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412

       

        

        

        

        

        

       “유달리 비가 오는 날이 많군요.”

        

       “이런 날에는 작전 효율이 하락합니다. 이런 날씨는 작전 구역의 기온을 상당히 떨어뜨릴 겁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런 사소한 사항에 영향을 받지 않는 존재가 두 명이나 있죠. ”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추적추적 내린다는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굵은 빗방울이 쇼핑몰을 포함한 근방을 남김없이 적시고 있었다. 이미 주변은 물바다였다. 고랑은 작은 강이 되어 흙탕물이 이동하는 길이 되었고, 곳곳은 물웅덩이로 가득했다.

        

        반쯤 부서진 도로 틈새에서 자라나고 있는 잡초를 익사시키려는 듯 쏟아지는 빗물 위로 군홧발과 기계 발이 이동 중이었다. 빗소리로도 묻을 수 없는 콩 볶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고, 이따금씩 거대한 폭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아마 탱크일 것이었다.

        

        머잖아 파편으로 화할 예정이긴 했지만.

        

        

        

       “쇼핑몰 내부에서는 특이한 에너지 흐름이 감지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동형기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요 네 번 가량의 교전을 통해 확인해본 결과 아르테미스의 전력 손실이 격화되는 즈음 출현하더군요. 그렇다면 이번에도 비슷한 과정을 겪을 즈음, 혹은 그보다 조금 더 앞서서 등장하겠죠.”

        

       “요는 나오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때까지 주변을 두들기면 나온다는 뜻이로군요.”

        

       “정답.”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해당 행위를 대개 ‘인디언식 기우제’라고 칭하는 것 같습니다.”

        

        

        

        …얘가 요즘은 팩트폭력도 할 줄 알고.

        

        아무튼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원래 세상 일들은 그만큼 단순한 법이었고, 교전 논리 역시 깊게 파들어가게 되면 생각보다 간단한 이치가 많았다.

        

        좌우지간 여태까지 판단한 바에 따르면, 우리가 접촉을 시도하는 개체의 주요 목적은 아르테미스 전력이 안전하게 퇴각하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적들을 신명나게 두들기는 순간 저쪽은 나와 진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고, 우리가 임시로 ‘레인’이라고 명명한 해당 기체는 이쪽을 막기 위해서라도 나타날 터였다.

        

        그것과는 별개로, 레인이라고 명명한 이유는 별 건 아니었다. 처음으로 만난 날이 비가 오는 날이었기에 그리 부른 것이었다.

        

        

        

       ‘비슷한 논리대로라면 진에게는 다른 이름을 붙여줘야할지도 모르지만…아무래도 날씨와 관련된 작명보다는 진이라는 이름이 더 예쁘기도 하고.’

        

        

        

        내 데이터로 만들어진 기체에게 지어줄 이름을 고민하는 때가 오다니, 실로 말세 아닌 말세였다.

        

        좌우지간 그리 생각하며 엄폐물과 엄폐물 사이로 이동. 그리고는 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아쉽게도 여기는 이카루스의 날개 아래에서 싸웠을 때처럼 주변을 적당히 스캔하면 적의 위치를 표기해주는 최첨단 전자-쌍안경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내게는 진이 있었다.

        

        

        

       “옥상에 기관총 진지가 있습니다. 주변 곳곳에는 초소와 망루가 있고, 이들 전부에 일종의…능동 방어막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쇼핑몰 인근을 완전히 둘러싼 두터운 벽과 철조망 역시 진입에 방해가 될 것입니다.”

        

       “흐음.”

        

        

        

        어쩌면 이번에는 꽤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리 생각하며 주변을 이리저리 관찰했다.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흙더미 같은 걸 쌓아 만든 것도 아니고 콘크리트와 철근을 엮어 양생한 듯한 블럭을 켜켜이 쌓은 곳도 부지기수였고, 컨테이너나 열차 플랫폼을 그대로 떼어와 벽을 구축한 곳도 있었다.

        

        이런 곳은 함부로 뚫고 들어가면 상당히 곤란할 확률이 높았기에 이리저리 관찰하고 있는 찰나, 한 입구가 보였다. 문은 상시로 열려있었다. 해당 위치는 아까부터 보였고, 인원 뿐만이 아니라 트럭 역시도 꽤나 자주 드나드는 곳이기도 했다.

        

        일부러 저렇게 해놓은 거라면 실로 먹음직스러운 함정이었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트럭이 대략 2분에 한 번 정도 오갔던 걸로 기억하는데, 약간의 사전 손질 작업이 필요할 것 같네요.”

        

       “해당 출입문을 통해 잠입할 생각입니까?”

        

       “물론이지요. 고전적인 수법이지만 몇 가지 트릭을 섞는다면 그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거든요.”

        

        

        

        똘망똘망해진 진을 앞에 둔 채 설명을 이어나갔다.

        

        아키타입이 이번엔 또 무슨 창의적인 발상을 내놓으려나 싶은 듯한 표정이었다.

        

        여하간 방법론은 상당히 간단했다 – 아주 기초적인 틀은 ‘트럭의 뒷편에 타서 잠입한다’였다. 그러나 아까도 말했듯 여기다 몇 가지 트릭을 섞을 예정이었다. 단순히 트럭 짐칸에 타서 잠입하게 되면 발각되기 쉬우니, 당연히 디스트랙션을 조금 가미해줘야만 했다.

        

        가령…우리가 타고 있는 트럭이 아니라 다른 트럭을 폭파시킨다든지.

        

        

        

       “최대한 견고하게 제작한다고 했을 때 플라즈마 셸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나요?”

        

       “3분입니다. 물론 원격으로 폭발시킬 수도 있으니 반드시 시간을 빡빡하게 유지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실로 좋군요. 그렇다면 슬슬 트럭이 지나다니는 길에 매복을 해봅시다.”

        

        

        

        그렇게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이동을 시작했다.

        

        트럭의 짐칸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당연하게도 몇 가지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 첫 번째로는 속도를 늦춰야만 했고, 이는 트럭이 오가는 길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으로 간단히 해결되었다. 진이 만들어낸 플라즈마 셸을 도로 곳곳의 균열 사이에 박아놓으면 금방 큼지막한 구멍이 생겼다.

        

        그리고 두 번째로, 트럭의 사이드미러를 부숴서 혹시나 모를 발각을 방지하는 것이었는데…이는 실로 다행스럽게도 대거 팀이 상당히 많이 도와줄 예정이었다.

        

        

        그리하여 얼마나 지났을까, 아르테미스치고는 상당히 조잡하게 생긴 트럭 3대가 하나의 행렬을 이루어 이쪽을 향해 비교적 느릿느릿한 속도로 달려오-나 싶었더니, 대거 팀의 사격이 이어짐에 따라 조금 더 속도를 급하게 내었다.

        

        어느 쪽이라고 할 것 없이 사이드미러가 완전히 박살난 상태. 심지어 앞유리에도 몇 발 정도 쐈는지 시야가 실로 엉망진창 그 자체일 것 같은 트럭도 한 대 가량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마주해야만 하는 것은 곳곳에 울퉁불퉁한 구멍이 난 비포장도로였다.

        

        속도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가운데 트럭이 지나간다.

        

        

        

       “플라즈마 셀.”

        

       “여기 있습니다.”

        

        

        

        급격하게 느려진 트럭 세 대가 반쯤 멈춰선 시점.

        

        트럭 자체의 전고가 높았기에 몸을 숙여서 가게 되면 운전석의 시야에서는 이쪽이 보이지 않았고, 그리하여 맨 뒤에 있는 트럭에 은엄폐한 채 중간에 위치한 트럭의 틈새 사이에 플라즈마 셀을 끼워넣었고, 그 사이 진은 짐칸을 가리는 천막을 블레이드로 해체하는 중이었다.

        

        다행히도 빗소리와 교전음으로 인해 탑승 시의 소음과 진동은 대부분 가려졌다. 비가 오는 날은 나름의 어드밴티지가 있는 법이었다.

        

        그리하여 트럭은 10초도 지나지 않아 출발을 시작했고,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즈음 기지 안으로 그 몸을 들였다. 워낙 상황이 급박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별다른 검문조차 없었다.

        

        

        입구를 통과한 뒤 안으로 대략 50미터 가량 이동했을까, 나와 진은 주변을 빠르게 살핀 뒤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검문이 있을 줄 알고 트럭에다가 폭탄을 설치했던 것이었으나, 그렇지 않았단 점은 조금 아쉽긴 했지만 원래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아쉬움보다는 다행을 더 느껴야만 했다 – 그리하여 기지 안쪽으로 숨어들었을 즈음, 진이 입을 열었다.

        

        

        

       “곧 폭발합니다.”

        

        

        

        우리가 있는 지점에서부터 대략 140m 가량 떨어진 곳에서 화염이 일었다.

        

        재미있는 점을 꼽자면 폭발음이 한 박자 정도 늦게 들려왔다는 점이었는데, 아무래도 세 대의 트럭 중 최소 한 대 정도는 폭발물 같은 걸 싣고 있었나보다.

        

        그리하여 버려진 차량 뒤에서 상황을 확인했다. 수많은 적군이 폭발이 나타난 곳으로 와다다 뛰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저들은 나와 진의 먹잇감이 아니었다. 교전은 항상 좀 더 큰 영역을 보아야만 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저들의 신경이 다른 곳으로 쏠린 틈을 타, 우리는 요새 벽면과 초소, 망루 등을 방어하는 실드 제네레이터와 전력을 공급하는 기계를 전부 부술 예정이었다.

        

        해당 사실까지 전달한 뒤 총을 고쳐잡았고, 통신망을 열어 대거 팀을 호출했다.

        

        

        

       “기지 안쪽에서 난동을 좀 부리려고 하니, 바깥에서 이목을 좀 끌어주면 좋겠네요.”

        

        

        

        그리고 고작해야 15초 뒤, 타입 찰리로 추측되는 유탄이 기지의 실드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정신나간 화력, 그리고 그것을 눈속임용으로 쓴다는 비범한 발상에 혀를 내둘렀지만 이미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우리의 차례였고, 아르테미스는 슬슬 자신들이 어디까지 몰려있으며, 엔딩이 어떻게 될지도 짐작이 가능할 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협상안을 제출한 죗값을 치룰 시간이다.

        

        

        

       ───퍼억!

        

        

        

        기지 차단문을 열고 닫는 곳에서 근무 중이었던 적군이 비명 한 조각조차 지르지 못한 채 의자에서 넘어지는 것을 시작으로 난장판의 서막이 올라갔다.

        

        아르테미스라는 이름을 모든 종류의 문헌에서 지워버리기 위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왔구나.”

        

        

        

        끝없이 쏟아지는 폭우 속, 위태롭게 서있는 한 대형 건물 안.

        

        수많은 소리와 신호들이 전신을 간지럽힌다. 반쯤 부서진 천장을 타고 쇼핑몰 안으로 쏟아지는 빗물, 외부에서 들려오는 폭음과 굉음, 머리를 간지럽히는 듯한 명령, 하나둘씩 줄어드는 아군의 숫자, 그리고 지원을 가야만 하는 곳의 위치를 알리는 시그널까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한 방 안. 그 안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나타남과 동시에 두터운 방패를 든 기체가 문을 열고 나선다. 이전과는 다르게 어딘가 미묘한 표정이었으나, 쇼핑몰 내부에 상주 중인 아르테미스 병력들은 일절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얼굴을 자세히 확인한다면, 그것이 호승심도 무엇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쿠우웅!

        

        

        

        600kg에 달하는 거체가 2층에서부터 뛰어내려 1층으로 착지했다.

        

        바닥이 으깨지며 무수한 숫자의 파편이 튀어올랐고, 착지한 지점은 움푹하게 들어간 상태였다. 그러나 그 어떠한 피해도 받지 않은 그녀는 앞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었고, 이내 방패를 들어올리면서 어느샌가 눈 앞에 나타난 두 명을 시선에 담았다.

        

        수많은 상념이 스쳐지나갔다. 과연 아르테미스 병력들은 얼마나 퇴각했을까. 내가 너무 늦게 나온 것이 아닐까. 저들은 이번에는 무엇을 목표로 이곳에 나타난 것일까.

        

        눈 앞의 두 명과 마주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 현 시점도 카운트에 넣을 경우 다섯이 된다. 이제 한 손으로 간신히 다 셀 수 있는 숫자가 된 것이었다.

        

        그리 생각한 그녀 – 레인이 입을 열었다.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너희들이네. 그럴 것 같았어. 이곳을 뚫고 들어올 사람이라곤 그쪽밖에 없을 것 같았거든.”

        

       “한두 번도 아니고, 진즉 예상했겠죠. 그래서 오늘은 어떤 대답을 들려줄 건지?”

        

        

        

        기이잉.

        

        대답은 없었다.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간단하게 – 물론 레인은 태어나서 숨을 쉬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 꼬리를 들어올린다. 그리고 그 끝을 두 명에게 겨누었다. 그에 맞춰 동형기 역시도 어드밴스드 플라즈마 캐논을 그녀 자신에게 겨눈다. 초기 타입에 비해 진일보한 버전의 무기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트리거를 당길 생각은 없었다.

        

        근방에 있는 아르테미스 인원들은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 양립할 수 없는 이 두 세력의 대표 격인 이들이 벌이는 교전에 있어서 대화의 비중은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교전이 완전히 종료되었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퓨우웅!

        

        

        

        레인이 동력을 끌어올렸지만 언제나 진이 한 발자국 더욱 빨랐다.

        

        플라즈마가 날아들며 조준이 흔들린다. 그리하여 레일건은 이번에도 다른 곳을 겨누었다 – 설령 제때 발사했어도 아키타입을 맞추는 것은 무리였다. 그녀 자신의 센서도 제대로 잡지 못할 정도의 순간적인 기동 능력 때문이었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쇼핑몰 내부의 지형이 뒤바뀌었다. 벽면이 무너지다 못해 거대한 구멍이 생겼고, 파괴 지점 너머로 우중충한 하늘이 보였다. 레일건은 건물에 구멍을 뚫어버린 것이었다 – 그리고 레인은 발사와 동시에 반동을 이용해 반대쪽으로 날아갔다.

        

        방금까지 스스로가 있던 곳에 착탄한 플라즈마. 돌이 증기화될 정도의 화력이었다.

        

        동시에 대화가 이어졌다.

        

        

        

       “대답은 변하지 않아, 아키타입. 내가 아르테미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그에 대한 결과를 선택하는 건 너희가 아니야…!”

        

       “재미있군요. 그러나 이쪽의 입장은 확고해요. 필요하다면 우리는 이 근방을 통째로 삭제하더라도 아르테미스를 완전히 없애버릴 예정이니까요.”

        

       “하, 그게 최후 통첩이냐?”

        

        

        

        그러나 대답은 이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 다가온 것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속도로 접근한 아키타입이 돌기둥 뒤에 숨어있는 레인의 머리를 개머리판으로 강타했고, 그 순간 한쪽 안구가 깨진다. 반사적인 반격이 이어졌다. 때아닌 근접전이 벌어졌지만 아키타입은 놀라운 동체시력으로 해당 공격을 전부 피했다.

        

        그 순간 신체 전반을 훑은 불길한 직감. 그 순간 레인은 70kg에 달하는 탄도 방패를 전면에 내세웠고, 유진은 10발에 달하는 묠니르의 탄창 하나를 통째로 비웠다. 방패에 구멍이 조금씩 뚫리는 것을 보아 AP탄이 확실했다.

        

        반격하기도 전 날아드는 플라즈마. 아키타입과 진의 연계는 매 교전이 벌어질수록 견디기 힘들 정도로 견고하고 유기적으로 변해갔다.

        

        

        유진의 말이 이어졌다.

        

        

        

       “스스로도 무슨 답변을 내놓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군요. 결과를 선택하는 주체가 본인이라고 하는 건 흥미로운 답변이지만, 그건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뭐?”

        

       “‘아무런 것도 선택하지 못한다’라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는다면, 그땐 어쩔 예정인지.”

        

        

        

        아무런 것도 선택하지 못한다, 라는 선택지.

        

        레인은 아키타입의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게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아르테미스의 목에 드리워진 칼날은 시시각각 좁혀들고 있었고, 아키타입과 진은 그 첨병이자 첨단이었으니까.

        

        잠깐의 정적이 일었다. 입에 담고 싶은 질문이 몇 개나 생겨났지만,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주체이기도 한 이들에게 ‘왜 이렇게까지 이쪽을 공격하는가’에 대해 물어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 눈 앞에 있는 존재가 자신이 한때 전부라고 생각하던 아르테미스를 송두리째 파괴하고 있었음에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키타입, 그 뜻은…원형(原型).’

        

        

        

        그 말대로.

        

        이 자리에 존재하는 셋 중 두 명의 원형이 되는 존재인 유진, 그녀가 아르테미스를 공격한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간단했다 – 다시 말해 레인과 진은 본디 탄생조차 하지 말았어야만 하는 존재라는 소리였다.

        

        탄생시키지 말아야만 하는 것을 만들어낸 아르테미스에게 아키타입이 죗값을 묻는 것은 당연했다 – 다시 말해 ‘아무런 것도 선택하지 못한다’는 선택지는 유진이 아르테미스를 지상에서 지워버릴 예정임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이제 슬슬 느끼고 있을 텐데요. 여태까지 했던 모든 교전은 당신에겐 기회였어요. 진은 당신처럼 충분히 고심할 기회조차 없었죠.”

        

        

        

        그와 동시에 발사되는 레일건. 그러나 닿지 않았다.

        

        수십만 개의 파편이 쇼핑몰 내부를 휘돌았지만, 그 사이를 수많은 생각이 메웠다 – 그 말대로였다. 아키타입과 동형기는 진즉 자신을 산산조각낼 저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지금까지 자신을 3번이나 놓쳐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대답을 듣기를 원했던 거겠지.

        

        아르테미스를 배신하겠다는 바로 그 대답을.

        

        

        하지만 다음 순간 이어진 말이 그러한 착각 아닌 착각을 산산조각냈다.

        

        

        

       “당신의 협조 여부에 상관없이 아르테미스는 최대 2주일 안에 지도 상에서 완전히 지워질 겁니다. 지금의 대화는 추후 그쪽의 생존 여부 결정을 제외한다면 그 어떠한 의미도 없습니다.”

        

       “…하, 이제 본색을 드러내는 거야?”

        

       “당신을 설득하는 것에 그리 큰 무게감을 두고 있지 않을 정도로 아르테미스를 격멸하는 속도가 빠르다고 답변하지요.”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

        

        그 순간 레인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의지로 짧게 분노를 터뜨렸다.

        

        

        

       “오만한 새끼들.” 

        

        

        

        그러나 그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만으로도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 이들이 아르테미스를 지워 없애는 정도가 그 정도로 빠르다면, 레인은 곧 본인이 자신의 고향을 어떻게 바라봐야만 할지를 금방 알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아르테미스는 더 이상 여유가 없었고, 여유가 없는 이들이 그녀 자신을 어떻게 다루게 될지는 불보듯 뻔한 일이었으니.

        

        

        물론, 그 전에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말은 번드르르하게 했지만, 이쪽을 딱히 살려서 보내줄 생각도 없으면서…!”

        

       “그것까지는 본인의 역량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인게?”

        

       “이 망할 새끼들-!”

        

        

        

        폭음이 울려퍼졌다.

        

        설득과는 별개로, 아키타입과 진은 자신들의 목표 달성에 실로 충실한 편이었다.

        

        레인이 네 개의 팔다리 중 절반을 잃기까지 6분 21초가 남은 시점이었다.

        

        

        

        

        

        

        

        

        

        

        

        

        

        

        

        

        

       “고생했습니다. 이제 수복용 코핀에서 대기하시길. 수리는 12시간 이내에 완료됩니다.”

        

       “네.”

        

        

        

        망할 놈들.

        

        그러나 그리 욕지거리를 내뱉어도 쇼핑몰에 놓고 온 팔다리 한짝이 되돌아오지는 않았고, 레인은 힘겹게 기어가 코핀에 몸을 뉘였다. 통각은 없을지언정 허전함이 느껴지는 건 매한가지였다 – 그러나 엔지니어마저 떠나간 뒤 방에 어둠이 내릴 즈음, 그녀는 천천히 사라지는 정신을 느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부유하는 생각 파편이 하나 있었다.

        

        

        

       ‘…내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해서, 아르테미스가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고?’

        

        

        

        어째서일까. 그 말이 무엇보다 선명하게 등골을 저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한 조각의 불안감과 함께 레인의 논리 회로가 완전히 꺼졌다.

        

        어둠이 밀려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 주면 2호기를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화 보기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