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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1

    <411 – 그깟 각오>

     

    언제나 가면을 쓰고 다니지만 오크노디의 곁에서는 서슴없이 가면을 내리고 맨얼굴을 드러낼 정도로 각별한 친분을 지닌 즈앙.

    그 부드러운 태도를 보고 자신들도 친해질 수 있겠다며 즈앙에게 접근한 이들이 없던 것은 아니다.

    아이린 또한 그런 생각을 품었던 학생들 중 하나였으니까.

    척박한 북부는 인재들이 기피하는 장소.

    한 명이라도 더 유능한 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된다.

    단신으로 적장을 암살할 수 있는 특급암살자의 존재는 일만 명의 정예병으로 이루어진 군대에 못지않으니까.

    하지만 아이린은 일찌감치 그 꿈을 접었다.

    즈앙에게 말을 걸러 찾아갔던 어느 날, 그녀는 보고 말았기 때문이다.

    즈앙이 동급생의 뺨을 때려 쓰러뜨리고 너무나도 간단히 그 목에 단검의 날을 들이미는 모습을.

     

    “두 번 다시 내 눈에 띄지 마. 다음에는 그 눈에서 빛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볼 거야.”

     

    즈앙은 암살자다.

    평범한 학생들과는 전혀 다른 성장과정을 거쳤다.

    물론 기프트 아카데미에 입학할 정도의 학생들도 보통 학생은 아니지만 그 잘난 학생들 사이에서도 즈앙은 한층 더 특별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싱과 비슷한 유형이겠지.’

     

    사람을 죽이는데 거리낌이 없다.

    마음속에 법과 도덕으로 세워진 규율의 선이 다른 인간들과 달리 지극히 넘어서기 쉽다.

    그런 즈앙이기에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선배님이 그 아이의 얼굴을 어떻게 보셨죠?”

     

    단아한 인형같은 외형의 아이.

    가면을 쓴 즈앙은 그런 이미지가 아니다.

    당장이라도 덤벼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피칠갑을 한 짐승.

    눈앞에 나타난 죽음.

    주마등을 부르는 아이.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

    거기에 단아함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상대가 정말로 초대면의 휴학생 선배라면 말이다.

     

    “원래부터 즈앙을 알고 계셨죠?”

    “헉… 대박.”

    “물러서, 도로시.”

     

    깜짝 놀라는 도로시와 앞을 막아서는 록펠.

    냉정하게 추궁하는 아이린.

    1학년들의 모습을 보며 휴학생답지 않은 강함을 지닌 선배가 차갑게 웃었다.

     

    “제법인데? 981기는 다르다는 말은 역시 괜히 나온 게 아니었어.”

    “아직 제 물음에 답하지 않았어요.”

    “네 추측이 맞다면. 내가 즈앙을 본래부터 아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뭐가 달라지지?”

     

    아이린은 뒤로 돌린 손바닥 안에 한기를 응축시키며 대답했다.

     

    “선배가 즈앙과 어떤 관계였느냐에 따라 저희를 방해하거나 해를 끼치려고 들지도 모르죠.”

     

    특히나 타인과의 교류가 단절되다시피 했던 입학 직후, 초창기의 즈앙을 떠올린다면 더욱 그럴 가능성은 높았다.

    빈말로도 그 아이는 친구를 사귀기 좋은 성격도 아니고, 본인에게도 그럴 의지는 없어보였으니까.

     

    짝. 짝. 짝.

     

    선배는 박수를 쳤다.

    부모가 아이에게 참 잘했다고 칭찬을 하듯이.

    훌륭한 영화나 연극을 보고 감동을 표하듯이.

    그러나 그 얼굴에 떠오른 것은 어떤 감정에도 치우치지 않은 무표정.

    실로 <암살자>스러운 표정이었다.

     

    “훌륭한 추정이다. 마족계약자들이 우글거리는 마인의 땅, 척박한 북부의 대공녀답게 실로 경계심이 상당해. 즈앙의 뒤를 밟을 자격은 있겠어.”

    “…”

    “그리 무서운 얼굴로 재촉하지 마. 남자는 상처받는다고? 여자의 경멸하는 표정을 받아버리면.”

    “저를 놀리는 건가요?”

    “당연하지. 나보다 까마득하게 약한 개미가 겁도 없이 적의를 드러내면 신기하잖아. 그러다 밟혀죽을 줄도 모르고 눈앞에서 얼쩡거리는데.”

     

    아이린의 손에 맺힌 한기가 한층 싸늘해지고 록펠의 발의 간격이 반보 넓어졌다.

    그러나 둘중 어느 누구도 먼저 행동에 나서지 못했다.

    두 사람에게는 도로시의 감이 그렇듯이 전투직 클래스로서의 감이 무의식적으로 말하고 있다.

     

    덤비면 필패.

    나서는 순간이 최후라고.

     

    선배는 무심한 얼굴로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벽에는 등을 기대고 비스듬히 섰다.

    잔뜩 긴장한 1학년들과 달리, 스스로 손을 봉인하고 엉성한 자세로 불리함을 자처했음에도 두 학생의 경계심은 내려갈 줄 몰랐다.

    자세가 의미 없는 강함.

    언제 어떤 수를 써서라도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압도적인 강자.

    자신들이 그런 강자의 영역에 눈치 채지도 못한 사이에 발을 들였음을 뒤늦게 깨달았으니까.

     

    “대륙십대도둑이라는 것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열 명의 도둑을 일컫는 말이지. 하지만 아슬아슬하게 11번째로 강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대륙십대도둑에 들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지?”

    “…훔쳐야겠죠. 기존의 대륙십대도둑 중 한 명의 명성을 자신의 것으로.”

    “정답이다. 즈앙의 스승, 륭 노사도 그렇게 했지. 전대의 대륙십대도둑 서열 10위 목숨도둑, 내 스승의 목숨을 훔쳤다.”

    “!!”

    “요컨대 너희는 동기의 원수와 마주쳤다는 뜻이다.”

     

    하필이면 이런 무법천지의 휴학생전용구역에서 즈앙에게 원한을 품은 인물이 나타나다니.

    억울해서 울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를 정도로 운이 나빴다.

     

    “비인부전의 기술을 전수받은 자는 스승의 모든 것을 짊어진다. 기술, 명성, 스승의 이름이 짊어진 은원의 고리마저도.”

    “…”

    “륭 노사를 죽이고 목숨도둑의 이름을 되찾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숙명이다. 방해가 된다면 즈앙 역시 죽여야겠지. 하지만 그날이 오늘은 아니야.”

     

    연초를 입에 문 남자가 불을 붙여도 누구 한 명 싫은 소리를 꺼낼 수 없었다.

    남자가 ‘인내’하고 있음이 무표정한 얼굴과 달리, 힘줄이 솟구친 손등을 보아 알 수 있었으니까.

     

    “나는 아직 륭 노사보다 약하다. 제자를 죽인 뒤에는 내가 살해당하겠지. 그러니 흉계도 쓰지 않는다. 즈앙도 떠나보냈다.”

    “괜한 지레짐작을 했다고 사과드려야 할까요?”

    “하나마나한 거짓말은 필요 없어. 그런 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너흴 죽이는 것도 곤란하니까.”

    “…”

    “단지 즈앙에게는 악의를 보이지도 않았지만 호의를 베풀지도 않았다. 오크노디라는 아이를 따라잡을 길을 고를 때, 우리가 장악한 쉬운 길을 닫았지.”

    “우리…? 당신말고 여기에 누가 더 있죠?”

    “천애단벽조사단이 있지.”

     

    남자가 연초의 재를 털어내는 동작과 동시에 기묘한 마나파장이 지면을 타고 흘렀다.

     

    쿠구궁.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파고들며 그 사이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내는 마나파장.

    그것은 기존의 토사를 강제로 파헤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존재하던 구멍을 가로막은 환영을 없앴다고 표현해야 마땅했다.

    그러나 샛길의 저편에는 사람의 기운이 느껴진다.

    하나같이 아이린 본인에 준하는, 일부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수준의 선배들이.

     

    “천애단벽의 너머로 가는 길은 여러 개가 있다. 위쪽의 길로 진입할수록 빠르게 도달할 수 있지만 위험도는 급증하지.”

    “!!”

    “즈앙은 가장 위의 길로 지나갔다. 머리가 좋은 기특한 후배들에게는 선택지를 주지. 즈앙의 뒤를 쫓아 위험을 무릅쓸지, 시간은 걸려도 편리한 아래쪽의 길을 이용할지.”

     

    천애단벽에 나타난 구멍과 이곳 지상 사이에 못 보던 사다리까지 나타났다.

     

    “환상이나 속임수가 아니야. 게다가 저 길은 정말로 안전해보여. 물론 ‘상대적으로’라는 의미지만.”

     

    감이 좋은 도로시까지 이를 보증했다.

    아이린은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즈앙 이전에 마지막으로 여길 지나간 사람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럼 그 길로 가겠어.”

     

    남자의 손등이 꿈틀거렸다.

     

    “왜지? 위험에 대해서는 충분히 경고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친절함을 믿을 수 없었나?”

    “아니. 선배의 말은 믿어. 짧은 대화지만 선배는 사실을 감출지언정 거짓을 말한 적은 없었어. 그러니까 믿을 수 있어. 즈앙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도.”

    “어리석군. 암살자와 친구라도 될 생각인가?”

    “그럴지도.”

    “본인이 그걸 원치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어. 북부는 이것저것 따져가면서 친구를 사귈 수 있을 정도로 형편 좋은 곳이 아니니까.”

    “타산적이군. 우정놀이라 치기도 딱할 정도로.”

     

    남자는 기가 샜다며 연초를 다시 물었다.

     

    “마음대로 가라. 순순히 보내줄 때에.”

     

    아이린은 작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절벽 위의 길로 달렸다.

    도로시도 록펠도 아이린의 뒤를 따랐다.

    기분 나쁜 선배가 충분히 멀어진 뒤에야 도로시가 의구심을 보였다.

     

    “안전한 길을 놔두고 왜 이리로 왔어?”

    “위험과 직면하는 속도가 가장 빠르니까. 정황상 즈앙은 누구보다 빠르게 오크노디의 뒤를 쫓았어. 그러니 이 앞에는 오크노디가 있겠지. 그 아이는 걱정하지 않아. 하지만 뒤를 쫓는 즈앙은 걱정하고 있어.”

    “오크노디와 달리 다칠 수도 있으니까?”

    “그래. 만일 이 일로 즈앙이 크게 다치거나 죽고 그 사실을 오크노디가 알게 되면 분명 오크노디는 슬퍼하겠지. 누구도 자기 뒤를 쫓지 못하게 다닐 거야. 그래서는 오크노디를 북부전선에 영입하려던 계획도 실패할 거고.”

     

    그러니 즈앙을 살린다.

     

    “제멋대로에 이기적인 이유지. 너희와는 관계없어. 위험하니까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도 돼.”

    “딱히? 이 정도는 괴수림에서도 있는 위험인걸. 아이린이 걱정되어서 한 말이었어. 그렇게까지 가야 할 이유가 있다면 오히려 안심이지!”

    “…”

     

    진짜 저놈의 괴수림에는 대체 뭐가 있는 걸까.

    오늘만 몇 번이고 떠올린 생각을 뒤로한 채, 아이린은 땅을 내딛는 발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세 번째 재해를 앞두고 나서야 그녀는 진지하게 깨달았다.

     

    “즈앙과 오크노디는 저 안에 들어갔다고…?”

     

    휴학생전용구역.

    비보를 찾기 위해 수많은 휴학생들이 목숨을 걸고 도전하는 장소.

    두 번째 재해까지는 뜨내기들도 괜찮다.

    보물을 노리고 찾아온 휴학생들.

    약자들이 서로 뭉쳐 단결하거나 자신보다 더한 약자를 속이고 힘으로 강제하여 삥뜯어가면서라도 살아갈 수 있는 소굴이니까.

    ‘세 번째 재해’부터는 급이 달랐다.

    여긴 그런 약자들이 발을 들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

    [분출하는 용암]

    초고온의 열화가 지면에 응축하여 주기적으로 솟구치는 용암지대.

    비보를 향한 욕망은 뜨겁게 타올랐고, 욕망의 충돌은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는 지옥을 만들었다.

    ━━━

     

    죽을 각오를 다짐하지 못한 자.

    비보에 도전할 생각이 없는 자.

    그만한 실력을 지니지 못한 자.

    그런 어설픈 자들은 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안갈 거야?”

     

    그런 어설픔이 무엇이냐고 역으로 반문하듯이 입구의 뜨거운 증기에 손가락을 넣고 앗뜨뜨를 외치며 울상을 짓는 도로시.

    그 한심한 모습에 아이린이 도로시의 손을 붙잡아 입을 벌렸다.

     

    후우우.

     

    서리보다 차가운 한기를 몸에 품은 아이린의 입김에 도로시의 손가락의 욱신거림이 멎었다.

     

    “경솔하게 굴지 마. 안에서는 도와줄 여력이 없을지도 모르니까.”

    “으, 응…”

    “가자. 더 늦장부리다가 즈앙과 오크노디가 잿더미가 되기 전에.”

     

    그깟 목숨을 걸 각오.

    세 사람에게는 이제 와서 들먹이기엔 한참도 전부터 품고 있던 것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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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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