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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4

       벨소리가 들려 문을 열어보니 택배가 와 있었다. 커다란 상자 하나와 그것보다 커다란 상자 하나였다. 기사는 이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버린 뒤였다.

        

       그렇게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돈 대부분은 여전히 내 통장에 있지만, 같이 사는 애들이 함께 썼기 때문이다.

        

       이전에 빌라에서 살 때는 너무 낭비하는 것을 막고 여분의 돈을 남겨두기 위하여 들어오는 돈을 n분의 1로 나누었지만, 복권에 당첨된 뒤로는 굳이 그렇게 할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이었다.

        

       얘네들이 한 번에 수백만 원짜리 명품을 사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정말로 그렇게 사더라도 꽤 오래 감당할 만큼 돈이 있었던지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온 택배는—

        

       ……꽤 크네.

        

       상자 중 하나는 높이만 거의 내 허벅지까지 오는 물건이었다. 심지어 길이는 내 키보다 살짝 작은 정도.

        

       여기까지 가지고 왔을 기사님께 감사하며 상자를 들어 올렸다.

        

       나 혼자 들지 못할 정도의 무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묵직했다. 들어보니 뭔가 안에서 슥슥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오, 택배 왔어?”

        

       내가 문 열고 나가는 것을 보고 조금 뒤늦게 뛰어온 클레어가 얼른 나를 도와주었다.

        

       “클레어가 산 겁니까?”

        

       “응, 내가 샀어!”

        

       클레어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혹시 사람 키만 한 테디베어 같은 걸까? 클레어가 살만한 커다란 물건을 생각해봤지만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가 클레어이다 보니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이라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상자 하나를 현관에 들여다 놓고 다시 나간 클레어는 우리가 들고 들어왔던 것보다는 작은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음~”

        

       그리고 잠깐 고민하더니,

        

       “둘 다 거실로 가지고 가서 뜯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말했다.

        

       “무슨 일이야?”

        

       우리가 현관에서 크고 무거운 것을 옮기는 소리가 다 들렸는지 앨리스가 얼른 뛰어나왔다가 내 키와 거의 맞먹는 상자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아, 마침 잘됐다. 이거 거실로 옮기는 것 좀 도와주지 않을래? 무게는 혼자서도 들 수 있는데, 아무래도 크기가 너무 커서 불편하네.”

        

       “무슨 일이죠?”

        

       한 명이 나오기 시작하니 줄줄이 따라 나오네.

        

       하긴 기온이 본격적으로 낮아지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집 안에 있는 시간도 늘었다. 그래도 여전히 일주일의 절반 정도는 다 같이 밖에 나가서 식사라도 하고 들어오긴 했지만.

        

       그래도 따뜻한 집 안에서 거실에 테이블을 가져다 놓고 전골이나 샤브샤브를 해 먹는 기분이 꽤 괜찮았다.

        

       결국 샤를로트와 미아까지 다 나와 상자를 옮기는 것을 도왔다.

        

       “후우.”

        

       앨리스가 숨을 작게 내쉬면서 허리에 손을 얹은 채 상자를 바라보았다.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서 있는 두 상자의 존재감이 꽤 컸다.

        

       “그래서, 이게 뭐야? 안에 들어있는 게 가전제품은 아닌 것 같던데.”

        

       이만한 크기의 가전제품이었으면 확실히 훨씬 무거웠을 거다. 그리고 상자를 잡고 힘을 준다고 찌그러지지도 않았겠지.

        

       안에 들어있는 물건이 상자처럼 네모반듯한 물건은 아닌지, 옮기는 과정에서 이미 모서리가 찌그러져 있었다. 아마 일부는 택배로 오는 과정에서 여기저기 부딪혀 찌그러진 흔적일 거다.

        

       “후후. 이건 말이지.”

        

       클레어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 커터칼을 가지고 나와 칼날 끝부분만 살짝 빼냈다.

        

       그리고 서 있는 상자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모서리를 따라 칼질하기 시작했다.

        

       모서리마다 붙어있는 테이프를 세로로 길게 잘라내자, 상자는 애초에 그렇게 여는 게 맞는다는 듯 네 방향으로 펼쳐졌다.

        

       “…….”

        

       그리고 우리는 상자 안에 있던 물건을 보고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짜잔.”

        

       클레어는 양손을 활짝 벌려 상자를 향해 보이며 말했다.

        

       나는 말없이 눈을 돌려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요즘 들어 해가 짧아지긴 했지만 아직은 그래도 대낮이라 바깥 풍경이 아주 잘 보였다.

        

       날씨가 많이 건조해지고 추워지긴 했지만, 아직 눈이 내리지는 않았다.

        

       아니지, 강원도에서는 벌써 첫눈이 내렸다고 했던가. 뭐, 적어도 서울인 여기서는 아직 눈을 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이제 11월 2주째에 막 들어간 참이었다.

        

       ……아직 크리스마스트리를 보기에는 좀 이르지 않은가?

        

       “아, 걱정할 거 없어. 이거 가짜니까. 물을 주거나 흙을 갈아줘야 하지는 않을 거야. 게다가 올해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창고에 넣어놨다가 내년에 꺼내 쓸 수도 있고!”

        

       종교관 자체가 이쪽 세계와는 확연히 다른 아제르나에서 넘어온 클레어가, 이쪽 세상의 종교의 성인이 태어난 날을 기념하겠다고 하는 점에서 그 경이로운 적응력은 칭찬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어째 내년 이맘때도 여기 있을 것을 가정하고 있는 것이 조금 불안하긴 했다만 뭐 그건 제쳐놓기로 하고.

        

       “크리스마스가 되려면 아직 한 달도 넘게 남았습니다만.”

        

       “언니, 뭘 모르네.”

        

       아니, 이쪽 세상에 살던 사람인 나더러 그런 말을 해봐야.

        

       “원래 이런 건 시즌제로 챙기는 거잖아.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정말로 크리스마스에만 트리를 꺼내놨다가 크리스마스 지났다고 다시 창고에 넣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아니, 그건 그렇기야 한데.

        

       가게 같은 곳을 보면 보통 12월이 되면 꺼내놓고, 그다음 해 1월 말쯤이 되면 슬슬 치우긴 한다.

        

       그런데 말이다.

        

       보통은 집에서까지 굳이 트리를 꾸미지는 않지 않나? 여기가 유럽이나 아메리카였다면 모를까, 해외 명절을 그렇게까지 신경 쓰는 건 마케팅으로 돈을 버는 곳뿐일 거다. 아니면 정말 엄청나게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거나.

        

       아니, 뭐, 따지고 보자면 우리야 크리스마스나 할로윈을 전부 챙길 것 같은 외모이기는 했지만.

        

       …….

        

       할로윈 이야기는 하지 말자. 클레어는 분명 늦게라도 챙기자고 할 테니까. 크리스마스를 11월부터 준비하는 애니까 할로윈이 1주일 조금 넘게 지났다는 사실쯤은 신경도 쓰지 않겠지.

        

       “왜? 싫어……?”

        

       “……아닙니다.”

        

       우리가 계속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자, 클레어가 조금 자신감이 떨어지는 표정으로 말하길래,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기왕 샀으니 미리 꾸며두도록 하죠. 12월이 되어서 다시 신경 쓰는 것도 귀찮으니까요.”

        

       나의 말에 클레어의 얼굴이 환해졌다.

        

       앨리스와 샤를로트도 얼굴에 어쩔 수 없다는 미소를 지었다.

        

       참고로 미아는 조금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아직 뜯지 않은 다른 상자를 보고 있었다.

        

       아, 그렇지.

        

       얘도 이런 쪽으로는 즐겨본 적 없으려나.

        

       “그럼 이쪽도 뜯는다?”

        

       클레어는 신나서는 커터칼로 비교적 작은 상자의 테이프도 잘랐다.

        

       그리고 열린 상자에는—

        

       “짜잔.”

        

       어라.

        

       일반적으로 트리에 장식하는 꼬마전구나 화환 같은 것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째 크리스마스와는 영 동떨어진 물건들이 있었다.

        

       왜 플라스틱 호박이 있는데?

        

       “지나고서야 알았는데, 명절 중에는 할로윈이라는 게 있다면서?”

        

       아니, 그거 우리나라 명절은 아닌데.

        

       물론 따지자면 한국의 명절이건 서양의 명절이건 얘네들 기준으로는 전부 ‘외국 명절’이긴 했다.

        

       그보다 해외에서 할로윈을 명절로 치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만.

        

       참고로 추석 때는 굳이 차례 같은 것을 지내지는 않았다. 대신 밖에 나가서 사람이 확 줄어든 서울의 한적한 거리를 즐기고 들어왔다. 차례를 지내지 않은 것에 클레어가 조금 아쉬워하긴 했지만.

        

       어쩌면 이건 그때 명절을 명절답지 않게 보낸 반동 같은 걸까?

        

       “아, 걱정할 거 없어. 크리스마스 장식도 당연히 제대로 준비했으니까!”

        

       클레어는 그렇게 말하면서 상자 깊숙이 있는 꼬마전구를 줄줄이 꺼냈다.

        

       “아, 할로윈 물품은 엄청 싸게 할인하더라!”

        

       그야 그렇겠지. 할로윈은 진작에 지났으니까.

        

       물론 나는 굳이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정도의 머리는 있었다.

        

       *

        

       결과적으로, 장식은 매우 해괴한 모습이 되었다.

        

       일단 트리 놓을 공간은 있었다. 어차피 가짜 나무였고 일광 같은 것을 굳이 고려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대충 창문과 TV 사이에 두는 것으로 했다.

        

       가장 위에는 별이 있고, 꼬마전구가 휘감고 있는 형태는 일단은 크리스마스트리의 조건을 충족했지만……

        

       어째 달린 것들은 형광 유령이라든가, 잭 오 랜턴이라든가, 아무튼 그런 것들이었다.

        

       게다가 보통은 산타에게 선물 달라고 달아놓는 커다란 양말 대신 플라스틱 잭 오 랜턴이 TV 아래 놓였다.

        

       그 사이사이에 막대 모양 사탕 모양 장식이나 반짝반짝 빛나는 별 모양 장식들이 있어서 한층 더 농담 같아 보였다.

        

       굳이 따지자면, 확실히 할로윈 분위기였다. 할로윈 코스프레 중에는 산타 코스프레도 있을 테니까.

        

       “음, 훌륭해!”

        

       훌륭한 건가.

        

       “이대로 내년 1월까지 있을 생각입니까?”

        

       “응? 아니, 그래도 할로윈 장식을 크리스마스까지 유지할 수는 없지. 이번 달 말쯤 되면 할로윈 장식은 떼자.”

        

       ……뗄 것치고는 너무 많이 단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이번에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11월 말까지는 이런 해괴한 인테리어 상태 그대로 지내게 되는 건가?

        

       음, 뭐, 그래도 유쾌해서 좋네.

        

       어째 장식을 모두 꺼내고 낸 다음 상자 제일 아래 깔려있던 옷가지 비슷한 것들이 조금 걸렸지만, 나는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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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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