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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0

        

       선택의 시간이 왔다.

         

       진성에게는 선별이며, 그들에게 있어서는 선택과 그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는 끝이라.

         

       “이르기를 전사에게는 승리와 생존 외의 모든 법은 무용지물이라. 무거운 율법에도 구속당하지 아니하며, 위대하며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유일신과 그 뜻을 받들어 세상에 내려오신 선지자의 말씀을 적은 성서에도 얽매이지 아니하도다. 마땅히 부정하지 않은 것만 먹어야 함에도 부정한 것을 입에 댈 수 있으며, 살생해서는 아니 되나 자기 몸을 지키고 신전을 지키고 가족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칼을 휘둘러 사람을 죽일 수 있도다. 하니 너 전사여 모든 법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전사여 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싸움, 그리고 그 끝에 주어지는 생존이라.”

         

       진성은 제압당해 정신을 잃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정신을 잃고 있었다.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일시적으로 기절한 사람도 있었고, 그가 집어던진 연막에 들어있는 수면제에 취한 사람도 있었다. 귀신에게 반쯤 홀려서 정신을 놓은 이들도 있었고, 진성이 숨어있는 이들을 제압하기 위해 들여보낸 독충에게 물려서 고통에 신음하며 기절한 사람도 있었다.

         

       “지금 여기 신의 뜻으로 검을 휘두를 전사를 찾아내고자 하느니, 이는 천사가 꿈에서 계시를 보내는 것과 같음이라. 비록 허상이되 이는 선별을 위한 것이니 마땅히 너 신의 전사여 시험을 통과하여 칼을 들 자격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날갯소리와 함께 잠들라, 날갯소리와 함께 꿈을 꾸어라. 꿈속에서 칼을 들고 피를 보아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을 행하라.”

         

       그들은 모두 숨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저들을 저렇게 제압만 하고 끝낼 것이라면 진성이 직접 독도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겠지.

         

       무릇 피를 부르기 위해서는 피를 보아야 하는 법.

         

       싸움을 붙이기 위해서는 마땅히 희생이 필요한 법이 아니겠는가.

         

       “자아…. 몇 명이나 죽어 나갈 것인고….”

         

       모두 죽을 수도 있지만, 모두 살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이 중에 전사가 몇이요, 군인이 몇일까?’

         

       그러기는 참으로 힘들 것이다.

         

       천국의 문이 너무 작아 아무나 들어갈 수 없듯이 말이다.

         

         

         

        * * *

         

         

       “끄으윽…. 여기, 여기는 어디지…?”

         

       김이창 경장이 고통에 신음하며 깨어났을 때 처음 보인 것은 시야를 가리고 있는 안개였다.

       안개는 그가 초소에 나왔을 때처럼 자욱하게 번져 있었고, 그가 주변을 둘러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사방에 퍼져서 그가 있는 곳이 어딘지 알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끄윽.”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답답했던 김이창 경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일어나려고 힘을 준 그 순간, 다리에 끔찍한 통증이 몰려왔다.

       절로 신음이 나올 정도의 통증에 김이창 경장은 화들짝 놀라며 자기 다리를 바라보았다.

         

       “이런 젠장, 부러졌네….”

         

       그의 시선에 들어온 것은 뒤틀려선 안 될 방향으로 뒤틀려 있는 그의 다리.

       관절이 정반대로 굽혀진 채 바닥에 인형처럼 널브러진 다리를 본 김이창 경장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일어서는 것을 포기했다.

         

       그냥 뼈에 금이 간 것도 아니고, 무슨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처럼 관절이 저렇게 뒤틀렸는데 어쩌겠는가?

         

       그냥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리가 저렇게 분질러졌으니 열이 펄펄 나기 시작할 것이고, 눈에 띌 정도로 크게 부어오를 것이다. 최악에는 골절 부분에서 피가 나기 시작해서 출혈이 생길 수도 있고, 최악에는 쇼크가 일어날 수도 있겠지.

         

       그런 상황인데도 사람을 찾기 위해 돌아다닌다?

         

       미친 짓이다.

         

       다리가 저렇게 되었으니 제대로 걸어 다닐 수도 없을뿐더러, 기어서 움직인다고 쳐도 움직이는 과정에서 상처가 생기거나 부러진 다리에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세균 감염이 생길 수도 있고, 영구적인 장애를 얻을 수도 있으리라.

         

       ‘그래도 총은 있으니 다행이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까.

       몸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은 있었다.

         

       총.

         

       초소에서 경계 근무를 서기 위해서 들고 다니던 총과 수류탄이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이것들이 있다면 야생동물이나 적이 쳐들어온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손 놓고 얻어터지지는 않으리라.

         

       그래.

         

       설령 적이 쳐들어온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세요….”

         

       안개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초소에서 들었던 목소리와 흡사한…여자 같기도 하고, 아직 변성기가 채 찾아오지 않은 남자의 목소리 같기도 한 그런 목소리가.

         

       그 목소리는 지척에서 들리고 있었다.

         

       안개가 짙게 껴 있어서 정확히 어디에서 들리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목소리의 뚜렷함이나 크기로 보나 근처에서 외치고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거기 사람 있습니까!”

         

       김이창 경장은 목소리를 듣자 반색하며 소리쳤다.

         

       이 짙은 안개 속에서 혼자 있는 것보다 다른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이 훨씬 나을 테니까.

         

       “…ひと?”

         

       김이창 경장의 목소리를 들은 것일까?

         

       안개 속에서 도와달라고 소리치던 목소리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혼잣말은 앞서 말하던 한국말과는 다른 나라의 것이었다.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

       이웃에 자리 잡은 나라.

         

       일본어.

         

       “見つけた!”

         

       게다가 저 목소리를 보라.

         

       다급하게 도움을 외치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고, 갑자기 신난 듯 확 바뀌어버리는 저 목소리를.

       사람을 간절하게 찾아 헤매는 감정은 같았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간절함이 있었던 아까의 것과는 달리 지금 목소리는 사냥감을 찾아낸 사냥꾼의 기쁨이 서려 있는 것이었다.

         

       김이창 경장은 그것을 깨닫자 얼굴이 확 굳었다.

         

       ‘이런 씨발.’

         

       유인책이었다고?

         

       그는 자신을 부르던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신화 속 괴물인 세이렌이 선원을 유혹하기 위해 부른 노래 비슷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황급히 총을 들고 안개 속을 겨눴다.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어 목소리가 들렸던 부근을 대충 겨누고 있기는 했지만, 팽팽하게 긴장한 그의 팔은 언제든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면 바로 총알을 발사하리라.

         

       그렇게 김이창 경장은 군인이었던 과거 모습을 그대로 보이며 안개를 계속해서 노려보았다.

         

       적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안개 속에서 사람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작달막한 몸.

       딱 봐도 앳돼 보이는 얼굴.

         

       ‘소…년?’

         

       키는 130cm 정도나 될까?

         

       아무리 양보해도 중학생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소년이었다.

       게다가 옷 역시 그 나이대 소년이 입을만한 옷인데다가, 등에는 학교에서 사용할법한 배낭까지 메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년의 손에는…총이 들려 있었다.

         

       ‘소년이라고?’

         

       일본에서 쓰는 총일까?

       그에게는 꽤 낯설게 보이는 형태의 총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어설프게나마 그 소총을 견착하고 있었고, 김이창 경장을 조준하고 있었다.

       어디서 본 것은 있는지 한쪽 눈만 뜨고 그를 조준하고 있었는데, 그 눈에서는 마치 레이저가 나올 것 같은 흉흉함이 감돌고 있었다.

         

       소년은 김이창 경장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死ね!”

         

       저 말의 뜻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저 소년의 눈에서 느껴지는 살기만큼은 똑똑히 느껴진다.

         

       김이창 경장은 군인으로 지낼 당시 훈련으로 몸에 때려 넣었던 본능대로 소총을 소년에게 겨눴다. 군인으로 지낼 때 훈련받은 것이 그대로 남아있었는지 자연스럽게 그가 든 소총의 총구는 소년의 가슴팍으로 향했다.

         

       이제 남은 것은 본능에 따라 방아쇠를 당기는 것.

       그렇게 된다면 소년의 가슴팍에는 여러 발의 총알이 틀어박히게 될 것이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냥 본능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

         

       그가 군대에서 배웠던 대로, 훈련받았던 대로 움직이면 그만이다.

       살기에 반응해서 대응하고, 죽이려고 하는 사람을 먼저 죽이고.

         

       하지만…기이하게도 김이창 경장의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분명 군인의 경험이, 기억이 저 소년을 쏘라고 말하는데도.

       그런데도 그의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왜 그런 것일까.

         

       왜 훈련받았던 것처럼 적을 죽이지 못하는 것일까.

         

       ‘하, 씨발. 어린애만 아니었어도….’

         

       그래.

       그게 문제다.

       그냥 안개 속에서 윤곽만 보일 때 쐈으면 되는 건데.

         

       괜히 얼굴을 봐서….

       저 눈을 봐서…!

         

       ‘그래, 씨발. 죽여라. 어린애라고 망설였으니 죽어야지 뭐.’

         

       김이창 경장은 눈을 감았다.

         

       ‘하, 그나저나 내가 잘 선택하기는 했네. 역시 난 군인 체질이 아니라니까.’

         

       군인 때려치우고 경찰이 되길 잘했다는….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타앙-!

         

         

         

        * * *

         

         

       김이창 경장을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 역시 하나둘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들이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짙은 안개.

         

       건물에 있던 사람들도, 바깥에 있던 사람도 예외 없이 전부 짙은 안개 속에서 눈을 떴다. 그들은 자신이 있는 곳의 위치를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짙은 안개에 휩싸인 채 혼란에 빠졌고, 마찬가지로 안개 속에서 들려오는 도와달라는 외침을 들었다.

         

       “도와주세요-!”

         

       절박한 구조 요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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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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