것을 떠올렸다.

    이왕이면 자신이 필요로하는 물건도 구하면서, 동시에 가정에 보탬도 되면 좋지 않겠는가?

    그게 바로 이토록 갑작스레 커다란 냉장고를 구매한 가장 큰 이유였다.

    곧 루크는 커다란 냉장고를 포장하고 있던 커다란 박스를 집어들더니, 박스를 열고 버리기로 한 냉장고를 들어 그 박스에 넣었다.

    마치 냉장고의 무게가 거의 사라진 듯한 가벼운 동작이었다.

    “그럼, 수고하시게!”

    “어….”

    이후 루크는 그것을 박스채로 번쩍 들어올리고는 자신의 방으로 가기 위해 계단으로 향했다.

    다이튼은 경쾌함마저 느껴질 정도인 루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뭐, 이미 냉장고를 산 것 만으로도 아이에게 바랄 수 있는 수준의 도움은 이미 받은 셈이라 그렇게 얄밉지는 않은데….

    ‘냉장고가 필요했으면 중고를 사도 될 걸 왜 굳이 새 냉장고를 샀지?’

    굳이 돈 아끼자면서 자가설치 옵션으로 구매한 걸 보면 돈이 남아 돌아서 그런 건 아닐테고.

    그럼, 신품으로만 얻을 수 있는 중고로는 구매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는 얘긴데—.

    곧, 다이튼은 그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박스.

    그러고보니, 아까 전 루크가 내다 버린 것 들 중에 상자 찢어진 조각들이 상당히 많았다.

    아마도 그건 루크의 몸이 갑자기 자라서 더이상 들어갈 수 없게 되어버린 작은 박스들의 잔해였을지도 모르지.

    그래서 어쩌면, 루크는 자신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새 박스’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냉장고 박스는 그 조건을 충분히 충족 시켰을 테고.

    게다가, 박스는 다른 물건들처럼 씻어서 쓸 수도 없으니까.

    새것이 필요했겠지.

    “아.”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말이 된다.

    아까 전에 루크가 건넨 각종 훈수들도 설명이 되는 것이다.

    ‘어허, 다이튼. 박스를 그렇게 손으로 찢지 말게. 테이프만 칼로 잘라, 섬세하게.’

    ‘모서리 찍히지 않게 조심하게. 비싼 거니까.’

    ‘무겁다고 쥐어짜듯이 잡지 말고, 아래를 받치면서 안정적으로 잡게.’

    그게 냉장고를 걱정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박스를 걱정하는 거였나.

    곧, 다이튼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박스를 끌어안은 채로 계단을 오르는 루크의 모습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새 박스가 많이 좋나보네.”

    요즘은 안 저러는 줄 알았는데, 그냥 자기 방에서만 그러니까 안 보이는 거였던 모양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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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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