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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9

       내가 성격이 딱히 좋은 편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 나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사람을 곤란하게 하면서 이렇게까지 즐거워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네, 그렇죠.”

        

       나는 말끔하게 대답했다. 차마 질문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그 뒤에 부모님이 없었냐는 질문이 한 번 더 올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이쯤 되어서 ‘그럼 지금까지 어떻게 지냈냐’라고 물어봤다면 나도 곤란했을 것이다. 거기까지 말을 하고 나서야 그 사실이 생각나기도 했고.

        

       소녀 가장인지, 아니면 보육원 출신인지. 대신 보호해주는 어른들은 있었는지.

        

       학교를 나왔다면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 성이 다른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끼리 모여서 살게 된 건 어떤 경위인지.

        

       하나하나 물어보기 시작하면 끝도 없고, 사실 나는 대답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하고 이 자리에 나온 건,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나올수록 여신이 곤란해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저것 열심히 고치다 보면 어느 부분에서는 여신도 실수하는 부분이 나오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부분이 나오면 결국엔 질려서 우리를 되돌려보내 버릴 수도 있다.

        

       어차피 돌아가 봐야 1시간이 되지 않았을 시간이니 큰 문제 없지 않겠는가?

        

       “…….”

        

       하지만 작가들은 그런 쪽의 질문은 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뭐, 우리도 나쁠 건 없지. 속 편하게 지내면서 돌아갈 준비를 하면 되니까.

        

       “그,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그러니까……”

        

       여자 작가는 우리가 이렇게 만나기 전 나눈 이메일을 인쇄해서 온 모양이었다. 파일에서 종이를 하나 꺼내 읽은 그녀는 얼굴이 확 밝아졌다.

        

       “복권에 당첨되어 아파트를 구할 수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아, 네, 원래는 빌라에서 함께 지냈으니까요.”

        

       “빌라에서요?”

        

       “지은 지 오래되어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원룸 빌라였는데, 그래도 다섯 명이 지낼 수는 있는 공간이었어요. 지금은 형편이 많이 나아졌죠.”

        

       “…….”

        

       “아, 그런데 그 복권 당첨되었다는 말은 빼주실 수 있으신가요? 메일로는 보냈지만, 아무래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분명히 우리한테 연락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물론이죠!”

        

       다시 이야기가 암울한 부분으로 빠지지 않은 것에 안도했는지 작가는 펜으로 그 부분을 찍찍 그어 지워버렸다.

        

       아무리 봐도 외국인의 피가 흐르는 다섯 명의 소녀들.

        

       그런데 부모도 없어 스스로 자랐고, 얼마 전까지는 오래된 빌라에서 좁은 공간을 다섯 명이 나누어 가진 채 겨우 살고 있었다.

        

       딱 두 줄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데, 더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방송으로 만들기 좋은 이야기일 텐데.

        

       *

        

       그 이후로도 이야기는 조금 더 이어졌다.

        

       그래도 우리가 하는 방송 이야기로 주제가 옮겨간 뒤에는 작가들의 표정도 조금은 밝아졌다.

        

       성공해서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게임하면서 방송한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잘 지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그런 쪽을 소개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기로 한 것인지, 작가들은 내용이 정해지면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이 나라의 행정 시스템은 생각보다 무척 빡빡하네요.”

        

       작가들이 돌아간 뒤 우리끼리 다시 모여 앉았을 때 샤를로트가 감탄하며 말했다.

        

       “아제르나였다면 부모가 없다거나 혼자 사는 아이의 이야기가 나와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텐데요.”

        

       그렇다.

        

       ‘제도적으로’ 등록되지도 않고, 교육이 필수인 것도 아닌 나라에서는 과거를 물어봤을 때 나올 대답의 ‘공통점’이 적다. 물론 통계적으로 많이 하는 대답 정도는 있을지 모르지만, ‘이 나이라면 당연히 초등학교는 나왔겠네’하는 질문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있는 이 나라는, 적어도 중학교까지의 교육은 반드시 들어야 하는 의무교육이다. 어린아이한테 학교 다니냐고 물었을 때 아니라고 대답하면 그 집안은 무슨 문제가 있다고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그 제도가 언제나 제대로 작동하는 건 아니긴 하다만.

        

       “흉내 내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게 아쉽네.”

        

       앨리스가 말했다.

        

       “사실 그쪽에서 흉내 내고 싶다고 생각할 때 쯤에는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생각이 다를 테니까요.”

        

       해외에서는 주민등록 같은 제도를 보고 기겁한다던가.

        

       “아마 귀족들이 죽도록 싫어하겠죠.”

        

       샤를로트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음, 그런 부분도 있고.

        

       “그래도 학교에 무조건 가게 만들어놓은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부터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잖아요.”

        

       “…….”

        

       샤를로트는 그렇게 말하는 미아를 바라보다가, 그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미아는 “아우, 으아?” 하면서 나름대로 반항했지만, 아무래도 구석에 있다 보니 바로 도망갈 수는 없었다.

        

       그래도 같은 방에 적당히 앉아있지 않은 것이 어디겠는가. 만약 그랬다면 미아는 네 사람의 손을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나는 황녀가 아니라 다행이다.”

        

       그렇게 말하며 맛있게 음료수를 마시는 클레어를 앨리스가 째려보았다.

        

       *

        

       사실 피규어를 제외하면 집의 상태는 멀쩡하다.

        

       사들인 물건은 모두 제대로 정리해서 넣어두었다. 평소에 집을 막 어지르고 살지도 않는다.

        

       거실에서 자기 때문에 거실에 이불을 깔긴 하지만, 역시 아침이 되면 말끔하게 정리한다.

        

       하지만 그래도, 전국적으로 방송을 탈 예정인데 집을 한 번 청소하는 것이 좋지 않나 싶었다.

        

       평소에는 보지 못하는 곳을 싹 정리하고, 혹시라도 필요 없는 것이 있다면 버렸다.

        

       대청소에는 생각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그렇게 열심히 청소를 한 결과—

        

       “…….”

        

       “……생각보다 바뀐 부분이 없네.”

        

       앨리스는 그런 평가를 했다.

        

       그렇다. 결국 우리가 청소한 부분은 집 안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부분이었으니까.

        

       사실 여기 있는 다섯 명 모두, 아제르나에 있을 때는 스스로 청소한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았다.

        

       그나마 기숙사에서 살았을 때는 최소한의 청소를 했겠지만, 기숙사에 사는 사람이 따로 말하지 않는다면 호텔 룸서비스처럼 주기적으로 청소부가 들어와 청소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따로 말해서 그러지 말라고 해두긴 했지만.

        

       그래도 아이들 성격이 꽤 깔끔해서 그런지 집 자체는 언제나 청결하게 유지되었다. 종종 인터넷에서 여자 숙소 같은 곳이 생각보다 엄청 지저분하다거나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은 있는데, 여기는 그렇지는 않았다.

        

       “그러게.”

        

       내가 그 이야기를 하자 클레어는 조금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서로 너무 격을 차리며 사는 거 아니야?”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앨리스는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클레어, 너는 설마 기숙사에 살 때 속옷 같은 걸 그냥 벗어서 침대 위에 두고 그랬어?”

        

       “아니,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그랬다가는 호텔 관리하는 사람이 바로 봤을 텐데.”

        

       “그렇지. 우리는 애초에 평소에 다른 사람 눈을 신경 쓰며 살아야 했잖아. 이런 생활이 몸에 밸 수밖에 없지.”

        

       생각해보니 그럴싸했다.

        

       영국 왕실 사람들이 버킹엄 궁전에 옷을 허물 벗듯 대충 벗어서 던져둘 것 같지는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학습된 결과일까요.”

        

       샤를로트는 턱에 손을 댄 채 말했다.

        

       “맞아. 우리가 처음 언니네서 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짐이 여기저기 어질러져 있었으니까.”

        

       “……그건 제가 1년 정도 집을 비웠었기 때문입니다.”

        

       “먼지는 그렇다 쳐도, 짐이 어질러져 있던 건 그 1년 전에 대충 던져놨었다는 거 아니야?”

        

       앨리스의 반박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사실 이쪽 세계에서야 1년이지만, 내가 아제르나에서 살았던 기간은 몇 년이나 되었다. 나도 그 기간 동안은 나름대로 황녀로서 지냈고, 그래서 정리하는 습관이 들었다.

        

       앨리스의 말대로, 아무리 그래도 침대 위에 속옷을 대충 벗어두면 관리하는 사람 눈에 띄게 된다. 기숙사라면 모를까, 왕궁의 넓은 방까지 내가 전부 청소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빨랫감도 결국에는 모아서 따로 건네주어야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체통은 지켜야 하는 법이다.

        

       “……좋아!”

        

       클레어는 뭔가 좋은 아이디어라도 떠올랐다는 양 그렇게 말했다.

        

       “그럼 우리 지금부터라도 조금 내려놓고 지낼까?”

        

       “……이렇게 청소를 다 해놓고?”

        

       “아니, 오히려 방송에서는 이걸 보고 별로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잖아.”

        

       “원래 방송이라는 것은 그다지 자연스러운 것은 아닙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티 나면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걸?”

        

       “그냥 당신이 마음 놓고 지내고 싶은 것이 아닌가요?”

        

       샤를로트의 말에 클레어는 시선을 피했다.

        

       “저, 저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미아의 그 말에 시선이 미아에게로 확 쏠렸다.

        

       “아, 아뇨, 그러니까…… 여기서 함께 지낸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데 너무 격식을 차리는 건…….”

        

       “…….”

        

       미아의 말을 듣고, 나, 샤를로트, 앨리스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음…….

        

       인제 와서 격식을 내려놓으라고 해봐야,

        

       더 내려놓을 게 있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ㅜㅜ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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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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