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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8

    “아이의 성장을 순수하게 축하하지 못하는 어른은 추하다네.”

    루크는 맞은 편 테이블에 앉아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르비에게 말했다.

    소르비도 그것이 정론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지 않은가?

     

    “하지만, 그건 고작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어. 나는 아직 루크의 귀여움과 헤어질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했단 말이야!”

    아이들의 성장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그 아이에게 쌓여온 세월의 축복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아이의 성장을 슬퍼하는 어른은 변태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아이에게 쌓인 시간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그 사실은 소르비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루크의 경우에는 다르지 않나?

    정말로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갑자기 어느 순간 훌쩍훌쩍 자라버리더니, 어느 순간 완전히 달라져버린 것이다.

    그래, 10살인데 저런 몸이 가당키나 한가?

    “그 몸으로10살이라니, 말도 안 되잖아! 이건 불법이야!”

    소르비가 억울하다는 듯 외치자, 키르케는 소르비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치며 말했다.

    “불법같은 소리 하네, 제발 조용히 좀 말해. 아까부터 민폐가 따로 없어 진짜.”

    실제로 소르비는 이미 주변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고 있었다.

    처음부터 다 큰 숙녀가 식당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으니까.

    그런 상황에 목소리까지 크니, 눈길을 끌지 않을 수가 없는 지경이다.

    뭐어, 소르비가 저러는 꼴을 보자마자 테이블에 미리 ‘사일런스’를 인챈트해 두었으니 그렇게 큰 소리가 새어 나가지는 않겠지만.

    굳이 종업원을 부를 일이 없는 뷔페이기에 가능한 선택지이다.

    따라서 지금 그녀가 받는 눈총은 오로지 그녀의 이전 행동에서 기반한 것이다.

    허나 그건 루크로서도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

    그나저나, 루크는10살이라는 숫자엔 그다지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 않나?

    자신이 10살이라고 설정된 것도 그냥 예르나가 자신을 처음 봤을 때 대충 그 정도쯤 되지 않을까 해서 설정한 나이일 뿐이었다.

    정신연령으로 따지면 진작 성인을 넘어선 수준이고, 서클 당 1세 정도의 신체성장이 이뤄진다는 가설이 일치한다는 전제하에 신체나이로 따지면 약 17세, 키는 현재 160cm 정도로, 이 정도면 조금 작기는 해도 성인 여성과 비교할 수도 있을 지 모른다.

    그런 와중에 실제 나이는 실제 태어난 햇수부터 따지면 이미 5000년은 훌쩍 넘겼을지도 모를 일.

    이쯤 되면 자신은 행정상으로는 10살이기는 하지만, 성인으로서의 자격을 온전히 충족했다고 볼 수 있으리라.

    실제로 식당에서도, 굳이 논란을 일으키기 싫어서 성인요금을 냈을 정도이니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잘한 선택이지 싶다.

    몇 푼 아끼자고 말싸움을 해서 어린이요금으로 냈다면, 자신들은 진작에 쫓겨나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그래도 10살이라는 꼬리표가 영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또 아니어서, 굳이 그것을 수정할 생각은 없다.

    10살이라는 무기는 식당 말고도 가끔 있는 어린이 할인이라던가, 나이 제한이 있는 대회나 활동을 하는 데에도 사용할 수 있고, 종종 전화번호를 묻는 사람들에게는 행정상 나이를 언급하는 것 만으로도 대답이 되니, 사회적인 무기로서는 매우 훌륭한 셈이다.

    “예르나, 저런 철부지 같은 부하에게 그대도 철 좀 들라고 한마디 해 주게.”

    루크는 예르나가 상급자로서 소르비의 정신을 차리게 해 주었으면 하는 의도로 그렇게 말을 건넸다.

    그러나 예르나는 소르비가 건넨 옛날 루크의 사진들을 바라보며 감탄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야, 소르비, 이 사진은 대체 다 언제 찍은 거야? 이거 상자 안에 있는 거 되게 귀엽다! 이런 걸 보면 역시 너무 빨리 자란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것은 소르비가 루크의 귀여웠던 시절을 설파하며 지갑에서 꺼내어 건넨 사진들이었다.

    소르비는 평소에도 지갑 속에 루크의 사진을 넣고 다니는 모양이다.

    상자 안에 들어가 책을 읽고 있는 옛날 루크의 사진과, 바닷가를 갔다 온 시점에 찍었는지 살짝 탄 피부에 머리를 자르고 안대를 한 화단 속에서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고 있는 루크, 박스를 잘라 음료 노점을 만들고 머리를 올려 묶으며 준비를 하던 순간에 찍힌 사진도 있었다.

    이런 게 있으면 미리 좀 나눠주지, 너무하지 않은가.

    그런 예르나의 말에 소르비는 맞장구를 쳤고, 루크는 당황했다.

    “역시 그렇죠!? 이거 봐, 진짜 나만 아쉬운 거 아니잖아!”

    “아니 예르나, 그대까지 그러긴가?”

    루크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듯 한 눈길로 예르나를 바라보자, 예르나는 곤란한 듯 웃으며 대꾸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정말 너무 빨리 자라기는 했는 걸.”

    “그렇다니까요!”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20센티가 넘게 크다니, 이 정도면 급격한 성장으로 인한 골다공증을 걱정해야 할 수준이 아닌가!

    하지만 루크는 이미 자라버렸다.

    저렇게 이미 자란 몸을 줄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소르비는 시선을 돌려 루크의 동생, 파이리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파이리스. 그러니까, 너는 언니처럼 너무 빨리 크진 말아줘. 천천히, 부디 커가는 모습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게 자라줘.”

    “웅?”

    그 말에 연신 음식을 집어먹던 파이리스는 움직임을 잠깐 멈추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르비의 목소리에서 읽혀오는 감정을 들으며 왜 이런 감정을 자신에게 향하는 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성장이라니, 그게 무슨 개념이길래 저렇게 슬픔과 기쁨이 공존된 복잡한 감정을 표출하는 것일까?

    그에 루크는 파이 대신 잠깐 생각해 봤다.

    정령의 아바타도 성장이라는 것을 할까?

    음식을 먹고, 병에 걸리고, 잠을 자는 몸이라고는 하지만, 그 본질은 결국 정령의 유희를 위한 살가죽.

    따라서, 그 육신의 성장은 역시 전적으로 파이의 본질과 연관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육신을 어떻게 이차원에서 불러올 수 있는지도 잘 모르는 파이가, 자신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 없이도 자랄 수가 있을까?

    게다가 태어날 때부터 완전하게 태어나는 정령이라 ‘성장’이라는 개념도 잘 모를 텐데, 그 개념을 이해하고 적용시킬 정도로 스스로에 대한 자각이 가능하긴 할까?

    아니, 애초에 파이리스에게 그런 의지가 존재하기나 한 걸까?

    의문은 많지만, 당장은 해결될 가망이 없기에 일단은 가슴 한켠에 묻어두기로 했다.

     

    그 때, 파이리스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고 있던 소르비를 향해 키르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아, 됐고. 가서 먹을 거나 다시 가져와.”

    “무슨 소리야? 나 여기 먹을 거 가져왔는…… 어? 어디갔지?”

    “그건 아까 파이리스가 가져가서 다 먹더라.”

    “……언제?”

    어쩐지, 뭔가 접시에 놓인 음식들이 자신이 가져온 종류랑 똑같더라니!

    하지만, 입안 한가득 음식을 담아서 오물거리는 귀여운 모습을 보고 있으니, 또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소르비는 파이리스의 먹는 모습을 몇번 사진기로 찍은 뒤에 음식을 가지러 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녀의 접시를 비워낸 파이리스 역시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내려앉은 사이, 키르케가 루크에게 말을 건넸다.

    “그나저나, 옷 잘 어울린다, 루크. 이번에 새로 산 옷이라는 게 그거야?”

    키르케의 말에 루크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아. 어때, 혹시 이상하지는 않나?”

    “응, 좋은 거 같아. 너 하고도 잘 어울려.”

    “후후, 다행이군.”

    아무래도 후드 롱 케이프의 실패 이후 자신의 패션 감각에 대한 신뢰를 잃은 루크였기에, 이렇게 남들에게 옷차림에 대한 인정을 받는 것은 안심이 되는 일이었다.

    루크는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며 기분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저 옷이 잘 어울려서 기분이 좋아진 소녀의 모습이었다.

    뭐, 어쩌면 루크의 마음 속 역시 실제로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그런 반응을 본 키르케가 이어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왜 하필 하늘색이야? 좋아하는 색이니?”

    루크는 이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아주 좋아하는 색이지.”

    루크는 하얀색, 그리고 하늘색을 좋아했다.

    하얀색은 깨끗함과 순수함, 순결을 상징하는 색, 그리고 하늘색은 지식을 얻기 위해 별을 바라보고 하늘을 향하는 마법사의 눈동자가 일평생 비추어야 할 도화지의 색이었다.

    그러니 어느 마법사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또한 그것은 자유와 평화, 그리고 해방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했다.

    자유와 평화, 해방이라니.

    그것은 레니에의 삶 과도 같은 단어들이 아닌가?

    그렇기에 루크는 하늘색을 보면 레니에가 떠올랐다.

    그녀는 하늘색이 참 잘 어울리는 여성이었지.

    그에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키르케가 묻는다.

    “그렇구나, 하늘색을 그렇게 좋아하는 줄은 몰랐네. 그럼 싫어하는 색도 있으려나?”

    “싫어하는 색?”

    그에 루크는 자신이 어떤 색을 싫어하는 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번도 의문을 품지 않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 스스로 궁금했기 때문이다.

    마법사인 그에겐 그동안 색을 비롯한 모든 것에 대한 감정적인 선호 같은 건 없었지만, 감정이 발달한 지금은 어느 것 하나 정도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말이다.

    “내가 싫어하는 색이라…….”

    루크는 주변을 둘러보며 색을 하나씩 찾아보았다.

    그러나, 어떤 색을 보던 레니에를 떠올리는 자신이 있다.

    빨강에서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초록에서는 그녀의 눈동자를, 파랑에서는 그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떠올릴 수 있듯이.

    주황색에서는 그녀와 함께 바라본 석양을, 노란 색에서는 그녀가 뱃멀미를 하는 노랗게 뜬 얼굴을, 보라색에서는 그녀가 창가에 올려둔 화분에서 꽃피운 라일락을…….

    어떤 물건을 보고, 또 어떤 색을 보더라도 결국에는 그렇게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자신이 있다.

    그렇게 그동안 함께 쌓여온 색이 많아서인지, 결국은 어떤 색을 보아도 싫어할 수가 없는 건가.

    그것을 깨달은 루크는 곧 고개를 저었다.

    “음, 지금은 그런 건 없구나.”

    지금은 그저 그녀가 지키고자 했고, 이루고자 했던 세상이 마냥 좋을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응애……. 나 애기 작가. 단체삿 힘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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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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