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11

    어두운 밤의 장막이 걷히고, 따스한 햇살이 커튼 너머로 비추기 시작할 무렵.

    이 시간이 되면 루크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시간이었지만, 침대에 있을 루크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도 없었을 뿐더러, 마치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것 만큼이나 가지런했다.

    그러나 그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그녀의 방에는 전에 볼 수 없었던 특별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까.

    바로, 시선에서 놓치기 어려울 정도로 커다란 상자.

    만약 루크를 찾고자 한다면 그 안에 엎드린 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루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루크는 충분한 너비의 상자 안에 엎드린 채로 꼬리를 살랑거리며, 각종 참고서적과 필기와 스케치를 늘어놓고는 연산력 상승을 위해 화분과 연결한 컴퓨터의 화면을 바라보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흠, 그렇군. 역시 이쪽 구조가 문제였나. 그럼 어떻게 한다…….”

    최근 루크는 마석에 들어갈 마법진을 설계하는 중에 막히는 부분이 있어서 답답하던 와중이었다.

    원래도 루크는 머리를 쓰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상자에 들어가 앉는 것이 꽤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이 몸에서 발현된 신체적 특성.

    사방이 막힌 좁은 곳에 들어가 있으면 정신적으로 안정감이 느껴지면서, 두뇌활동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루크는 종종 그 특성을 이용하고는 했다.

    아이디어가 잠시 막히면 상자에 들어간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최근엔 그 방법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서클을 급하게 성장을 시키다보니 몸도 덩달아 커지는 바람에 이전의 몸에 맞춰서 모아뒀던 상자들을 못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도 이제는 옛말.

    이 상자를 얻게 된 이후로 루크는 확실히 달라졌다.

    좁은 곳에 들어가 앉으면 몸이 집중하기에 알맞게 감각을 변화시킨다.

    상자 안의 적당한 어두움과 밀폐감이 몸을 감싸면 누군가 화장실을 사용하거나 디아나와 파이리스가 떠들고 노는 소리도 집중하기에 적당한 수준으로 청각을 차단시켜주며, 동시에 코를 통해서는 새 골판지 상자 특유의 눅진한 냄새가 기분좋은 안정감을 준다.

    확실히 너무 작은 상자에 몸을 우겨넣는 것이나, 책상 아래에 쪼그려 앉는 것 보다는 훨씬 집중이 잘 되고 있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시간에 쫓기는 느낌을 받고 있던 루크에게 이 온전히 집중된다는 감각은 더더욱 좋은 느낌이었다.

    다들 한번 쯤은 그런 감각을 경험해 보지 않는가?

    어떤 것에 앞이 막히더라도 어느 날에는 금방 새로운 구상이 떠오르고, 동시에 우주와도 같은 아이디어가 펑펑 터져나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거침없이 손이 움직여서 모든 일이 완벽하게 완료되어버리는 감각을 말이다.

    현재 루크의 상태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 실로 엄청난 감각을 고작 상자 하나로 이토록 좋은 가성비를 낼 수 있다니, 이 몸은 얼마나 대단한가?

    “…….”

    그 때,루크는 리브가 곁에 앉아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 입을 열었다.

    “왜 그러지?”

    리브는 그런 루크를 잠시 바라보다가, 두 손을 모아 자신의 한쪽 볼에 가져가 붙이는 시늉을 했다.

    그것은 아마도, ‘잠은 안 자냐’라고 묻는 것이다.

    그에 루크는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잠이야 며칠 안 자도 괜찮다. 지금은 이 탄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지.”

    루크는 잠을 잤다간 이 느낌이 영영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루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일이다.

    시간을 쓰면 반드시 일정 이상의 성과가 들어오는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다른 일들에 비해서, 아이디어는 매번 필요할 때에 바로바로 자신의 머리에 찾아오지 않는 법.

    안 풀리는 문제가 닥치면 그것이 해결되기에 걸리는 시간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잘 풀릴 때에 그 탄력을 유지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잠따위는 일이 다 끝나고 나서 취해도 늦지 않는다.

    계속해서 루크는 컴퓨터에 띄워진 각종 마법식의 계산들을 훑으며 중얼거렸다.

    “아, 좋아. 이렇게 하면 되겠군. 흐음, 그런데 이 구조로 들어가면 캐퍼시티가 부족한데. 최적화된 다른 우회로는 없을까? 그래, 여길 병렬로하고 입체구조로 바꿔서 층간의 연결을 이으면, 동일한 마력으로 40%이상 성능이 향상되겠구나!”

    헌데 이토록 빠르게 머리가 돌아가는 감각은 전생을 통틀어서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다.

    무려 자신이 며칠동안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끙끙 앓던 문제가 상자에 들어가 엎드리는 순간에 바로 해법이 떠오르다니!

    그렇다보니 아주 살짝, 신이 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

    리브는 루크가 싱글벙글 웃으며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최근 루크가 잘 풀리지 않는 문제로 인해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는 사실을, 리브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크가 지금 만드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거였으니까.

    아마도 루크는 모든 준비가 끝나더라도 정작 중요한 설계가 완성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하고 불안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포함해 정말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일이니까 말이다.

    도리어 불안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지.

    어찌나 불안했으면 평소 낭비되는 게 싫다며 적당량의 식사량을 유지하던 그녀가 최근에는 그 스트레스로 폭식까지 하고 있지 않았나.

    이는 사실 루크의 서클이 감정을 일일히 다잡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안정적으로 성장했기에 표출되는 감정이 굉장히 다양해지면서 생겨난 일종의 부작용이기도 하다.

    감정이란 건 원래 항상 긍정적인 것만 있지 않다.

    즐거운 감정이 있으면 응당 슬프거나 화가나는 감정도 있는 법이니까.

    아마 그동안 감정 자체를, 그 중에서도 특히나 부정적인 감정을 제대로 표출시켜볼 기회가 없던 루크였기에 서투르지 않나 싶다.

    괜히 남들에게 날카롭게 굴고, 쏘아붙이듯이 말하고.

    그것은 평소 모든 것에서 좋은 면을 쉽게 발견하여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루크였기에 두드러지지 않는 감정이었겠지만, 마음에 여유가 부족해진 지금은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었겠지.

    “…….”

    그래서 리브는 더이상 루크에게 말을 강요할 수가 없었다.

    자신도 어쨌든, 주인을 섬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닌가.

    주인이 좋다면 그걸로 그만—.

    “주인!”

    그 순간, 케이트가 들이닥쳤다.

    그에 루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케이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응? 갑자기 왜 그러느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게야?”

    루크의 그 모습에 케이트는 위압적으로 팔짱을 끼며 루크를 향해 외쳤다.

    “무슨 일, 발생!”

    “무슨 일인데?”

    “오늘 아침은 주인이 하기로 되어있지 않았나? 설마, 마법사가 약속을 어기려고 하는 것?”

    “…아. 오늘이 그 날이었나?”

    루크는 그제서야 저번주에 제 입으로 자신이 오늘의 아침식사 당번을 하기로 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맙소사, 아무리 그래도 약속을 잊어버리다니!

    일이 너무 잘 풀린다고 집중하고 있느라 깜빡하고 있었나?

    “이, 이런. 지금이 몇 시지? 예르나하고 다이튼은 일어났나?”

    “일어나는 중. 이대로 있다가는 주인이 만든 아침을 먹기도 전에 출근하고 말 것! 그렇게 되면 주인은 약속을 어기게 된다!”

    아, 그건 절대로 안 될 일이다.

    그렇게 루크는 그 즉시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키려했다.

    그러나 그 순간.

    -찌릿—.

    -털썩.

    몸을 일으키려던 루크는 돌연 꼬리와 다리를 찌릿하게 관통하는 감각에 곧바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쥐가 난 것이다.

    루크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발을 주물거리기 시작했다.

    ‘아뿔사, 너무 오랫동안 한 자세로 있었더니…….’

    기지개를 켜면서 피가 돌아 감각이 찾아온 모양이다.

    편하고 집중이 잘 된다는 이유로 너무 오랫동안 엎드린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던지라, 다리에 쥐가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쥐가 나는 고통은 외부적 요인으로 일어나는 고통도 아니었기에, 어떤 면에선 칼에 베이는 것 보다도 견디기 어려운 감각.

    게다가 이전의 몸과 비교해서 감각의 감도가 전체적으로 예민했던지라 그 감각은 이전과 비할 바 없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감각이었다.

    “주인, 갑자기 왜 늦장을 부림? 이대로 있다가는 아침이 지나가버릴 것임!”

    “으, 잠깐만 기다려주겠느냐? 다리에 쥐가 나서…….”

    그 찌릿한 감각을 참고 몸을 일으키려고 해도 당장은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는다.

    뭐, 이전에도 쥐가 난 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 때의 감각과 감각 전반이 예민해진 지금 느끼는 감각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이상한 핑계를 대면서 게으름을 피우지 말 것! 고작 그런 걸로 일어나지도 못 하는 게 말이 됨?”

    그러나 골렘으로 만들어진 탓에 그 감각에 대해 알 길이 없는 케이트.

    케이트는 루크가 늦장을 부린다고 생각하여 루크의 손을 붙잡아 당기고 말았다.

    “아, 케이트, 잠깐만, 지금은 진짜 안—!”

    그에 강렬한 감각이 어김없이 루크의 신경계를 강타하는 참사가 벌어진다.

    -찌릿—.

    “하그으으윽!”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쥐났는데 너무해….

    그나저나 그림에 구도 넣는 게 요새 재밌네요!

    근데 이렇게보니까 상자가 좀 개집 같기도 하네용.
    개 집 안에 계집 아이? 엌ㅋㅋ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