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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2

    식사가 끝나면 언제나 그렇듯 설거지가 이어진다.

    헌데 오늘의 부엌에는 두명의 그림자가 있었다.

    다이튼과 예르나였다.

    결혼을 하고 나서 둘은 이렇게 종종 함께 설거지를 하곤 했다.

    평소라면 지루하고 귀찮기만 한 설거지라도 둘이서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을 움직이면 꽤 즐거운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간도 꽤 단축되고 말이다.

    -달그락, 달그락.

    “오늘은 설거지가 별로 없네. 금방 끝나겠어.”

    다이튼이 접시에 수세미를 문질러 예르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촤아악-, 타닥.

    예르나는 그 거품 묻은 접시를 건네받아 물에 씻어내린 뒤, 물기를 닦아 찬장에 올려둠과 동시에 말을 받는다.

    “그러네, 최근엔 루크가 그렇게까지 많이 먹지 않아서 그런가봐.”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규격 외로 많은 식사를 하는 파이리스와 동등한 수준으로 식사를 했으니 말이다.

    파이리스야 정령이라서 그런지 그 많은 음식이 다 어디로 사라지는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식사량이 원체 남다른 수준이었다지만, 루크는 원래 그 정도 까지는 아니었으니까.

    아이의 갑작스러운 식사량 변화는 걱정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뭔가 고민이 있나 싶어 이유를 물어봐도 루크는 그저 ‘요즘 묘하게 먹는 게 땡긴다’ 하고 말 뿐이라, 그냥 그러려니 했을 뿐이었다.

    그래도 역시 너무 많이 먹는다 싶기는 하지만, 루크가 만든 인형들도 식사 준비를 돕는데다 식비도 루크가 상금이나 장학금 받은 것들이 있어서 부담은 되지 않으니까.

    다만, 다이튼이 루크에게 ‘갑자기 막 식욕이 돈다고? 너 혹시…?’ 따위의 장난을 치는 바람에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을 뿐.

    그런데, 그렇게 10인분 이상의 식사를 하던 아이의 식사량이 오늘은 또 갑자기 평범했던 2인분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니 걱정이 될 수밖에.

    “그런데 이번엔 또 갑자기 무슨 일이지?”

    “글쎄…….”

    그러나 백날 어른들이 생각해 봤자, 아이의 생각을 알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것도, 티그 아카데미의 졸업장을 일년만에 따낸 천재 소녀의 머릿속을 기껏해야 범인에 불과한 자신들이 대체 어떻게 알아내겠는가.

    결국 처음 예상했던 것처럼 설거지는 금방 끝났다.

    젖은 손을 수건에 닦고 있으니, 어느새 루크가 자신의 방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엄마, 겨울에 밖에서 입을 옷이 필요해요. 옷가게에 가죠.”

    루크의 말에 예르나는 퍼뜩 깨달은 양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네. 그러고보니 저번에 산 옷 들은 다 못 입게 되었겠구나.”

    저번 겨울에 루크에게 겨울 옷을 잔뜩 사서 주었던 기억이 있어서 미처 떠올리질 못하고 있었는데, 지금의 루크는 저번의 루크랑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자랐다.

    그래서 결국 루크에게 사주었던 옷들은 몇번 입어보지도 못한 채 전부 파이리스와 디아나의 차지가 되었고, 정작 루크의 겨울 옷은 공백인 상태였다.

    뭐, 요즘 날씨가 쌀쌀해지기는 했지.

    평소에 입는 옷으로는 추울 수도 있겠다.

    “그래, 사러 가자. 나갈 준비 하고 있어? 엄마는 차에 시동 걸어 둘 테니까.”

    “네!”

    그렇게 대꾸하며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는 루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예르나와 다이튼은 잠시 후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보니까, 옷 새로 사려고 다이어트 하나 봐.”

    “응, 그런가봐.”

    최근 갑자기 식사량이 줄어든 건 역시 옷 때문이었나?

    뭐, 그래도 루크는 여자애니까 그런 건 신경이 쓰이겠지.

    그런데 루크는 그렇게 먹어도 별로 살이 찌는 것 같지는 않던데…….

    폭식을 한 기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아서 그런가?

    뭐, 무리한 다이어트만 아니라면야.

    —–

    지금으로부터 몇 주 전, 루크는 리엔느 숲의 한 시설에서 ‘루체스트’라는 실마리를 얻게 된 이후로 꾸준히 루체스트라는 기업에 대해 자료를 모으고 있었다.

    대체 그런 기업이 왜 마계화된 ‘데이그란트’에 발을 들였는지가 굉장히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뭐, 자료라고 해 봤자 지금의 루크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컴퓨터의 텔레파시 네트워크를 이용해 루체스트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긁어 모으는 것 정도에 불과했지만.

    루체스트, 다국적 의료기업.

    정말 다양한 약물을 개발하고, 또 유통 중에 있는 꽤 커다란 기업체다.

    그들은 단순한 감기약에서부터 시작해서, 각종 희귀 불치병의 치료제 개발연구, 심지어는 마나 심축적 증후군 환자들을 위한 감정 억제제에까지 손을 대고 있었다. 

    그 뿐 아니라 드래곤 하트를 의료에 사용하는 것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고, 그들에게 투자하거나 지원하는 가문의 수도 상당하다.

    생각보다 규모도 크고, 권력 또한 있어 보이는 곳이었다.

    그러나 하루를 꼬박 써서 네트워크를 뒤져봐도 얻어낸 정보는 그게 전부.

    그 이상의 정보는 아무리 더 찾아보려 해도 쓸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실망은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검색에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으니까.

    기업이 멍청한 게 아니라면 애초에 이런 공개된 곳에 중요한 정보를 풀어놓을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정보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루체스트 쪽 인원과 접촉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도, 기업 내에 꽤나 높은 위치에 있는 인원을…….

    그래도, 검색을 이용해서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는 가닥이 잡혔다.

    ‘루체스트가 다음 주에 리엔느 숲 근처의 건물 회의장에서 사업설명회를 한다고 했지…….’

    하지만 사업설명회는 투자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

    그야, 이건 투자자를 위한 사업설명회니까.

    그렇다고 지금 루크가 가진 돈을 모조리 투자한다고 해도 사업설명회에 초청될 수 있는 수준의 투자자가 될 수 있을 리도 없고, 설사 자신에게 그 만한 투자금액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이미 너무 늦었다.

    그러나, 건물 자체가 완전히 출입이 금지된 것은 아니었다.

    보아하니 사업 설명회와 동시에 산업 전시회도 함께 열리는 모양이라, 오가는 사람자체는 꽤 많을 예정이었다.

    그러면 기회를 봐서 얼마든지 인파에 섞여 잠입할 수도 있겠지.

    허나 그러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의상이 필요한 법.

    자신의 얇은 옷은 일전에도 유미르의 아버지인 드워프 호미르에게도 지적을 받았던 만큼, 요즘의 날씨에는 눈길을 꽤 끈다.

    하긴, 다른 사람들은 지금 모두 코트에 목도리까지 두를 정도로 쌀쌀한 날씨다.

    그런데 혼자서 따뜻한 봄날에 입을 법 한 얇은 옷을 입고 있으니, 이상한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지.

    따라서, 루크에게는 인파에 섞여들 수 있을 법한 두꺼운 의상이 필요했다.

    하지만 기존의 겨울 옷은 전부 못 입게 되어버렸으니, 새로 사야 하는 수밖에.

    물론 네트워크를 이용하면 옷을 구매하는 것 정도는 쉽다.

    냉장고도 조작 몇번이면 다음날 집 앞으로 가져다주는 세상인데, 옷이라고 안 될까?

    물건의 품질도 처음에야 못 미더웠지만 몇 번 구매에 익숙해지고 나니 신뢰도도 쌓였겠다, 이제는 자신의 신체 사이즈도 대충 알겠다, 네트워크로 구매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시간도 절약되고, 간편하니까.

    하지만, 아무래도 옷은 몸에 걸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보니 육안으로 보지도 않고 구매한다는 것이 조금 꺼려진다.

    게다가, 막상 구매하고 입어봤는데 몸에 잘 맞지 않거나 어색하면 어쩌나?

    받아봤는데 조그만 인챈트 하나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품질이 조악하면?

    마도기기를 구매할 때와는 달리, 옷에는 그런 사양표가 붙어서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럼 그 때는 그것을 돌려보내는 것도 시간이고 노력이다.

    굳이 그런 낭비를 하느니, 직접 현장에서 입어보고 결정하는 것이 낫지.

    루크가 그렇게 예르나에게 이야기를 해서 도착한 곳은 꽤나 규모가 있어 보이는 옷 가게.

    원하는 옷이라면 뭐든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곳이었다.

    루크는 그렇다고 해도 굳이 너무 비싼 옷을 구매할 생각은 없었다.

    루크에게 중요한 건 인파에 쉽게 녹아들 수 있는 정도의 몰개성함이었고, 추가적으로는 자신의 각종 인챈트를 버텨낼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고 마법적인 구조가 안정적이기만 한 물건이면 족했다.

    따라서 루크가 눈을 돌린 쪽은 ‘특가 세일!’이라 적힌 옷의 뭉텅이.

    루크는 그 속에 손을 넣어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딱 적당해 보이는 케이프를 발견했다.

    “호오-. 이건…….”

    커다란 후드가 달린 롱 케이프였다.

    과거에도 여행중에 이런 의상을 곧잘 입고는 했지.

    루크는 잠시 추억에 잠겼다.

    케이프는 여러가지 면에서 좋았다.

    일단 입고 벗기 간편하며, 몸이 어느정도 자라도 문제없이 입을 수 있는데다, 방한이 뛰어나 사실상 이불을 덮고 움직이는 것과 다름이 없어 몸이 따듯하다.

    어디 그 뿐인가? 

    실전적으로는 손을 케이프 안쪽으로 숨겨서 상대방에게 기습을 하는 데에도 용의하며, 바닥에 펼쳐서 돗자리로 쓰거나, 노숙시엔 이불로 사용하기에도 편리하다.

    게다가 이렇게 커다란 후드가 있으면 얼굴을 가릴 수 있어서 신분을 감추는 데에도 아주 용이하다.

    케이프는 이토록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장점이 존재하는 의복이었다.

    게다가, 꽤나 튼튼한 재질로 만들어진 것인지 다양한 인챈트도 버텨낼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으흠-.”

    어깨에 살짝 걸쳐 보니, 어김없이 익숙한 착용감이 몸을 감싼다.

    후드 역시 잡아내려보니 적당히 시야가 가리는 것이, 위에서 본다면 별다른 마법적 조치 없이 이렇게만 하더라도 얼굴이 절대 노출되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후드 자체가 크고 폭이 넓어서 귀도 편하다.

    “어디…….”

    루크는 그렇게 롱 케이프를 뒤집어쓴 채로 어색한 부분은 없는 지 제 모습을 거울에 몸을 비춰 보았다.

    거울 앞에서 한바퀴를 돌아보아도 별달리 어색하거나 이상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익숙한 느낌으로 옛날에 동료들과 함께 여행을 하던 모습이 떠올라서 좋다.

    “후후, 좋아. 하나 건졌군.”

    그렇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케이프를 정리하고 있을 때, 뒤늦게 주차를 마치고 돌아온 예르나는 루크의 모습을 보며 당황했다.

    맙소사, 후드 달린 케이프라니. 

    그런 건 옛날 숲지기들이나 입던 옷이었다.

    아니면, 패션에 관심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할아버지들이나.

    그러니까 여러모로, 루크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었다.

    “어, 루크. 너 설마 그거 사려고?”

    “아, 네. 이거 괜찮지 않나요?”

    예르나는 루크의 웃는 표정을 본 순간 우리 루크라면 뭘 입든 귀엽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역시 이건 아니었다.

    말을 해 줄 수밖에 없다.

    “아니, 괜찮긴 하지만…….”

    “무슨 문제가 있어요? 옛날 마법사들도 종종 이렇게 입었어요.”

    확실히, 옛날 마법사들이 그런 옷을 입곤 했다지.

    루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예르나가 볼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그건 유행에 한참 뒤쳐진 거라서, 요즘 그런 건 시골에 나이 많은 사람들만 입거든. 그래서 나는 우리 루가 그런 걸 좋아한다고 해서 조금 놀랐네.”

    “……네? 이게, 촌구석 늙은이들이나 입는 옷이라구요?”

    ‘나이 많은 사람이나 입는, 시대에 뒤떨어진 의상’이라는 말에 루크는 몸을 굳히고 말았다.

    어쩐지, 요즘에 이런 걸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몇 보이지 않는다 싶었다.

    “어……. 그치만 루, 네가 꼭 사고 싶다면야 상관은 없지.”

    “……아뇨.”

    뭐, 자신은 실제로 나이가 많고 시대에 뒤떨어진 늙은이 이기는 한데, 남들에게 이 몸은 그렇게 보이지 않으니까…….

    루크는 입고 있던 롱 케이프를 벗어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밖에서 입으려면 유행하는 걸로 다시 골라야죠.”

    눈에 띄지 않으려면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죄송합니다, 우리 루크 겨울옷 뭐 입히나 고민하다가 시간이 너무 소모되고 말았습니다…ㅠㅠ

    Ps. 커다란 후드 달린 케이프는 사실 꽃무늬 몸빼바지 같은 포지션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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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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