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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7

    <417 – 난폭한 생각들>

     

    “오크노디 수색구출대를 수색구출해달라고 교수님한테 부탁을 받았거든요!”

    “이걸 아무하고도 마주치지 않고 결계까지 돌아갔다가 왔다고…? 우린 대체 뭘 한 거야…….”

     

    진이 빠진 모브가 힘빠진 소리를 내는 사이, 나는 대자로 뻗어버린 싱을 막대기로 쿡쿡 찔렀다.

    남들 다 피할 때 싱은 왜 혼자서 멀뚱멀뚱 서 있다가 우르가스 맞은편에서 폭발에 휩쓸려 하얀 김을 치이익 뿜어대면서 리타이어 당한 거야?

     

    “싱. 살아있어요?”

    “…아슬아슬하게.”

    “왜 안 피했어요? 딱 봐도 위험한 걸 던졌는데. 종합역장 속에서 폭발이 일어난다고 해도 역장이 깨지면 근처로 폭발이 퍼지는 건 상식이잖아요.”

    “알고 있었다.”

     

    싱의 눈에 어리석음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알았기에 더욱 피할 수 없었다.”

     

    흐음. 그런 건가?

    직격으로 당하는 것만큼 강한 폭발은 아니지만 이 정도는 감당해내지 않으면 만족할 수 없어, 같은 남자 특유의 오기.

    역시 싱은 마음에 든다.

    이런 기개 있는 남자는 싱밖에 없는걸.

    아무리 강하게 몰아붙여도, 이젠 살려달라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마나와 기를 쥐어짜내도 우는 소리 한 번 없이 끝까지 따라온다.

    복수를 위해 철저하게 인내하며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착실하게 리턴값을 보이며 성장해주는 NPC만큼 기특한 남자는 없다.

     

    “히히. 이래서 싱이 좋아!”

    “…!”

     

    뒤에서 모브가 분하다는 얼굴로 씩씩거린다.

    뭐, 모브도 나름 열심히 하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상급반이랑 하급반은 조금 격이 다르지.

    모브 정도의 작은 체력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는다.

    좀 더 하드한 훈련코스도 받아줄 수 있는 대담한 상대가 좋다고!

     

    “자자, 다들 빨리 돌아가요. 아직 구해야 할 사람들이 더 남아있다고요. 즈앙이나 아이린은 어디로 갔는지 알아요?”

    “그 물음에 답하기 전에 먼저 들어야 할 말이 남아있다.”

    “지고쿠?”

    “이번 강의.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냐?”

    “엥?”

    “새끼크라켄을 이용해서 어미를 부르고, 모두가 쑥대밭이 된 와중에 휴학생전용구역에 침투하고. 그 와중에 몇 명의 사람이 다칠지, 널 걱정할지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던 거냐?”

     

    싱도 쉬운 성격은 아니지만 지고쿠도 참 별걸 다 연연하고 있구나.

     

    “지고쿠. 좋은 걸 알려드릴게요!”

    “…말해.”

    “지고쿠해적단은 원래부터 잡졸소굴이잖아요. 시험이 끝까지 진행되었으면 백병전에 돌입하자마자 엉망진창으로 두들겨 맞았을 거고요.”

    “…그래서?”

    “어차피 엉망진창이 될 거라면 백병전이 일어나기 전에 시험은 강제중단 되고 전원이 교수와 교관들의 관리소홀로 일어난 사고 덕분에 일괄적으로 고득점을 받는 편이 이득이라고요?”

     

    간단한 계산이다.

    너무 허접해서 어차피 엉망진창이 된다.

    이왕 엉망진창이 될 거, 득이 되는 이벤트를 일으킨다.

    고인물인 나도 이득을 보고 허접해적단원들도 이득을 보고 교수님은 손해지만 그래도 싸니까 아무튼 모두가 이득이다!

     

    “걱정이라고 해도 저 혼자 알아서 잘 다녀왔는걸요. 약자가 강자를 걱정해봤자 연예인 걱정만큼이나 쓸모없다고요?”

     

    그러니까 난 하나도 잘못되지 않았다는 말씀!

    의기양양하게 대답하던 내게 지고쿠의 손이 뻗어왔다.

    몰 하려는 거지?

    멀뚱멀뚱 쳐다보던 내 얼굴이 휙 꺾였다.

    뒤늦게 전해지는 화끈한 충격.

    뺨을 맞았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멍하니 지고쿠를 쳐다보자 그 눈에 피어오른 격정이 뒤늦게 보였다.

     

    “녀석들은 평일과제에 치이면서도 하루도 주말시험의 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어. 모두가 보여주고 싶어 했다고. 선장인 나보다도 주말에도 강의를 들으러 나오는 기특한 꼬맹이 앞에서.”

    “에…?”

    “너는 그런 녀석들의 노력과 열정을 지금 ‘어차피 엉망진창이 될 거’라고 폄하한거다.”

    “그럴 생각은…”

    “자신의 과거를 누군가 그딴 가벼운 한 마디로 평가절하 한다면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 제 인생을 포기한 사람밖에 없어. 녀석들은 아니야. 내 단원들은 아니라고. 내 밑에서 인생을 포기한 열정 없는 놈들은 단 한 명도 없어!”

     

    뺨의 화끈함보다 더한 화끈거림이 어디선가부터 느껴진다.

    왜 내가 뺨을 맞아야해?

    모두를 생각해서 좋은 일을 한 건데.

    내가 잘못된 거야?

    그치만, 그치만……

     

    “이쯤 해둬라. 우린 오크노디의 도움을 받았어.”

     

    손오천이 내 어깨에 손을 얹은 뒤에야 내가 떨고 있음을 눈치 챘다.

    지구보다 즐겁고 행복한 게임세계가 현실이 된 지금, 애지중지하던 게임캐릭터에게 거절 받는 것은 현실 그 자체로부터 거부당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씨잉. 지고쿠 미워!”

    “뭘 잘했다고 큰소리냐?”

     

    딱콩.

     

    “으앙!”

    “지고쿠가 성격이 좋아서 이 정도로 봐준 거지, 방금은 나 같아도 서운했을 거다. 이 망할 쥐방울아.”

    “난 잘못한 거 없어요! 모두를 위해서 최대한 이득이 되는 이벤트를…”

    “그건 네가 멋대로 정한 거잖냐.”

     

    언제나 가볍고 털털한 바보원숭이라고만 여겼던 손오천의 진지한 얼굴에는 무언가 기백이 다른 분위기가 전해졌다.

    반박해서는 안 돼.

    그런 원인 모를 생각에 입을 다문 내게 손오천은 진지하게 충고했다.

     

    “결과, 성취, 그런 것들은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은 결과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과정 없는 결과에 성취감이 있더냐? 과실만을 탐하는 노력 없는 삶에 존중과 존경이 뒤따르냐?”

    “그런 건 결국 약해빠진 약골이면 아무 쓸모도 없다고요.”

    “물론 그렇지. 하지만 냉혹한 현실의 무게를 알려주는 건 사회와 부모, 스승의 몫이다. 어깨를 맞댄 동기가, 같은 강의를 듣는 동료가, 모두가 기특하게 여기는 대견한 꼬맹이가 할 짓이 아니야.”

     

    …어렵다.

    근 력올인한방캐릭이조아 해병 때에는 이런 고민은 한 번도 할 일이 없었는데.

    아무도 내게 이런 말을 해주지도 않았는데.

    뭐가 다른 걸까.

    내가 그렇게 크게 잘못된 짓을 한 걸까.

     

    “흥. 알았어요.”

     

    볼에 바람이 빵빵하게 찬다.

    솔직하게 말해서, 조금 삐졌다.

     

    “그렇게들 잘났으면 앞으로는 억까이벤트에서 구해주지도 않을 거야!”

    “어이, 쥐방울!”

    “쫓지 마세요. 지금은 오크노디에게도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어차피 다른 사람들을 구하느라 결국 결계입구로 돌아오게 될 거고요.”

     

    귓가에 들려오는 모브의 목소리도 흘려 넘겼다.

     

     

    * * *

     

     

    “그런 일이 있었거든. 정말 너무하지?”

    “…그걸 8단계 재해에서 마주치고 상담하는 거야?”

    “여기에 온 건 즈앙이잖아!”

     

    어이없다는 눈으로 쳐다보는 아이린의 옆으로 도로시가 큭큭 웃었다.

     

    “아 정말. 진이 다 빠졌어. 여기서 더 들어가면 진짜 죽겠다 싶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고민 상담이라니. 마이페이스가 너무 심하잖아.”

    “우우. 들어주지 않을 거면 놀리지도 마!”

    “미안미안!”

     

    도로시가 냉큼 사과하는 사이, 즈앙이 입을 쩍 벌리는 바위에 단검을 박아 핵을 부수고 움직임이 멎은 바위에 엉덩이를 걸쳤다.

    깨끗하고 단정한 몸가짐을 좋아하는 즈앙답지 않게 흙먼지나 돌가루도 털지 않았지만 더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초연함이 느껴지는 착석이다.

     

    “오크노디는 잘못하지 않았어.”

    “그렇지?”

    “당연하지. 약한 건 죄야. 약한 주제에 멋대로 이것저것 자기들만의 감정을 들이대는 쪽이 잘못됐지. 규칙은 약자가 아니라 강자가 정하는걸.”

     

    역시 즈앙이라면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어.

    내 베스트프랜드, 최고의 찐친은 역시 즈앙이야!

     

    “하아… 지쳤어.”

    “즈앙?”

    “조금만 쉬게해줘.”

     

    그 말과 함께 풀썩 쓰러지는 즈앙.

    높은 호감도를 믿고 가면을 슬그머니 올리자 눈을 감은 채,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비켜봐.”

     

    급히 다가온 아이린이 냉기가 감도는 손으로 이마를 짚고 해열주문을 걸었다.

     

    “엄청난 열이야. 부상을 입은 게 틀림없어.”

     

    빠르게 마나를 뻗어서 전신을 스캔하던 아이린이 즈앙의 외투를 양옆으로 젖혔다.

    피에 물든 와이셔츠 단추를 연달아 풀자 안으로 꽁꽁 싸맨 내피가 드러났는데, 복부에 쇠 파편이 상당히 깊숙하게 꽂혀있었다.

     

    “미련하기는. 이런 몸으로는 움직일 때마다 상당한 고통이 일어났을 텐데.”

     

    바로 옆에서 줄곧 함께 이동하고 있던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아이린은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북부대공녀로서 수많은 전장을 돌아다니며 부상자들을 보아왔던 그녀의 눈치조차 속일 정도로 즈앙이 일절 티를 내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거 선박의 파편이야! 눈 뜨니까 해안가에 널브러져 있던 파편들이랑 똑같이 생겼어.”

     

    도로시가 즈앙의 부상의 원인을 파악했다.

    크라켄 촉수의 난동에 배가 부서지며 파편이 해안가를 덮쳤던 그때 생긴 부상이라고 했다.

     

    “즈앙이 나 때문에…?”

    “그게 왜 오크노디 때문이야? 갑자기 괴수가 나타나서 날뛴 건 괴수 탓이지!”

     

    아니야. 그거 내가 불렀어.

    멍한 얼굴의 내 머릿속엔 퍼즐이 끼워맞춰진다.

    암살자의 기술 무감.

    그걸 사용한다면 고통을 꾹 참고 내색 없이 계속 나아갈 수 있었겠지.

    즈앙이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하려고 했던 일은 휴학생전용구역에 들어간 내 뒤를 쫓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도로시의 입에서 나왔다.

    자기들이 들어오기도 전부터 혼자 저만치 앞서나가고 있었다고.

    어째서인지 안전지대에서 마주쳤을 때, 즈앙은 용암지대를 배회하는 몬스터는 은신으로 속일 수 없어서 멈췄다고 둘러댔지만 듣자마자 알아차렸다.

    그건 거짓말이다.

    즈앙의 상급은신술은 골렘의 마나탐지와 열탐지조차도 속일 수 있다.

    부상이 심해서 몸 상태를 추스르던 거겠지.

     

    “상처부위에서 감염이 일어나고 있어. 서둘러서 의료실로 돌아가야 해.”

     

    그래, 나 때문이야.

    내가 즈앙을 다치고 무리하게 만들었어.

    약한 건 즈앙의 잘못이지만…

    이런 즈앙의 모습을 보고도 즈앙 탓이라고는 입이 삐뚤어져도 말할 수 없다.

     

    “미안해 즈앙. 나 때문에…”

     

    배낭에서 비장의 포션을 꺼냈다.

    파파가 급할 때 쓰라고 딱 하나만 건네준 포션을 파편을 뽑아내고 즈앙의 배에 반을 붓고 나머지 반을 입에 흘려넣었다.

    그러자 3초 만에 부상이 낫고 끙끙 앓던 즈앙이 반짝 눈을 떴다.

     

    “뭘 한 거야?”

    “엘릭서를 부었어!”

    “죽은 사람도 3분 안에 복용시키면 부활하는 그걸?”

    “응응! 나 착하지?”

     

    건강해진 즈앙이 벌떡 일어나서 주먹으로 내 머리를 콩 내리쳤다.

     

    “아얏!”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을.

     

    “바보. 바보. 왕바보.”

    “아얏, 아파, 진짜 아파아!”

     

    힝. 착한 짓을 해도 혼나고 맞았어.

    이번 회차의 주조연 NPC들은 다들 너무 난폭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특별하게도 오늘은 다음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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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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