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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5

   환한 금발의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성.

   본래는 남자인 줄 알았지만, 실상은 세계를 지키기 위해 남장을 하게 되었단 걸 크라슈도 이제는 알고 있다.

     

   그런 지금.

   그녀의 회차 기준으로는 한때 전여친이기도 했던 아서의 속마음을 크라슈가 엿듣고 말았다.

     

   -오랜만에 보니 더 좋아.

     

   그것도 열렬한 사랑 고백을 말이다.

     

   크라슈가 잠시 얼굴가를 손으로 짚고 쓸어내렸다.

     

   아서 녀석, 불과 얼마 전에 마음을 정리했다더니.

   만나자마자 아주 대폭주를 하고 있었다.

     

   ‘거짓말이었나.’

     

   생각해 보면 마음의 정리라는 게 자기 뜻대로 되는 법은 아니다.

   이성은 진정시켜도 마음을 어쩔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늘 아서가 짓는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자주 봐서 그럴까.

   왜인지 아서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문제는 그게 전부 착각이었다.

     

   아서도 결국 사람이고, 사랑을 하는 여자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지 말던가.’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녀도 나름대로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이번 회차에서 여러 인연과 이어진 크라슈의 삶에 더는 자신이 방해하고 싶지 않았겠지.

     

   ‘이기적이지 못하기는.’

     

   어쩌면 모든 것에 이기적이었지만 크라슈에 한해서 이기적이지 못한 걸 수도 있었다.

     

   “아서.”

   “응.”

     

   크라슈가 아서를 부르자 그녀가 평소와 같이 웃었다.

   그것만 봤다면 크라슈도 그녀가 정말로 모든 걸 내려놨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 지금 얻은 스킬 덕분에 네 속마음이 들린다.”

     

   이걸 알고도 침묵하기도 그렇다.

   크라슈가 솔직하게 말하자 아서는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그 눈이 서서히 떨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얼굴이 목부터 붉어져 완전히 홍당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지금 수많은 회귀를 반복한 회귀자가 보여줬던 여유로운 모습이 떠올랐을 것이다.

     

   연애에서마저도 초연한 태도를 보이며 덤덤히 퇴장한 전여친.

     

   그 모든 게 교차한 순간.

   그녀는 눈앞이 아득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다 들었어?”

     

   크라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서는 자기 얼굴을 양손으로 가리더니 비실거리며 그 자리에 무릎을 모아 앉았다.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한 끝에 나온 행동이었다.

     

   크라슈는 차마 아서에게 말 걸지 못하고 잠시 기다렸다.

   그러자 아서가 양손을 슥 펼쳐 손가락 사이로 크라슈를 바라본 채 말하였다.

     

   “……크라슈, 널 잊으려 한 건 정말이야.”

   “그래.”

     

   아서는 크라슈를 진심으로 떠나고자 했다.

   더 이상 그의 곁에는 자신의 자리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녀도 자기 나름대로 크라슈와 단판을 벌이고, 떠난 것이다.

     

   “그런데 나는 못 잊나 봐.”

     

   아서가 자신의 가슴팍을 무릎으로 꾸욱 눌렀다.

     

   그동안 차오른 감정을 연거푸 누르고, 또 눌렀지만.

   감정이라는 것은 억누를수록 자꾸만 밖으로 새어만 나왔다.

     

   “내 삶에 있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자꾸만 곱씹어.”

     

   아서는 크라슈와 연인이었다.

     

   그를 설령 제 손으로 죽이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아서는 크라슈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를 위해 살고 싶었다.

     

   “나는 너무 많은 사람을 알아버렸으니까.”

     

   아서의 얼굴에 짙은 씁쓸함이 담겼다.

     

   그녀는 회귀하는 동안 사람의 여러 면모를 보았다.

   자기 행동과 환경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사람들.

     

   이는 분명 그 사람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회귀로 지쳐 버린 아서에게는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이기심처럼 보이기도 했다.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 사람은 크라슈가 유일했다.

   그렇기에 아서도 그만 자각하고 만 것이다.

     

   이제는 회귀할 수 없게 된 지금.

   자신이 유일하게 믿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크라슈뿐이란 걸 말이다.

     

   “이건 회귀의 저주인 거겠지.”

     

   사랑과 실연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다.

   자신에 한해서는 그게 불가능하단 걸 말이다.

     

   회귀자인 그녀에게 있어 시간이라는 건 무의미했으니까.

     

   시간은 잊히는 게 아니라 더 괴롭게 만들 뿐이다.

     

   “크라슈, 난 널 앞으로도 평생 사랑할 거야.”

     

   아서가 힘없이 웃었다.

     

   이것만큼은 자신 또한 변함없는 사실이라고.

   그녀는 그렇게 웃었다.

     

   크라슈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무언가 말해야 할 거 같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서의 삶이 어땠는지 조금은 아는 사람으로서.

   회귀자인 그녀가 짊어졌던 짐이 어떤 거였는지 아는 사람으로서.

     

   그녀가 내린 결단이 간접적으로 느껴졌으니까.

     

   “그러니까 이번 건 눈감아줘.”

     

   그렇게 말한 아서는 몸을 돌려 떠나고자 했다.

   차마 그녀를 붙잡지 못한 채 바라보던 크라슈는 이내 머리를 박박 긁었다.

     

   입 다물고 있는 건 타고난 성미에 맞지 않았다.

     

   언제부터 자신이 이렇게 남의 의견을 귀담아들으며 답답하게 행동했던가.

     

   살아오던 삶대로.

   자기 마음대로 행동해 온 게 크라슈였다.

     

   크라슈가 달려 나갔다.

   그러자 크라슈의 눈에 금방 아서가 비췄다.

     

   “아서!”

     

   크라슈가 아서의 손목을 잡아 강제로 멈춰 세웠다.

   강제로 세워진 아서가 크라슈를 돌아봤다.

     

   그녀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망가져 있었다.

     

   “……왜 잡았어.”

     

   그녀는 애써 감정을 억누른 채 말하였다.

     

   “잡으면 나도 자꾸 더 못 놓는단 말이야.”

     

   크라슈의 곁에 있고 싶다는 이기심.

   이러면 아서도 그런 이기심을 참지 못하게 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생기니까.

     

   “알 게 뭐야.”

     

   그러는 순간 크라슈에게서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네가 말했지. 이기적으로 살아왔지만, 나한테만큼은 이기적일 수가 없었다고.”

     

   크라슈는 아서의 손목을 꽉 쥐었다.

     

   아서가 회귀를 하던 그날.

   그날에 뻗었던 손도 아서를 이렇게 잡고 싶었다.

     

   그 손은 분명 세계를 포기하는 아서를 붙잡고 싶었다.

     

   그때는 잡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이라면 그녀를 잡을 수 있다.

     

   “그럼 내가 이기적인 놈이 되면 그만이야.”

     

   크라슈가 아서를 바라봤다.

     

   아서와는 긴 인연이었다.

   그녀의 전회차와 크라슈의 회차를 포함해 분명 길고 긴 인연이었다.

     

   그런 인연을 단칼에 끊으라고 말한다면.

   크라슈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기적으로 붙잡아 줄 테니까, 넌 너가 하고 싶은 만큼 살아.”

     

   아서는 회귀를 통해 자신의 삶을 전부 잃어버렸다.

   아무리 세상을 여행하고, 돌아다녀도 잃어버린 삶은 돌아오지 않는다.

     

   “네가 충분하다고 느끼고, 홀로 서고자 했을 때는 순순히 보내줄 테니까. 있고 싶을 때까지 마음껏 있어.”

     

   적어도 이런 식으로 떠나 아서가 망가져 버리는 것을.

   크라슈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기적으로 굴었다.

   그녀의 결심을 흔들어 놓더라도 아서가 무너지는 걸 크라슈는 원치 않았으니까.

     

   아서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입술이 즈려 물어졌다.

     

   이래서다.

   이러니까 자신이 이 남자를 계속 사랑했던 거다.

     

   가장 붙잡아 줬으면 할 때 어김없이 나타나 잡아주니까.

     

   아무리 감정을 추스르려 해도 자꾸만 기울고 마는 것이다.

     

   “누가 이기적이라는 거야.”

     

   아서가 손으로 크라슈의 가슴팍을 툭 하니 쳤다.

   그녀의 얼굴에는 어느새 눈물 망울이 지고 있었다.

     

   “그런 거 전부 나한테만 좋은 이야기잖아. 다 나를 위해서 해주는 소리잖아.”

     

   동정이라도 그것이 기뻤다.

   안타까움이라도 그것이 기뻤다.

     

   아무리 회귀를 거듭해 갉아 먹혔더라도.

   아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눈길 한 번에 기뻐하고 마는 소녀였다.

     

   크라슈가 손을 내밀어 아서의 뒷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래, 그러니까 내가 이기적인 거야.”

     

   그저, 아서가 이제는 조금은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으니까.

   그러니 주변 상황은 생각하지 않고, 이러는 거다.

     

   설령 이 일로 그녀의 미래에 악영향을 주게 되더라도.

   지금은 행복하기를 바라니까.

     

   “한결같은 놈.”

     

   아서가 크라슈의 옷깃을 꽉 쥐었다.

     

   “크라슈.”

     

   그리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나 널 사랑해.”

     

   차마 내뱉지 못하던 그 말.

   그 말을 다시금 애달프게 내뱉었다.

     

   “널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사랑해.”

     

   참고 참았던 말을 내뱉은 아서가 크라슈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런 아서를 크라슈는 천천히 토닥여 줬다.

     

   이제는 더 이상 그녀의 마음을 엿들을 필요가 없었다.

   지금 내뱉고 있는 말이 전부 아서가 하고픈 말이었으니까.

     

   별들이 무수히 빛나는 밤하늘 아래.

   아서는 겨우 자기 행복에 돌아왔다.

     

     

   * * *

     

     

   아서가 진정하는 건 그로부터 약 몇 분의 후의 일이었다.

     

   정확히는 그녀도 이미 진정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품에 안긴 크라슈의 온기가 너무 따스해 그만 어리광을 피우고 말았다.

     

   사랑을 하면 자꾸만 옆에 붙고 있고 싶어진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사람이 가장 먼저 보고 싶어지고, 옆에 있다면 그 사람의 곁에 가장 먼저 달려가고 싶어진다.

     

   그것을 지금까지 꾹꾹 참아왔던 아서로서는 오랜만에 느껴본 크라슈의 온기로 인해 정신이 혼미했다.

     

   회귀를 거듭하며 너무나 오랜 기간 크라슈와 담을 쌓고 살았던 아서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 순간 과거와 일들이 겹쳤다.

   분명 꽤 오랜 기간 그와 연애했음에도.

   마치, 오늘 연애를 처음 한 소녀처럼 얼굴을 붉혔다.

     

   품에서 몸을 뗄 타이밍을 모르겠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크라슈의 품이 이렇게 넓었던가.

     

   아무래도 크라슈는 예전 회차와 달리 어린 시절부터 단련을 해왔으니까.

   예전보다 품이 더 넓은 것 같았다.

     

   그 사실에 재차 크라슈가 남자라는 걸 인식하고 만다.

     

   ‘나 대체 몇 살이야.’

     

   설마하니 이렇게 꼴사납게 마음이 들통날 줄이야.

   다시 생각해도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크라슈를 좋아하는 마음과 별개로 그에게 있어 회귀자 선배로서 멋져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지금 그런 자존심이 한 번에 전부 무너져 내렸으니.

   아서는 전에 없을 정도로 부끄러움에 취해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토닥여 주는 크라슈의 손길이 너무 자상해.

   그만 또다시 그에게 어리광을 피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아련함이 들기도 한다.

   이제는 이런 자상함이 자신에게만 향하는 건 아닐 테니까.

     

   분명 크라슈는 자기 아내들을 더 아끼고 있겠지.

     

   그들이 쌓아온 인연에 자신은 비집고 들어가는 꼴이나 다름없다.

     

   ‘나는 내쳐도 받아들였을 텐데.’

     

   참, 바보 같은 남자다.

   사람의 삶에서 정에 휘둘리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는데.

   이 남자는 그런 위험도 기꺼이 감수해 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자신이 이토록 크라슈를 좋아했던 것이기도 했다.

     

   -아서.

     

   그러는 순간 크라슈가 스킬을 이용해 자신의 이름을 마음속에 전해왔다.

     

   이름이 불리는 것만으로 심장이 콩닥거리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싶지만.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 같은 일이니 받아들여야 했다.

     

   -주변 의식하지 말고, 검 뽑을 준비 해.

     

   그리고 아서는 곧 크라슈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힘이 들어가 있음을 눈치챘다.

     

   이제야 아서도 주위에 여러 기척이 나타났음을 느꼈다.

   크라슈의 품에 안겨 있느라 혼미해졌던 정신이 주변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느껴지는 이 기척의 정체는 전부.

     

   신기다.

     

   -신들이 직접 움직였어.

     

   자신들이 사냥당하기 전에 상대를 먼저 사냥한다.

   신들이 크라슈를 죽이고자 직접 제 발로 찾아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장염이 그래도 나름 빨리 쾌차해 업로드를 다시 시작합니다. 걱정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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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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