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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7

       파이스는 할 말이 많았다.

       

       몇 년이 지나서야 만나게 된 연인과의 감동적인 재회를 이렇게 방해해도 되는 것이냐고.

       

       최소한 설명할 시간 정도는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냥 부탁을 하셨다면 세계를 구해주신 은인이시니만큼 모든 것을 들어주셨을 텐데 좀 여유를 가져주시면 안 됐냐고.

       

       이런저런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파이스는 그 중에 어떤 말로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그러기엔 눈앞에 있는 화령의 표정이 너무도 살벌했던지라 그럴 수가 없었다.

       

       “파이스.”

       “넵!”

       “분명 두 배로 빠르게 시간이 흘러간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그렇습니다!”

       “네가 보기엔 어떠냐. 지금 두 배의 시간이 흐른 것처럼 보이느냐?”

       “…아뇨.”

       

       주변의 풍경은 아무리 보아도 밤이었다. 최소한 하루 이상의 시간이 지나갔다는 거겠지.

       

       “거짓을 고해 본인을 곤욕스럽게 만든 죄는 치러야겠지?”

       

       파이스는 화령의 살벌한 어투를 듣고서 자기도 모르게 눈을 꿈 감아버렸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냥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을 텐데.

       

       최소한 떠나오는 길에 베니에게 영원한 작별에 대한 인사 정도는 했을 텐데.

       

       아아. 베니. 미안합니다. 겨우 다시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전 이제 머나먼 여정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기왕이면 깔끔하게 죽여 주십시오.”

       

       최악의 미래를 그린 파이스가 눈을 꾹 감은 채 비장한 목소리를 내었더니 화령이 가벼운 웃음소리를 냈다.

       

       “걱정 마라. 그대에겐 아직 죽일 만한 가치가 없으니.”

       “어. 그런가요?”

       “그래. 본인에게 죽으려면 최소한 본인에게 위협을 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야 하거든.”

       

       최소한 외신보다는 더 강해야 쓰러트릴 맛이 있지 않겠냐는 화령의 말에 파이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화령님께 죽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구나.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베니.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당신을 만나러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대는 다른 방식으로 죄를 치르게 될 것이다.”

       “어떤 건가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무어라도 하겠습니다.”

       “간단하다. 본인의 방송에 그대가 출연해서 본인과 대결을 벌이면 된다.”

       “개인 방송 출연인가요. 어렵지 않은 일이네요.”

       

       현직 프로게이머이자 세계 최강의 프로게이머라 불린 파이스는 아피스에서 얼굴을 마주치기만 하더라도 조회수를 떡상시키는 치트키 중의 치트키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방송에 출연해 달라는 부탁을 자주 받았고, 동시에 방송 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개인방송을 진행해본 경험도 여럿 있었다.

       

       “수락하는 게지?”

       “어차피 저한테 선택지는 없지 않나요?”

       “으음. 말이 잘 통해서 좋구나. 그래. 앞으로 무슨 일이 있건 그대에게 선택지는 없지.”

       

       *

       

       – 천마강림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화령 방송 켰따!]

       

       “저기요. 여기는 커뮤 게시판이 아니라 엔리 방송이거든요? 뻐꾸기를 도네이션으로 하실 거면 최소 단가를 맞춰 주시겠어요?”

       

       – 천마강림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화령 방송 켰따아아아!]

       

       “천마강림님! 만 원 후원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부우우운! 화령님이 방송을 켰대오오오!”

       

       – 엌ㅋㅋㅋ

       – 드디어 화령 방송 켰네.

       – 돈은 엔리를 춤추게 한다.

       – 자낳괴ON

       – 저러는 게 맞음?

       – 꼬우면 니들이 후원하든가.

       – 그래도 이제 좀 맘편히 방송 볼 수 있겠다.

       – 마교도들 분탕 장난 아녔잖아.

       

       엔리는 후원금액에 맞추어서 호들갑을 떨며 채팅창과 시청자 수를 유심히 살폈다.

       

       방송을 킨다던 아라가 잠수를 타는 바람에 급격히 늘어났던 엔리 방송의 시청자 숫자는 아라가 방송을 켬에 따라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이는 이미 예상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시청자가 쭉 빠지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아픈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들 중에서 일부라도 붙잡을 수 있을까.

       

       아피스나 FPS 키면 더 빠르게 빠져 나갈 테고.

       

       공겜이나 혈압 오르는 게임은 내가 하기 싫고.

       

       저챗 영도 방송을 하더라도 감소세가 줄어들진 않을 거고.

       

       아. 그래.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여러분. 저희 화령님 방송 도방하면서 얼마나 활활 타는 지 구경이나 할까요?”

       

       – ???

       – 화형식 구경이야?

       – 재밌겠다.

       – 가서 분탕치는 거임?

       

       “분탕 좀 쳐 볼까요? 제가 여태까지 당한 것들이 있어서 저 그런 거 엄청 잘하는데.”

       

       엔리가 방송을 하면서 몇 번이나 자신의 방송을 불로 물들였던가.

       

       또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동료들이 불에 타 죽어다는 모습을 마주했던가.

       

       수도 없이 많은 화형식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엔리는 화형의 스폐셜리스트라 불릴 법 했으니.

       

       그녀가 분탕을 치는 것에도 일가견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ㅁㅊ ㅋㅋㅋ

       – 그러다 손절 당하는 거 아냐?

       – 미래가 두렵지 않으십니까?

       

       – 업보on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보인다. 바닥을 기어다니는 엔리의 모습이 보여!]

       

       “화령씨 때문에 마교도 분들 달래느라 제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요. 이 정도면 싸게 치이는 거죠.”

       

       자칫 잘못해서 선을 넘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 때는 아라 씨한테 화령냥이 없애드릴게요라고 하면 될 테니까.

       

       괜찮겠지. 아마도.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신경 쓰지 마시고 즐기면 돼요. 아. 그래! 저희 배팅이나 한 번 해 볼까요? 화령님이 지각 벌칙으로 뭐 할지?”

       

       – 화령냥이!화령냥이!화령냥이!

       – 이번에 나온 올라가!도 인기 있을 것 같은데.

       – 뭔 올라가!여. 화령은 그런 거 쉽게 깨잖아. 그것보단 멘탈 건드리는 게 재밌음.

       – 배팅이면 화령냥이나 매지컬 화령 아닐까?

       

       – 매지컬리리컬엔리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벌칙을 안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구나?]

       

       “당연히 없죠. 공지 없이 휴방 때린 걸로도 모자라서 복귀 당일에 지각까지 했는데 어떻게 이걸 그냥 넘겨요?”

       

       – 예전에 모 스트리머가 비슷한 짓을 한 적 있는데.

       – 외국에서 온 엔 모 스트리머 맞지?

       – 어허.

       – 그 사건 언급 벤입니다.

       – 나쁜 말 금지.

       

       채팅창에 그 사건이니 뭐니 하는 단어들이 늘어서자 엔리가 입술을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시청자들이 언급하는 것은 엔리가 방송을 자신의 업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때의 일.

       

       바보 같았던 엔리가 만들어냈던. 지금의 엔리는 진지하게 흑역사라 생각하고 있는 일이었으니까.

       

       “아무튼!”

       

       점점 얼굴이 벌게져가던 엔리는 억지로 목소리를 드높였다.

       

       “화령씨께서 어떻게 불타오르는 채팅에 대응할지 보자고요!”

       

       그리고는 아라의 방송을 켜는 것으로 화제를 돌리려 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채팅창에는 과거 사건에 대한 언급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라 씨께서 빨리 무언가를 터트려줘야 할 텐데. 그래야 시청자들이 그거에 집중하느라 날 놀리는 걸 그만둘 테니까.

       

       “아주 난리들이구나.”

       

       방송 화면 속의 아라는 곰방대를 입에 문 채로 채팅창을 살피고 있었다.

       

       그 채팅창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올라가는 중이었지만 속에 담긴 내용자체는 대개 비슷했다.

       

       모두가 화를 내는 중이었다.

       

       누구는 진심이고. 누구는 분위기에 휘말려 하는 것이고. 누구는 장난처럼 하는 것일 테고. 누구는 다른 의도를 가지고서 하는 것일 테지만.

       

       결국 채팅창에 표출되는 내용은 거기에 거기였다.

       

       “그러니까 내 설명하지 않았느냐. 준비를 할 것이 있어 신경을 쓰다 보니 늦었다고.”

       

       – 누물보님이 5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차라리 천마펀치로 서버 부수는 바람에 그거 수습하느라 늦었다 그러시죠.]

       

       “그건 상관 없다. 어차피 그걸 수습하는 건 본인이 아니라 그 회사의 직원들이니까.”

       

       – 결국 서버를 부수긴 한 거야?

       – 나

       – 엌ㅋㅋㅋ

       – 깨달음의 결과가 무섭다.

       – 락

       – 이것이 책임 없는 쾌락인가.

       

       저거 말해도 되는 거에요?

       

       서버 부쉈다고 말해도 괜찮은 거에요?

       

       다들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

       

       발언을 들은 엔리가 식은땀을 흘렸지만 정작 아라는 자신의 말을 별 대단치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뭐 준비 하시다 늦은 건데요.]

       

       “그래. 이것을 묻길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일 것 같으냐?”

       

       – 새로운 룰렛?

       – 수금 방식?

       – 얼공?

       – 새 게임?

       – 게스트?

       

       “그래. 한 아해가 정답을 말했구나. 내 손님을 불렀다. 그대들이 아주 좋아 할 손님이지.”

       

       – 엔리?

       – 엔리 지금 방송 중임.

       – 혹시 바루 컨셉 유저랑 연락 닿은 거임?!

       – 이걸로 룰렛 무마하려는 수작이네.

       – 나 화령냥이 못 잃어!

       – 화령의 암살 식당 하는 거야?

       

       “나와라.”

       

       아라가 목소리를 내기 무섭게 건물의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그의 얼굴은 엔리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었다.

       

       엔리에게만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아피스를 하는 사람이라면. VR을 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현대 미디어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당연하게도 알 수밖에 없는 얼굴이었으니까.

       

       “안녕하세요. 여러분들. 현직 아피스 프로게이머이자 팀 파일의 주장. 파이스 스코비아입니다.”

       

       파이스 스코비아.

       

       VR 프로게이머 업계의 전설.

       

       그가 화면에 얼굴을 비추자 채팅창의 속도가 한 층 더 빨라졌다.

       

       그의 등장에 놀란 이들이 화령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짓누를 정도로.

       

       “본인은 지각을 할 생각이 없었다. 모두 다 이 놈이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늦은 것이야.”

       “맞습니다. 제가 실수를 하는 바람에 화령님께 폐를 끼쳐 버렸네요.”

       

       사람들의 놀람을 더한 것은 평소와 같은 화령의 무례한 태도를 파이스가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프로게이머 업계의 전설이자 개인의 이름이 지닌 가치만 하더라도 몇 개 구단을 합쳐야 할 정도라는 사람이 한 발 물러서다니!

       

       – 화령 대체 어제 뭐 한 거임?!

       – 현실에서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 천마펀치 맞으면 자연스레 공손이 주입되는 건가.

       그리고 그 혼란은 엔리의 방송에까지 전염됐다.

       

       – 이상한나라의엔리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어제 아피스 서버 터지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임?!]

       

       “…어. 그냥 저희 회식밖에 안 했는데요. 아. 그러고 보면 화령 씨랑 파이스님이랑 구석에서 대화를 나누긴 하셨네요.”

       

       – ㄹㅇ?

       – 화령 프로 진출하는 거야?!

       – ㅁㅊㄷㅁㅊㄷ

       – 아. 할 거면 국내팀으로 가주지.

       – 앙대. 화령 방송 못 잃어.

       

       “프로 진출 같은 이야기는 아니었을 거에요. 화령씨는 그 쪽에 아무 관심이 없으신 것 같으니까.”

       

       – 그럼 저 둘이 왜 친한 거임?

       –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가?

       

       그럼 저 둘이 왜 이렇게 친해 보이냐는 물음에 엔리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거기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아라와 파이스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했으니.

       

       다행스럽게도 엔리에게로 향하는 추궁은 중간에 그쳐버렸다.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기세를 높이기 전에 아라가 재차 목소리를 낸 덕분에.

       

       “초대석이니. 파이스를 향한 질문이니 뭐니 하는 것은 할 생각이 없다. 그런 것은 다른 이들이 많이 했을 것 아니냐.”

       “그쵸. 마이 튜브 찾아보시면 제가 질문에 대답하는 영상만 열 개는 넘게 뜰 걸요.”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은 대결이다. 벌칙을 걸고서 하는 대결.”

       “벌칙이요? 저 그런 이야기는.”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런 거다. 파이스가 이기면 그대들이 바라는 대로 본인이 룰렛을 돌릴 것이야. 대신 본인이 이기면 그대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죄로 파이스가 룰렛을 돌려야 하겠지.”

       “…저 화령님? 룰렛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떠냐. 재밌지 않겠느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희생양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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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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