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화. 사슬처럼 묶인 기억 ( 2 )
사막에서의 하루는 매일매일 비슷하게 흘러갔다.
모래 마녀는 매일같이 어딘가를 뻔질나게 드나들며 프리키의 소환을 준비했고, 루나는 에샤와 대련을 이어가며 이따금 모래 마녀에게 피를 제공했다.
꼬박 석 달이 흘렀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초입에 가까워진 어느 때.
“드디어ㅡ! 드디어, 드디어 끝났다!”
얼굴이 거무죽죽하게 변한 모래 마녀가 쌍수를 들고 뛰쳐나왔다.
흐르는 강물에 발을 담그고 있던 루나가 멍하니 물었다.
“……끝났다고?”
“그래요! 드디어 끝났어요. 끄으으으ㅡ! 프리키를 소환할 준비가 끝났다고요!”
“……드디어.”
멍하니 풀려있던 루나의 눈이 날카롭게 초점을 되찾았다.
때가 왔다.
“재료를 거의 다 아가씨의 피로 바꾸고, 대체하는 과정에서 무슨 소환진이 이렇게 많이 바뀌는 건지… 그래도 이제 전부 완성했어요!”
“……좋아. 언제부터 소환할 수 있어?”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해요.”
세달 동안 루나가 에샤와 대련만 하며 유대감만 쌓은 것은 아니다.
무려 대악마를 불러내는 행위에는 철저한 준비가 뒤따라야 하기 마련.
“…로드. 준비를.”
“음. 알겠다.”
루나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로드가 일족을 이끌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럼 언제 시작할까요?”
“……프리키가 우리 일족이라면, 분명 햇빛에 취약할 거야. 틀림없어. ……해가 가장 강하게 뜨는 정오에 시작하자.”
언제 소환해도 문제없기에 모래 마녀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 정말로 괜찮겠나?”
에샤가 루나의 어깨를 짚으며 그리 물었다. 루나의 표정은 평소와 같았다.
차가웠고, 생각을 읽기 어려웠다.
“…안 괜찮을 이유가 없어.”
루나가 비익의 검을 스산하게 바라봤다.
백색의 검날에 비치는 것은 차갑게 내려앉은 한 쌍의 붉은 눈동자.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타락해버린 언니의 존재.
ㅡ꽈악.
‘…벨 수 있어.’
흔들릴 이유는 없다.
절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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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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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마녀가 꼬박 석 달 동안 작업한 소환진은 커다란 창고가 들어갈 정도의 규모였다.
모래를 뭉쳐서 바위처럼 만든 거대한 석판 위에 빼곡하게 새겨진 소환진은 모래 마녀의 실력이 범상치 않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소환진의 대부분이 검붉은색이었다. 루나의 피를 재료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후우…”
소환진에 올라선 모래 마녀가 작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혹시나 사막 부족에 대악마 소환의 여파가 미칠까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 있음에도 쿵쾅거리는 심장은 어쩔 수 없다.
“시작할게요.”
“응.”
살짝 떨어진 곳에 루나와 에샤가 서 있었다. 손에는 비익의 검과 연리의 검을 들고 있었다. 검을 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손등이 하얗게 보였다.
“……”
“……다들 준비해라. 긴장을 놓치지 마라.”
소환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그늘에는 밤의 일족이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사슬처럼 얽힌 그림자가 들려 있었는데, 소환진의 주변을 그물처럼 엮는 형태였다.
보이는 것은 하나의 그물이었으나 세 겹의 세 겹의 세 겹을 겹쳐서 꼬았으니. 도합 스물일곱 개의 그물이라. 능히 거인조차 봉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보.”
“………흑, 흐흑… 불쌍한 우리 프리키…”
루나의 어머니가 소리 죽여 흐느꼈고, 루나의 아버지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타락하여 대악마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프리키 또한 그들의 딸이었기에.
“…울지 말거라. 마음을 단단히 먹어. 이건 이제 우리 일족의 문제다.”
로드의 말처럼, 이건 더 이상 에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밤의 일족인 프리키가 대악마가 되었으니, 마땅히 일족으로서 이를 해결해야 했다.
“시작할게요.”
소환진의 중심에 선 모래 마녀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입술이 열리며 온갖 불길하고 불경한 것들의 언어가 흘러나왔다.
“소환진이…!”
그녀의 목소리에 맞춰 소환진의 검붉은 핏물이 불길하게 점멸했다. 폭풍우 속의 번개처럼 느릿하지만, 어두운 밤보다 더욱 어둡게 번쩍거렸다.
“…온다.”
루나가 비익의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소환진에서 프리키를 위해 마련된 자리가 강하게 진동하며 떨리기 시작했다. 모래 마녀의 안색이 창백해졌고, 그에 비례해 소환진은 더욱 불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터져오를 기세의 화산의 분화구를 얇은 종이로 막은 듯했다.
쿠구구구구구ㅡ
소환진의 떨림이 정점에 달했다.
쩌적ㅡ 소환진을 그린 석판이 갈라지며 틈이 열리기 시작했고, 검고 불길한 연기가 흘러나왔다.
“흐읍!”
“…간다.”
루나와 에샤가 동시에 땅을 박찼다. 좌우로 빛나는 비익연리의 검이 한 마리의 새처럼 날개를 펼쳤다.
‘선수필승…!’
각오는 좋았다.
허나, 둘의 검이 목적했던 바를 이루는 일은 없었다.
“어?”
우뚝, 검이 멈춘다. 무언가 외부의 힘이 개입했거나, 알 수 없는 사악한 힘에 정신을 공격당해 검을 멈춘 것이 아니었다.
루나의 의지로 검을 멈췄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
루나와 에샤가 황망하게 허공을 바라봤다.
“……안 나오네요?”
모래 마녀가 멋쩍게 상황을 정리했다.
소환진에서 프리키가 나오지 않았다.
짐승의 아가리처럼 열리던 균열도 어느새 맞물려 굳게 닫힌 지 오래였다.
“…어, 째서?”
“어어. 글쎄요… 보통 어지간한 악마들은 소환진을 그려서 소환하며 좋다고 뛰쳐나오거든요? 심연에서 나올 기회니까요. 그런데 도대체 왜 소환에 응하지 않은 건지…”
아.
루나가 이마를 짚었다.
저 멀리 그림자 속에서 대기하던 로드와 나머지 일족도 이마를 짚었다.
소환이라는 것에 눈이 팔려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해버렸다.
“……은둔형 외톨이……”
루나가 넋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이야 다소 나아졌다고 하지만, 밤의 일족은 극심할 정도의 은둔형 외톨이에 대화 기피증 환자들이다.
하물며 프리키 또한 밤의 일족이었기에 그러한 기질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터.
“……”
소환진에서 흘러나오던 검붉은 색이 점차 옅어져 간다.
에샤가 황당한 눈빛으로 이를 바라봤다.
설마하니 소환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상황은 감히 예상하지도 못했다.
“………”
“…어, 으음.”
열기를 머금은 모래 바람이 불어와 사람들 사이를 한바탕 헤집고 지나갔다.
잘못한 것은 없지만 괜히 찔린 모래 마녀가 어정쩡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그, 혹시 조금 더 거칠고 강압적인 방법을 써야 했을까요……?”
《키하하하하하하ㅡ!! 장관이군! 장관이야ㅡ! 키하하하하하!》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었으나, 모래의 악마에게는 한 편의 희극이 따로 없었다.
* * * * *
“……후, 후우우우… 바, 방금 그건 도, 도, 도대체 뭐였지……”
심연의 마왕성, 프리키가 벌렁거리는 심장. 아니 이제 심장은 안 뛰는 몸이지만.
아무튼 굉장히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호흡을 다듬었다.
프리키의 앞에 보이는 허공이 잔잔하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바위가 떨어진 연못처럼 미친 듯이 울렁거리던 것이다.
“……이, 이건 부, 부, 분명히 소, 소환의 징조……”
프리키가 중얼거렸다.
분명했다. 지상에서 누군가 자신을 소환한 것이다.
프리키의 표정이 잔뜩 구겨졌다.
소환과 지상.
프리키는 이 두 가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도 싫어했지만 지금은 거의 혐오하고 있었다.
“………으으…”
그림자에 그려진 프리키의 몸.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살갗에는 아직 그날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었다.
‘자, 자, 자야지………’
프리키가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했다. 기분이 나쁠 때면 잠을 청한다. 그러면 모든 기분 나쁜 것들을 잊을 수 있었으니까.
이내 새근새근 숨소리가 고요해졌다.
새우처럼 몸을 웅크린 프리키의 주변으로 스멀스멀 회색의 연기가 고목의 나뭇가지처럼 뻗어나갔다.
쇠약의 기운이었다.
회색 손길에 잡힌 것들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쩍, 쩌적ㅡ 프리키를 중심으로 바닥과 벽이 삭으며 비명을 질렀다.
프리카가 세상모르고 잠에 빠진 시각, 펜리르는 마왕 발가르를 독대하고 있었다.
“마왕이시여.”
“왔느냐.”
옥좌에 오만하게 앉아있는 발가르의 기세는 참으로 패왕의 것이었다. 왕의 곁을 지키는 얼어붙은 탄식에서 스산한 한기가 흘러나왔다.
사실 둘이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펜리르가 먼저 독대를 요청했다면 더욱 그러했고.
“어쩐 일이냐?”
“지상에서 누군가 프리키를 소환하려 했었나이다.”
심연의 도처에 자욱하게 깔린 독무, 즉 독 안개.
안개의 권능을 지닌 펜리르에게 독무는 사방으로 열린 눈과 귀나 다름없었다.
“음…? 설마 프리키가 소환에 응했더냐?”
발가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심연에는 발가르의 이름으로 소환 금지령이 선포된 지 오래였다. 자잘한 하급, 중급 악마까지는 전부 통제할 수 없더라도 간부급이라 할 수 있는 대악마는 이를 지켜야 했다.
“아닙니다. 프리키가 물러서더군요.”
“그럼 됐다.”
“헌데… 그때 프리키의 반응이 좀 걸렸습니다. 그건 마치 질색하는…? 두려워하는 듯한 반응이더군요.”
“두려워했다고? 프리키가?”
발가르가 뜻밖이라는 듯 되물었다.
그 프리키가 무서워했다고?
“어찌 그리 놀라십니까? 프리키의 평소 성정을 생각해본다면 으레 있을 법한 반응 아닌지요?”
“펜리르여. 너는 내가 프리키를 찾아갔을 적에 가장 먼저 무엇을 보았는지 아느냐?”
“모르겠나이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하급 악마도, 기생 촉수도, 바닥을 기어 다니는 독무도 볼 수 없었단 말이다.”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펜리르의 눈에 의문이 찼다.
“프리키는 고요함의 숭배자다. 무언가 제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며, 스스로 정한 영역에서 나가는 일이 없다.”
“마치 고슴도치 같군요.”
“실로 그러하다. 차이가 있다면 프리키의 가시는 소리 없는 죽음이라는 것이겠지.”
프리키는 스스로 정한 영역 안에서 나가지 않았고, 무언가 들어오도록 두지도 않았다.
들어오는 것이 없고 나가는 것이 없으니 그녀의 영역은 한없이 고요하다.
고요하게 모든 것이 죽어있다.
달리 말하면 프리키는 제 영역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에 대해 극도로 분노했다.
“마왕성은 프리키가 정한 나름의 영역일 터. 그런데 자신을 끄집어내려는 소환 의식에 적대감을 표하지 않고 질색했다…?”
발가르가 흥미를 표했다.
문득 프리키를 처음 만났을 무렵도 떠올랐다.
프리키의 영역에 들어서기 무섭게 사방에서 얽혀오는 회색의 손길. 기력을 앗아가고 노화를 재촉하고 의지를 강탈하는 쇠약의 권능.
물론 발가르는 노화와 죽음 따위를 초월한 반신에 가까웠기에 그저 뿌리치고 걷기 바빴지만.
‘그럼에도 분노한 프리키는 참으로 다루기 어려웠다.’
손대중이 어려웠다는 의미다.
죽이지 않고 살려서 부하로 써야 했으니.
문득 피식 웃음을 터뜨린 발가르가 손짓했다.
“일단 기억해두겠다. 물러가거라.”
공손하게 자세를 조아린 펜리르가 물러나자, 발가르는 온전한 고요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프리키를 소환하려고 했다는 것인가…’
발가르가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대악마를 소환하려 하다니.
도대체 지상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저의 건강을 빌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독자님들의 무궁한 건강과 안녕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건강이야말로 최고의 자산…!! 아프시는 일 없도록 조심하시고, 혹여 아프신 분이 있다면 빠른 쾌유를 기원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