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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4

    루크와 예르나는 거리를 산책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요즘 아카데미는 어떤지, 이사한 집에 불만은 없는지, 조기졸업을 하고 나면 뭘 할 생각인지.

    그동안 계기가 없어 나누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천천히 거리를 걷는 것은 꽤나 즐거운 경험이었다.

    “루크야, 오늘 날씨 너무 좋다. 그치?”

    “그러네요.”

    확실히, 날씨가 정말 좋았다.

    세상이 온통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일 정도로 맑고 화창한 하루였다.

    그래서인지, 그저 거리를 걷고 있는 것 뿐인데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하지만, 예르나는 그 정도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이왕 날씨도 좋은데, 거리만 걸을 게 아니라 공원이라도 가보는 게 어때? 오랜만에, 단 둘이서.”

    도시의 거리를 걷는 지금도 이렇게 즐거운데, 공원의 산책로를 걷는다는 것은 당연히 더욱 즐거울 것이다.

    거기다 가장 친밀한 사람과 함께하는 산책은 더더욱 즐겁겠지.

    게다가 그녀의 말대로, 이렇게 단 둘이 산책을 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파이가 자신에게 온 뒤로는 항상 셋이 함께했으니까.

    그래서인지 뭔가 아련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루크는 금세 기대감에 젖어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그래요, 좋은 생각이네요.”

    그렇게 루크와 예르나가 공원을 향해 발걸음을 돌린 순간.

    돌연 조그맣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루크의 종아리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가 바람에 날아와 다리에 붙었나?

    하긴, 바람이 강하기는 했다.

    누군가 버려둔 쓰레기 같은 것이 날아와 다리에 붙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어?”

    하지만 루크가 그렇게 생각을 하며 시선을 내려 확인해 본 결과, 그것은 비닐봉투나 전단지 같은 게 아니라 한 마리의 작은 강아지였다. 

    “어머, 왠 강아지지?”

    예르나가 루크의 다리에 붙은 강아지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의문스럽기는 루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강아지가 자신에게 달라붙는다는 것은 굉장히 이상한 일에 속하는 편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의식하지 않는 한, 루크의 몸에서는 기본적으로 드래곤피어가 흘러나오기 때문에 곤충을 비롯한 동물들이 접근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본능적인 작용이기에, 동물들이 그것을 극복하고 루크에게 먼저 다가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강아지는 뭘까?

    “일단 떠돌이 개는 아니고, 보니까 누가 키우던 개 같은데? 주인은 어디로 갔지?”

    예르나는 그 강아지의 몸에 하네스와 목줄이 달려 있다는 것을 지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개의 몸집이 그다지 큰 것도 아니라서, 산책을 하다 목줄을 놓쳤을 가능성은 낮을 것 같은데.

    그럼, 일부러 풀어 둔 걸까?

    -끼잉, 낑. 헥, 헥, 헥.

    강아지는 루크의 종아리를 앞발로 감싸안은 채로 낑낑대며 숨을 헐떡여왔다.

    그것은 마치, 루크에게 자신을 알아봐 달라는 듯 한 생각이 간절히 담겨져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가만, 이 강아지는….”

    이 작은 개, 분위기가 어쩐지 낯이 익다.

    얼굴의 생김새, 털의 색, 골격의 형태, 냄새, 행동거지.

    찬찬히 하나 하나 뜯어보다보니 굉장히 익숙한 것이다.

    그래, 이 녀석.

    루크는 확실히 전에 이 개를 본 적이 있었다.

    예전에 함께 공을 주고 받으며 논 적도 있지 않았던가?

    곧 루크는 확신을 담아 입을 열었다.

    “대니!”

    -왕!

    루크가 제 이름을 부르자 그 작은 강아지, 대니는 알아봐 주어서 기쁘다는 듯이 크게 한 차례 짖는다.

    역시, 녀석은 과거 자신과 상담해 주었던 개 수인, 루아 에라스트가 키우던 강아지, 대니가 분명한 듯 보였다.

    대니라는 이름을 들은 예르나도 그제서야 떠올랐다는 듯이 맞장구를 쳤다.

    “어머, 그러네. 이 강아지, 루아네서 기르던 그 조그만 강아지랑 똑같이 생겼어.”

    “네, 대니가 맞는 것 같아요. 그렇다는 건, 이 주변에 루아도 있다는 이야기일까요?”

    “아마 그럴 것 같은데? 아무래도 산책하다가 잃어버린 게 아닐까 싶어. 한번 찾아보자.”

    “네, 그렇게 해요.”

    하지만 대니는 루크의 흰색 스타킹의 감촉이 맘에 들었는지, 끝까지 그 종아리에 붙어 떨어질 생각을 않았다.

    결국 녀석을 떼어내기 위해서는 하는 수 없이 루크가 허리를 숙여 대니의 몸을 직접 들어올려야 했다.

    “아하하, 대니, 내가 이렇게 자랄동안 그대는 정말 요만큼도 안 자랐구나.”

    새끼와 다름없어 보이는 이 작은 크기가 성체라는 사실은 역시 거짓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바로 그 순간, 저 골목에서 연푸른 빛깔의 머리칼을 흩날리며 뛰쳐나오는 익숙한 수인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타타탁-!

    “대니! 똥 치우고 있을 때 갑자기 도망가면 어떡해—!”

    루아 에라스트, 그녀는 한 손에 조그만 배변 봉투를 든 채로 헐레벌떡 달려와서는 곧바로 깊숙히 고개를 숙였다.

    “으아아—! 죄송합니다, 얘가 원래 그렇게 낯선 사람한테 막 달려들고 그런 성격이 아닌데에-!”

    그에 예르나가 미소지으며 대답해주었다.

    “괜찮아, 루아. 그럴 수도 있지. 대니가 루크를 오랜만에 봐서 되게 반가웠나봐.”

    예르나의 말에 루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휴우—, 감사합니—. 네? 어어, 잠깐만요!”

    루아는 그제서야 뒤늦게 그 엘프의 얼굴이 낯이 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대니를 집어들고 있는 저 소녀의 모습이 묘하게 익숙하다는 것도.

    곧, 루아 특유의 끝이 늘어지는 듯 한 느긋한 어투에서 급박함이 섞여들기 시작했다.

    “설마, 예르나 언니? 그렇다는 건, 이 옆에 여자애는—.”

    루아의 표정이 점차 경악으로 물든다.

    “저 애가, 설마, 정말로 루크라고요?”

    역시 놀라는 건가?

    뭐어, 이제는 익숙한 상황이지.

    루크는 몸을 돌려 루아에게 대니를 건네 주며 웃었다.

    “오랜만이네, 루아.”

    그 대답에 루아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감정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말도 안돼.”

    그때 그 꼬마숙녀가 벌써 이렇게 컸다고?

    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렇게 루크와 예르나는 대니를 산책시키던 중에 우연히 만난 루아와 함께 공원에 도착했다.

    대니는 루크의 주변을 뱅글뱅글 돌다가 루크가 나뭇가지를 던지면 그 방향으로 잽싸게 뛰어가 물어오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루크와 오랜만에 만난 대니는 꽤나 즐거운 모양이다.

    그렇게 루크가 대니와 함께 노는 무렵, 루아와 예르나는 벤치에 앉은 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언니. 요즘 시에나 언니는 잘 지내나요? 최근 뉴스가 무섭던데-.”

    루아는 과거 시에나가 나서서 주선해 준 인연이었다.

    “으응, 최근에 중요한 사건 하나를 해결해서 이제 좀 편해졌나봐.”

    “그거 참 다행이네요-!”

    예르나는 루아의 싱글벙글한 표정을 보며 시에나를 떠올렸다.

    그러고보니, 요즘 시에나하고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해본 게 좀 되긴 했다.

    숲지기의 일이 끝나면 또 곧바로 루크를 돌보느라 정신없이 바빴던지라, 다른 친구들을 만날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옛날엔 거의 매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을 정도인데 말이다.

    뭐어, 이제는 루크도 전처럼 사고를 잘 치지 않고 있는데다가 가정도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조만간에 시에나도 만나서 얘기를 나눠 볼까?

    “그런데 저, 루크 보고 정말로 깜짝 놀랐잖아요-! 아무리 수인이라고 해도, 고작 10살에 저 정도로 빠르게 자라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구요—.”

    “그런가?”

    루크의 성장은 이례적이긴 하다.

    10살은 겨우 되려나 싶은 조그만 소녀에서, 이제는 어엿한 숙녀가 되어버린 느낌이 되었는데 그 기간이 고작 1년이라니.

    루아는 순간 자신이 굉장히 나이를 많이 먹은 줄 알았다.

    뭐어, 세상은 넓으니까 온 대륙을 뒤져보면 그런 아이가 아예 한 명도 없지는 않겠지만, 역시 흔하지 않은 경우라는 건 사실이다.

    “사실 뭐, 저도 13살 때는 저랬던 것 같긴 한데-. 대체 어떻게 저렇게 빨리 컸을까요?”

    “아하하. 글쎄? 사람마다 다른 거 아니겠어?”

    예르나는 아하하, 웃으며 얼렁뚱땅 대답했다.

    “하긴, 루크는 좀 특별할 수도 있겠네요—. 혼혈이니까—.”

    그에 루아는 놀랍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뭐어, 자세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루아도 루크의 사정에 대해선 대충 아는 편이니까, 얼렁뚱땅 대답해도 얼렁뚱땅 이해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루아가 말을 이었다.

    “그럼, 루크는 집에서 어때요? 갑자기 자라서 별 일은 없나요?“

    루아는 비록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동 상담사였다.

    따라서 아이의 심리에 대한 호기심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뭐어, 그렇게 별 일은 없는데…….”

    그렇게 대답하려던 예르나는 문득, 루크에게서 느낀 묘한 위화감의 정체가 뭔지 궁금증이 들었다.

    딱히 뭘 숨기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묘하게 고민이 있는 것 같아 보이고 있단 말이지.

    최근 식사량이 자꾸 급격하게 변화하는 것도 그렇고.

    어쩌면, 아동심리 상담 전문가의 시선으로 보면 무언가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예르나는 그런 기대를 담아 입을 열었다.

    “아아, 그러고보니.”

    “뭐가 있나요?”

    “최근, 루크가 식사량이 너무 극단적으로 바뀌긴 했지. 근데, 이유를 모르겠어. 혹시, 뭐 때문에 그런 지 알 수 있을까?”

    그러자 루아는 자신의 전공이 빛을 발할 때가 되었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묻는다.

    “식사량이 변했단 말이죠-? 사실 그 원인은 되게 다양하거든요-. 근데, 어느 정도로 변했어요?”

    “대략 한끼에 먹는 양이 13인분으로 확 늘었다가 다시 1인분 정도로 줄었거든. 그 이유를 좀 모르겠어서. 폭식증 같은 건 아니겠지?”

    예르나의 말에 루아는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쫑긋거리기 시작했다.

    “네? 3인분 말이지요-?”

    “아니, 13인분.”

    “……그거, 물리적으로 저 허리에 들어가는 거 맞나요?”

    루아가 저쪽에서 노는 루크의 허리를 가리키며 못 믿겠다는 듯 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예르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사실인걸, 나도 놀랐거든.”

    “대, 대단하네요오-.”

    그렇게 먹고도 저 허리란 말이지….

    루아는 루크를 향해 묘한 질투감이 들었다가, 상대는 고작 10살짜리 여자애라는 사실을 상기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어른이 아이한테 무슨.

    “확실히, 그 정도면 걱정이 되실 만도 하네요.”

    “그렇다니까.”

    “흐음, 그리고 루크는 10살이라고 했죠…”

    아동 심리학은 원래 하루이틀의 상담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왜냐면,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해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까.

    하지만 루크의 경우는 원래 언어능력도 높은 편인데다, 워낙 똑똑한 아이다 보니까 그런 부분에서는 비교적 간단한 편이었다.

    게다가, 예전에 상담을 했던 기억도 아직 남아있었고.

    루아는 잠깐 곰곰히 배운 사례들을 조합하다가 문득, 한가지 질문을 떠올렸다.

    “잠깐만요. 그러면, 루크는 요즘 생리도 하나요?”

    “생리? 어어, 최근에 처음으로 하기는 했어.”

    “역시.”

    루크가 자신과 만났던 옛날과 가장 크게 달라진 거라면 역시 그것 뿐이겠지.

    몸의 변화.

    10살이라는 말에 긴가민가 하기는 했는데, 역시 몸이 저렇게 컸으면 생리도 할 때다.

    아동 심리 상담에서 생리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루크와 같은 수인이라면, 아이의 몸과 심리에 가장 중요한 변화 역시 포함하고 있었다.

    “어쩌면 발정기일 수도 있겠네요—.”

    루아의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예르나는 얼굴을 붉히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발정기, 라고?

    루크가?

    그렇게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사이, 루아가 설명했다.

    “아하하! 언니는 엘프라서 모르시겠지만요오—, 그맘때 수인들에겐 자연스러운 거에요-! 아이들은 성욕을 식욕으로 해소하는 경우가 잦거든요오-. 그 두가지는 심리학적으로 비슷한 느낌이라…. 그런데 뭐, 이건 사실 어른들도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걱정하실 건 아니에요—. 조금 빠르긴 한데, 루크는 조숙하니까요—.” 

    “어? 어어…….”

    그런가, 자연스러운 거구나…….

    하긴, 발정기라는 게 그렇게 특별한 건 아니지.

    성교육 시간에도 배운 거고 말이다.

    그러니까, 딱히 이상한 건 아니다.

    오히려, 몰랐던 걸 알게 돼서 속이 시원해졌다고 할까.

    자연스러운 거였구나.

    “그렇구나, 알겠어.”

    “그래도 13인분은 너무 많으니까, 조절은 해야 할 수도 있겠어요. 소아비만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응, 그렇게 할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발정기 자체는 이상한 게 아니긴 하죠.
    솔직히 일부 미디어에선 야하게만 나오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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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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