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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0

   루시의 신성이 악신의 기운을 물리치던 걸 구경하던 칼은 자신의 모시는 이에 대한 찬사를 마음에 담았다.

   

   위대하신 주신께서 아가씨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시면 저런 기도문에도 이만한 기적을 선사하신단 말인가.

   

   짧은 시간 동안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던 칼은 골렘들이 움직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앞에 섰다.

   

   “저 잡졸들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마침 잘 되었다 볼 수 있겠군.

   

   최근 들어서 아가씨께 못난 모습만을 보여드렸는데 드디어 호위다운 일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얼마 전 루시를 지키지 못했단 명목으로 처벌받았던 칼은 이번에 호위다운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려 했다.

   

   이번에 내가 멋진 모습을 보여주면 아가씨께서도 나를 새롭게 보시겠지.

   

   어쩌면 칭찬을 해주실 지도 모른다.

   

   아가씨의 시녀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환히 웃으며 허접치고는 괜찮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 지도 모른단 말이다!

   

   그 모습을 상상한 칼은 표정을 다잡으며 검 위에 자신의 색을 덧씌우고는 악신의 마력에 지배당한 골렘들을 향해 일격을 가했다.

   

   진한 오러가 덧씌워진 검은 일반적인 공간의 개념을 무시하고 단번에 열에 달하는 골렘을 베어 넘겼다.

   

   “덤벼봐라. 더러운 족속들아.”

   

   알른 기사단이라는 괴물 무리 속에서도 유망주라 평가받았던 기사 칼의 진심이 공간을 지배함에 따라 공허의 추종자들이 주춤하며 뒤로 물러서던 그 때.

   

   칼의 뒤에 서 있던 루시가 그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허접견. 내가 너한테 뭐 하라고 그랬던가?”

   “…아뇨.”

   “근데 왜 멋대로 앞에 나서는 거야? 나보다 약한 자의 명령은 듣지 않겠다 뭐 그런 건가?”

   “그. 그럴리가요. 제가 어찌 아가씨를.”

   “흐응. 그렇구나. 허접견은 나를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구나. 우리집 강아지가 주인을 집어삼키려고 하고 있었다니. 쪼오끔 무서우니까 몇 걸음 떨어져 줄래?”

   “아닙니다! 아가씨! 저는!”

   “아니면 얌전히 개집에 박혀 있어.”

   

   악신의 추종자들을 앞에 뒀는데 아무것도 안 할 수 없다거나. 호위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싶다거나 하는 말이 칼의 속에 맴돌았지만 그는 결국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터덜터덜 걷는 그의 등에선 방 안을 지배하던 기사의 위엄은 어디로 간 건지 처량함밖에 보이지 않았다.

   

   루시의 친구들은 물론이고 공허의 추종자들까지 그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려니 루시가 골렘 하나의 머리를 박살낸 후 자신의 친구들을 향해 목소릴 냈다.

   

   “이딴 쓰레기들한테 고전하는 허접은 없길 바랄게. 만약 그런 녀석이 있다면 한 달 정도는 잠을 못 자게 해줄 테니 그런 줄 알고.”

   

   방학 내내 루시에 의해 죽어라 굴러 보았던 이들은 루시에게 저 경고를 실현시킬 능력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악신의 추종자들이 숨어있었단 사실에 대한 경악과 루시가 보여 준 기적에 대한 경탄에 이어 지옥과도 같은 훈련에 대한 두려움을 마음에 담은 이들은 한 사람을 제하고 모두 다급히 전투의 준비를 했다.

   

   “저기. 저기. 루시.”

   “뭔데. 바보 검사.”

   “그럼 나는 쉬고 있을게.”

   “…뭐?”

   “이럼 한 달 내내 밤낮가리지 않고 루시랑 같이 훈련할 수 있는 거잖아?”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한 듯 눈을 끔뻑거리던 루시는 순진무구한 프레이의 표정을 노려보다가 팩 한숨을 내쉬었다.

   

   “바보 검사 넌 반대야.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안 해줄 거야.”

   “치사해. 이거 차별이야.”

   “차별이라는 단어가 뭔지는 알고 하는 말이야?”

   “당연하지.”

   “뭔데 말해봐.”

   “…그게.”

   “모르는 구나? 바보 검사는 바보바보라서 그런 단어 뜻 하나 설명 못 하는 구나?”

   “그으으.”

   “푸하핳. 한심해라. 네 백치 동생도 그 정도는…”

   “갈게.”

   

   프레이가 적을 향해 내달리는 걸 본 루시는 이 분위기를 따라잡지 못하는 공허의 추종자들을 보며 키득대는 소리를 냈다.

   

   “너희 뭐 해?♡ 나보고 쫄아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거야?♡ 쿡쿡♡ 짐승들도 이쯤 되면 달려들었을 텐데♡ 너희들은 생각하는 것도 생긴 것도 짐승 이하네♡”

   “…침착하십시오. 저 도발은 우리를.”

   

   교수의 연기를 하던 자는 애써 이성을 다잡았지만 그의 주변에 있던 자들은 아니었다.

   

   “개년이!”

   “죽여버려!”

   “질질 짜게 해주마!”

   

   루시의 도발에 넘어가 분노에 지배당해버린 이들은 지휘자의 말을 무시하고 무작정 루시를 향해 달려들었다.

   

   성인 남성 몇이 악신의 기운을 두르며 달려드는 모습은 그 자체로 섬뜩함을 선사했지만 공격의 대상이 된 루시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우와♡ 달려드는 모습은 발정난 짐승 같네♡ 축하해♡ 짐승 이하에서 짐승이 되다니♡ 어마어마한 발전이잖아♡”

   

   여유로운 어투와 달리 루시의 움직임은 기민했다.

   

   메이스를 위로 휘둘러 처음으로 달려든 자의 턱을 박살내고.

   

   뒤 이어 따라 붙은 이의 복부를 발로 걷어차 넘어트린 후.

   

   옆에서 날아든 저주를 방패로 쳐내는 그녀의 모습에서 위기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대신 루시의 움직임에 자리한 것은 아름다움이었다.

   

   다소 포악스러워 보일 수 있는 동작임에도 불구하고 절로 사람의 눈을 사로잡는 루시의 움직임은 전장보다 무대에 더 어울리는 것처럼 보였다.

   

   뒤로 물러나 관객의 입장에 선 칼은 루시가 싸우는 것을 구경하며 눈을 좁혔다.

   

   저게 최근 아가씨께서 연습하던 것인가.

   

   아직 완벽하게 체화하시진 못한 것처럼 보이는 군.

   

   이전에 비해 어설픈 구석이 많아. 솔직히 말해 기존의 방식을 버릴 이유가 있는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야.

   

   허나 아가씨께서 저를 택하셨다면 분명 무언가 의도가 있겠지.

   

   주인을 모시는 자가 해야 할 일은 주인이 하려는 일을 응원하고 돕는 것일 지어니.

   

   당장은 저를 눈에 담고 충언할 방도를 모색해 보자꾸나.

   

   칼은 그리 생각하면서도 루시의 친구들을 살피는 걸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저 중에 누구라도 다치게 된다면 루시가 슬퍼할 것을 알았기에 언제라도 달려나갈 준비를 했다.

   

   허나 전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칼은 자신이 나설 기회가 없을 것임을 예감하게 됐다.

   

   단적으로 말해 루시의 친구들이 지닌 무력이 공허의 추종자들에 비하여 너무도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검성의 재목이라 여겨지는 켄트 영애께서 골렘 무리를 나뭇잎 베듯 갈라버리시는 거야 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저 나이에 색을 지닌 오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지만 켄트 영애가 지닌 재능을 생각해본다면 저것도 아직 성장의 도중일 테니 지금부터 놀라서야 나중에 감탄의 목소리도 낼 수 없게 될 것이야.

   

   오히려 놀라운 쪽은 3왕자님이다.

   

   저 분이 오러를 다룰 수 있게 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허나 알른 기사단에서 훈련을 받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3왕자님이 다루는 오러엔 어설픔이 더 컸다.

   

   뭣보다 문제였던 것은 검술과 마법을 동시에 다루느라고 어느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한단 점이었다.

   

   어느 하나 완벽하게 갈고 닦지 못한 상황에서 둘 모두를 다루느라 둘 모두 어설퍼지던 그 광경은 여러 기사들에게 어린 나이의 객기로 비춰졌지.

   

   그를 본 여러 기사들이 3왕자님께 조언을 했지만 3왕자님은 꿋꿋이 자신의 길을 추구했다.

   

   지금도 3왕자님은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다.

   

   마법과 검술 둘 모두를 추구하느라 둘 모두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

   

   허나 알른 기사단에서 훈련을 할 때에 비하면 현격하게 성장한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저 분은 자신의 의기를 끝까지 밀어붙여 성공에 이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파트란 가문의 영애께서도 움직임이 상당히 좋아지셨다.

   

   막 알른 기사단에 오셨을 무렵에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이를 상대하는 걸 잘 못하셨는데 지금은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처리함과 동시에 동료를 지원하고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한 마법까지 준비하고 계시지 않나.

   

   과연 마법학과의 교수님들이 극찬한 재능이다. 저 분은 알까? 교수님들께서 서로 자신을 자기 학파에 끌어들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단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칼 교수님.”

   “왜 그러십니까. 성녀님?”

   “저기 보이시나요? 저 쪽에 퇴로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저대로 내버려 두면 악신의 추종자들이 도망칠지도 모릅니다.”

   

   전투가 진행되는 와중에 전장 전체를 둘러보고 계셨던 건가. 역시 성녀님이시군.

   

   “이해했습니다. 움직여야겠군요.”

   

   고개를 끄덕인 칼은 골렘의 머리와 머리를 밟아가며 날아가듯 움직여선 방 한 쪽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악신의 마법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아연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추종자들을 보며 살의를 끌어올렸다.

   

   “죽으려면 싸우다 죽어라 쓰레기들.”

   

   그렇게 추종자들을 쫓아낸 칼은 루시와 그 친구들이 싸우는 모습을 구경하며 팔짱을 꼈다.

   

   이러다간 내가 아가씨를 지키는 날보다 아가씨가 날 지켜주시는 날이 더 빠르게 다가오지 않으려나 몰라.

   

   *

   

   방학 직전에 하도 노가다를 거듭해 온 탓인지는 몰라도 내 친구들은 수많은 골렘과 악신의 추종자들을 상대하고 나서도 지친 기색이 하나 없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노가다를 거듭한 게 뿌듯해지네.

   

   이 정도면 나중에 같이 돌아다닐 때는 게임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강행군을 거듭할 수 있을지도 몰라.

   

   [퀘스트 클리어…]

   [보상이 지급됩니다…]

   

   드디어 이 빌어먹을 퀘스트를 클리어 하는 구나! 진짜 속이 다 시원하네!

   

   근데 허접 주신 너 왜 아쉬워하고 있는 거냐?

   

   내 기도가 그렇게나 듣고 싶었던 거야?

   

   아. 진짜. 이런 식으로 변태인 거 티 안 내도 알아서 해준다니까?

   

   좀 참을성을 가져 봐. 주신이라는 작자가 왜 사도보다도 더 애같이 구는 건지 원.

   

   [명성이 증가됩니다!]

   

   아니 그렇다고 즉석에서 태도를 바꾸진 말자.

   

   너무 위엄이 없잖아. 허접 주신아.

   

   그래도 내가 모시는 신인데 좀 신답게 굴어주라. 제바아아알.

   

   “이제 어떡할 거지. 루시 알른?”

   

   허접 주신을 타박하고 있으려니 추종자들의 포박을 끝마친 아서가 물음을 던졌다.

   

   “이 허접한 아카데미에서 알아서 처리하게 해야죠. 자기들이 무능해서 저지른 일을 대신 처리해 줬는데 뒷정리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하긴. 우리가 신경 쓸 것은 아닌가. 전통을 지키겠답시고 헛짓거리를 하다 문제를 만든 건 그들이니.”

   

   …맞다. 이 골렘들 다 입학식 때 쓸 물건들이었지.

   

   날 귀찮게 하던 문제가 해결됐단 사실에 너무 신나서 중요한 걸 잊고 있었네.

   

   어. 어어어.

   

   이거 다시 수리해서 쓸 수 있으려나?

   

   좀 많이 박살나긴 했는데 어떻게 잘 조립하면 다시 쓸 수 있지 않을까?

   

   안 되나?

   

   안 되겠지?

   

   내가 메이스로 박살내버린 골렘을 주섬주섬 끼워 맞추던 나는 우수수 무너져 내리는 골렘을 보고 가망이 없음을 깨달았다.

   

   <루시. 설마해서 묻는 거다만 질책당할 것이라 생각하는 거냐?>

   ‘…아닌가요?’

   <당연히 아니지! 관리의 소홀로 문제는 일으킨 것은 아카데미 측이다! 네게 잘못이 있을 리 없잖으냐!>

   ‘그…렇죠?’

   <그래! 이 경우에는 오히려 아카데미 측의 잘못을 질책하는 것이 옳다! 멍청한 것들. 아무리 상황이 혼란스럽다지만 자신들 사이에 악신의 추종자들이 끼어드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하다니!>

   

   생각해보면 그렇네. 이 상황은 아카데미의 잘못을 내가 해결해 준 거나 마찬가지잖아.

   

   내가 따졌으면 따졌지 아카데미 측에서 날 질책할 순 없어!

   

   할아버지의 조언을 듣고 명분이 있음을 깨달은 나는 재밌는 생각이 떠올라서 입꼬리를 히죽 끌어올렸다.

   

   지위와 명분이 확실한 이 상황은 갑질하기에 최적이잖아.

   

   ‘아카데미에서 뭐 좀 뜯어내 볼까요?’

   <좋구나. 잘못을 물을 때 확실히 물어야 다음번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할아버지는 이번 일에 많이 짜증이 난 듯 나를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어떻게 따지면 좋을지에 대해 조언해 주었다.

   

   ‘…그렇게까지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

   <그렇긴 무슨! 작년에도 비슷한 실수를 해놓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멍청이들에게 이 정도 질책은 필요하다!>

   

   그 조언의 내용은 나도 살짝 기겁할 정도로 험악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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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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