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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1

        

       여자의 목소리?

       그것도 아니면 소년의 목소리?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사람을 구해야 한다’라는 사명감을 불러일으키는 목소리가 안개 속에서 울려 퍼졌고, 짧은 말 한마디에 묻어있는 절절한 감정은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게 했다.

         

       “끄윽!”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려 한 이들은 예외 없이 강렬한 통증에 휩싸였다.

         

       어떤 사람은 김이창 경장처럼 다리가 기괴하게 비틀렸고, 어떤 사람은 건물의 잔해에 발이 깔려서 움직일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의 다리는 천장에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날카로운 금속 조각이 땅에 꿰여 있었고, 어떤 사람은 다리를 크게 다쳐서 뼈까지 드러나 있었다.

         

       그렇게 모든 사람은 자기 다리를 움직일 수 없음을 깨닫고 불안감에 휩싸였고, 그나마 몸을 지킬 수 있는 총이나 수류탄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그리고 그렇게 안도하고 있는 그들에게 방문자가 찾아왔다.

         

       “구해주세요!”

         

       그들은 구조 요청으로 사람의 신경을 끌었다.

       절절한 감정을 담아서, 도저히 그 간절한 외침을 거부하지 못할 정도의 과다한 감정을 담아서.

         

       이러한 외침에 사람들은 제각기 다르게 반응했다.

         

       “끄윽, 여기! 여기로 와!”

         

       다리에 상처를 입었음에도 구해달라고 외치는 외침을 외면하지 못하고 자신이 있는 곳으로 부르거나.

         

       “어이, 여기 사람이 있다! 나도 다치긴 했지만 그래도 둘이면 지금보단 낫겠지!”

         

       자기 다리를 어떻게든 하기 위해 사람을 부르거나.

         

       “정지! 누구냐!”

         

       총을 겨누고 경계하거나.

         

       “….”

         

       그것도 아니면, 구구절절한 도움 요청을 숨조차 죽인 채 침묵하거나.

         

       그렇게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반응으로 외침에 대응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人!人だ!音があっちから聞こえた!”

         

       귀를 의심케 하는 일본어의 향연.

         

       다다닥.

         

       그리고 안개 속을 가득 울리는 발소리였다.

         

       발소리는 섬을 다급하게 뛰어다니는 듯 크게 울려 퍼졌고, 사람을 찾기 위한 의욕에 가득 차 있었다. 다만 그것이 자신을 구해줄 사람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명백한 적의를 품고 있었다는 것이 조금 달랐을 뿐.

         

       그리고 그 달음박질의 끝에 나타나는 것은 총을 든 사람.

         

       일본의 것으로 보이는 소총을 들고 있는 소년이다.

         

       “死ね!”

         

       소년들은 적의와 투기를 가득 품은 눈동자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소년을 돕기 위해서 크게 소리친 사람에게도.

       자기 다리를 위해서 소년을 부른 사람에게도.

       소리를 내기는 했으되 소리가 난 쪽으로 총을 겨누고 경계를 하던 사람에게도.

       숨죽인 채 구조 요청에서 고개를 돌린 사람에게도.

         

       그리하여 소년이 총을 겨누니, 이에 대한 반응 역시 격렬한 것이라.

         

       “소년…이라고?”

         

       어떤 이는 소년이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 방아쇠를 당기는 것조차 잊어버렸고.

         

       “야! 한국말 할 줄 아는 것 같은데…. 너 강제로 잡혀 와서 이러고 있는 거냐? 내가 도와줄 테니 그 총 내려놓도록 해! 내가 이래 봬도 인맥은 좀 있으니, 널 협박하고 있는 놈들에게서 너를 지켜줄 수 있다! 설령 네 가족이 잡혀서 협박당하고 있는 것이라면, 내가 사비를 써서라도 용병을 고용해서 구해주마! 그러니 멍청한 짓 하지 말고 손 내려! 너 같은 꼬맹이는 총을 들어선 안 돼!”

         

       어떤 이는 자신을 겨누고 있는 것이 소년이라는 것을 깨닫자 말로 설득하려고 하기도 했으며.

         

       타앙-!

         

       어떤 이는 누군가가 총을 자신에게 겨누고 있자 망설임 없이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버렸고.

         

       타타타탕!

         

       어떤 이는 본능에 따라 손가락을 움직여 총알을 흩뿌리듯 연발로 쏴 재끼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을 통해 대항하였다.

         

       이는 그들의 선택이었고, 그들의 삶을 가르는 분기점이라.

         

       그 결과가 어찌 될 것인가?

         

         

         

        * * *

         

         

         

       “…하나님의 길에서 성전을 수행하게 하여 내세를 위해 현세의 생명을 바치도록 하라. 하나님의 길에서 성전을 수행하는 자가 살해당하건 승리를 거두건 나는 그에게 큰 보상을 주리라.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무런 장애도 없이 잔류한 믿는 자와 성전에 출전하여 재산과 생명을 바쳐 성전을 수행하는 투사들이 같을 수는 없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재산과 생명을 바쳐 성전을 수행하는 자들에게는 남아 있는 자들보다 더 큰 은혜를 베푸신다. 재산과 생명을 바쳐가며 성전을 수행하는 사람과 믿음은 강하나 성전에 임할 수 없는 이들에게도 하나님이 보상을 내리실 것이나, 하나님은 남아 있는 자들보다 성전을 수행하는 자들에게 크나큰 은혜를 주시니라.”

         

       진성은 경전을 외우듯 주언을 읊으며 안개 속을 거닐었다.

       그의 옆에는 썩은 냄새를 안개의 비린내로 숨기고 있는 물귀신들이 서 있었으며, 그가 거니는 곳의 바닥에는 쓰러진 사람들의 신음이 가득하였다. 그 모습이 지옥에서 악귀를 끌고 현세로 쳐들어온 마귀들의 장군을 보는 것같이 불길하였고, 사악하였다.

         

       다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성스러운 책에 적힌 구절이라.

         

       “아, 자비롭고 자애로워라. 하나님은 성전에 참여한 사람(مجاهدين)을 높이 두시며 관용과 자비도 베푸시매 하나님께서는 가장 관대하시고 자비로운 분이로다. 참으로 자비롭고 자비롭지 아니하더냐. 성전에 참여한 이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한 보상의 등급이 있으니, 그 보상은 다른 보상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 그 보상과 다른 보상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보다도 더 넓고 깊은 것이니, 너희 신실한 자들아, 성전에 참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성스러운 말씀을 읊으며 진성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들의 몸에 서리는 주술의 축복.

         

       중동 지역에서 사용했던, 전사를 뽑을 때 사용했던 주술의 흔적이다.

         

       꿈에서 적과 싸우게 만들어 전사가 지녀야 할 자질을 시험하고, 통과한 자에게 용기가 넘치게 만들고 체력을 일시적이나마 늘려주는 효과를 가진 주술이었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주술은 놀랍게도 현재까지 남아 있었고, 중동의 어떤 용병 단체에서 신입들을 뽑을 때 사용하는…현역으로 사용되고 있는 주술이었다. 물론 현역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지 주술의 존재 자체는 극비로 취급되고 있었고, 용병단의 수뇌부에게만 비밀로 전승되어 오고 있기에 주술의 대가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흠. 보자. 피와 용맹이라. 이 자는 적을 무찌르고 피를 보았고. 이 자는 피의 문양이라. 용맹하지도 않았고 투쟁심을 갖지는 아니하였지만, 본능에 따라 움직여 적을 무찔렀구나.”

         

       진성은 쓰러진 이들의 몸에 떠오르는 자그마한 흔적을 바라보았다.

       그 흔적은 너무나 미약하고 흐릿했지만, 집중한다면 알아볼 수는 있는 수준이었다.

         

       피의 상징.

       이는 주술에 걸린 사람이 꿈속에서 무사히 적을 무찔렀음을 알리는 것이요.

         

       용맹의 상징.

       이는 주술에 걸린 사람이 한없이 부족하고 위험한 상황에도 겁먹지 않고 싸움을 했다는 것이라.

         

       피의 상징만 떠오르는 이는 겁이 많되 사람을 죽이는 것에 성공하였으니 적을 물리치는 전사의 자질을 가진 것이요.

       용맹의 상징을 가진 이는 이유가 어찌 되었건 적극적으로 움직여 적과 싸울 생각을 품었으니 전사의 자질을 가진 것이라.

         

       하여 이르기를, 이 자들은 전사로다.

       피를 보며 적을 물리쳤으니 전사요, 용맹을 가슴에 품고 적을 무찔렀으니 이것이 바로 전사라.

         

       “흐음.”

         

       이르기를, 전사는 숭고하고 명예로운 존재라.

       그들에게는 자비가 없고, 자애가 없다.

         

       오직 존재하는 것은 적을 무찌르는 것, 살아남고 승리하는 것.

         

       “의외로 적군….”

         

       하지만 그 숫자가 많을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나 평화에 찌들어 있다면 더더욱.

         

       그렇기에 전사라는 존재는 귀중한 것이로다.

       돌을 아무리 깨도 손에 쥐어지는 보석은 한 줌에 불과하듯, 이들 역시 사람 사이에서 캘 수 있는 보석이라.

         

       이들이 바로 보배로다.

         

       “평화에 찌든 겁쟁이라서 그러한 것인가, 아니면 측은지심에 공격하지 못한 것인고….”

         

       진성은 보석이 되지 못한 돌덩이들을 바라보았다.

         

       정신을 잃고 있는 경찰들.

       꿈속에서 총을 들고 자신에게 적의를 표출하는 적을 보았음에도 외형에 현혹되어 총을 쏘지 않은 이들.

         

       실제 전쟁이었다면 저들은 모조리 죽었을 것이다.

         

       자신이 보호해야 하는 약자, 어린애가 쏜 총을 맞아서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으리라.

         

       하니 저들은 전사가 될 수 없다.

         

       저들은 싸울 의지를 품지 못한 겁쟁이이고, 전투에서 필요 없는 자비심과 자애로움을 가진 이들이다.

         

       저들은.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다.

         

       “자, 선택의 결과가 나왔다. 너희 물에서 올라온 망자들아. 내 고삐를 풀어줄 것인즉 내가 지정하는 이들을 먹이로 삼아 성찬을 벌이라. 마음껏 잔혹성을 뽐내고, 몸속 깊숙이 자리 잡은 탐욕과 갈망을 해소하기 위해 피를 빨고 살점을 씹어라.”

         

       진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그의 검지가 쓰러진 사람들을 가리켰고, 그것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 끼야아아아악-! ]

         

       그리고 그 손가락질의 끝에는 비명과도 같은 귀신의 환호성이 있었다.

         

       귀신들은 진성의 허락이 떨어지자 지목의 대상에게 다가가 몸을 깨물며 피를 마셨고, 살점을 뜯으며 배를 채웠다.

         

       아직 깨어나지 못한 이들은 무력하게 귀신의 손짓에 이리저리 뜯겨나갔고, 아무런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숨이 끊어져 갔다.

         

       그렇게 끊어지는 이들의 몸에는 상징이 있었으니.

         

       이는 피와 용맹의 상징이라.

         

       “이것이 바로 세상의 아이러니로다.”

         

       꿈속에서 소년을 죽이고 살아남았던 이들은, 그 대가로 현실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 이유는 저들이 전사라는 것.

         

       『 용병 생활을 할 거라면, 명심해야 할 게 있습니다. 』

         

       『 싸울 의지가 있다면 그건 전사입니다. 총을 든 어린아이도 전사고, 몸에 폭탄을 두르고 접근하는 아줌마도 전사입니다. 』

         

       『 싸울 의지가 없다면 그건 민간인입니다. 퇴역한 용병도, 근육질의 청년도. 그들은 민간인입니다. 』

         

       『 전사와 민간인을 잘 구분하십시오. 그리고, 전사에게는 절대 자비를 보이지 마십시오. 』

         

       『 전사는 죽여도 되고, 죽여야 합니다. 』

         

       진성은 뒤틀린 시간 속 추억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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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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