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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6

    그렇게 집으로 돌아간 루크는 한바탕 예르나에게 정조관념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은 루크의 입장에서는 꽤나 억울한 처사였다.

    과거 루크는 이 의상의 이름이 ‘팬티스타킹’이니 팬티를 입지 않아도 되냐는 질문에는 ‘팬티스타킹은 속옷이 아니니까 당연히 입어야 한다’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쭈욱, 루크의 머릿속에서 스타킹은 속옷이 아니었다.

    뭐, 사실 그건 과거에도 그런 의식이었으니까 문제 없다.

    그런데 대체 왜, 밖에서는 스타킹을 벗어선 안 된다는 얘기인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밖에서는 양말도 벗으면 안 된다는 얘기인가?

    물론 치마 안쪽의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만, 그 부분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이미 치마에 걸어둔 ‘내부 방호 인챈트’ 때문에 자신이 원하지 않는 대상에겐 그 안쪽의 모습이 드러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바람이 불고, 다리를 격하게 움직이든간에 말이다.

    게다가 그 때는 코트까지 있던 상태였으므로, 다른 사람에게 속옷을 보일만한 일도 전혀 없었다.

    오히려 루크의 입장에서는 이 시대의 정조관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이해가 되질 않는다.

    배꼽을 드러내 보이는 파렴치한 의상은 문제삼지 않으면서, 속옷을 벗는 것도 아닌, 단지 올 나간 스타킹을 벗는다는 행위는 어째서 규탄받아야 하는가?

    오히려, 구멍 난 스타킹을 신고 다니면서 지속적이고 불필요한 시선을 감내할 이유가 없으니, 지금 당장 벗는다는 생각을 하는 게 훨씬 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라고 아무리 루크가 주장해 봤자, 오히려 예르나에게 더욱 꾸중을 들었을 뿐이었다.

    예르나의 말로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밖에서 치마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뭔가를 벗는다는 행위 자체가 문제인 듯 하다.

    묘한 곳에서 예절을 지키기가 어려워졌다. 

    옛날에는 그 정도는 그다지 파렴치한 행위까지는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 시대엔 남자와 여자 둘 모두가 일상적으로 치마를 입었기 때문에 특별히 그 행위가 파렴치하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건 특별히 여성들만 하는 게 아니라 남자들도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종종 치마 속에 입은 천이나 바지가 불편하게 접히면 그를 고쳐입기 위해서 손을 집어넣는 것 정도는 문제될 일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의 직조기술은 현대와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었고,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에게는 당연히 그런 불편함도 자주 겪어야만 하는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치마 안쪽에 손을 대는 경우는 오히려 남자 쪽이 더 빈도가 높았다.

    그들의 성기는 여성기와는 달리 외부에 돌출되어 있으니.

    그렇기에 당시의 문화적으로는 그런 행위에 대한 인식이 그닥 문제되지 않았던 거다.

    지금은 직조기술의 발달과, 문화적인 발전으로 인식이 변화한 것 같다.

    이는 배꼽을 드러내는 것이 더 이상 파렴치한 행위가 아니게 되었다는 것을 그저 받아들였던 것처럼, 그냥 그렇게 받아들여야하는 법칙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혹시 루, 다른 사람 앞에서도 그런 거 아니지?”

    예르나의 질문에 루크는 고개를 저었다.

    그 전에는 애초에 스타킹에 구멍이 난 적이 없었으니까.

    애초에 루크의 스타킹에 구멍이 나는 경우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왜냐하면, 신체에 손상이 가해질 것이라 예상되는 순간에는 언제나 실드로 온 몸을 감쌌기 때문이다.

    오히려 루크의 스타킹은 신을 때 보다 세탁을 하는 중에 가장 많이 손상되었다.

    그러니 오늘처럼 입고 있던 스타킹이 손상되는 이런 일은 정말 드물다.

    그러나 이 경우는 조금 달랐다.

    그 조그만 강아지에 의해 의복에 손상이 가해질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데다가, 형태만 잡아둔 6서클을 조금이라도 더 온전히 유지시키고 안정화시키기 위해서 불필요한 마법 사용을 지양하는 중이기도 했다.

    실드를 사용할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던 상황에, 예기치 않은 일이 겹쳐서 일어난 정말 희귀한 사고.

    그렇다보니 그 전에는 자연스럽게 그럴 계기도 없었던 것.

    하지만 이런 얘기를 굳이 해서 잔소리를 늘릴 생각이 없던 루크는 뒷말은 하지 않았다.

    그에 예르나는 안심했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이지? 정말 다른 사람들 앞에선 안 그런거지?”

    “네. 정말이에요. 그런 적 없어요.”

    “그럼 다행이지만.”

    이전까지는 그런 적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루크의 정조관념은 이미 처음부터 뒤틀려 있었지.

    처음보는 남자애 몸 위에 올라타거나, 자신의 가슴을 만지게 한다거나, 일반적인 상식을 교육 받았다면 그런 짓도 하지 않았겠지…….

    이건 루크의 과거와도 닿아있는 민감한 문제인 만큼, 1년도 안되는 단기간에 고쳐지기 어려운 것이라는 점은 잘 인지하고 있다.

    오히려 자신이 이 정도면 되었다고 안심을 하는 게 더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다보니, 예르나는 혹시 예전에 한창 스스로 돈을 벌겠다고 할 때에 나쁜 길에 발을 들인 게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럼 정말 그동안 별다른 일은 하지 않았던 거야? 엄마 몰래 모르는 사람에게 입던 속옷을 비싼 돈을 주고 판다던가…….”

    그 순간, 그 말을 들은 루크의 눈이 호기심으로 물들었다.

    “네? 남이 입던 속옷을 비싸게 산다는 사람도 있어요? 왜요? 뭐에 쓰려고요?”

    루크의 반응을 본 예르나는 이마를 짚으며 자신의 입방정을 탓했다.

    “아냐, 그냥 못 들은 걸로 해. 안 했으면 됐어.”

    치명적인 말실수였다.

    —–

    잠시 후, 예르나는 또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루크, 엄마 잠깐 나갔다 올게.”

    “또 어디 가시게요?”

    방금 집으로 돌아왔는데, 금세 또 나간다고 하는 것에 루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돌아오는 길에 장도 봤으니, 적어도 오늘은 집에서 나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예르나가 입을 열었다.

    “응, 소르비하고 키르케가 근처에 왔는데, 잠깐 밥이라도 같이 먹자네. 최근에 복귀한 것도 있어서, 뭐 걔들의 개인적인 축하도 겸하고 말야.”

    “그런가요?”

    루크 숲 숲지기의 대장이었던 예르나의 휴가 복귀 축하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뭐, 애초에 소르비와 키르케, 다프네는 원래도 예르나와 친했던 사이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축하라는 명목의 모임에 다프네가 빠졌다는 것이 이상하다.

    예전에 서클의 문제로 루크 숲에서 지낼 때만 해도 그 셋은 항상 붙어다니는 것 같이 보였는데 말이다.

    “음, 그런데 다프네 언니는요? 안 왔대요?”

    “그 애는 나오기가 좀 힘들다나봐.”

    “그런가요?”

    무리도 아니었다.

    예르나의 길잡이였던 다프네는 예르나가 없는 사이엔 자리를 비운 예르나를 도맡아 거의 모든 행정상 업무를 독박이다시피 뒤집어써야 했을 테니까.

     

    뭐어, 예르나가 있을 때도 이미 많은 행정처리를 다프네가 하고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그 업무량에는 차이가 있는 법이었다.

    가장 큰 전력인 예르나의 부재를 고려해서 완전히 새로운 인력분배와 서류작업을 동시에 해야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번 휴가는 장기휴가였으니 그동안 쌓인 업무량이 많다고 해도 어쩔 수 없겠지.

    “아, 루크. 혹시 너도 같이 갈래? 오랜만에 소르비언니하고 키르케 언니도 볼 겸.”

    “음…….”

    루크는 예르나의 제안에 잠깐 고민을 해 봤다.

    그러고보니 요즘 숲으로 이사도 했고, 예르나도 휴가라서 루크 숲에 굳이 찾아갈 이유가 없다보니 요 몇달동안 자연히 숲지기들과의 만남도 사라졌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소르비와 키르케를 만나지 않은 기간도 길다.

    가장 최근에 숲에 갔던 것이, 개발한 활력차의 상품가치를 알아보기 위해서 잠깐 들러 임시 노점을 운영했던 때인가.

    그런데 그 때도 키르케와 다프네는 오래 못 봤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던 루크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뭐, 괜찮을 것 같네요. 다른 사람들에게 이번에 새로 산 옷에 대한 의견도 듣고 싶고요.”

    아무래도 옷에 대한 의견은 많은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겠지.

    뭐, 직원이 요즘 유행하는 패션으로 알아서 잘 골라주었다고는 하지만,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옷인지는 모를 일이다.

    그녀는 옷을 팔아야 하는 입장이었으니, 자신의 호감이 필요한 상태였으니까.

    혹평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예르나의 경우에도 사실 ‘루크는 뭘 입어도 예뻐’라는 식으로 대답하니까 제대로 된 평가가 되질 않고, 다른 사람이라고 해 봤자 집에는 패션이라곤 쥐뿔만큼도 조예가 없는 파이리스나 다이튼, 마찬가지로 어직 어려서 뭘 모르는 디아나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키르케와 다프네 정도면 제대로 된 옷 평가를 내려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오늘 마침 오랜만에 루아를 만나서 반갑기도 했으니, 가서 오랜만에 얼굴이라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그 때였다.

    -타다닥, 덥썩!

    “언니, 또 나만 두고 가서 뭐 먹으려고! 치사해!”

    파이리스가 달려와 루크의 다리에 매달리며 외쳤다.

    안 그래도 디아나하고 노는 사이에 오늘 자길 빼 놓고 나가서 뭘 먹고 온 것이 서운해서 토라진 와중인데, 언니는 또 자신을 빼놓고 몰래 나가서 뭘 먹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윽, 파이리스. 내려오거라. 너만 두고 나가서 뭘 먹다니, 그런 적 없다니까.”

    하지만 루크에게 그 누명은 억울한 일이었다.

    파이리스는 루크의 몸에서 나는 육포의 냄새를 맡고 나서부터 저러고 있는데, 그건 자신이 먹었던 게 아니라 대니의 간식이었다.

    ……루아가 대니 한번 줘 보라고 건네준 것을 자신에게 주는 줄 알고 입에 넣을 뻔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말도 파이리스에겐 변명으로만 들렸다.

    파이리스는 루크의 다리를 감싸 쥔 팔다리에 더욱 힘을 실으며 외쳤다.

    “거짓말! 언니 나 몰래 얼마나 먹었으면 다리도 이렇게 통통해졌잖아!”

    그러자 루크는 기겁하는 반응을 보였다.

    “뭐? 무, 무슨 소리냐, 나 그렇게 살 안 쪘어!”

    다리가 통통해진 것은 자신이 살이 찐 게 아니라 지금 올이 쉽게 나가지 않을 만큼 두툼한 스타킹을 신고 있어서 그런 거다.

    설사 그게 아니라 정말로 살이 찐 거라고 해도, 그건 그저 성장에 따라 허벅지가 발달해서 그런 것이지, 살이 찐 게 아니었다.

    “아무튼, 내려오거라! 치마에 주름이 잡히지 않느냐!”

    하지만 파이리스는 고개를 저으며 외쳤다.

    “싫어 싫어-! 나도 데려가! 이번엔 나도 먹을 거야!”

    “파이리스, 포기해! 네가 밖에서 먹기 시작하면 그 식비는 정말 감당이 안된단 말이다!”

    “언니도 나만큼 많이 먹잖아아아아!”

    “아니, 이 녀석이 진짜…….”

    그리고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예르나가 입을 열었다.

    “어어, 파이리스, 언니만 데리고 간 것이 그렇게 서운했니?”

    그에 파이리스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예르나에게 원망 섞인 눈초리를 쏘아보냈다.

    “응! 너무 치사해, 어떻게 나만 빼놓고! 나 서운했어! 외로웠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에 예르나는 곤란하다는 듯 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미안해, 진짜 외로웠으면 언제든 정령화해서 언니를 찾아올 수 있을 줄 알았지.”

    “…….”

    파이리스는 돌연 충격을 받은 듯 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에 루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파이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대는 설마, 자신이 정령이라는 걸 완전히 잊고 있었던 건가.”

    “…….”

    파이리스의 굳은 표정은 루크에게 확신을 주었다.

    너무 오래 육신을 갖고 사고하며 행동한 정령은, 정말로 이제 자신이 정령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조차 까먹은 듯 보인다.

    “휴우, 놀랍구만…….”

    어이가 없군.

    정령 주제에 육체에 너무 몰입한 것이 아닌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파이리스의 현재 상태는. VR에 지나치게 과몰입한 유저랑 비슷한 느낌입니다.
    뭐, 실제로 파이리스에게는 물질계가 현대의 vr따위보다는 훨씬 자극적이겠죠, 원래 없던 감각이 물밀듯이 들이닥치는 상황일테니.

    그러니 잠깐 정도는 현생을 잊어도 어쩔 수 없는 게 아니겠어요?

    파이리스가 멍청한 게 아니…….
    아니, 멍청한 건 맞나?

    아무튼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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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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