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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1

       

       —쏴아아아……

       

       어두운 밤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고, 이따금씩 멀리서 천둥이 친다.

       

       우리는 교내 쓰레기장 구덩이 위의 가장자리에 선 채, 우리의 양 옆으로부터 마치 우리를 포위하듯 걸어오는 두 인영(人影)을 바라보았다. 

       

       흡사 인간처럼 생겼지만, 인간이 아닌 그것은 동상이었다. 본래 저 앞의 동상 받침대 위에 있어야 할 동상이, 양옆에서 걸어오고 있던 것이다!

       

       —번쩍!

       

       또 한번 밤하늘에서 빛이 번쩍이고 두 동상의 모습이 다시금 확연히 드러났다. 

       

       가마쿠라 시대 기마무사의 모습을 한 동상과, 

       지게꾼 소년의 모습을 한 동상.

       

       각각 대남공 구스노끼와 니노미야 긴지로라는 일본 위인의 모습을 한 그 동상들의 모습은, 번개의 빛에 의해 순간적으로 명암이 짙게 드러나 더더욱 그로테스크하게 보였다. 

       

       “배, 백 동지……”

       

       —콰르릉…….

       

       한차례 늦게 울린 천둥 소리가 내 곁에 주저앉아 있던 홍옥례의 말을 집어삼켰고, 나는 칼을 뽑으며 크게 외쳤다.

       

       “홍옥례! 아니, 홍 동지!”

       “으, 응?” 

       “칼 든 쪽은 내가 상대한다! 동지는 저 소년 동상의 시선을 끌어!” 

       “아, 알았어!”

       

       동지라고 부르며 명령조로 일러준 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홍옥례의 패닉은 짧았다. 홍옥례가 벌떡 일어나 어딘가로 달려나가자, 소년 동상은 곧바로 홍옥례를 쫓기 시작했다.

       

       “꺄악! 뭐, 뭐 이렇게 빨라!”

       

       홍옥례는 쓰레기장 구덩이의 주변을 원형으로 돌며 소년 동상과 추격전을 벌였는데, 

       

       등에 지게를 매고 한 손에는 책을 들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한 니노미야 동상은, 어린 소년의 모습을 본딴 작은 사이즈인데도 불구하고 홍옥례만큼이나 빠르게 달리는 모습이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소년 동상은 등에 맨 지게에서 통나무를 던지거나 들고있는 책을 뜯어 동판을 날리거나 했지만, 몸놀림이 날쌘 홍옥례는 이리저리 잘도 피했다. 

       

       ‘저 쪽은 당장은 걱정할 필요 없겠고.’

       

       나는 눈 앞의 기마무사, 대남공 동상에 집중했다. 

       

       옛날 일본 장수처럼 화려한 오오요로이(大鎧) 갑옷에, 한자 山모양의 장식이 달린 투구. 

       

       손에 들려있는 커다란 곡도.

       

       움직일 때마다 관절 부분의 접합선이 벌어지며, 그 벌어진 안쪽에는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같은 것이 얼핏 보인다. 안에 별도의 기계장치라도 있는 건가? 

       

       ‘관절이 약점이겠지.’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말을 탄 모습의 대남공 동상이 나를 향해 쇄도해왔고, 

       

       —부웅!

       

       순식간에 내 앞까지 당도한 말 위의 대남공의 손에 쥐어진 커다란 타치(太刀; 태도)가 내 목을 향해 휘둘러졌다.

       

       —까앙!

       

       나는 놈의 칼을 흘려빗겨서 막아내었다. 그 크기만큼 중량감이 압도적이긴 했지만 버틸만 했다. 

       

       대남공의 움직임 역시 말을 탄 덕분에 빠르지만 역으로 제한되는 부분도 있어, 움직임을 예측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대남공은 커다란 말을 타고 커다란 칼을 휘두른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있어서는 문제가 되었다. 

       

       높이 차이와 리치 차이에 있어서 내 쪽이 불리했던 것이다. 아무리 저쪽의 공격을 막아내고 내쪽의 공격이 먹혀도, 관절 틈새로 유효타를 먹이기 까다로웠다. 게다가……

       

       —쿠웅!

       

       어느 순간 옆에서 날아드는 통나무며,

       

       —피슉!

       

       심지어 얇은 동판이 내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홍옥례와 추격전을 벌이는 소년 동상이, 쓰레기장 주위를 한 바퀴씩 돌 때마다 내 쪽에도 공격을 날리고 가는 것이다! 이러면 대남공과의 싸움에 집중할 수가 없다. 

       

       “백 동지! 살려 줘! 얘 너무 빨라……!”

       “이따 도와줄테니 좀 더 버텨 봐!”

       

       나는 그렇게 외치고는 곧장 쓰레기장 구덩이로 뛰어내렸다. 아까 홍옥례와 떨어졌을 때에는 실수로 굴러떨어진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자세를 잡고 몸을 날린 것이었기에 수 미터 아래 정도는 여유롭게 착지할 수 있었다. 

       

       대남공 동상은 나를 쫓아 구덩이 아래로 내려오더니, 조금 달리다가 말에서 내렸다. 이것 역시 내가 노린 바였다. 이렇게 온갖 쓰레기로 지형지물이 복잡한 곳에서는 제대로 말을 몰고 다닐 수 없을테니, 말에서 내릴 수밖에 없을 터.

       

       대남공 동상은 말하는 능력까지는 없었는지 소리없는 기합을 내지르듯이 입을 벌리며, 나에게 달려들어 칼을 휘둘렀다.

       

       —부웅!

       

       대남공이 휘두르고 있는 것은, 화려한 양식의 타치(太刀, 태도).

       

       내가 쥔 것도 타치(太刀)지만, 지금 시대의 타치는 일반적인 카타나(打刀)와는 장식성 요소만 구분될 뿐 칼날 자체의 길이는 70센티미터 정도로, 카타나와 차이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대남공이 손에 쥐고있는 타치는, 고증에 맞게 중세시대의 마상 전투에 쓰이던 길다란 장검 곡도. 

       

       게다가 동상으로 만들면서 현실 사이즈보다 스케일이 뻥튀기되었는지, 칼날의 길이만 1미터에 육박하는, 사실상 오오타치(大太刀; 대태도)라고 해도 좋을만큼 길고 거대했다. 

       

       그래봐야 동상의 재질은…… 동(銅).

       

       즉, 구리였다.

       

       정확히는 구리와 주석의 합성이니 뭐니 하겠지만 본질적으로는 구리. 아무리 금속이라고는 해도 강철보다는 무를 수밖에 없으며,

       

       하물며 내 각성능력인 강기(罡氣)를 덧씌운 고대금속 히히이로카네(緋々色金) 태도(太刀)의 앞에서는,

       

       플라스틱으로 된 장난감 칼이나 마찬가지였다.

       

       —카가가각!

       

       나와 몇 번 합을 나누자, 대남공의 태도(太刀)는 눈에 띄게 너덜너덜해졌고, 화려한 오오요로이 갑주도 벌써 군데군데 덜렁거렸다.

       

       ‘싸움이 길지는 않겠군.’

       

       나는 대남공의 칼을 막아내고 유효타를 먹이는 와중에 슬쩍 고개를 들어, 쓰레기장 구덩이 위의 둘레를 달리고 있는 홍옥례 쪽을 바라보았다. 

       

       나와는 달리, 홍옥례는 이렇다할 공격 수단이 없어서 줄곧 도망치고만 있었다. 나는 홍옥례에게 외쳤다. 

       

       “옥례! 동상의 주 재료는 구리야!” 

       

       내가 그렇게 말하자, 포니테일을 휘날리며 달리던 홍옥례가 외치며 물었다.

       

       “구, 구리? 근데 그게 왜!” 

       “구리는 전기가 잘 통해! 겉이 구리로 되어있으니 전격이 제대로 먹힐 거야!”  

       

       내부장치가 다 타버리면, 기계는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내 말을 들은 홍옥례도 뭔가 깨달았다는 듯, 

       

       —촤아악!

       

       몸을 숙이고는 드리프트하듯 미끄러지며 방향을 180도 전환했다. 달려오는 소년 동상을 마주보는 구도. 홍옥례는 바로 소년 동상을 향해 지그재그로 달려가며,

       

       “이크, 에크……” 

       

       마주오던 소년 동상의 머리를 향해 발을 날렸다.

       

       “는질러차기!”

       

       는질러차기. 목표물을 타격하지 않고, 발을 가져다댄 뒤 강하게 밀쳐내는 택견 발기술. 홍옥례가 저런 기술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서는, 격투에 있어서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인 나로서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야, 저런 단단한 쇳덩이를 함부로 찼다가는 제 발만 다칠 테니까. 발이 청동의 머리에 닿는 그 찰나, 홍옥례는 이어서 외쳤다.

       

       “그리고…… 전격!”

       

       그와 동시에 소년 동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 홍옥례는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어? 부, 분명 전격을 방출했는데? 어?”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나 역시 영문을 몰라서 의아해했다가, 뒤늦게 깨달았다.  

       

       ‘홍옥례 얘 지금, 고무타이즈수트를 입고 있었지.’ 

       

       고무타이즈수트의 재질은 고무와 슬라임의 합성물질. 고무의 특성 덕분에,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 

       

       그게 홍옥례의 몸 전체를 감싸고 있었으니,  홍옥례가 발 끝으로 방출한 전기가 바깥으로 전달되지 못한 것이다. 

       

       아니, 내가 이걸 생각 못 했네. 미안하다, 옥례야. 다신 너한테 그거 안 입힐게.

       

       “꺄악! 살려 줘! 백 동지!” 

       

       다시 도망치기 시작한 홍옥례에게 나는 외쳤다. 

       

       “조금만 더 버텨! 곧 갈테니까!”

       

       나는 다시 눈 앞의 대남공에 집중했다. 대남공은 갑주는 너덜너덜한데다 투구도 날아가 버렸고, 머리통도 반쯤 깨져 있었다.

       

       여기까지 몰아붙이는 것은 손쉬웠지만, 그럼에도 움직임이 멈추거나 느려지지는 않은 채, 이빨이 나가고 휘어진 대태도를 휘둘러오기를 멈추지 않았다.

       

       ‘끈질기네. 어디가 약점이지?’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관절 부위는 오히려 내부 부속이 강철로 되어있어, 

       

       나는 놈의 공격을 흘려내며 놈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관절 사이로 드러난 금속 뼈대와 톱니바퀴는, 몇달 전 실버-사무라이로 부활했었던 아오끼 소좌의 의체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움직이는 동력은……

       

       -카가각! 

       

       나는 놈의 가슴팍을 베었다. 가슴팍의 청동 장갑이 떨어져나가자 금속 갈빗대 안에 있는 기계장치가 드러났고, 사람이라면 심장이 있을 법한 위치에 심어진 마석이 보였다. 아마도, 마석 전지에 의한 마력이 동력원이리라. 

       

       ‘대동아공영회 놈들, 별걸 다 만드네.’

       

       이제 와서 신기할 것은 없기는 했다. 기술적으로는 아오끼 소좌로 사이보그도 만들 정도였으니 마석으로 움직이는 로봇을 못 만들 이유도 없겠지. 

       

       ‘마무리!’

       

       나는 놈의 금속 갈빗대 사이로 칼을 찔러넣었다. 마석이 깨져나가고, 동시에 놈은 힘을 잃고 추욱 늘어져  무릎을 꿇었다. 

       

       “후우……”

       

       나는 빗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세수하듯 쓸어내리고 홍옥례 쪽을 바라보았다. 본래부터 체력이 뛰어난 애라서 소년 동상의 투척 공격을 잘 피하며 도망치고는 있었지만, 벌써 몇 바퀴나 돌았으니 체력적으로 지쳐가고 있을 터. 

       

       “백 동지이이이이!”

       “지금 갈게!”

       

       나는 홍옥례를 도우러 가기 위해, 대남공 동상의 가슴에 박힌 칼을 뽑기 위해 칼자루를 쥐었다. 

        

       그런데,

       

       —꿈틀! 

       

       완전히 무력화되었을 대남공 동상이, 미약하게 움직였다. 착각이 아니라, 분명 고개가 올라가고 팔이 움직였다. 

       

       마석과는 별도의 동력원이 있는 건가? 

       

       ‘설마……’

       

       나는 뭔가를 떠올렸다. 마석 이외에도, 이런 기계장치나 ‘인형’따위를 움직이게 만들어주는 무언가가. 현재의 과학 기술로도 측정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고,

       

       그리고, 불길한 예상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 한편 더 올라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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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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