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12

       

       그것은, 별도의 마석이나 전기 따위같은 단순한 동력원이 아니었다. 

       

       동력원만 있다고 기계가 복잡한 움직임을 스스로 행할 수는 없다. 미래, 선진국들에 의해서 우후죽순 만들어지는 여러 로봇 역시,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있어야만 비로소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니까. 

       

       이 동상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그러니, 이걸 움직이는 주체는……’

       

       그 자체로 힘을 가진 동력원으로써 기능하면서도, 동시에 뭔가를 의도대로 움직이는 주체가 될 수 있는 무언가. 

       

       그것은, 영혼 에너지였다. 

       

       영혼 에너지에 의해 움직여지는 동상이라……

       

       렌까가 애지중지하는 인형 까뜨린느 안에 든 방숙자 역시 영혼 에너지로 인형의 몸을 움직이고 있으니까 그와 비슷한 것이겠지.

       

       다만 까뜨린느와 달리 이 동상에 깃든 것은, 정해진 명령에 의해 조종되는, 자아를 잃은 영혼일 것이다. 자아를 잃은 영혼이 조종당하는 것은 예전에 제2실습장에서도 본 바 있었다. 

       

       그래. 대충 이해는 가는데……

       

       ‘……움직이는 동상만 해도 어처구니 없었는데, 그 동상의 두번째 페이즈가 귀신들린 인형이라니.’ 

       

       아니, 이건 솔직히 좀 너무하잖아. 양복자같은 애 아니면 아무도 그런거 안 좋아한다고!

       

       하여간 마석을 깨트렸다고 안심할 때가 아니었다. 동상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주체가 영혼 에너지였다니. 

       

       예전에 방숙자가 악귀로 폭주했을 때 보여줬던 힘은 내 칼이나 능력 따위로는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 동상들 역시 그런 힘을 투사한다면……

       

       ‘상대할 수 없어.’

       

       하지만,

       

       ‘……?’

       

       대남공 동상은 겨우 천천히 꿈지럭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된 움직임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제 팔을 채 들어올리지도 못할 정도.

       

       하긴, 어지간한 영혼 에너지로는 이런 무거운 쇳덩이를 움직일만한 출력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동상을 조종하는 주체는 영혼일지라도, 동상을 움직이는 동력의 대부분은 마석 전지가 충당하고 있었겠지.

       

       ‘……괜히 놀랬네.’ 

       

       쫄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다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위협으로부터 경계심을 잃지 않는 현명한 자세를 취했을 뿐. 

       

       ‘아무튼 완전히 처리해야지.’ 

       

       나는 다시 꿈틀거리는 대남공 동상을 살펴보았다. 자세히 보니, 투구는 진작에 날아가버리고 반쯤 부서진 머리통 안쪽으로, 빛나는 진공관이 얼핏 보였다. 

       

       음료수 캔만한 크기의 진공관 전구.

       

       ‘저거다.’

       

       저 빛나는 진공관 안에, 이 동상을 조종하는 영혼 에너지가 갇혀있는 것이겠지. 진공관의 주변으로 복잡한 회로가 이어져 있는 것을 보면 확실했다. 

       

       저 진공관을 깨트리거나, 아니면 진공관에서 이어진 회로를 망가트리면, 모든 에너지가 차단된 동상은 완전히 활동을 정지하리라.

       

       ‘저걸 부수면 되겠지.’

       

       아직까지 대남공의 가슴팍에 박혀있던 칼을 뽑아내려던 그 때,

       

       —가가각!

       

       대남공 동상의 입가 양 끝에서 아래로 이어진 선을 따라, 아래턱 부분이 기괴하게 아래로 벌어졌다. 그리고 그 벌어진 입에서, 

       

       『후오오오옵!』

       

       공기를 빨아들이는 듯한 기묘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나는, 순간적으로 비틀거리며 몸의 중심을 잃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건……’

       

       마력도, 기력도, 피도 아닌 뭔가가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것은 마치, 몸의 통제권을 서서히 잃어가는 느낌.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느낌……. 육신의 근육과 신경은 멀쩡했지만, 내 의도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그런 느낌이었다. 

       

       ‘영혼 에너지를 흡수?!’

       

       눈에 보이지도 않고 육체의 감각으로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동상이 내 영혼 에너지를 빼앗가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제, 젠장……’

       

       영혼을 빼앗기면 죽는다. 이것은 당연하게 느껴지는 사실이었지만, 지금 실시간으로 영혼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던 나는, 문득 한 가지 의아한 점이 떠올랐다. 

       

       몸의 통제력은 잃고 있었지만, 사고나 기억은 아직은 멀쩡했다.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러고보니 구로베 교수로부터 영혼에 대한 이론적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영·혼·백·육의 개념에 대해서 말이다.

       

       ‘령(靈)’은 어떤 순수한 영적인 에너지. 

       ‘혼(魂)’은 개인이 살아가며 형성된 자아 그 자체.

       ‘백(魄)’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자 육체와 이어주는 매개체. 각성자의 경우, 각성능력은 여기에 담겨있다.

       ‘육(肉)’은 살과 뼈로 이루어진 물질적인 육체. 

       

       지금 내가 힘을 잃어가면서도 의식은 멀쩡한 것은…… 아마 엄밀히 말하면 영혼(靈魂) 전체가 아닌 령(靈) 에너지만을 빼앗기고 있기에 그런 것이리라. 

       

       ‘젠장, 지금 이런걸 떠올려서 어쩌자는 거지.’

       

       자아가 아니라 에너지를 빼앗기는 것일지라도, 이걸 완전히 빼앗기면 죽는다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놈의 가슴에 박힌 칼을 마저 뽑을 수도 없었다. 설사 칼을 손에 쥔다고 해도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할 정도로 몸의 통제권을 잃었다. 지금으로써는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것이 한계. 

       

       하지만,

       

       이렇게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언제나 한 줄기 희망은 있는 법.

       

       —번쩍!

       

       멀리서 번개가 내려치며 섬광이 번쩍였다. ……물론, 내가 동상의 위로 번개가 직격하기를 희망이랍시고 바란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높은 곳이라면 모를까 이 쓰레기장 안쪽은 지대가 낮았으니, 그런 요행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말한 희망이라는 것은 나에게 있었다.

       

       마침 나는 손가락만 딸깍거리면 되는 문명의 이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나와 동상은 서로 얼굴을 가깝게 마주보고 있는 거리에 있었던 것이다.

       

       번개가 사방을 밝힘과 동시에, 나는 오른쪽 허리춤에 찬 홀스터에서 권총을 힙겹게 꺼내 놈의 대가리를 향해 발사했다.

       

       —꽈르르르릉!

       —타앙!……

       

       때마침 울린 천둥소리와 동시에 권총탄이 발사되었고, 

       

       —까아앙!

       

       권총탄을 맞은 대남공의 머리 안쪽에서 뭔가가 픽! 하고 불꽃을 내며 터졌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생각했다.

       

       ‘피, 피지컬 오졌고.’

       

       아무리 힘이 들어가지 않아도 방아쇠 정도는 딸깍거릴 수 있다. 게다가 거리가 거리이니만큼 못 맞출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 결과 머리의 반이 날아간 대남공 동상은 마지막 남은 힘마저 잃고 기우뚱거리더니,

       

       —털썩. 

       

       앞으로 엎어지며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진 대남공 동상은 이번에는 약간의 미동조차 없었고, 나 역시 내 영혼 에너지의 누수가 멈췄음을 느낄 수 있었다.

       

       “허억, 허억……”

       

       나는 진흙탕이 된 흙바닥에 대자로 누워서 숨을 몰아쉬며, 고개만 돌려서 쓰러진 동상을 바라보았다.

       

       대남공 동상의 깨어진 머리통에서 진공관이 데구르르 굴러나왔다. 진공관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는데, 진공관을 맞춘 게 아니라 진공관에 연결되어있던 회로 기판을 맞춘 모양이었다. 

       

       ‘뭐, 쓰러트렸으면 됐지…….’ 

       

       아무래도 저 진공관은 어딘가에 연결되어있지 않으면 령에너지를 어쩌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긴, 그래야 대동아공영회 놈들도 통제와 관리가 쉬울테니 저런 식으로 활용하는 것이리라.

       

       ‘후우……’

       

       잠시 누워있던 나는 천천히 일어나 앉아, 권총을 홀스터에 갈무리했다. 상황이 급박한지라 쓰긴 썼지만 되도록이면 쓰지 않으려 한 물건이었다.

       

       어디까지나 잠입인데, 총성이 울리면 침입자가 여기 있다고 광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테니까.

       

       그나마 다행히, 총성은 멀리까지는 안 들렸을 것이다. 다른 곳보다 지대가 낮은 쓰레기장 구덩이 내부인데다가, 비교적 화력이 약한 권총탄이었고,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이었으며 게다가 때마침 울린 천둥소리가 총성을 먹어주었으니까. 

       

       동상도 쓰러트렸고, 총을 쏜 것도 어찌어찌 무마했고. 한 건 해결인데……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동상 하나 쓰러트렸다고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었다. 여전히 니노미야 소년 동상에 쫓기고 있는 홍옥례를 도와줘야 했다.

       

       “허억, 허억…….” 

       

       대남공 동상은 쓰러트렸지만 빼앗긴 영혼 에너지의 손실이 너무 컸던 것일까. 아직도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는 잘 움직여지지 않는 입을 겨우 움직여 홍옥례에게 소리쳤다. 

       

       “오, 옥례! 잡히면 안 돼! 도망쳐! 여…… 영혼을 흡수당해!” 

       “뭐어엇! 그게 무슨……” 

       

       역시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는 지금 일일히 설명할 수도 없었다. 결국, 내가 가까이 가서 머리통을 날려버리든 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힘겹게 몸을 이끌고 구덩이 위로 계단을 타고 막 올라갔을 즈음, 

       

       “꺄악!”

       

       홍옥례는 결국 체력이 다했는지 진흙탕에 넘어졌고, 뒤따라오던 소년 동상에 의해 양 팔이 붙잡히고 말았다. 

       

       “배, 백 동지! 살려 줘어어!”

       

       홍옥례는 나를 향해 외침과 동시에 소년 동상을 두 발로 마구 찼지만, 동상은 그런 발차기 따위에는 미동도 없었다. 소년 동상의 입이 아래로 벌어졌다. 

       

       『스오오오옵……』 

       “히, 힘이……”

       

       소년 동상이 홍옥례의 영혼 에너지를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젠장……!’

       

       상황이 좋지 않았다. 나는 아직 몸을 온전히 움직일 수 없었고, 홍옥례는 지금 내가 있는 계단과 먼 방향에 있었다.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홍옥례가 있는 곳까지 다가가자면 그 전에 홍옥례가 죽고 말 것이다.

       

       사실, 본래라면 이렇게까지 절망적인 상황이 될 이유는 없었다.

       

       홍옥례의 특기는 택견이지만, 각성능력은 전격. 비록 겨우 사람을 기절시킬 정도의 약한 전류일지라도, 기계장치의 회로를 태워버리기엔 충분했다.

       

       여기서 홍옥례가 소년 동상에게 전격을 먹이면 회로가 타버려서 바로 제압 가능하겠지만, 하필이면 홍옥례가 입고 있는 옷이 절연체인 고무타이즈수트였기에, 주먹이나 발차기로 전격을 먹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 이렇게 죽기는 싫어…… 여, 연애라는 것 한번 못해보고……”

       

       홍옥례 역시, 지금 자신에게 일어나는 현상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 끝이 죽음임은 직감한 모양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홍옥례가 죽는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나 때문이겠지. 이런 일을 예상치 못하고, 홍옥례의 능력이 전격임을 간과한 채 고무 수트를 입힌 나의 책임이었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홍옥례를 죽게 할 수는 없었다. 이 조선의 해방과 한국의 독립만을 염원하는 순수한 소녀가 나 때문에 죽는 것을 두고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온 힘을 다해, 

       

       “홍옥례! 홍 동지!”

       

       내 목청이 낼 수 있는 한계껏 크게 외쳤다. 

       

       “동상에 키스해!”

       “뭐, 뭐뭐뭣?!”

       

       영혼 에너지를 빼앗기는 와중에도 황급히 되묻는 홍옥례. 이 시대에도 널리 쓰이던 키스라는 외국어를 알아듣지 못한 것은 아니리라. 다만, 다짜고짜 동상에 입을 맞추라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다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지시한 것이었다.

       

       “동상은 지금 영혼 에너지를 흡수하려는 거야! 그러니 회로를 불태워야 해!” 

       

       지금 홍옥례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고무타이즈수트를 당장 벗어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전격을 내보낼 수 있는 곳은 옷 위로 드러난 부분인 얼굴 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당장 키스해! 혀를 넣어어어!”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으며, 각성능력의 마력 작용이 방출되기 쉬운 신체말단 부위중 하나인 혀야말로, 이런 상황에서 전격을 방출하기에 최적인 부위.

       

       그러니 동상의 입에 혀를 넣고 전격을 때려박으면, 동상의 머리통 안쪽에서 진공관과 연결된 회로가 불타버리게 되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홍옥례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에, 나는 재차 온 힘을 다해 외쳤다. 

       

       “회로를 불태우려면, 혀를 통해 전격을 쏘아보내는 것 뿐이야! 키스해! 키스!” 

       “시, 싫어어엇……!

       “어서! 혀를 넣어어어어!”

       “으읏……!”

       

       홍옥례는 고개를 저으며 반발했지만, 그녀 역시 몸이 점점 통제에서 벗어나 곧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며 이대로라면 죽는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꼈을 것이고,

       

       내가 말한 방법을, 그 원리를 정확히는 몰라도 어렴풋이는 이해했을 것이다.  

       

       “배, 백 동지가 나쁜 거야……! 난 몰라!”

       

       결국 홍옥례는 눈을 질끈 감고, 소년 동상의 입에 입술을 가져다 대었다. 그와 동시에,

       

       —즈큐우우웅!

       —빠지지지직!

       

       맞닿은 곳을 중심으로, 강렬하게 번쩍이는 전광(電光)이 밤의 어둠을 찢어발겼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전투씬을 쓰는 건 항상 어렵네요. 그런데 이게…… 전투씬? 이런게 전투씬이 맞나?????

    …….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맛난 저녁 드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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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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