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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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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6화. 신 세계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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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르도록 맑은 하늘이다.

        태양은 눈부시게 빛나고, 새들은 지저귀고 꽃들은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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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그럽도록 이슬을 머금은 꽃망울이 하늘을 향해 있는 힘껏 기지개를 켜는, 참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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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쩍, 쩌어어억! 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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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한 연못과도 같았던 하늘에 커다란 빗금이 그어졌다.

        두꺼운 빙산이 쪼개지는 듯한 소리가 울리더니, 하늘의 빗금이 벌어지며 커다란 균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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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이 지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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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균열을 통해 누군가 걸어 나온다.

        발가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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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손에는 주변에 서리를 흩뿌리는 얼어붙은 탄식을 굳게 쥐고 있는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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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끽, 끄륵, 키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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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르의 걸음을 따라 주변의 잔디와 동물들이 죽어갔다. 발가르가 무의식중에 발하는 기운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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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으으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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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는 힘껏 지상의 공기를 마신 발가르의 숨통이 탁 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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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공기다. 폐를 불태우는 듯한 독무도 없으며, 따뜻한 태양은 온몸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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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어버이께서 그토록 지상을 아끼시는 이유를 알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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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물의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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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방에 가득한 생명을 만끽한 발가르가 본연의 임무를 깨닫고는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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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프리키의 확보가 먼저다. 그러니까 분명… 태양이 뜨는 곳으로 향하라 하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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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이 뜨는 곳, 동쪽의 끝으로 가서 모래의 땅을 찾으라 하셨다.

        발가르가 태양을 올려다봤다.

        정수리 위에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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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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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시 고민하던 발가르는 이내 무작정 발 닿는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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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누가 왕의 걸음에 불만을 표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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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데 거추장스럽게 자란 나무들이 시야를 가렸다. 발가르가 미간을 찌푸리며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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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버이의 말씀 중 하나가 지성체는 해하지 말라는 것이었으니, 지성이 없는 것이라면 괜찮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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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쩌어엉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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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어붙은 탄식으로 수평선을 긋자, 지평선의 모든 나무가 반토막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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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깔끔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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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제야 시야가 탁 트인다.

        발가르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생전 처음 마주한 지상이라는 곳을 여유롭게 만끽할 심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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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는 방향이 틀렸다면 해가 질 때쯤 반대로 길을 틀어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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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벅저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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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으로 가득했던 숲은 어느새 온통 검푸른 얼음으로 가득 찬 빙하의 바다가 된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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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의 마경, 그로아나 수림에 마왕 발가르가 나타난 지 하루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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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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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창하고 험난한 그로아나 수림에는 엘프들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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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림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그들은 모든 외부의 손길을 거부하며 조용하고 안락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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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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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 대장로님! 대장로니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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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프의 대장로, 알랜시아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외침에 눈을 찌푸렸다.

        헉헉거리며 달려온 이는 숲을 순찰하는 숲지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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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일이니? 어머니 앞에서는 내가 그렇게 큰 소리를 내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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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 나무의 잎사귀를 닦고 있던 알랜시아가 조심스레 핀잔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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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제법 고목의 태가 나는 황금 나무는 기둥 부분이 유독 볼록한 형태였다.

        저 안에 테니아가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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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테니아가 열매로 우화할 시기가 가까워졌기에 알랜시아는 유독 예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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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 허읍. 대장로님! 큰일! 큰일입니다! 숲! 숲의 외에서!”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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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지기의 눈에 잔뜩 들어찬 것의 이름은 공포.

        이를 알아챈 알랜시아가 표정을 굳히며 숲지기의 인도를 따라 숲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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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게 대체 무슨… 이게,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거야?”

        “숲이…… 숲이 사라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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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의 외곽에는 이미 잔뜩 모인 엘프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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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얘들아, 비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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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파를 파헤치고 가장 앞으로 나온 알랜시아의 표정은 그대로 얼어버렸다.

        말 그대로, 그녀의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얼음의 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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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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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를 타던 다람쥐가, 물을 마시던 사슴이, 먹이를 쫓던 늑대와 잠을 자던 곰이.

        모두 거대한 얼음 속에 갇혀 멈춰 버리고 말았다.

        하늘 높게 치솟았던 나무들은 밑동만 남긴 채 처참하게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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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 이건 도,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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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푸른 얼음과 함께 느껴지는 것은 지독한 악의.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모든 것을 얼음 속에 가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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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다들 돌아가라! 마을로 돌아가! 모두 무기를 꺼내고 경계를 늦추지 마! 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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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랜시아의 비명과도 같은 고함에 엘프들이 마을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홀로 남은 알랜시아는 천천히 검푸른 얼음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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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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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뼈를 얼리는, 아니, 영혼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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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적은 동쪽으로 이어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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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쪽으로 가면 인간들이 사는 땅이 나온다.

        더 나아간다면, 위대하신 분을 섬기는 이들의 땅이 나올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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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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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르르 울리는 황금 나무의 사념에 알랜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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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어머니……… 그렇군요. 이건 마왕? 마왕이라는 자인가요. 만마의 제왕이라니. 실로 광오하고…… 끔찍하도록 무서운 자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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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랜시아는 이어지는 황금 나무의 사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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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걱정할 필요가 없다니요? 어머니, 아무리 어머니의 말씀이라고 하셔도 그건… 이해하기 어렵네요. 이토록 무시무시한 풍경을 만드는 자입니다. 끔찍하도록 사악한 족속일진대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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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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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 이를 찾으면 돌아갈 것이다…? ……아뇨, 그럴 순 없습니다 어머니. 아무리 어머니의 말씀이라고 하셔도, 저희는 절대 이 일을 간과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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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멀리, 엘프 나무의 중앙에 있는 황금 나무가 가볍게 잎사귀를 흔들었다.

        어쩐지 한숨 쉬며 고개를 젓는 모습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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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로 돌아온 알랜시아는 가장 발 빠른 엘프를 불러왔다.

        서신 한 장을 쥐여주고는 작은 잎사귀를 동봉했다. 엘프의 문서라는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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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편지를 갖고 당장 동쪽으로, 인간의 땅으로 가거라. 최대한 빠르게 달리렴. 얼음과 서리를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온통 하얀 도시를 찾아가거라. 그곳에 가서 내 이름과 함께 이 편지를 전달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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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 빠른 엘프는 곧장 마을을 떠났다.

        나무와 나무를 박차고 달리며 낮과 밤을 지새우며 얼마나 달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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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떠오르는 여명의 빛과 함께 저 멀리 순백의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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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히도 동쪽으로 이어지던 얼음의 바다는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았다. 바람처럼 쉬지 않고 달린 엘프가 발가르를 앞지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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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 정지!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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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밤낮을 쉬지 않고 달린 엘프는 거렁뱅이도 멀리할 꼬락서니였다. 성문의 경비병들이 그리 대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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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것을……이것을, 어, 어서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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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을 먹지 못해 바싹 갈라진 입술을 더듬으며 엘프가 간신히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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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장로…… 아, 알랜……시아께서…… 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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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썩, 꼬박 며칠을 달린 엘프는 가까스로 편지를 경비병에게 전달하며 쓰러졌다.

        서신과 함께 동봉된 작은 나뭇잎을 알아본 경비병에 의해 편지는 순조롭게 만신전으로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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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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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바로 소집된 대사제들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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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장로 알랜시아의 서신은 무엇인지 모를 거대한 악의가 동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어쩌면 성도를 지나칠 수 있다는 내용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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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특하군요. 실로 사특합니다.”

        “시기가 뒤숭숭하니 어찌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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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식과 걱정이 가득하다. 허나 당황하지는 않았다.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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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푸른 얼음을 흔적으로 남기고, 영혼마저 얼어붙을 것 같은 한기. 필히, 그 존재일 겁니다. 용사님께서 심연에서 대적했다는 만마의 제왕, 마왕 발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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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사제들의 표정은 엄숙했다.

        그들이 걱정하던 일, 마왕 발가르의 지상 침공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허나 두려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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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을 위해 단련하고 또 단련한 지금, 성도의 군사력은 역사상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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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사님께서도 며칠간 계속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필히 이번 일에 대한 계시였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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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니스는 며칠 전부터 계속 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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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어머니 리아가 꿈에서 나타나 “우리 아가, 걱정하지 말렴. 전부 잘될 거야. 그는 잠시 지나갈 뿐이니, 저 멀리 사막의 땅에서 찾으려는 이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그저 지나가도록 놔두렴.” 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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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은 계시의 통로.

        성도는 이 계시를 아주 올바르게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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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방식으로 ‘올바르게’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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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아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그’는 마왕 발가르였군요. 지나간다는 표현은 성도를 지나간다는 것을 뜻한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사막의 땅이라면, 동쪽에 있는 모라트리스 사막이 확실하군요. 정리하면, 마왕 발가르가 모라트리스 사막에서 찾는 이가 있다…?”

        “허어. 만마의 종자가 무슨 연유로 찾는 것인지는 몰라도 분명 사특한 이유일 것이 분명합니다!!”

        “리아 성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으나, 우리는 이미 일말의 두려움조차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이미 신앙과 헌신으로 가득 찼기에! 두려움은 감히 우리의 정신을 뒤흔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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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탁 회의실의 분위기가 점점 달아올랐다.

        ​

        그들은 신화가 도래한 시대에 살고 있었으며, 온갖 기적을 생생하게 본 역사의 증인들.

        이제 선과 악의 전쟁이라는 대서사시가 펼쳐진다는 생각에 밀려오는 신앙적 떨림을 멈출 수 없는 것이다.

        ​

        쾅! 

        ​

        “그 누가 두려워할 것입니까! 만마의 종자가 눈앞을 지나가는데 신자로서 어찌 보고만 있을 것입니까!”

        “성모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를 보내주거라! 보내줘야지요!! 사악한 종자를 다시 심연의 구렁텅이로 보내버립시다!!”

        ​

        거의 활화산처럼 터져 오르는 분위기는 이미 쓰나미를 타고 몰아치는 무언가였다.

        ​

        “전쟁! 결코 다시 전쟁!!”

        “““우오오오오오오오오!!”””

        ​

        이를 지켜보던 리아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욱신거리는 두통에 골이 울린다.

        ​

        “그것 봐요. 내가 말했죠? 그냥 대놓고 싸우지 마라, 그냥 지나가는 길이니까 보내줘라. 이렇게 말해야 한다니까요? 제가 만신전만 몇 년을 봤는데 저 사람들을 모를까요.”

        “……그치만 그러면…… 폼이 안 나잖아요. 제가 성녀로서 하는 첫 계시인데, 그것도 딸한테 하는…… 조금 신비롭게 보이고 싶어서 그만……”

        ​

        리아가 반쯤 울먹거리며 그리 변명했다.

        ​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휴우. 일단 저걸 어떻게든 수습해야겠네요. 저 인간들도 참 한결같아요. 눈깔 돌아가면 말을 안 듣는 것이 참… 예나 지금이나, 저게 대사제들의 기본 소양인가 싶기도 하네요.”

        ​

        뭐.

        만마의 제왕이 성도 앞을 버젓이 지나간다는데 그것을 그냥 보고만 있으라는 것도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그럼 어찌하겠나. 발가르에게 말하여 경로를 바꾸는 수밖에.

        ​

        이에 케넬름이 발가르에게 전언을 보내 인간의 땅을 피하라 하였으나.

        ​

        – 《나보다 약한 계집이 명령? 시끄럽다.》

        ​

        참으로 광오한 말과 함께 깔끔하게 무시.

        케넬름의 관자놀이에 커다랗게 혈관이 돋아나며 그녀의 장도리가 분노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

        “으, 흐익. 히이익…”

        ​

        일대의 모래사장을 짓누르는 케넬름의 패기에 리아가 다리를 덜덜 떨었다. 

        ​

        요즘에야 조금 순둥순둥한 모습을 보였다지만, 본디 케넬름은 온갖 신화적 생물이 가득한 신화시대에서 인간의 영역을 개척한 전무후무한 최초의 성녀.

        ​

        다른 말로는 최초의 영웅.

        ​

        악마 골목대장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 기분이 더러웠지만 이를 꾹 참고 좋은 말로 부탁했더니 뭐? 약한 계집…?

        ​

        까드드득.

        ​

        케넬름의 황금빛 눈동자가 맹수의 그것처럼 안광을 흘렸다. 

        ​

        “……후우………리아. 위대하신 분께서는 어떤가요?”

        “아, 네, 네! 아, 아직 주무시고 계세요. 역시 새로운 차원을 만든 여파가 아직 남아계신 것 같아요.”

        ​

        위대하신 분께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깊은 잠에 빠진 채였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였으니, 그것도 하나의 차원을 만드는 것이니 온몸의 힘이 쫙 빠져도 무리는 아니다.

        ​

        “후후…… 운이 좋네요. 저 썩을 종자.”

        ​

        케넬름이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

        위대하신 분께서 깨어계셨다면, 애교를 떨어서라도 지상에 현신하여 대가리를 박살… 죽일 수는 없으니 팔다리 한짝씩 부숴버렸을 것인데.

        ​

        분을 꾹 삭인 케넬름이 훗날을 기약했다.

        한 손으로 그녀의 애병, 장도리를 달랬다.

        ​

        멀지 않은 때에, 실컷 날뛰게 해주겠노라 말하면서.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날씨가 춥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습도 관리에 유념하셔서 기관지를 관리하시기 바랍니다…!!

    – ‘대도서관’님…!!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글은 봐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독자님들은 없으셨더면 그저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을 것…!! 언제나 봐주셔서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앆!!!!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저는 글을 봐주시는 독자님이 있다면… 단 한 분이라도 저의 글을 봐주신다면… 저는 글을 쓸 것입니다!! 독자님의 응원!!! 똑똑히 받았으니까요…!!!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아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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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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