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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4

        

       겨우 며칠을 두고 광주의 삼대 사파라고 하는 집단 중 둘이 망했다.

         

       다만 둘 중 먼저 망한 금적방의 경우야 충격적이기는 해도, 합리적이며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 있었다.

         

       바로 저주!

       억울하게 죽어간 진가장 사람들의 저주!

         

       금적방은 하룻밤 새에 떼몰살을 당했다.

       목격자도 없고, 밤사이 비명을 들었다는 정도가 고작이다.

       그러니 논리적인 귀결로, 이는 인간이 한 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귀신, 그중에서도 큰 귀신의 솜씨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그러니 광주 사람들도 충격보다는 오히려 기쁨이나 즐거움에 가까운 감정을 누렸다.

         

       죽을 놈들 잘 죽었다!

       천벌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었구만!

       꼴 좋다! 내 그놈들 죽어 나가는 꼴을 내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로다!

         

       하지만 광주선방이 망한 충격은 다르다.

         

       항우장사가 분노하여 직접 무녀의 몸을 타고 지상에 강림하셨으니, 홀로 쳐들어가 현판을 떼어 피로 물들이고 돌아 나와 악인의 말로를 온천하에 똑똑히 과시했으니.

         

       하루 종일 정의가 집행되었다.

       광주 사람들이 눈으로 직접 보고, 더러는 지금까지의 원한으로 약탈에 가담하기도 하고 벌레처럼 기는 원수놈들을 직접 처단하기도 하며 손을 보탠 이들이 수두룩했다.

         

       오후쯤 되어서는 아예 광주선방에 원한을 가진 양민들이 토목선녀를 보고 반색하며 길잡이를 자처했다.

       그 새끼들 도망가기 전에 족쳐야 한다며 서로 제 원수들에게 먼저 안내하려다 멱살 잡고 싸움이 붙을 정도였다.

       

       그러니 광주 민심이 어떻겠는가.

       

       이보게, 토목선녀가-

       뭐야, 토목선녀님이 니 친구야? 신녀님! 신녀님이라 불러드려!

            

       그러거나 말거나, 청이 고되지만 보람찬 노동을 마치고 침상에 누운 때가 이미 새벽녘이다.

         

       잠깐 눈 감고 숨을 몇 번 내쉬었을 뿐인데, 그런 기분이 드는데 똑똑똑 방문 두드리며 청을 부르는 소리가 잠을 깨우는 것이다.

         

       “아씨, 누가 꼭두새벽부터……”

         

       물론, 새벽은 아니고 정오가 조금 안 되어 해가 중천에 뜨기 직전이다.

       청은 눈 감고 딱 숨을 두 번 쉬고 곧장 드르렁이었으니까.

         

       “누구야?”

         

       그러자 대답이 들려온다.

         

       “서, 아니 선녀님? 저 진설이에요.”

         

         

       —-

         

         

       원래 후기지수들은 곧잘 사고를 친다.

       왜냐하면 어리기 때문에.

         

       정도를 걷는 정파 무림의 일원으로서, 너희는 선을 추구하며 약자를 수호하고 불의 앞에 침묵하지 마라.

       정파 무림이 앞으로의 후계자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는 가르침이다.

         

       거기에 더해 사문의 존경스러운 선배님들의 무용담을 들으며 자라난 아이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큰 사건으로 번지지 않는 이유는, 후기지수의 무위는 결국 후기지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소위 명문이라 하면 일류 후기쯤이고, 손에 꼽히는 기재들(혹은 영약을 밥처럼 삼킨 유망주들)은 절정 초기쯤 된다.

       하지만 현 무림에 절정 무인은 조금 과장해서 발에 챌 만큼이나 많다.

         

       무학이 기술로 정립된 지가 오래라고 하니, 오래 살아 꾸준히 수련하기만 하면 천하의 둔재라고 해도 절정에는 올라 볼 수 있다.

       게다가 강호가 오래도록 평화로웠다.

       오래 산 무인이 많으니, 절정 무인도 많고 작은 도시라도 초절정의 고수가 한 명씩 자리잡는 꼴이 아니겠는가.

         

       후기지수가 들끓는 혈기로 사고를 쳐도 충분히 그를 제지할 상대가 있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후기지수들도 진짜 강호에 대해 깨우치게 된다.

         

       원한의 연쇄, 베고 또 베어 그 끝이 무한정 이어지는 영원한 순환.

       물론 제대로 알지는 못하고 그저 윤곽이나마 더듬는 수준의 막연한 체감이지만.

         

       거기에 제 무위가 그렇게 대단하다 할 것이 아니라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거기에 사고를 쳐서 사문의 존장들까지 이어지는 책임의 선을 보면, 한 개인에서 문파의 소속원으로 자신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정파의 후기지수,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진자강은 크게 반성했다.

         

       서문청 그 아이도 결국 후기지수였구나.

       생각해보니 이제 겨우 스물하나, 그것도 이제 한 달 반, 스물에서 하나 더 먹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위로할 줄 아는 그 속 깊은 어른스러움에 미처 나이를 생각하지 못했다고 할까.

         

       문제는 그 무위였다.

         

       정파의 후기지수가 사고를 치는 일은, 굳이 아이로 비유하자면 목검을 들고 휘두르는 것과 같았다.

         

       해봐야 사파의 말단 잡졸 놈들이나 베어내니 그 정도야 사파 놈들도 그냥 재수가 없었거니 하고 넘어가는 정도다.

       그보다 더 위험한 놈들이란, 후기지수가 건드리더라도 정파의 성세가 강하다 보니 보통은 좋게 때려눕혀 돌려보내는 정도.

       물론, 정파 무인들이 죽어 나가는 때가 첫 강호행이니 젊은 혈기로 목숨을 잃는 이가 많기도 하고.

         

       하지만 청이 든 것은 목검이 아니다.

       진검 중에서도 아주 시퍼렇게 칼날이 선 명검을 쥐었으니, 결과가 지금 어떠한가.

         

       “음.”

         

       진자강이 말을 골랐다.

         

       일단 불러다 앉혀놓기는 했는데, 좀처럼 말문을 트기가 어렵다.

         

       그래서 청이 잘못했는가?

       아니다.

         

       진자강이 거기서부터 일단 입을 연다.

         

       “먼저 고맙고, 또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군요. 진가가 나섰어야 하는 일인데, 천화검에게 미뤄버린 꼴이 되고 말았으니.”

         

       “아니에요. 그, 진가도 사정이 많이 어려우시고……”

         

       입밖으로 내고 나니 할 소리였나 싶어서 청이 급히 말끝을 흐린다.

         

       진자강이 쓴웃음을 지었다.

       손님 입에서 사정이 어렵다는 소리를 들은 가주의 심정이 어떠하겠는가.

         

       “아니요. 천화검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내가 할 수도 있었겠지요. 다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겠군요. 지켜야 할 가문이 있고. 보신을 위해 저들을 방치했다고 할 수도 있겠죠.”

         

       “아니요, 그야 당연한 일이니까.”

         

       “으음.”

         

       진자강이 말을 고르다, 영 고약한 역할을 맡았음을 깨달았다.

         

       사실 잘했다며 칭찬하며 오랜만에 속이 뻥, 훌륭하다 공치사를 해도 모자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청이 스스로 말하기를 초절정 초월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초절정을 초월하고 나면 그냥 화경이다.

       물론, 손속에 자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청과는 다른 양상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광주선방 하나를 와해시키지 못해서 가만히 보고 있었겠는가.

         

       진자강이 나서면 사파련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에 준하는 고수가 복수를 천명할 테니, 사실 체면을 위해서라도 확실히 진가주에게 승리할 수 있는 인사를 보낼 것이다.

       뭐 생사결이니 하고 도전장을 내밀고는 시골 벽지로 꺼지던가 싸워서 죽으라는 식으로.

       십대세가의 일원으로 피할 수 없는 도전이기도 하고, 그러고 나면 가문이라고 또 무사하겠는가.

         

       사실, 광주선방의 패악질이야 진즉에 알고 있었다.

       진자강도 그래 너네 그러고 살아라 하고 놔두려는 것은 아니었으니, 진가장이 다시 성세가 회복되고 나면 고작 뱃놈들 따위야 콱 짓눌러 패악질을 멈추도록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고통받는 양민들은?

         

       그러니 진자강이 지금 맡은 역할은, 어른이 아이에게 비겁해져야 한다고, 치사하고 더러워도 세상 사는 일이 그럴 수밖에는 없는 것이라고 충고하는 늙은이다.

         

       “천화검은 천화검 한 사람이 아니에요. 정파의 신룡으로 후기지수의 대표고, 여과, 아니 대모 선배님의 직전제자로 선배님의 뜻을 대리하는 사람이고, 또 신녀문의 제자이기도 해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네.”

         

       “알더라도 한 번 더 듣도록 해요. 천화검이 하는 모든 일들은, 집단의 일원으로서 그 뜻이, 책임이 될 수 있어요.”

         

       “네.”

         

       청의 눈썹이 축 늘어진다.

       

       아니라고 항변할 만큼 청은 어리지 않다.

       왜냐하면, 어리지 않기 때문이다.

       집단에 소속된 한 개인은, 그게 단 한 명 뿐일지라도 집단을 대표할 수 있다.

       그저 일부일 뿐이라는 항변은 애초에 그 집단에서 자정하지 못한 책임보다 가벼워서 설득력 없는 변명이 되고 마니까.

         

       청의 표정은 정직하다.

       그에 진자강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책임을 알고 있다면 더 잔소리를 할 필요는 없겠구나, 하고.

         

       “그래도, 천화검이 아니라 항우장사대신을 모신 토목선녀가 강신된 상태에서 벌인 일이라서 다행이군요.”

         

       “네?”

         

       “슬슬 토목선녀는 떠나도록 하세요. 화도에서 마차 타고 사라졌다고 하면 되겠군요? 천화검과는 상관 없는 일이고.”

         

       토목선녀 복장으로 북쪽의 도시인 화도에 들렀다가. 마차 하나 매수해 어디로든 보내버리라고.

       그리고 몰래 돌아오라는 것이다.

       진가에 머물던 천화검은 아무것도 몰라요 그냥 손님으로 쉬고 있었을 뿐이라고.

         

       청이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 그래도 될까요?”

         

       “신출귀몰한 토목선녀가 어디로 갔는지 알 게 무엇이겠어요.”

         

       “하지만, 그러다 진가장에 시비를 걸면 어떡해요? 저 사파련이라던가.”

         

       “증거가 있으면 받아들이겠다고 하지요.”

         

       그냥 우기겠다는 소리였다.

         

       마공을 들키면 마공이 아니라고 우기면 된다고 하신 스승님의 방식이 딱 이런 식이 아닌가.

       뭐지? 이게 정파 어르신들의 수법인가?

         

       “다시 말하지만, 천화검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다소 과격하기는 했지만, 진가가 누르지 못해 원성이 하늘을 찌르던 악인들이었으니. 오히려 감사를 표해야겠지요.”

         

       그리고는 진가주가 고개를 깊이 숙인다.

       일개 후기지수 새파랗게 어린 후배에게 보일 장면은 아니지만.

       벌써 두 번째 받는 큰 감사다.

         

       그러나 가주전을 나오는 청의 표정은 영 개운하지 못하고 떨떠름하다.

         

       청이 기대한 꾸중이 아니라서.

         

       청이 바란 꾸중은 경솔히 일 벌이면 네 주변 사람에게 화가 번질 수 있다고 하는, 악인참도 좋지만 이를 명심하고 조금 비겁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생명의 소중함이라던가?

       제거보다는 구제, 입을 막기보다는 마음을 돌리라던가?

       혹은 살업은 끝내 네게 해가 되는 것이니 그래도 좀 자제해 보라던가?

         

       하지만 그런 소리는 커녕, 내가 죽였어야 하는데 대신 해 줘서 고맙다는 소리나 듣고 나왔으니.

         

       악인참 자체는 잘했다는 소리다.

         

       그런데, 이게 맞나?

         

       광주선방 놈들도 그래.

       

       왜 진짜로 죽어 마땅한 놈들인데?

       좀 뭔가 사연 좀 있고 신파도 좀 하고 고민거리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죽었는데 다들 기쁘다 기뻐 광주선방 멸망 만세를 외치는데.

         

       뭔가, 좀, 이게 맞아?

       왜이리 찝찝한 기분이 들지?

         

         

         

       단전에서 소리가 날 수 있다면, 지금 청의 단전에서는 갸아아악 아주 악에 받친 절규가 흘러나와야 한다.

         

       도가와 불가의 정신을 보하는 진기들이 땀을 뽈뽈뽈 흘리며 연신 기맥을 내달린다.

       선두에는 비구의 가사를 뒤집어 쓴 대정선기가, 그 뒤를 붉은 선녀복의 주양진기와 한쪽 가슴을 깐 파격적인 소림 가사 차림의 역근세수기가, 용과 코끼리가 든 가마를 탄 용상반야진기가 따른다.

         

       그렇게 도가의 진기들이 독맥을 타올라 정수리 끝 백회에 이르면, 상단전 바닥이 온통 흉성을 흩뿌리는 악기로 가득 차 꿈틀거린다.

       도가의 신공들이 짓밟아 터뜨려 지워내나 징그럽게 솟는 흉성들은 전혀 사그라들 기미가 없다.

       이년은 요 며칠 잘 지내더니만 왜 갑자기 지랄발광을 하는지.

         

       진기는 고이지 않고 흘러야 하기에 멈출 수 없다.

       그렇게 꼭대기에서 한바탕 하고 단전 문 열어 돌아올 수밖에는.

       그러면 꼴 좋다고 낄낄대는 마기들이 세상 고소하다는 듯 비웃음을 날린다.

         

       평상시라면 환희진기가 눈깔 부라리며 기강이라도 잡았을 텐데, 지금 제일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든 진기가 바로 환희진기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 곰팡이처럼 눌러붙은 파천마기는 오늘도 크큭.

         

       그때였다.

       쾅! 한 바퀴 돌아 단전 문 열고 나타난 환희진기가 두다다다 투명한 나삼을 흩날리며 벽면을 향해.

       환희진기의 이단 옆차기!

       벽 보고 쪼그려 앉아 달라붙은 파천마기의 옆구리를 빡 호되게 걷어찬다.

       그리고는 다시 출문 걷어차고 백회를 향해 달려나간다.

       바쁘다 바빠, 살기를 음심으로 돌리느라 눈코뜰 새가 없는 환희진기다. 

       

       그에 도가와 불가의 진기들이 후우우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흉성을 치우러 달려나간다.

       

       환희진기의 출현에 잠시 움찔하던 마기들이, 이번에는 나동그라진 파천마기에게 시선을 돌린다.

       파천마기는 누운 채로 옆구리 붙들고 파들파들 몸을 떨다가, 어기적 기어 다시 벽면을 향해 쪼그려 앉아 크큭, 끄흐윽…….

       파천마기는 웃고 있다.

         

       그리고 그 꼴을 월녀진기가 가만히 바라본다.

       아무런 표정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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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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