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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9

    시루드의 발걸음은 오늘따라 유달리 가벼웠다.

    매일 보는 하늘이지만, 오늘만큼은 또 감회가 새로웠다.

    이제부터 시작될, 앞으로의 나날에 대한 기대로 부푼 가슴은, 그가 서클을 다루는 마법사가 아니었다면 쉬이 진정시키기 어려웠으리라.

     

    왜냐하면, 오늘은 모든 아카데미 학생들이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바로 ‘그 날’이었으니까.

     

    “아, 이제야 방학이네.”

     

    시루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기나긴 학기가 끝나고, 드디어 시작된 겨울방학이다.

    참으로 길었다.

     

    잠시 후, 헬레나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방학이야.”

     

    방학은 정말로 좋다.

    왜냐하면, 학생들의 고민거리가 어떤 것이든 방학이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셈이니까 말이다.

    그 나잇대 아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큰 고민거리는 역시 아카데미니까.

     

    그런 의미에서, 마음대로 아카데미에 나왔다 안 나왔다 할 수 있는 루크는 참으로 부러운 아이였다.

     

    “넌 별로 감흥이 없어 보이네?”

    “뭐, 나야 방학을 하든 안하든 별 차이가 없으니 말이다.”

     

    아카데미의 행사이기도 하니 오랜만에 아이들 얼굴이나 볼 겸 일단 등교를 하기는 했다만, 역시 방학이라고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원래도 필요할 때, 또는 오고 싶을 때만 오던 곳이었으니.

    게다가, 루크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방학이 아니라 졸업을 준비해야 하는 중이니 그 무감각함은 더하다.

    졸업시험을 완료한 이상, 내년이 되면 졸업은 확정이겠지만.

     

    그러나 루크의 감상이 무덤덤하든 어떻든, 오늘은 여전히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방학이 시작된 오늘부터는 아카데미에 오기 위해서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일찍 자지 않아도 되며, 지루한 수업을 들을 필요도 없이 맘이 내키면 내키는 대로 나가서 놀아도 된다.

    학기중에는 갈 수 없던 긴 여행을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지만 방학이라고 너무 풀어지는 건 좋지 않아.”

     

    메리의 말이었다.

     

    메리와 하교를 함께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원래 메리는 본가가 멀어 기숙사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방학을 맞아서 이제 기숙사를 이용할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에, 드물게도 하교를 같이 하게 되었다.

     

    그런데 같이 하교를 하면서 기껏 한다는 것이 잔소리라니.

     

    “너무 노는 데 집중하면, 방학숙제를 잊어버릴 테니까.”

     

    정론이었으나, 시루드는 그런 메리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뭐야, 자꾸 반장 같은 말 할래? 우리 이제 2학년 아니거든. 게다가, 방학숙제라고 해 봤자 별거 없잖아.”

     

    메리는 1학기에 이어서 2학기까지 반장으로 연임하며 반장으로서의 역할이 몸에 배어버린 모양이지만, 이제 학년이 올라가면 더 이상 반장이 아니다.

    게다가 방학숙제라고 해 봤자 기껏해야 재활용품으로 뭔가 만들어서 가져오는 거하고, 방학생활 보고서하고 관찰일지 쓰는 거랑, 일기 쓰기 정도.

     

    이 정도는 적당히 잊고 있다가 개학 일주일 전에 후다닥 끝내면 다 되는 정도다.

     

    아무리 티그 아카데미라고는 해도, 국가에서 정한 기본적인 연령별 교육 커리큘럼이 있는데 이제 11살인 어린학생들에게 너무 무리한 과제를 내어주는 법은 없으니까.

    본격적인 방학숙제는 이제 6학년이 넘어가는 시점부터 어려워진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제 곧 12살이 되는 시점에서 그건 매우 까마득한 시간이기 때문에 자신이 벌써 고민할 필요는 더더욱 없으리라.

     

    그러나 메리는 올곧은 아이였다.

     

    “그래도 그런 태도는 올바르지 않잖아.”

    “하지만 그러는 너도 공부는 제대로 못 하지 않아?”

    남의 올바르지 못함을 꾸짖기엔, 그녀 스스로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었다.

    학생의 본분에 대해 말하려면, 공부를 말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말에 메리는 당당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원래 시키는 사람은 똑똑하지 않아도 규칙만 잘 지키면 된다고 했어!”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아무리 정론이라도 말하는 사람이 무식하면 말에 설득력이 없잖아.

    그런 생각을 하며 시루드는 입을 열었다.

     

    “허, 누가 그러는데?”

    “우리 아빠가.”

    “……좋은 말이네.”

     

    곰곰히 다시 생각해보니까 맞는 말인 것 같다.

     

    그 때, 메리가 물었다.

     

    “시루드, 그럼 방학 때 숙제 미루고 뭐 할거야? 혹시 중요한 계획 있어?”

    “몰라, 나는 딱히 계획하고 있는 건 없는데…….”

    “뭐야! 그럼 숙제는 제대로 하라구!”

    “흐음.”

     

    하지만 시루드는 숙제를 제대로 하겠다는 말은 끝까지 하기 싫었다.

    여기서 알겠다고 하면 그것은 지켜야 할 약속이 되어버리니까.

    그래서, 시루드는 주제를 돌리기 위해서 루크를 잠깐 봤다가, 루크한테 말해봤자 숙제는 제대로 하라는 얘기의 반복일 것 같아서 헬레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헬레나, 너는? 뭔가 계획 있어?”

     

    그러자 헬레나는 약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으응, 나는 아빠가 오늘부터 본격적인 후계자교육으로 바빠질 거라셔.”

    “아…….”

     

    놀 생각 만반이던 시루드는 잠시 침음을 흘렸다.

     

    아직 11살 밖에 되지 않은 나이인데 벌써부터 후계자 교육이라…….

    그건 아무래도 좀 이른 것 같기는 하다만, 결국은 남의 가정사다.

    집안이 굉장히 엄한 분위기인가보다, 하고 납득할 수밖에.

     

    그나저나 후계자 교육이라니, 그건 완전히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자신도 미래엔 비슷한 운명일 거다.

    자신은 외동인데다, 아버지도 안 계시니까.

    헬레나처럼 아카데미를 다니는 동안에 후계자 교육을 병행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엘프는 수명이 기니까,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은가.

    게다가 하이엘프라면…….

     

    어쨌든, 그럼 헬레나는 오늘 못 노는 건가?

     

    시루드는 곧 시무룩한 표정의 헬레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너는 오늘 우리랑 놀러 못가?”

    “아마 그럴거야. 오늘도 일찍 들어오라고 하셨거든.”

    “아쉽네, 오랜만에 루크도 온 겸, 다같이 네가 좋아할만한 곳도 가보려 했는데. 노래방 같은 곳 말이야. 어떻게 오늘 하루만 도망칠 수 없어?”

    “……미안. 우리 집이 좀 엄해. 이미 교문 앞에 차도 준비되어 있대. 아마 아카데미에서 나가면 곧바로 차에 타서 가야 할거야.”

    “아.”

     

    그러면 정말로 어쩔 수 없네.

    헬레나는 보내주는 수밖에 없겠다.

     

    그러나 헬레나의 아쉬운 감정이 전염된 탓일까?

    일행의 분위기는 묘하게 싸늘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꼬르륵-.

     

     

    루크의 귀가 쫑긋거렸다.

     

    “……방금 무슨 소리였지?”

     

    확실히 들렸다.

    이건 분명, 누군가의 배에서 난 소리다.

     

    루크는 그 소리가 들렸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눈이 마주친 헬레나가 격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 난 아냐! 절대!”

    “그런가? 그럼…….”

     

    루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 곁의 시루드에게 향했다.

    그러자, 시루드가 민망한 듯 볼을 긁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

     

    안 들렸을 줄 알았는데, 루크는 쓸데없이 귀도 밝다.

     

    “그거 내 배에서 난 거야.”

    “음, 역시.”

     

    그에 루크는 생각했다.

    시루드의 집이 가난해서 음식이 없어 굶은 것은 아니었을 터.

    그렇다면 자연스레 소화불량이라거나, 배가 아픈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으리라.

     

    곧 루크가 입을 열었다.

     

    “시루드, 혹시 배가 아픈 게 아니냐? 내가 마침 배가 아플 때 좋은 약초와 시술법을 아는데-.”

     

    그러나 시루드는 그런 루크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그런게 아냐, 그냥 내가 오늘 아침을 안 먹고 와서 그래.”

     

    시루드는 루크가 저럴 때 진정되도록 가만히 두면 괜히 반응만 더욱 격해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저번에 아카데미에서 베리튼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모기한테 물린 곳에 침이 효과가 좋다면서 자꾸 제 얼굴에 침을 바르려고 달라붙어왔던 것을 떠올려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럴 때 바로 확실하게 끊어줘야 한다.

     

    “아, 뭐야. 그런 거였나?”

     

    그에 루크도 납득을 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왜 아침을 거른 거지? 설마 네 집에 식량이 떨어진 건…….”

    “왜 식량이 없는 것부터 생각해? 그냥 늦잠에 귀찮아서 안 먹고 나온 거야. 어제 잠을 좀 늦게 잤거든.”

    “아아, 그런가……. 다행이구나.”

     

    루크는 머리는 확실히 똑똑한 것 같은데, 어떤 면에선 또 너무 바보같이 보이는 면이 있다.

    요즘 시대에 밥 굶는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그런 걱정을 하는지.

     

    그러자 메리가 그것 보라는 듯이 외쳤다.

     

    “그것 봐! 제때 안 자서 제때 안 일어나니까 배가 고프잖아! 그래서 규칙이 중요한 거라니까?” 

    “…….”

     

    딱히 할 말은 없다.

    어제 게임을 좀 덜 하고 잘 잤으면 아침을 먹을 수 있을 시간에 잘 일어나서 적당히 배를 채웠을 테니 말이다.

     

    그에 루크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물었다.

     

    “그럼, 지금 배가 많이 고프겠구나?”

    “……그건 그렇지? 뭐, 그래도 괜찮아. 밥 정도는 좀 굶어도 노는 데는…….”

    “어허, 성장기의 어린아이가 어떻게 밥을 굶는다는 얘길 하나, 큰일 날 소릴. 어릴 때 잘 먹어야 잘 자라는거다.”

    “윽…….”

     

    다른 사람도 아니고 루크가 저런 말을 하니까 반박을 할 수가 없다.

    성장기의 식사…….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시루드가 말문이 막혀 시선을 피하는 모습을 보던 루크는 곧 가볍게 미소지으며 시선을 돌려 헬레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헬레나, 너는 아카데미에서 나가면 곧바로 후계자 수업이 있을 예정이고.”

    “어? 어……. 그렇지?”

     

    헬레나는 갑작스런 루크의 질문에 얼떨결에 대답했다.

    그러자 루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묘안을 제시했다.

     

    “마침 잘 되었다. 그럼 헬레나도 있으니, 잠깐 아카데미 안에서 식사를 하지. 헬레나, 아카데미에서 조금 늦게 나가는 정도는 괜찮겠지?”

     

    루크의 이어진 질문에 헬레나는 잠시 생각을 해 보더니 대답했다.

     

    “어? 뭐, 그 정도는……괜찮지 않을까?”

    “좋군.”

     

    루크의 말에 궁금증이 도진 시루드와 메리.

     

    “그런데 그게 무슨 소리야? 아카데미 안에서 식사라니? 오늘은 일찍 끝나서 급식도 없잖아? 급식이 예정에 없으니 당연히 식재료도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을 거고.”

    “맞아, 대체 어떻게 하게?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어?”

     

    루크는 그에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제안부터 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다 생각해둔 방법이 있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배가 아파서 좀 집중이 안 됐네요.

    대신 오늘중에 하나 더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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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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