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413

       *** ***

         

       잠이 들 시간은 진작에 지났지만 눈이 감기지 않았다.

         

       그저 억지로 침상에서 게으름을 피우며 과거의 생각을 떠올렸다.

         

       이류일 시절의 나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왕성하게 수련하고 싸돌아다니는 무림 고수라는 인간들은 대체 왜 저렇게까지 부지런한지 이해가 안 갔다.

         

       싸돌아다니는 것보다 쉬는게 낫고 기왕 쉴 거면 앉는 것보다 눕는게 나은데 굳이 뭘 저렇게까지 열심히 사나.

         

       그런데 나도 화경 고수가 되어 보니 왜 무림 고수들이 그렇게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는지 이해가 갔다.

         

       왜 가끔 그런 날 있지 않은가.

         

       평소엔 쉬어도 쉬어도 피곤하지만 어쩌다가 상태가 만전으로 올라와서 뭐든지 잘 되는 날.

         

       산책이나 게임을 하고 싶거나 하다못해 분리수거라도 하고 싶어서 몸을 움직이게 되는 날.

         

       자각하지는 못했지만 초절정이나 화경에 오른 뒤에는 쭉 그런 상태였던 것 같다.

         

       단련된 육신과 활성화된 기력이 강제로 날 만전으로 만들어버린다고 해야 할까.

         

       그걸 이제와서 깨닫는 이유 역시 간단했다.

         

       지금까지는 그런 기력을 남김없이 목표를 이룩하기 위해 쏟아부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눈가리개를 쓴 경주마처럼 앞만 향해 달려온 셈이다.

         

       그렇게 결승선을 돌파하여 비명을 지르는 근육들을 쉬게 하고 세차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나니 그제야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아니 이 말에도 어폐가 있었다.

         

       나는 뒤를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앞만 보는 것에 익숙해진 상태였으니까.

         

       앞을 향해 굳어버린 시선이 돌아간 계기는 바로 여일예와의 도박 수련이었다.

         

       내 코를 파고든 여일예 특유의 체향이 내 코를 찌르는 순간 그제야 내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으니까.

         

       사천성에서 있었던 산적연합 토벌 개선식날. 포개어졌던 입술과 함께 내 코를 채우던 그 향. 그리고 답변을 기다리겠노라 말했던 여일예의 웃음기 어린 표정까지.

         

       자연스럽게 서장에서 있었던 일 역시 머리를 채웠다.

         

       두 사람에게 받은 고백과 나를 위해 그 답을 유보해주었던 두 사람의 배려가 떠올랐다.

         

       “오래도 미뤘네.”

         

       답을 미룬 건 정말로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정철을 저지한다.

         

       처음에 정철을 저지하리라고 마음을 먹었을 때 가능성이 높다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해야만 하는 일이니 바늘구멍에 몸을 밀어 넣는 심정으로 움직였을 뿐.

         

       고작해야 검기도 못 피우던 절정 무인이 현경에 오를지 모를 화경 고수를 따라잡는다. 그 사실만으로도 가능성이 낮은 일이었는데 그 와중 정철의 사천 침공을 막으면서 시간까지 벌어야 했다.

         

       정철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털어넣어야 했으니 그 사이에 무언가를 챙길 여유는 없었다. 아니 볼 여유조차도 없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두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전달해 왔을 때보다…기다려 주겠다고 했을 때 더 큰 고마움을 느꼈으니까.

         

       그래놓고는 이렇게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이제라도, 지금이라도 서둘러 답을 돌려주어야 함을 알고 있었지만…

         

       “하아아…”

         

       문제는 미룰수록 커지는 법이다.

         

       일행들과 함께 서장을 여행할 때도 그 인연이 결코 얕지 않았지만….지금의 인연은 그때와는 또 다르다.

         

       이런저런 모함을 함께했으며, 진법 속에 남아 같이 수련했고.

         

       천마신교행을 계기로 흩어졌다가도 다시 뭉치지 않았던가.

         

       세월과 함께 역경을 돌파하며 끈끈해진 인연의 깊이가 내 가슴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여일예와 흑묘에게 답을 준다는 것은…아마 둘중 한 사람과의 이별로 귀결될 확률이 높았다.

         

       두 사람 중 한 사람과의 인연이 끊어진다.

         

       “하아아…”

         

       상상만으로도 절로 한숨이 나오는 일이었다.

         

       그러나 또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으니.

         

       “하아…”

         

       나는 연신 한숨을 내쉬며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 ***

         

       “하하하!”

         

       어제 하루 도박을 즐기지 못한 탓인지 바람같이 야영장을 급습한 위서련. 기세 좋게 나타난 위서련이 호천안의 얼굴을 보고 흠칫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가?”

         

       “별 일 없었습니다.”

         

       그런 것 치고는 세상의 모든 근심을 떠안은 얼굴인데.

         

       위서련은 그런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야영지에서 흑묘의 인도하에 급속도로 사회성과 눈치가 생겨나고 있는 위서련은 굳이 그 말을 입 바깥으로 뱉지는 않았다.

         

       이제는 규칙처럼 굳어버린 위서련과 혁기린의 세 판의 승부가 끝나고 또 다른 도박 상대를 찾는 위서련의 눈길이 일행을 훑었다.

         

       누가 봐도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호천안은 자연스럽게 제외.

         

       그리고 그런 호천안을 심각한 안색으로 바라보고 있는 흑묘 역시 도박 상대가 되어달라 해도 거절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위서련의 눈이 당도연과 당소열에게 고정되었다. 평상시에 배째라는 듯이 드러누워 있던 당소열의 자세가 묘하게 다소곳해 보였지만 그래도 현재 호천안 일행의 상태 중에서는 양호한 축이었다.

         

       “두 사람은 나와 손을 섞어 볼 생각이 없는가?”

         

       “내가 하겠다!”

         

       어제 흑묘에게 옴팡지게 두드려 맞은 당소열은 심상치 않은 오늘의 공기에 다시 흑묘의 분노에 불이 붙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상태였다.

         

       차라리 위서련과 도박을 하고 있으면 숲으로 끌려 들어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란 생각이 떠오른 당소열은 후다닥 위서련 앞에 않았다.

         

       “후후! 드디어 당가의 도박술을 견식할 수 있겠군!”

         

       “뭐든 좋다. 빨리 시작하지.”

         

       새 상대를 구한 위서련과 안전을 보장받은 당소열.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구조를 형성한 두 사람의 얼굴에 만족과 안도가 서렸지만 야영지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갑자기 이상해진 호천안의 태도에 호천안을 주시하는 세 사람.

         

       흑묘는 고뇌하는 호천안을 바라보며 직감했다.

         

       ‘어제 일로 뭔가 변화가 생겼구나.’

         

       그런 흑묘의 직감은 이내 확신으로 변했다.

       

       

       

       근심걱정 가득한 눈으로 여일예를 바라보던 호천안이 흑묘 쪽으로 스르륵 시선을 돌리다가 눈이 마주치자 물건 훔치다 들킨 도둑놈처럼 어깨를 흠칫 떨었기 때문이었다.

         

       황급히 시선을 피하는 호천안.

         

       누가봐도 수상하기 짝이 없는 행태였으니 흑묘의 머릿속에 절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제야 그날의 답을 받게 되는 것일까?

         

       흑묘는 그런 생각을 품다가 이내 호천안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런 흑묘의 강렬한 시선을 느낀 호천안이 식은땀을 흘리며 애써 시선을 피했다.

         

       흑묘는 그런 호천안을 보며 성큼성큼 다가갔다.

         

       넢겨짚었다가 헛다리를 짚고 얌전히 기다렸다가 날린 세월이 얼마인가.

         

       내심으로 지례짐작했다가 또 허탕을 치는 것은 흑묘도 이젠 사절이었다.

         

       “선배, 고민 있어요?”

         

       그렇기에 흑묘는 그대로 호천안을 들이받았다.

         

       “아, 아니..? 고민 그런 거 전혀 없는데?”

         

       그렇게 말하는 호천안의 눈동자는 정면에서 팔짱을 끼고 자신을 노려보는 흑묘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있잖아요. 고민.”

         

       “없다니깐?”

         

       호천안은 필사적으로 잡아뗐다. 어제 저녁부터 날밤을 꼬박 샌 고민이 가슴을 세게 짓누르고 있었지만.

         

       ‘어떻게 당사자에게 두 사람 중 어느 사람을 포기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고 말하냐고.’

         

       그 고민은 결코 흑묘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호천안은 필사적으로 말을 돌리기 위해 괜히 자신의 앞에 놓인 잔을 휘적거리며 혁기린을 찾았다.

         

       “크흠! 혁기린 소저 이제 수업이나 시작할…”

         

       “어제 여일예 소저 때문에 고민이 생긴 건 아니고요?”

         

       툭. 데구르르…

         

       호천안의 잔에서 주사위가 빠져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

         

       “….”

         

       “….”

         

       호천안이 잔에서 주사위를 흘렸다.

         

       누가 봐도 그 마음이 동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아주 직관적이고 명쾌하며 발뺌할 수 없는 증거에 호천안과 흑묘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이, 이게 왜 떨어졌을까.”

         

       샥!

         

       호천안이 황급히 허공섭물을 전개해 주사위를 손 안으로 빨아들였지만 이미 의심으로 인해 가늘어진 흑묘의 시선은 피할 길이 없었다.

         

       “아무리봐도 고민 있는 것 같은데요?”

         

       흑묘는 입을 꾹 다문 채 식은땀만 뻘뻘 흘리는 호천안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추궁한들 입을 열 기세가 아니었으니 이 이상 밀어붙이들 다툼밖에 더 벌어지겠는가.

         

       “누가 봐도 있는 것 같지만…일단은 그렇다고 칠게요. 일단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뜻을 명확히 한 흑묘가 한 발자국 물러섰다.

         

       “후우우…”

         

       순식간에 십 년은 늙어버린 호천안이 한숨을 내쉬며 여일예와 혁기린을 바라보았다.

         

       “미안합니다. 두 분께서는 오늘 혼자서 연습을 해 주시지요.”

         

       여일예나 혁기린도 호천안이 무슨 주제로 고민하고 있는지는 감을 잡은 상태.

         

       손이나 잡으며 사심을 채울 때가 아니라 판단한 두 사람은 순순히 물러섰다.

         

       그렇게 간신히 호천안이 혼자가 되어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흑묘의 추궁에서 벗어났을 뿐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깨달은 호천안의 얼굴에 다시 근심걱정이 서렸을 때였다.

         

       -도움이 필요합니까?

         

       자신의 머리를 울리는 전음성에 호천안이 고개를 들었다.

         

       비천마차를 정비하는 척 슬쩍 호천안을 바라보고 있는 당도연이 눈에 들어왔다.

         

       도움.

         

       도움이라.

         

       호천안은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살폈다.

         

       “후후후! 제법이군!”

         

       대인관계에 대해서는 까막눈이나 마찬가지인 도박마 위서련.

         

       “…그래. 즐기고 있다면 됐다.”

         

       도무지 신뢰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기지 않는 당소열.

         

       누군가와의 인연을 끊어낼 것인가와 같은 무거운 상담을 하기에는 너무 마음이 여린 혁기린.

         

       반면 당도연은 어떤가.

         

       일행과 적절히 친분이 있으면서도 또 누구 한사람과 치우친 친분을 지니고 있지도 않으며 비천마차와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 수완도 있고 신뢰가 가는 사람이었다.

         

       호천안의 마음이 순식간에 기울었다.

         

       당도연이라면 충분히 고민 상담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느긋하게 마부석에 몸을 기댄 당도연의 편안한 모습에 호천안은 결심을 굳히고 몸을 일으켰다.

         

       찍찍?

         

       비천마차의 좌석에서 쉬고 있는 서공을 쓰다듬는 척하며 비천마차에 탑승한 호천안. 당도연이 비천마차의 문을 닫았다.

         

       당도연은 비천마차의 문을 닫아 상담에 응해주겠다는 뜻을 표현했음에도 아무런 채근도 하지 않은 채 호천안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찍- 찍-

         

       서공이 일정하게 자신의 몸을 쓰다듬어주는 호천안의 손길에 반쯤 잠이 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호천안은 입을 열었다.

         

       어제 밤부터 떠올렸던 모든 고민이 담긴 하소연이었다.

         

       “당가타에서 그대들과 떠날 때부터였소.”

         

       당도연은 호천안의 말을 경청했다. 가끔 고개를 끄덕였을 뿐 당도연은 아무 말도 없이 죽 이어지는 호천안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그런 고민을 하고 계셨습니까.’

         

       여행을 떠나기 전, 당도연에게 있어 호천안은 재주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고작해야 절정 무인이었던 호천안이 정철을 적으로 삼는 현장에 있었을 때만 해도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은 생각을 떨칠 수 없었지만.

         

       일행의 발이 되어 중원 전역을 누비며 호천안의 재주와 그 재주로 인해 벌어지는 결과를 보고 느낀 당도연은 호천안이 초인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뿐일까.

         

       지금은 호천안의 비밀과 과거까지 알게 되었으니 당도연의 머릿속의 호천안은 초인 그 자체였다.

         

       진법 속에서 목숨을 위협받은 위기 상황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목숨을 건졌고, 그 점 하나만으로 깎아내리기에는 호천안이 보여준 기적적인 성과가 너무 많았다.

         

       늘 호천안은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고 거침없이 계획을 진행했으며.

         

       범인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방식으로 보도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속도로 강해졌으니까.

         

       그러니 호천안이 당가타에서 정철을 막겠노라 선언했을 때부터 충분히 승산을 점치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터져나오는 호천안의 내심은 당도연의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늘 여유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던 호천안은 사실 정철을 쓰러트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아부었던 것이다.

         

       “내 고민이 너무 뒤늦었다는 건 이미 잘 알고 있소. 그러니 이제라도 답을 주어야 한다는 것도 말이오.”

         

       “그렇습니까.”

         

       “그러나…도무지 결단을 내릴 수가 없구려.”

         

       호천안의 긴 고민을 다 들은 당도연은 고개를 숙여 비천마차를 내려다보았다.

         

       ‘호 무사님의 고민에는…제 탓도 있군요.’

         

       그저 호천안을 초인이라 여겨 뭐든지 혼자서 잘 해낼 것이라 여겨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마부라는 작자가, 호천안의 길잡이를 자처하던 자가 호천안이 여행길에 이런 짐을 떨어뜨리게 내버려 두다니.

         

       동료로서도 마부로서도 고개를 들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이제라도 주워줘야 할 일이었다.

         

       “여러분! 모두 이쪽으로 모이세요!”

         

       당도연이 비천마차의 마부석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손을 움직였다.

         

       철컹!

         

       “???”

         

       급작스러운 당도연의 말과 채워지는 비천마차의 안전잠금에 일순 혼란에 빠져버린 호천안.

         

       “뭐, 뭐하는 짓입니까?”

         

       “하하하! 방금 들은 이야기를 일행에게 전달할 생각입니다.”

         

       “…뭐라고?”

         

       호천안의 정신이 순간 아득해졌다.

         

       “미친! 여기서 나가야겠어!”

         

       “어허, 후회할 짓은 하지 마시지요.”

         

       마차의 문짝을 때려 부수고 탈출하려던 호천안의 손이 멈칫했다.

         

       이성이 날아가는 다급한 순간에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경고!

         

       호천안이 멈칫하는 사이에 일행이 빠르게 모여들었다. 이미 호천안의 기색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있었던 일행들은 다 비천마차를 주시하고 있었으니까.

         

       “호 무사님께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지 뭡니까!”

         

       당소열이 만든 암기연발발사장치와 비견될 만한 빠른 속도로 호천안의 고민을 읇조리는 당도연. 그리고 그런 당도연의 빠른 말에 당황하던 일행들의 표정이 그 내용에 점차 가라앉았다.

         

       털썩.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보고 들은 호천안이 다시 좌석에 주저앉았다.

         

       “그래서…어느 한 사람과 절연해야 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계시더군요.”

         

       당도연의 폭로가 끝나고 야영장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도박판을 벌이고 있던 위서련과 당소열까지 숨을 죽인 채 비천마차를 바라보았다.

         

       “…선배. 나와요.”

         

       철컥!

         

       안전장치가 풀리고 비천마차의 문이 열렸다. 호천안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비천 마차 밖으로 나가 여일예와 흑묘 앞에 섰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여일예와 흑묘가 앞에 서 있었다.

         

       “제가 연인으로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나요?”

         

       “….차고 넘친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은공께서는 제가 싫으십니까.”

         

       “…그럴 리가 있겠소.”

         

       흑묘의 손이 들어올려지는 것을 보며 호천안은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생각해도 쓰레기같은 답이었으니 따귀를 맞아도 할 말이 없을 일이었다.

         

       곧 호천안의 뺨에서 감촉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건 얼얼한 통증이 아닌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호천안의 눈길이 살며시 떠졌다.

         

       그런 호천안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흑묘였다.

         

       “그런 바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나요.”

         

       호천안의 눈이 멍청하게 깜빡였다. 흑묘가 그 모습을 보며 쿡쿡 웃고 호천안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은공께서는 정말로 앞만 보셨던 모양입니다.”

         

       여일예가 호천안의 손을 잡았다. 여일예의 얼굴에도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은공이 저희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모험과 세월 말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겪었다는 사실을 잊으신 것은 아닌지요?”

         

       호천안의 눈이 껌뻑였다. 전혀 이해하지 못한 모습이 흑묘가 한숨을 섞어 이야기했다.

         

       “우리도 누구 한 사람이 선배를 독차지하고 어느 한 사람이 떠나는 일이 달갑지는 않다는 뜻이에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듯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는 호천안에게 당도연이 결정타를 때렸다.

         

       “두 사람의 마음을 다 받아주면 될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

         

       “후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후후, 그러게 말입니다.”

         

       한차례 시선을 교환한 흑묘와 여일예가 호천안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대답은요?”

         

       “두, 두 사람이 괜찮다면…”

         

       “어허!”

         

       패기 없는 대답에 흑묘가 눈을 부라리자 호천안이 멈칫거리다가 이내 결심한 듯 눈에 힘을 주었다.

         

       “두 사람 다. 부족한 날 연인으로 삼아 주어서 고맙소.”

         

       그제야 흑묘와 여일예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긴 기다림이 드디어 결실을 피워낸 순간이었으니 어찌 환히 웃지 않을 수 있을까.

         

       두 사람의 미소를 본 호천안이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고 뒷목을 벅벅 긁었다. 그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던 흑묘와 여일예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향했다.

         

       혁기린.

         

       두 사람의 시선을 받은 혁기린이 흠칫했다.

         

       “괜찮아요.”

         

       “오시지요, 대사형.”

         

       혁기린이 쭈뼛쭈뼛 앞으로 나섰다. 아직 호천안에게 마음을 전하지조차 못한 혁기린. 흑묘와 여일예는 그런 혁기린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두 사람이 혁기린에게 용기를 불어 넣듯이 어깨를 짚어 주었고 혁기린은 그런 두 사람의 행동에 호천안을 바라보았다.

         

       전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호천안. 그리고 그런 호천안의 의문 어린 시선을 받으며 터질 것 같은 심장 고동 속에서 천천히 말문을 여는 혁기린.

         

       그러나 그런 혁기린의 입이 열리기 전.

         

       “용지맹?”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먼 거리에서 들려왔지만 확실하게 들린 목소리에 일행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떨리는 눈으로 호천안을 바라보는 독고이설이 서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드디어 도착한 독고이설.

    *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I Became an Outcast the Martial Arts Masters are Obsessed With

무협게임 속 고수들이 집착하는 낭인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Ho Cheon-an, a second-rate warrior in the martial arts game [Murim Cheonha].

To survive, I had no choice but to give enlightenment.

Martial arts masters began to obsess over me.

In Murim Cheonha, where fame means difficulty, getting attention meant death.

Please, just go away.

Please, let me liv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