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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9

       파이스 스코비아는 스스로가 온갖 인간군상을 마주해 보았다고 자부했다.

       

       과거 이세계로 끌려가서 반 강제로 용사 노릇을 하게 되었을 때부터 시작해서. 현대로 돌아온 후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로써 몇 년이나 활동하며 수없이 많은 이들을 만나 본 그다.

       

       좋은 사람도 싫은 사람도 지겹도록 마주하며 경험을 쌓아 온 파이스는 인간의 좋은 점도. 인간의 심연도. 모두 다 알고 있다고 여겼다.

       

       허나 그것은 착각이었고 오만이었다.

       

       채팅창와 도네이션 창을 가득 메울 정도로 빠르게 올라오는 광기의 향연 앞에서 파이스는 지금이 자존심을 지킬 때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됐다.

       

       “여러분들. 대체 왜 제가 맨몸에 에이프런 입는 걸 보고 싶어 하시는 겁니까.”

       

       대결을 펼치는 두 사람의 시점을 보여주기 위해 따로 방송을 켠 파이스는 자신의 시청자들에게 한탄하듯 물음을 던졌다.

       

       허나 그의 한탄에 돌아온 대답은 그가 바라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 진짜 몰라서 물음?

       – 이래서 인싸는.

       – 때 묻지 않은 파이스도 조아.

       

       – ㅇㅇ님이 2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럼 왜 안 보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임?]

       

       “남정네가 그런 차림 하는 걸 보고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

       

       – 여기!

       – 여기요!

       – 완전 조아!

       – 헉. 허억. 허어어억.

       – 바로 영상으로 소장한다.

       – 화령 파이팅! 천마 파이팅!

       

       “…여러분한테 물어본 제가 바보죠.”

       

       스스로가 멍청했음을 인정한 파이스는 얼굴을 쓸어내리고서 다시금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제 대결을 시작하기까지 3분이란 시간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 리비바다님이 2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살다살다 파이스가 핸디캡을 요구하는 걸 다 보네.]

       

       – 진짜 상상도 못 했음.

       – 만날 핸디캡 걸린 채로 다 패고 다니던 게 파이스인데.

       – 저번에 화령한테 한 대 맞고 식은땀 난 듯?

       – 얼마나 벌칙 받기 싫었으면ㅋㅋㅋ

       

       “제가 프로 생활을 하면서 온갖 흑역사를 쌓아온 건 사실입니다만 최소한 제 존엄을 팔아넘기고 싶진 않습니다.”

       

       파이스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세상을 구한 고결한 용사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허나 그 고결함이 완전무결을 뜻하지는 않는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파이스는 타의와 자의에 의해 수많은 흑역사를 만들어 냈다.

       

       특히 이세계에 막 끌려갔을 무렵이 진국이었다. 그 때의 파이스는 매일 숨 쉬듯 훗날 이불을 차게 될 일을 반복했으니 말이다.

       

       다만 이 세계에서 만든 그의 흑역사는 파이스에게 큰 고통으로 남아있지 않았다. 그 시절의 파이스는 병신이었지만 은밀한 병신이었으니까.

       

       인터넷상에 박제될 것이 없는 그 곳에서 저지른 흑역사는 밤중에 이불을 걷어차게 만들고 지인들에게 놀림을 당하게 만들기는 할 지언정 그의 인격을 박살내진 않았다.

       

       허나 현대에 와서 생겨난 흑역사는 달랐다.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며 만들어진 온갖 흑역사는 지금도 지겹도록 언급이 되면서 파이스의 멘탈을 박살냈다.

       

       그 흑역사의 정도가 이 세계에서 저질렀던 수많은 이들에 비하면 별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이것이 작금의 현실일 지언데 그 흑역사에 파이스냥이나, 알몸 에이프런 파이스나, 매지컬 리리컬 파이스 같은 게 더해져봐라.

       

       파이스는 진지하게 프로게이머에서 은퇴하고 이세계에 틀어박혀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하게 될 것이다.

       

       – 진짜모름?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렇게 화령이 강함?]

       

       “엄청나게 강하죠. 제가 온갖 전략을 사용해가면서 발악해도 이기기는 어려울 걸요.”

       

       단순히 강하다 약하다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격이 달랐다.

       

       무인으로써의 성취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승리해야만 했던 파이스와 오롯이 무인으로써 극의에 이른 화령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그런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건 제약으로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어요.”

       

       나름 생각하고 고민해서 화령에게 몇 가지 제한을 건 파이스였지만 그렇다한들 여전히 파이스는 자신이 승리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화령과 자신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가 너무도 거대했으니까.

       

       – 대체 화령은 뭐 하는 사람임?

       – 아닠ㅋㅋㅋ 이래도 못 이길 것 같다고?

       – 사람이 맞긴 함?

       – 어느 행성에서 피난 온 외계인 아냐?

       

       – ㅇㅇ님이 5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럼 화령이 대회에 등장하면 어케 되는 거임?]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요. 화령님이 우승하시는 거죠.”

       

       파이스가 시청자들과 대화를 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대결을 시작할 때가 찾아왔다.

       

       파이스의 존엄이 걸려 있는 대결.

       

       자칫 잘못하다간 어느 방송에 출현할 때마다 사용될 짤이 생길지도 모르는 생명보다 소중한 싸움.

       

       그 조건은 이러했다.

       

       랜덤으로 캐릭터를 골라 아피스의 튜토리얼을 수행한다.

       

       튜토리얼을 클리어 할 때까지 캐릭터 변경을 불가능하다.

       

       파이스는 다섯 개. 화령은 열 개의 튜토리얼을 클리어 해야 한다.

       

       먼저 할당된 수를 채운 사람이 승리한다.

       

       “벌칙 이상한 거 걸리면 그냥 은퇴할 거니까 응원해주세요.”

       

       파이스는 그리 이야기를 하고서 랜덤버튼을 누른 후 눈을 꾹 감았다.

       

       제발 좋은 거.

       

       제발 멀쩡한 거.

       

       편사 같은 쓰레기 캐릭 말고.

       

       천마처럼 쓰잘데기 없이 어려운 캐릭터 말고.

       

       좋은 걸로 주십시오 랜덤의 신이시여!

       

       비명에 가까운 파이스의 외침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그가 처음으로 플레이하게 된 캐릭터는 파이스가 평소 대회에서 주력으로 사용하는 캐릭터인 검방기사였다.

       

       “나이스으으으으!”

       

       기쁨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내지르던 파이스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즉시 튜토리얼을 실행했다.

       

       “일단 시작은 좋네요!”

       

       검방기사의 튜토리얼은 단순하다.

       

       토벌 임무에 나온 기사단이라는 설정으로 시작. 선배기사에게 가르침을 받고. 실전에서 몬스터를 쓰러트린 뒤에. 갑작스레 튀어나온 정체 모를 검은 갑옷의 기사를 상대하면 끝.

       

       수많은 튜토리얼 중에서도 난이도가 높은 축에 속하는 이 튜토리얼은 많은 유저들이 꺼려하는 것이었지만 파이스에게 있어선 달랐다.

       

       마력을 사용할 수 있고. 익숙한 무기를 쓸 수 있다면. 파이스는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

       

       “먼저 갑니다!”

       “응? 야. 야!”

       

       튜토리얼에 들어온 파이스는 선배기사의 다급한 외침을 무시한 채 무작정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과거에 몇 번이나 보았던 풍경이다.

       

       안 그래도 시간이 없는데 굳이 마주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파이스가 얼마나 내달렸을까.

       

       튜토리얼의 허약한 몸이 지침을 호소할 즈음 그의 앞에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운이 안 좋았군 그래.”

       “이게 저한텐 운이 좋은 겁니다!”

       

       검은 갑옷의 기사는 그게 무슨 헛소리냐고 묻고자 하는 듯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그가 입을 벌리기도 전에 파이스가 그에게로 돌진했으니까.

       

       “크읍!”

       

       방패로 밀치는 것으로 선취를 붙잡음과 동시에 상대의 평정을 빼앗는다.

       

       그리고서 이어지는 공격을 막지 않고 피해내면서 재정비.

       

       천천히 상대를 깎아낼 틈을 살핀다.

       

       “이 쓰레기 같은 놈이!”

       

       이제부터는 지구전이다.

       

       다급해하는 순간 그대로 패해.

       

       천천히. 천천히 상대를 갉아먹어야 한다.

       

       싸움의 양상은 일방적이었다.

       

       흑기사를 상대하는 법에 관한 공략 영상까지 찍었을 정도로 상대에게 익숙한 파이스와 그를 처음 만나는 흑기사.

       

       아무리 흑기사가 지닌 스펙이 파이스를 아득히 상회한다 할지라도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경험의 차이는 그 모든 걸 뒤집어버릴 정도로 거대했으니.

       

       파이스가 흑기사를 쓰러트리는 데에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아니했다.

       

       – 파이스!파이스!파이스!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키야아아아! 미쳤다! 이게 세계 최고의 검방기사인가!]

       

       – 진짜 더럽게 깔끔하네.

       – 사람이 어케 이렇게 움직일 수가 있지?

       – 내가 하는 검방기사랑 같은 캐릭이 맞나?

       – 진짜 몇 번 봐도 감탄밖에 안 나오네.

       

       “자. 그럼 이 기세를 몰아서 다음 캐릭터를!”

       

       – 라딘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야. 파이스. 너 좆 된 거 같은데?]

       

       “…네? 아. 너 라딘이야?”

       

       같은 팀 동료가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후원에 파이스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좆 됐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이제 완전 흐름 잡고 달리려는데 왜 초를 치려고 그러냐.

       

       – 라딘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화령 튜토리얼 3개째 클리어.]

       

       “너 나 지금 놀리는 거지.”

       

       아무리 화령이 강하다 할지라도 물리적인 한계라는 게 존재한다.

       

       상태가 최악은 튜토리얼의 캐릭터로 어떻게 벌써 3번째 튜토리얼을 넘어설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기 캐릭을 해선 안 된다는 것과 그 캐릭터가 지닌 능력으로 튜토리얼을 클리어해야 한단 제약이 걸려 있는데!

       

       – 라딘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농담이면 내일 니 발에 키스해 줌.]

       

       “더러운 소리 하지 마라. …아니 근데 진짜야?!”

       

       – ㅋㅋㅋ

       – 진짜임.

       – 파이스… 조때써…

       – 파이스냥이!파이스냥이!파이스냥이!

       – 알몸 에이프런!알몸 에이프런!알몸 에이프런!

       

       “진짜로 벌써 3번째 튜토리얼을 클리어 했다고?!”

       

       – 천마조아님이 2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정확하겐 4번째 튜토리얼 클리어 직전입니다.]

       

       “미친?!”

       

       *

       

       “이 녀석도 저 녀석도. 신이란 이름이 붙은 놈들은 왜 이리 허약한 지 모르겠구나.”

       

       번개를 관장하는 신이라는 녀석이 어찌 이리 느려 터진 것인지.

       

       그만한 권능을 지니고 있다면 당연히 본인의 시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를 지녀야 하는 것 아니더냐?

       

       바닥에 널부러진 자칭 신은 본인의 투덜거림에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내 제약에 맞춰 특별히 각법만을 사용해 상대해 주었거늘 벌써 고장나버리다니. 재미가 없구나.

       

       녀석의 머리를 한 번 더 후려차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자 내 앞에 튜토리얼을 클리어했단 문구가 떠올랐다.

       

       “자아. 이걸로 네 번째가 끝인가?”

       

       – ㅁㅊ

       – 나랑 똑같은 게임 하는 거 맞아?

       – 이제 파이스는 하나 클리어했는뎈ㅋㅋㅋ

       – 파이스 흑역사 하나 더 늘 각이 보인다.

       – 이 정도면 손 하나 쓰지 말라고 해야 하지 않았을까?

       

       “글쎄다. 손 하나를 묶는 것 정도로는 별로 달라질 게 없을 듯 하다만?”

       

       차라리 제약을 걸 것이라면 화끈하게 사지를 쓰지 말아달라 부탁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구나. 그럼 가능성이라도 있었을 테니.

       

       – 그건 좀.

       – 너무 쓰레기 잖앜ㅋㅋㅋ

       – 이긴 쓰레기 되기 VS 지고 흑역사 만들기.

       – 끔찍한 이지선다다.

       

       “무어. 잡소리는 여기까지하고 빠르게 다음 튜토리얼로 넘어가도록 하자꾸나.”

       

       자그마한 변수조차 주지 않고서 승리를 하려면 최선을 다해야 할 테니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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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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