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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3

       침묵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일반적으로 침묵은 거북하고 불편하다. 사람은 그럭저럭 사교적인 동물이라서, 설령 자신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단둘이 있을 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낀다.

        

       말을 걸지 말아 달라고 느끼면서도 결국 그 장소에서 벗어나게 되어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다.

        

       엘리베이터에 타면 모두 스마트폰을 꺼내 들여다보거나 숫자 바뀌는 것만 바라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뭐, 최소한의 사교성도 박살 나버린 사람이라면 대화가 없는 상황 자체를 자연스럽게 여기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 정도로 사교성이 박살 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편하고 거북한 침묵이 아니라면, 다들 뭔가 할 말이 많은데 어떻게든 참고 있는 상황일 것이다.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지금 우리 방에 감도는 침묵은 그런 종류였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웃음이 터지기 직전인데 어떻게든 참고 있는, 그 웃음의 원인이 되어버린 사람만 별로 유쾌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렇다. 그 웃음의 원인은 나였다.

        

       정확히는, 내가 과거에 쓴 글들.

        

       “크흠!”

        

       클레어는 겨우 헛기침하며 웃음을 참아냈다.

        

       지금 당장 그 글을 읽지 않으면 이쪽 세상에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 내내 그 글을 내 눈앞에 보여주겠다는데 어쩌겠는가.

        

       물론 아주 잠깐은 그냥 그대로 통신사에 전화해 인터넷을 끊어달라고 할까 고민했지만, 솔직히 비교하자면 그쪽이 훨씬 더 찌질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게다가 인터넷 방송으로 벌어먹는 사람이 인터넷을 끊으면 어쩌자는 것인가.

        

       그래서 어떻게든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읽어보고자 했는데, 그 글의 무게는 얼굴에 깐 철판마저 우그러뜨릴 만큼 무거웠다.

        

       어떻게든 끝까지, 그러니까 아제르나 시리즈에서 가장 고결하고 깨끗한 캐릭터가 클레어라는 부분까지 읽고 나서, 나는 그대로 침대 위에 녹다운되었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 그 위에 이불을 뒤집어썼다.

        

       하지만 이불 사이로 슬쩍 보아도 방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언니, 너무 걱정하지 마.”

        

       클레어가 내 등을 토닥이면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언니가 그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건 우리뿐이니까. 언니가 방송에서 직접 그런 말을 하지만 않으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야.”

        

       “……그, 여기 있는 모두가 알아버렸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합니다만.”

        

       솔직히 여기 있는 애들이 모른다면 다른 누가 알건— 아니지, 물론 이쪽 세상에 멀쩡하게 살고 있을 내 전생의 가족들도 빼고, 다른 누가 알건 상관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 클레어는 게임 속의 클레어다. 내가 누구랑 처녀론을 벌이건 말건 그냥 개소리 정도로만 들릴 거다. 친구와는 애초에 그런 것으로 설전을 펼쳐본 적도 있었고.

        

       오히려 인기 요인이 될지도 모르지. 나는 일단 겉으로만 보기엔 ‘한국어 엄청나게 잘하면서 오타쿠 문화도 잘 알고 있는 외국인 미녀’ 같은 모습이었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걸 여동생한테 들켰다고 생각해봐라. 그리고 여동생 친구들한테도.

        

       죽고 싶지 않을까? 적어도 지금 나는 죽고 싶었다.

        

       여신한테 달려가 무슨 짓이든 할 테니 제발 그 시간 돌리던 능력 좀 달라고 하고 싶었다.

        

       “그래, 실비아. 너무 걱정하지푸흡.”

        

       앨리스, 말을 하다 마니까 걱정하라는 것처럼 들리는데.

        

       아니, 그보다, 이 상황이 그렇게 좋은가? 아무리 언니 동생 중 어느 쪽이 정해지지 않았다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자매로 생각하는 거 아니었어?

        

       “그나저나, 역시 이렇게 되었으니 실비아와 나 중에서 언니인 쪽은 나겠네.”

        

       “…….”

        

       나는 머리끝까지 덮고 있던 이불을 내려 얼굴을 내놓았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내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던 차에 그런 소리를 들으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아, 나왔다.”

        

       “그럼 그 소리를 듣고 나오지 않고 배기겠습니까?”

        

       나는 몸을 일으켜 침대 위에 책상다리하고 앉았다. 클레어는 침대 옆 바닥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고, 미아는 그 옆에 앉아있었다.

        

       앨리스와 샤를로트는 침대에 걸터앉아있었다.

        

       “나이로 따지자면 제가 당신보다 많습니다만.”

        

       “아니, 지금까지는 굳이 그 나이로 위아래를 나누려고 하지는 않았잖아.”

        

       “그건 제가 배려하는 차원에서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겁니다.”

        

       “언니…… 조금 전에 그런 글까지 읽어놓고 그렇게 나오면 조금 그렇지 않아?”

        

       클레어의 말에 심장을 주먹으로 후드려 맞은 기분이 들었지만 나는 일단 꾹 참았다.

        

       “클레어, 이건 꽤 중요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만약 제가 여기서 앨리스의 동생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당신도 앨리스의 동생이 되는 겁니다. 그것도 막냇동생이요.”

        

       “…….”

        

       클레어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 지금까지 그런 말을 전혀 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 지금 와서야 그런 소리를 하는 건 언니라는 자리를 차지해서 서열로 찍어눌러 무안함을 없애겠다는 것처럼 보이는데.”

        

       “매우 그렇게 보이네요.”

        

       샤를로트가 강 건너 불구경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웃음을 터뜨리기 일보 직전이었다는 소리다.

        

       클레어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옆자리에 앉았다. 미아는 그렇게 갈라진 두 편을 마치 탁구 경기라도 보는 듯 흥미진진하게 번갈아 바라보았다.

        

       “좋아, 일단 언니의 말에는 찬성이야. 사람이 조금 천진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이가 어디 가는 건 아니거든. 게다가 언니로서 해온 일도 있고, 저 글도 따지자면 나를 변호하기 위해서 쓴 글이잖아?”

        

       “그럼 내 가슴에 관해 쓴 글은?”

        

       나는 순간 피를 토할 뻔했다.

        

       “언니도 혈기 왕성했던 나이가 있었던 모양이지.”

        

       사춘기는 한참 지난 나이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너도 언니한테 직접 구원받은 적 있잖아? 네 어린 시절을 언니가 그렇게 열심히 케어해줬다면서?”

        

       “그렇습니다. 앨리스 어렸던 시절에는—”

        

       “잠깐.”

        

       앨리스가 정색하면서 손바닥을 내밀어 내 말을 막았다.

        

       “알았어. 좋아. 상황은 그냥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두기로 하자.”

        

       “대체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길래 고작 한마디에 그런 반응을 하는 건가요?”

        

       “딱히.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야. 적어도 실비아가 저기 써둔 글보다는—”

        

       “그렇다면 이야기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음, 그럼 이 이야기를 할까요? 앨리스는 사실 당신을 만났을 때— ”

        

       “아니. 잠깐. 잠깐만. 실비아. 내가 잘못했어.”

        

       ‘아주 어린 시절’도 아니고 고작 ‘작년’의 일을 꺼내자마자 앨리스가 바로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

        

       나는 이미 까발려질 것이 모두 까발려졌다. 여전히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면 피를 토하는 심정이 되긴 하지만, 더 들킬 것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앨리스에게는 아직 약점이 남아있었다.

        

       “뭐죠? 뭐예요? 저랑 관련되어있다고 해놓고 그렇게 이야기를 끊어버리면 제가 너무 신경 쓰이는데요?”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면 말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러니까 잘못했다니까?”

        

       “그러니까 그런 반응이 나오는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냐니까요?”

        

       클레어는 설전을 펼치는 우리 두 사람을 아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미아는 입을 헤 벌린 채 나와 앨리스, 샤를로트를 번갈아서 쳐다봤다.

        

       이 무의미한 이야기는 그 뒤로도 몇 분 동안 계속되었다.

        

       *

        

       결국 우리는 서로의 과거를 꺼내지 말자고 합의했다.

        

       물론 약점의 존재 여부조차 모르는 샤를로트나 같이 지냈던 것은 아니라 내가 약점을 알 수 없는— 아니, 애초에 그런 것을 부끄럽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는 클레어는 그 합의에서 예외이긴 했다.

        

       ……미아는 약점이랍시고 꺼냈다가는 하나하나가 말하는 사람에게도 치명타를 날리는 어두침침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고.

        

       그러니까 이건 엄밀히 따지자면 불안정한 협정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나 없는 자리에서 내 과거를 왈가왈부할 사람들은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잘 알기는 했지만—

        

       “흐흥~”

        

       즐겁다는 듯 스마트폰을 만지는 클레어를 보고 있으면 여전히 조금 불안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 앞이 아니라 내 앞에서는 그 과거를 꺼내 들 수 있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때마다 나는 정신적인 타격을 입게 될 거고.

        

       ……클레어한테 엄청나게 잘해줘야겠다.

        

       “…….”

        

       다시 한번, 방 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계속 방안에 있었네.

        

       “……여러분, 영화라도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부엌에 아직 남아있는 팝콘과 탄산음료가 있을 겁니다.”

        

       “오, 보자, 보자!”

        

       나의 말에 클레어가 바로 몸을 일으켰다.

        

       “뭔가 말을 돌리는 것 같긴 하지만, 오늘은 그냥 넘어가 드릴게요.”

        

       샤를로트도 몸을 일으켰다.

        

       앨리스도 꽤 기쁜 표정으로 일어났다. 물론 영화랑은 별로 관계없는 기쁨이겠지만 말이다.

        

       “팝콘!”

        

       ……미아는 영화보다는 먹을 것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번 일은 어떻게 넘긴 건가.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몸을 일으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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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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