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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2

       “응? 언니, 표정이 별로 안 좋은데? 어디 아파?”

        

       “…….”

        

       아니,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끝까지 숨길— 아니,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딱히 숨긴 적은 없다.

        

       그렇다. 나는 숨긴 적 없다. 숨기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애초에 그렇게 유명하지도 않은 마이너 갤러리에서 고닉으로 명성이 조금 있다고 하더라도 인터넷의 모두가 알 만큼 대단한 명성일 수는 없다. 당장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아무리 유명해도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지 않는가.

        

       게다가 무슨 창작 같은 것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일어 원서를 사다가 일부 정보를 번역해 올리거나, 잡지 인터뷰를 번역해 올리거나, 한글판이 나오기 전에 대사집을 만들어 올린다거나……. 내가 유명한 부분은 딱 그뿐이지, 나의 닉네임을 외웠던 사람은—

        

       —그래, 물론 있기야 하겠지. 지금 클레어가 나에게 보여준 글에서처럼.

        

       “……조금 으슬으슬한 게, 몸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가 조금 바뀌었다.

        

       그렇다.

        

       숨길 생각이 없었다고 해서 숨기지 않을 생각이었다는 소리는 아니다. 나도 이 소리가 정확히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만, 아무튼 마음이 바뀌었다는 소리다. 상황이 바뀌었으니 당연히 가정도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애초에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딱히 말해줄 생각도 없었으므로, 누군가가 나도 모르게 그 흑역사를 찾아오면 당연히 나도 숨길 생각을 당연히 하게 된다.

        

       아니 그보다, 애초에 내가 저런 이야기를 썼을 때 저 애들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 ‘캐릭터’였을 뿐이므로 딱히 흑역사랄 것도 없다.

        

       친구한테 들켜도 신경 쓸 애는 같이 그 게임을 하는 한 사람뿐이었고, 그나마도 딱히 커뮤니티까지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오늘은 밖에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는데? 언니 오전까지는 괜찮았잖아.”

        

       물론 그런 말을 하며 나를 보는 클레어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애초에 말 자체도 딱히 탓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어째서 아픈지 정확하게 알아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일단은 누워있어. 침대로 데려다줄까?”

        

       “…….”

        

       실제로는 전혀 아프지 않은데 이런 반응을 보이니 죄책감이 굉장히 심했다.

        

       “뭐야?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별로 아프지도 않은 내가 클레어의 부축을 받아 일어나자 —사실 내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클레어가 멋대로 부축한 것이긴 하지만— 앨리스가 깜짝 놀라 물었다.

        

       “언니가 아프대. 몸살이라나 봐.”

        

       “몸살? 오늘 어디 안 나갔었잖아.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앨리스가 극히 타당한 말을 했다. 클레어가 했던 말이랑 똑같네.

        

       그렇지. 보통은 집에 있는다고 몸살이 나지는 않지. 내가 그렇게까지 활동적인 성격도 아니고.

        

       클레어와 앨리스가 그렇게 말하자 샤를로트와 미아도 당연히 반응했다.

        

       “실비아가 아프다고요?”

        

       “어디가 아프신가요? 마법을……아, 여기선 안되는구나.”

        

       아니, 너희는 그냥 하던 거 해도 되는데.

        

       그보다 아프지도 않은데 부축을 두 사람씩이나 할 필요가 없는데.

        

       애초에 몸살이라는 게 그렇게 엄청나게 큰일은 아니잖아. 본인이야 좀 고통스럽더라도 걸어 다니지 못할 정도인 건 아닐 텐데?

        

       “오늘 먹은 것에 문제가 있는 걸까?”

        

       “하지만 그랬다면 우리 모두 다 아팠을 거야.”

        

       클레어와 앨리스가 이야기하는데 그사이에 끼어있는 것이 몹시 괴로웠다.

        

       그렇다. 사실 쪽팔려서 괴로웠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꾀병까지 부리게 되었으니까.

        

       ……시간을 돌리는 것을 잊어버린 이후로 오늘만큼 그 능력이 절실하게 느껴졌던 적이 없다.

        

       “…….”

        

       그렇게 본의 아니게 나는 우리 방 가운데 있는 내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상황에 부닥쳤다.

        

       이마에는 이미 물에 젖은 수건이 올라갔다. 안타깝게도 상비약은 챙겨둔 것이 없었으므로 내가 약을 먹지는 못했다.

        

       ……그런데 아프지도 않으면서 감기약 같은 거 먹어도 되는 건가?

        

       아니 그보다, 왜 나를 눕혀놓고 다들 이 방에서 나가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방에는 책상 세 개와 침대 세 개, 그리고 옷장이 들어와 있어서 그렇게 여유가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바닥에 사람이 앉을 공간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을 텐데.

        

       아이들은 나와 클레어의 침대 사이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거 이 상태가 그냥 버릇이 되어버린 걸까?

        

       “그런데, 아까 보던 글이 뭐였는데?”

        

       앨리스가 조금 관심이 간다는 듯 클레어에게 물었다.

        

       클레어는 앨리스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면서 대답했다.

        

       “응. 우리가 있던 세상은 이쪽 세계에서는 게임으로 알려진 세상이잖아? 당연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팬이나 매니아도 있었나 봐. 그리고 여기 이 사람은 오래전부터 관련 모임에 있으면서 이런저런 추측성 글을 쓰던 사람.”

        

       모임 아니고 커뮤니티다.

        

       나는 이용자들 얼굴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그런 거 친목질이라 글이라도 올렸다가는 바로 잘라버렸을걸.

        

       시도해봐서 알고 있다.

        

       그리고 추측성 글만 썼던 것도 아니야! 나는 나름대로 도움 되는 팁도 많이 썼다고! 몇 번이고 정지당했지만, 영구퇴출만은 면했던 게 그것 때문이었는데!

        

       물론 나중에는 번역기 때문에 자리가 위태위태해져서 번역기도 까다가 또 정지당하였지만!

        

       “난감할 정도로 죄다 틀렸네. 특히…… 이거 뭐야? 내 가슴 사이즈? 아니, 그런 걸 예상해본 거야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여자의 속옷 사이즈에 대해서 너무 무지한 거 아니야?”

        

       귀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내가 쓴 글이라는 걸 들킬 것 같아서 이 악물고 무시했다.

        

       “그리고 저한테는 숨겨진 형제 같은 건 없었는데요. 그랬다면 아버지가 굳이 저를 후계자로 앉힐 이유가 없었겠죠.”

        

       샤를로트가 말했다.

        

       아니, 원래 그런 설정은 이런 게임에서는 흔하잖아? 그래서 새로운 등장인물로 그런 사람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저에 대한 추측은 거의 없어서 다행이네요.”

        

       아, 그건 안심했다. 그러고 보니 미아에 대한 글은 많이 쓰지는 않았었네.

        

       사실 그쪽으로 추측했다면 클레어의 이야기로 넘어가게 되니까.

        

       피규어를 살까 말까 진지하게 고민했던 캐릭터였으니 당연히 누가 헐뜯는 것도 싫어했는데, 보통 이런 게임 팬층 중 일부는 그런 과거를 가진 캐릭터를 욕할 때 레퍼토리가 있었다.

        

       클레어가 미아의 아버지를 죽였고, 그 이유가 꽤 확실했다는 것만 게임에서 암시되긴 했지만, 나는 내가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 인간이 죽어 마땅한 인간인지 판단하는 걸 망설이고 있었으니까.

        

       결과적으로는 죽이는 쪽으로 가긴 했지만.

        

       “……그런데 이런 글은 있어. ‘클레어가 처녀인 이유’.”

        

       “…….”

        

       “이건 좀…… 그렇네요.”

        

       클레어의 말을 들은 샤를로트가 미간을 찡그렸다.

        

       “뭔가 좀, 좋아한다는 건 알겠는데, 어, 좀 그렇네, 응.”

        

       앨리스는 뭐라고 판단해야 할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솔직히 좀 소름 끼치지 않나요?”

        

       미아가 딱 잘라 말했다.

        

       나의 가슴에는 그 모든 것이 비수가 되어서 날아와 박혔다.

        

       아니, 그러니까.

        

       그때는 얘네들이 진짜 게임 캐릭터일 뿐이었다니까. 세상 누가 게임 캐릭터 얘기하는데 무슨 인권을 논하겠냐고.

        

       “여러모로 시간을 많이 낭비하던 사람—”

        

       “—아닙니다.”

        

       아.

        

       저질러버렸다.

        

       앨리스의 말에 나도 모르게 반박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것만큼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공략을 쓰기도 하고, 정보를 번역해서 나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보여도 사람들은 그 사람의 글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을 겁니다.”

        

       내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렇게 말하는 걸, 아이들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

        

       “그리고, 그 공략이니 번역이니 하는 것들은 생각보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무런 능력도 없이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십니까? 그리고 공짜로 번역하는 것이니 당연히 이런저런 사견을 넣는 유희정도는 해도 되는 것이지요. 애초에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오역이니 뭐니 하며 따지는 사람이 웃기지 않습니까? 본인 실력이 더 좋다고 생각하면 직접 번역을—”

        

       “어, 언니.”

        

       클레어가 몹시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 이 사람이 언니야? 언니라서 그렇게 화가 난 거야?”

        

       “…….”

        

       털썩.

        

       나는 그대로 침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몸을 웅크렸다.

        

       “언니, 언니!? 잠깐만, 미안해!”

        

       “그, 미, 미안! 나는 네가 쓴 것인 줄도 모르고……!”

        

       “실비아가 이쪽 출신이었다는 걸 착각하고 있었어요!”

        

       “……혹시 아픈 이유가 이거 때문이었어요?”

        

       제일 마지막의 미아의 질문이 유독 아팠다.

        

       “언니, 걱정하지 마. 언니는 우리가 캐릭터라고 생각했던 거잖아. 실제로 쓴 것도 내가 아니라 나랑 똑같은 캐릭터를 보고 쓴 거고. 응, 실제로 만날 거라고 생각했으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지.”

        

       ……아아, 상냥한 말이었다.

        

       그래, 그렇다. 나는 클레어나 앨리스를 대상으로 그렇고 그런 글을 쓴 것이 아니다. 내가 보아왔던 캐릭터에 대한 감상을 조금 적었을 뿐이다.

        

       그러니—

        

       나는 이불 밖으로 얼굴을 살짝 내밀었다.

        

       거기엔 활짝 웃는 클레어가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글을 쓴 김에, 언니가 직접 이것 좀 읽어주면 안 될까?”

        

       [클레어야말로 아제르나 전기에서 가장 고결하고 깨끗한 캐릭터이며 이걸 반박하는 주장은 모두 틀렸다.]

        

       내가 쓴 클레어 처녀론의 마지막 문장이었다.

        

       “…….”

        

       나는 잠깐 그 글을 보고 있다가, 다시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약 십 분 정도 이불이 해져라 허공에 발길질을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KYYY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 여러분 덕분에 본편을 완결내고도 이렇게 쓰고 싶은 내용을 마음껏 쓰고 있습니다. 외전을 쓰는 것은 뭔가 아주 긴 후기를 쓰는 것 같아 마음도 편하고 기분이 좋네요. 이 글을 여러분이 좋아해주셔서 너무나 다행입니다. 글을 쓸 때 역시 가장 좋은 부분은 저의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글을 계속 쓰고 싶고, 앞으로 다음 작품도 쓰고 싶고, 자꾸 새로운 줄거리가 머리에 떠오르는 거니까요. 종종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지만, 그럴때마다 여러분께서 주시는 관심 덕분에 이렇게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을 위한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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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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