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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2

    <412 – 그깟 각오2>

     

    세 번째 재해는 앞선 두 개의 재해를 합친 것보다 더한 난이도로 모두를 압박했다.

     

    “마력풍보다 더한 고농도의 마나증기 때문에 <서치아이>를 써도 앞을 볼 수 없군요. 이건 상당히 위험하겠어요.”

    “아이린의 영역전개가 아니면 곧바로 화상을 입는 것도 괴로워. 으으. 이래서는 마음껏 전진할 수가 없으니까.”

    “우리의 힘으로도 다소는 버틸 수 있다. 소모값이 엄청나기에 부담될 뿐이지.”

     

    이 정도로 시야가 막힌 환경에서는 다른 감각을 총동원하는 <직감>에 강하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아이린과 도로시, 록펠은 운이 좋았다.

    아이린의 얼음속성력이 용암지대의 열기를 막아주는 사이, 도로시가 뛰어난 감으로 길을 잡는다.

    역할군이 제대로 분배된, 뭉칠수록 강해지는 파티가 완성되었다.

     

    치이이이익!

     

    “앗, 증기가…!”

     

    벌어진 틈새에서 갑작스레 분출되는 증기가 아이린의 영역을 위협하거든 섬전처럼 뻗어나간 록펠의 검이 단숨에 지면의 흠을 갈라 증기의 분출방향을 역방향으로 꺾는다.

     

    “여기서 나가면 검을 바꿔야겠군. 마나코팅을 덧씌워도 증기에 실린 마나의 농도가 심상치 않아서 검이 상해버렸어.”

     

    철저한 분업으로 서로가 서로의 생존을 돕는다.

    오히려 이 멤버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도착해도 이 너머를 넘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즈앙은 어디까지 돌파했을까?”

    “모를 일이지.”

     

    아이린은 희망적인 전망을 입에 담지 않았다.

    전장에서 참사는 수도 없이 보아왔으니까.

    그저 늦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도로시. 속도를 올려줘. 온도가 올라서 영역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줄었어.”

    “무리하면 용암을 밟아버릴지도 모르는데?”

    “…알았어. 지금처럼만 해줘.”

     

    2학년이 되어 이곳에 들어왔다면 어땠을까.

    묵묵히 내딛는 걸음.

    용암이 흐르는 소리.

    증기에 뒤덮인 시야.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한 걸음씩 걸음을 내딛으며 세 사람은 속으로 상상했다.

    마나가 조금만 더 많았다면 여유가 있었을까.

    속성친화력이나 저항력을 올렸다면 극한환경에서 버텨내기도 쉬웠겠지.

    오크노디라면 아주 날아다녔을지도 모르겠구나.

    즈앙도 이런저런 훈련을 받아서 혼자서도 이런 곳에 발을 들일 자신이 있었을 테고.

     

    ‘분해.’

     

    사고가 흐르는 과정은 달랐지만 도달하는 감정은 모두 동일했다.

    분명 입학할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로 차이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오크노디는 학년수석이라는 순위에 비해 다소 약한 이미지마저도 있었다.

    그랬던 그녀가 이제는 독보적인 우위로 달려가고 있고 뒤를 쫓기도 급급하다.

    교수는 오크노디의 안전을 우려하여 수색을 부탁했지만 솔직히 누가 누굴 도우러 가냐는 심정이다.

    이 정도로 위험한 줄 알았으면 애초에 달려오지도 않았지.

    말로는 안하지만 다들 이쯤 되면 오크노디가 아니라 그녀를 쫓는 즈앙이 걱정되고 있다.

     

    ‘오크노디야 어떻게든 살아남겠지만 괜히 쫓아가던 즈앙만 큰일 나는 거 아니야?’

     

    늦으면 정말 그런 꼴을 볼지도 모른다.

     

    “큰 거 한 방으로 가야겠어.”

    “큰 거 한 방?”

    “순간적으로 영역의 범위를 늘리겠어. 증기가 밀려나는 순간의 광경을,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절대로 놓치지 마.”

    “!!”

    “외울 수 있겠어, 도로시?”

    “무조건 외워야지. 기회가 올 때 살리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은 숲지기는커녕 숲의 주민으로 살아남기도 어렵다고?”

     

    아무리 개판이 나버린 지형이라도 위어드 교수의 칠판 필기보다는 외우기 쉽겠지!

     

    “간다.”

     

    아이린은 모두를 감싼 반구형의 보호막 너머로 검격을 펼치듯이 반원형의 영역에 마나를 발산했다.

     

    <아이스웨이브>

     

    2위계 대기마법 쇼크웨이브.

    그 속성을 얼음으로 변경하고 범위를 반원형으로 설정하며 공간 전체에 무겁게 깔린 마나증기를 힘으로 강제로 밀어낸다.

    마치 무거운 물체가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마나를 끌어내는 감각 너머로 전해지는 중량감.

     

    ‘버거워. 그래도… 이 정도면 영문 모를 대괴수의 압박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겪어봤기에 궁리할 수 있는 역경비책이 있다.

    고순도의 마나를 모조리 적으로 돌려서는 이겨내기 위해 감내해야 할 피로가 가혹할 정도로 커진다.

    그러니 역이용한다.

    마나의 일부를 속인다.

    나는 너를 돕기 위해 힘을 쓰는 것이라고.

     

    <증기폭발>

     

    아이스웨이브로 증기에 찬 공기를 섞으며 융화된 마나를 통해 단숨에 증기에 깃든 고순도의 마나 그 자체를 폭발시킨다.

    수증기가 폭발하는 압력을 능가하는 속도로 확산되는 기운이 단숨에 구름을 걷어내듯이 시야를 반경 200m 너머까지 말끔하게 밀어내었다.

    그 안에는 분명하게 ‘안전지대’가 있었다.

    미로처럼 얽힌 용암구덩이나 용암이 흐르는 땅을 피할 수만 있다면 숨을 돌릴 땅이 나타난다.

     

    ‘이제야 안전지대가 있는 이유가 실감이 나네.’

     

    이런 다급한 와중에 나타나는 안전지대는 사막의 오아시스보다도 간절하다.

    그렇기에 다시 분출되어 시야를 가로막는 증기 앞에 안전지대는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하지만 희망을 두 눈에 담은 도로시는 감을 넘어선 절대적인 간격계산으로 안전한 땅만을 내딛으며 모두를 인솔했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어긋남도 없이.

     

    치이익!

     

    압력에 분출되는 화산탄을 검으로 쳐내는 록펠 또한 도로시와 같은 경치를 보며 외워둔 위험요소에 모조리 반응했다.

    그렇게 모두가 안전지대의 앞에 간신히 도달했을 때, 그들은 고민했다.

     

    “즈앙은 여길 지나쳤을까?”

    “모르겠어. 더는 흔적을 찾을 수 없어.”

    “한숨 돌리자. 도로시의 감은 휴식이 절실하다.”

    “그럼 한 번만 더 시야를 걷어보고 결정해. 출구가 의외로 가까울지도 모르니까.”

    “으으. 그랬으면 좋겠네.”

     

    상당한 힘을 썼는지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땀에 흥건히 젖은 얼굴로 한손을 들어 주문을 외우는 아이린.

    안전지대의 주거지에서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 즈앙이 무심한 얼굴로 조언을 건넸다.

     

    “그 마법, 더는 안 쓰는 게 좋을걸. 저 안을 떠도는 용암골렘이 단단히 화가 나서 달려올지도 모르니까.”

    “그래? 충고 고마워.”

     

    무심코 대화를 나누며 마법을 전개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수를 모색하려던 아이린.

    자신이 방금 누구와 말을 섞었는지 깨달은 그녀가 창문을 휙 돌아보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불쑥 나타났던 즈앙은 갑작스러운 등장만큼이나 뻔뻔하게 창문을 탁 닫았다.

     

    “…하?”

     

    얘가 왜 여기서 나와?

     

     

    * * *

     

     

    “포기했어. 여기서 더 가면 용암골렘 말고도 자연마나에 이끌린 몬스터들이 잔뜩 있는데 로지니를 데려와도 타죽겠다 싶을 상위종도 잔뜩 보였거든.”

     

    즈앙은 일찌감치 마력재해 돌파를 단념했었다.

     

    “오크노디가 걱정되어서 우리보다 먼저 쫓아왔던 거 아니었어?”

    “그럼 들어갈래?”

     

    안전지대 너머를 가리키는 즈앙의 물음에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은신도 통하지 않아. 실력으로 찍어 누르기엔 몬스터의 수준이 높아. 완전히 가불기에 걸렸어. 적어도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지나갈 수 없어.”

     

    온갖 울음소리에 박식한 울음소리 전문가 오크노디라면 무오오옹 뺨치는 이상한 울음소리로 지나갔을지도 모르지만.

    상상만 해도 웃기는 광경이라고 생각하며 즈앙은 키득키득 웃었다.

     

    “하아. 김새네.”

    “그러게. 우린 즈앙을 구하러 저 끝까지 들어가야 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막상 이렇게 구출하니까 힘이 다 빠져.”

    “조금 더 어려운 곳에 숨어있을 걸 그랬나?”

    “참아줘. 즈앙이 작정하고 숨으면 내 ‘감’에도 잡히지 않는걸!”

     

    늘어져라 안도하는 아이린과 도로시와 달리, 평소에는 말수도 없고 묵묵히 도로시의 뒤를 지킬 뿐이었던 록펠이 입을 열었다.

     

    “오크노디는 저길 돌파한 건가?”

    “내 눈엔 안 보였어.”

    “그럼 통과했겠군.”

     

    즈앙을 구출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해서 기가 빠졌을 때보다 오크노디만 혼자 저 멀리 어디까지인지 짐작도 가지 않을 곳까지 사라졌다는 사실에 더욱 진이 빠졌다.

    오크노디의 뒷모습을 눈에 담는 일조차도 허락되지 않을 정도의 격차가 이로서 확정되었다.

     

    “돌아갈까…? 하룻밤 지나면 들고양이처럼 어디서 또 불쑥 튀어나와 밥부터 찾고 다닐지 모르는데.”

    “선배는 그 의견에 동의 안 한대.”

    “선배 누구?”

    “안전지대 출입을 허락한 선배.”

     

    [그린존]

    [추가입장조건 : 아무나 입장가능]

     

    안전지대 입장조건을 무기처럼 휘두르며 다른 이들을 착취하던 초입지대, 공략을 돕도록 강제하는 용도로 사용하던 천애단벽의 안전지대에 비하면 너무나도 관대한 용암지대의 안전지대.

    당연히 즈앙이 호의를 베푼 것이라고 여겼던 모두는 이런 양심적인 조건의 선배가 있다는 사실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휴학생은 전부 인성을 상실한 마족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아니었어?”

    “포인트를 벌기 위해서라면 동족의 목숨 따위는 파리보다 하찮게 여길 줄 알았는데!”

    “솔직히 믿기지 않는군. 이런 양심적인 선배가 남아있다니.”

     

    2학년만 해도 계약사기꾼 벨로카시오처럼 못된 선배들이 즐비한데.

     

    “하하. 그거야 서로 고혈을 빨아먹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못난 놈들이니 그렇지. 나처럼 강한 녀석은 올라올 수 있는 사람을 굳이 배척하지 않는다고.”

     

    안전지대의 안쪽에서 나온 선배는 신기하리만치 유약해 보이는 소년이었다.

     

    “정말로 선배…?”

    “우와. 나라도 이 선배는 주먹 한 방에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아.”

    “실례되는 소리 하지 마라, 도로시. 생김새만으로 강함을 판단하다간 큰 코 다치는 건 괴수림에서도 충분히 배웠을 텐데.”

     

    방심하던 도로시의 얼굴에 긴장의 기색이 어렸다.

    선배가 약골처럼 보인다는 사실은 오히려 기괴한 일이었다.

    자신들도 셋이 힘과 지혜를 합쳤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런데 저 선배는 홀로 용암지대의 한복판에 자리한 안전지대에 들어와 있다.

    마계 한복판을 해맑은 얼굴로 돌아다니는 어린아이를 발견하면 오크노디가 아닐지 의심해야 하는 것처럼 정말 수상한 선배였다.

     

    “선배는 여기서 뭘 하고 계세요?”

    “친화작.”

    “네?”

    “여긴 열도 엄청나게 많잖아? 이런 화속성 친화적인 환경은 마탑마법사들이 상주하는 휴화산 인근이 아니면 찾아보기 어려워. 그러니 여기 눌러 앉아서 올릴 수 있는 최대한의 화속성 친화력과 저항력을 올리고 있지.”

    “얼마나요?”

    “올해로 13년인가?”

    “……네에?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사기적인 동안이잖아요.”

     

    13살이라고 해도 고개가 끄덕여질 소년외모로 13년을 여기서 꿇었다니!

     

    “원래 휴학생전용구역엔 나처럼 별난 녀석이 하나씩 숨어있기 마련이야. 조심하는 게 좋다고?”

     

    도로시와 아이린의 시선이 교차했다.

    두 사람이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는 반증이었다.

     

    “선배님. 혹시 후배들을 위해 작은 도움 하나를 베풀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말해봐.”

    “오크노디라는 이름의 저희 동기가 이곳을 지나갔는데 저희 힘으로는 추적에 실패했습니다. 그 아이를 찾는 걸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아이린의 말에 선배보다 즈앙이 먼저 고개를 저었다.

     

    “무리야. 그 요청이라면 내가 먼저 했어.”

    “싫대?”

    “싫기는. 딱히 상관없어.”

    “상관없다는데?”

    “작은 부탁이니 작은 대가만 지불하면 돼.”

     

    휴학생 선배는 손가락 하나를 내밀었다.

     

    “마나하트 하나만 줘.”

    “네?”

    “너희 뱃속에 있는 그거. 마나연공법 익히면서 생성한 마나기관을 마나하트라고 불러.”

     

    즈앙이 이래도 도움을 받을 거냐는 얼굴로 쳐다봤다.

    아이린과 도로시는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공포를 몸으로 이해했다.

    이 선배는 괜히 입장조건을 안 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먹잇감이 제 발로 안전지대에 들어오라고 문을 활짝 열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너무 빨라서 몇 화째 뒷모습조차 나오지 않는 오크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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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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