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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5

   처음에는 단순한 우연인가 싶어 비시를 내버려 두었다.

   

   내가 보기에는 허술해보여도 다른 사람들 입장에선 능히 거물이라 부를 법한 사람이 한 가득인데 벌떡 일어나서 찾아가봐. 엄청나게 부담스러울 거 아냐.

   

   특히 페이비는 비시 입장에서 저승사자처럼 보일 텐데 괜히 그럴 필요 없지. 그렇지만 비시는 몇 분이 지날 때까지도 계속해서 내 눈치를 살피고만 있었다.

   

   이쯤 됐으면 나한테 용건이 있다는 건 확정이네. 혹여 착각이더라도 불평은 못 하겠지.

   

   친구들의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당황해서 어찌할 줄 몰라하는 비시의 앞에 섰다.

   

   “아. 알른 영애?”

   “들러리 영애. 너무 부끄럼이 많은 거 아냐? 힐끗힐끗 거리는 게 첫사랑에 빠진 소녀 같던데.”

   “…네. 네?”

   “아. 혹시 나한테 반한 거라면 미안. 너무 귀엽고 예쁜 것도 잘못이니까.”

   “그런 거 아니거든요?!”

   

   버럭 소리를 질렀던 비시는 자신을 향하는 내 친구들의 시선에 다급히 자세를 고쳐 잡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구경하고 있을 뿐일텐데 왜 얼굴을 창백히 물들이는 걸까.

   

   얘 겁 너무 많은 거 아냐?

   

   “들러리 영애. 그럼 뭐 하러 온 건데.”

   “아. 저. 그게 아드리 때문에요.”

   

   어쩐지 아드리가 안 보인다 싶었는데 역시 아드리와 관계된 문제인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그녀의 팔을 이끌고 건물 안 쪽으로 향했다.

   

   사령과 관계된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나눌 만한 것이 아니다.

   

   비시야 허술하기 그지없는 반 쪽 짜리 사령술사에 불과하니 무해하지만 진짜 사령술사들이 벌이는 패악질은 격이 다르거든. 사령술이 괜히 금기라고 여겨지는 게 아냐.

   

   사령술사에 대한 인식이 이렇다 보니 사령술에 대한 탄압도 격을 달리한다.

   

   게임 속 배경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사령술과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비시는 물론이고 그녀의 가문까지 끝장나 버릴 걸.

   

   그를 아는 나는 비시와 편히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개인실을 잡고 카리아가 건네 준 인장으로 소리까지 차단한 후에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외톨이 할망구한테 무슨 일이 생겼어?”

   “이번에 성녀님께서 악신의 추종자들을 물리치셨잖아요.”

   “허접 성녀치고는 노력했지. 근데 그게 왜?”

   “그 일 때문에 교회의 사제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어서요.”

   

   지난 번 거리에서 악신의 추종자가 나온 일은 교회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신들이 머무르는 거리에 악신의 추종자들이 잠입했는데 그걸 조금도 눈치 채지 못하다니!

   

   성녀님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악신을 추종하는 광인들에게 당했을 것 아닌가!

   

   대충 이러한 사고 방식을 거친 사제들은 자의적으로 그리고 타의적으로 눈에 불을 켠 채 거리의 순찰을 하기 시작했다.

   

   또 같은 일을 일어나게 내버려 둘 수 없단 의지를 지닌 채 필사적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들은 거리에 존재하는 자그마한 부정도 허락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드리의 저택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뛰어난 사령술사인 아드리는 자신이 지닌 기운을 항시 감추어 두었다.

   

   지금의 그녀는 증오도 욕심도 내버린 채 비시의 옆에서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을 즐기는 유령이니까. 굳이 자신의 존재에 위협이 될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온 것이다.

   

   여태까지는 교회를 속여 넘기는 데 성공한 아드리였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주신 교회 사제들의 순찰은 점점 더 아드리의 목 끝을 위협하고 있었다.

   

   “지금은 지하에서 모습을 숨기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지.”

   

   비시의 설명을 모두 들은 나는 팔짱을 낀 채 곰곰이 생각했다.

   

   앞으로 사제들의 순찰이 덜 해 질 일은 없다. 악신의 추종자들은 필사적으로 아카데미를 노릴 터이고 그들의 발악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경비도 삼엄해 질 테니까.

   

   게임 속에서 아드리는 어떻게 살아남았더라?

   

   애초에 이게 게임일 적에는 이런 일이 없었던 것 같은데?

   

   참고할 것이 아예 없단 사실을 깨달은 나는 일단 아드리를 만나 대화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 녀석의 의견을 들어봐야 뭔가가 나올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아카데미에서 빠져 나와 거리로 나온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내며 입술을 곱씹었다.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야 내게 익숙한 일이다.

   

   이 세계에 처음 발을 들이고 나서부터 항상 타인들의 시선 속에서 살았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받는 시선은 평소의 시선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나를 향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깃든 것은 분명한 흥미였으니까.

   

   “저 사람이 알른 영애?”

   “장신구보다 실물이 더 예쁘신 것 같은데.”

   “진정 저 분이 여러 소문들의 주인공이라고? 무엇이 잘못된 거 아닌가?”

   “사교계에서 저 분의 모습을 보았다면 그런 말 절대 못 할 거다.”

   “호기심에 다가가지 마라. 어떤 험악한 일을 겪을지 모른다.”

   “…저런 분이라면 밟혀도 괜찮을 것. 크흠.”

   

   예술 교단의 장신구가 대체 얼마나 큰 여파를 미치고 있는 건지.

   

   흥미와 경계가 뒤섞인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내던 나는 도망치듯 아드리의 저택에 도착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예전에 루시가 저질러 놓은 깽판에 고마움을 느낄 날이 올 줄이야.

   

   과거의 루시가 쌓아놓은 평판이 아니었더라면 분명 거리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나한테 달려들었겠지.

   

   …이렇게 된 이상 미리미리 깽판 좀 쳐둘까. 미리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만들어두지 않으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잖아.

   

   예술 교단의 풍경이 재현될지도 모른단 생각에 몸서리를 치던 나는 진지하게 사교계에 나가서 깽판을 칠까 고민하다가.

   

   “너 왜 왔어.”

   “히약?!”

   

   바닥을 뚫고서 튀어 나온 아드리의 모습에 새된 목소리를 냈다.

   

   “크흡. 크하핳! 뭐야! 건방진 꼬맹이! 너도 겁을 먹는 구나?!”

   “…시끄러. 성질 더러운 외톨이 할망구.”

   “응~ 그래봐야 방금 전에 내뱉은 비명은 그대로야~ 히약?!이라니! 큽. 크흐흡.”

   

   아드리의 비웃음소리를 듣던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내 마주 웃음을 지어줬다.

   

   “위험하다고 해서 와봤더니 딱히 다급하지 않은 모양이네?”

   “…아.”

   “아닌가? 이제 편하게 쉬고 싶어진거려나? 그럼 내가 정화해줄 수도 있는데. 응?”

   

   주신의 신성을 살짝 끌어올려 아드리에게 가져다대자 그녀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뭐. 뭐야! 왜 예전에 비해서 더 진해진 거야?! 방학 때 무슨 일이.”

   “왜 도망쳐? 외톨이 할망구? 죽고 싶은 거 아니었어?”

   “나 이미 죽었거든?! 그리고 난 딱히! 아악! 잘못했어! 잘못했다고 내가 미안해! 됐어!?”

   “할망구. 귀족 아니었어? 왜 사죄할 때의 예의범절을 몰라?”

   

   내가 메이스를 꺼내는 걸 멍하니 보던 아드리는 눈가를 부들부들 떨다가 결국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례를 끼쳐드렸습니다.”

   “흐응. 여전히 마음에는 안 들지만 할망구 나이가 있으니까 이번엔 이걸로 넘어가줄게. 아~ 난 정말 착하다니까?”

   

   정수리를 툭툭 두드리는 걸로 방금 전 일을 되갚아 준 나는 분을 못이긴 듯 어깨를 떠는 아드리와 함께 현 상황을 점검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더 이상 저택에 머무는 건 위험해. 주교급이 튀어나오면 나도 어쩔 수가 없단 말야.”

   

   그렇겠지. 아무리 아드리가 뛰어난 사령술사라 하더라도 상성이란 게 있는 걸. 제대로 된 준비도 못한 상태에서 주교급 사제와 맞서는 순간 아드리는 정화당할 뿐이야.

   

   “그리고 말야. 꼬맹이 너 도대체 뭔 짓을 했길래 네 그림이 그려진 장신구가 거리에 돌아다니는 거야? 주신의 사랑을 받는 네가 그려진 그림은 그 자체로 위험이라고!”

   

   거기에 더해 점차 퍼져나가는 예술 교단의 장신구도 아드리에게 문제가 됐다.

   

   주신의 사도인 내가 그려진 장신구는 그 자체로 성물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혀 모르고 있었던 사실이긴 한데 그렇다고 마냥 놀라운 일도 아냐.

   

   내 그림은 그렇다 치고 일단 그 장신구를 만든 녀석들이 예술 교단의 신도들이잖아.

   

   성직자인 그들의 열정이 담긴 장신구라면 당연히 성물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

   

   …설마 이거 허접 주신이 큰 그림을 그린 건가?

   

   만약 내가 허접 주신에 대해 알지 못했다면 그의 지혜에 감탄했을 터이나 나는 허접 주신의 추한 모습을 너무도 많이 봐왔다.

   

   허접 페도 변태 주신이라면 단순히 내 굿즈가 가지고 싶었을 뿐일 수도 있어. 따지고 보면 자기 욕망에 따르다가 우연히 얻어 걸렸을 가능성이 더 높지.

   

   “하여튼 상황이 최악이야. 아카데미 거리에 있을 곳이 없다고.”

   

   비시의 짜증 어린 어투에 고갤 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다른 데로 가면 되잖아. 설마 바깥이 무서워서 그러는 거야. 할망구?”

   “이 저택을 떠나면 비시와의 연결이 끊긴단 말이야! 아직 서툴기 그지없는 그 아이를 내버려 둘 순 없어!”

   

   비시를 돕기 위해서라도 아카데미 거리를 떠나면 안 되는 상황인데 아카데미 거리 내부에 있으면 언젠가 정화당할 것 같은 아드리의 현재는 제삼자인 내 입장에서도 머리가 아픈 것이었다.

   

   허나 내 입장에서도 마땅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카데미 거리 어디를 가더라도 교회의 눈길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지금 아드리가 머물 곳이.

   

   아.

   

   좋은 생각났어.

   

   아드리한테도 좋고 나한테도 좋은 생각이 말야.

   

   “할망구. 어둡고 습한 걸 좋아하는 사령한테 좋은 곳이 있는데.”

   “좋은 곳?”

   

   *

   

   “…이런 곳이 있었다고?”

   

   내가 아드리를 안내한 것은 몇 달 전 방패를 얻기 위해 들렀던 아카데미 대학원의 숨겨진 지하였다.

   

   석판이 없다면 들어오는 것조차 불가능한 이 장소는 그 때 당시 함께했던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 존재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장소지.

   

   아드리가 이 곳에 숨는다면 아무리 뛰어난 성직자라한들 그녀를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아드리 본인이 직접 죽여 달랍시고 나서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괜찮네. 부정한 기운이 은근히 모여 있는 게 특히 마음에 들어.”

   “그럴 줄 알았어. 할망구는 바퀴벌레 같으니까 이런 곳을 좋아할 것 같더라고.”

   “…으으으!”

   

   아드리는 할 말이 많은 듯 했지만 차마 내게 무어라 하지 못했다.

   

   지금 나와 그녀 사이에 존재하는 상성의 차이는 극명! 힘으로 이길 수 없는 데다 명분으로도 이길 수 없는 그녀는 내가 무어라 하든 참아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부들거리는 할망구를 보고 있으려니 폭발할 때까지 놀리고 싶단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난 그 마음을 억눌렀다.

   

   이제부터 부탁할 게 있는데 잔뜩 열 받게 만든 상태에서 이야기하긴 좀 그렇잖아.

   

   앞으로도 아드리를 놀릴 일이 잔뜩 있을 테니 나중으로 미뤄두자.

   

   “외톨이 할망구.”

   “뭔데.”

   “너 어차피 들러리 스토킹하는 거 말고는 할 일 없지?”

   “…그건 왜.”

   “들러리 따라다니는 김에 아카데미 안도 좀 돌아 다녀줬으면 해서.”

   

   학장이라는 정보원이 있기는 하지만 그 사람은 비밀 이야기까지 들을 수는 없다. 그는 어디까지나 외부인에 불과하니까.

   

   허나 아드리는 아니다. 사령인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비밀이야기를 얼마든 들을 수 있다.

   

   들키지 않는 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할 수 있지?”

   “싫어. 위험한 거 피하려고 여기에 온 건데 굳이…”

   

   거절의 말을 내뱉던 아드리는 내 손에 모이는 신성을 보고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해야지. 아니. 해야죠. 네.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할게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던 아드리는 아카데미가 개학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말을 지켜 보였다.

   

   1왕비의 세력에 포함된 이들이 나를 시험하려 한단 정보를 들고 오는 것으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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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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