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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9

   수업을 듣기 위해 움직이다가 아서와 어느 교수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다.

   

   지금 이 곳에는 왕궁과 관계된 귀족이 수도 없이 많으니 지인이 있을 수도 있겠다 정도로 생각했지.

   

   그렇지만 교수가 내뱉은 말을 듣고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아서에게 있어 가장 상처가 될 말을 웃으며 내뱉는 자가 어찌 아서의 지인이겠는가.

   

   아서 솔라딘 본인보다도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자부하는 나는 교수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머리에 열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저 미친 새끼가 뭐라고 지껄인 거지?

   

   천한 피를 잇지만 않았다면 참 좋았을 거라고?

   

   지랄하네. 누가 들으면 지는 신과 인간의 혼혈이라도 되는 줄 알겠다.

   

   자기 권력을 믿고 개판을 치다가 뒷방으로 쫓겨난 폐급 쓰레기 주제에.

   

   감히 내 친구를 모욕하다니. 머리가 너무도 뜨거워진 탓일까. 되래 머릿속이 냉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저 녀석의 얼굴은 기억 나. 사이드 스토리 쪽에 존재했던 악역이니까.

   

   발리안 클록.

   

   한 때 궁중 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지만 1왕비가 나타나며 자연스럽게 뒤로 밀려난 자.

   

   그 원한 때문에 2왕비 세력에 붙었지만 2왕비 측에서도 처치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병신.

   

   여기에서마저 밀려나면 진짜 갈 곳이 사라 질 테니만큼 좀 사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네.

   

   하긴 주변 분위기를 보고 상황 파악이 가능한 녀석이라면 여기까지 밀려날 리가 없지.

   

   “푸흐흫♡”

   

   저 쓰레기의 설정을 떠올리고 웃음을 흘리자 아서와 발리안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발리안의 눈동자에는 당혹의 기색이 역력했다. 2왕비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거겠지.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말이야.

   

   그런데 이걸 어쩌나.

   

   네가 날 건드리기 싫어도 난 지금 건드릴 생각으로 가득한데.

   

   “불쌍왕자님. 무얼 하고 계신가요. 허접 아카데미의 청소부랑 대화할 정도로 여유로우세요?”

   

   의아함을 담아 고갤 갸웃거리자 아서가 양 입술 끝을 꾹 깨물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도 웃음을 참아 내다니! 이게 제왕학이란 건가!

   

   “…알른 가문의 영애님. 무언가 착각을 하시는 듯 합니다만.”

   

   발리안은 애써 간드러지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착각하는 건 너겠지♡ 멍청한 청소부♡ 너 따위가 나한테 말을 걸어도 되는 입장이라고 생각해?♡”

   “우선 말씀드리자면 전 청소부가 아니라 교수입니다. 클록 백작가의 발리안이라 합니다.”

   

   그는 내 도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그래도 꼴에 궁중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놈이라고 이런 표정 관리에 능한 거겠지.

   

   뭐. 그래봐야 오래가진 못하겠지만.

   

   “거긴 또 뭐하는 잡스러운 곳이야?♡”

   

   단순히 무례하다는 정도를 뛰어넘어 모욕으로도 들릴 수 있는 발언에 발리안의 미소가 굳었다.

   

   “…클록 가문은 예로부터 궁중의 일을 도와 온.”

   “농담한 거잖아♡ 퇴물 아저씨♡ 왜 무섭게 정색을 하고 그래?♡”

   “가문의 이름은 농으로 소비할 수 있는 게.”

   “귀여운 여자애가 장난 쳐주면 좋아해야지♡ 진짜 재미 없네♡ 아저씨 왕따지?♡ 친구 없지?♡ 그치?♡”

   

   한 마디 한 마디를 더할 때마다 발리안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져간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 나는 단순히 메스가키 스킬의 도발능력만을 활용해서 이 녀석을 건드리고 있는 게 아니니까.

   

   썩은물의 지식을 기반으로 이 녀석이 싫어할 만한 말을 떠올리고.

   

   그 말을 하면서 약점 분석을 통해 이 녀석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말을 찾아내고.

   

   상대를 열받게 하기 위해 고르고 고른 말을 메스가키 스킬을 통해 입 밖으로 꺼낸다.

   

   이처럼 공들인 도발 앞에서 어찌 바리안 따위의 엑스트라가 감정을 다스릴까.

   

   “그리고 말이야♡ 퇴물 아저씨의 가문을 모르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 책상 위에서 깃펜을 움직이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약골 가문을 왜 내가 알아야 해?♡”

   “…”

   “아저씨도♡ 아저씨네 가문도♡ 얼마 안 가 사라질 퇴물이잖아♡ 난 그런데 내 기억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내 머리엔 좀 더 귀중한 게 들어가야 한다구♡ 맛있는 파르페 가게처럼♡”

   

   발리안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오늘 아카데미에서 먹은 파르페가 괜찮았단 이야기를 아서에게 했더니 결국 그가 웃음을 흘렸다.

   

   “…루시 알른.”

   

   그게 기폭제가 된 것일까. 발리안의 얼굴에서 애써 짓던 미소가 사라지며 그의 추악한 얼굴이 드러난다.

   

   살이 늘어지고 주름이 가득한 그의 얼굴은 사람의 것이라기보다는 마물의 것에 가까워 보였다.

   

   “그 모욕은 듣고 넘길 수 없다.”

   “그래애?♡ 그래서 어떡할 건데?♡”

   “클록 가문은 정식적으로 알른 가문에 항의 서한을 보낼 것이다.”

   “와아♡ 결국 한다는 게 얘가 잘못했으니까 혼내주세요~ 야?♡ 너~무 무섭네♡ 파파가 깜짝 놀라서 나한테 연락을 하겠는 걸?♡”

   “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가문과 가문 사이의.”

   “퇴물 아저씨♡ 우리 파파랑 싸워서 이길 자신 있어?♡”

   

   알른 가문을 적대할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발리안의 말문이 막힌다.

   

   가문 하나의 힘만으로 제국의 침공을 지연시킨 괴물 같은 가문이 알른 가문이며 대륙 전체를 공포로 밀어 넣었던 기사가 베네딕 알른인데 어찌 싸울 자신이 있다 말하겠는가.

   

   “없어?♡ 없으면서 항의니 뭐니 난리를 피웠던 거야?♡”

   “귀족 가문의 항의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한~심해라♡ 아무것도 없으면서 왈왈대기만 하는 패배견이라니♡”

   “…”

   “창피하지 않아?♡ 자그마한 여자애도 툭툭 건드려도 아무것도 못하는 게 부끄럽지 않은 거야?♡”

   “…이.”

   “아~♡ 나도 이길 자신이 없는 거구나~♡ 이해해♡ 퇴물 아저씨가 꿀꿀대며 뛰어봐야 측은하기만 할 것 같거든♡”

   “…이 빌어먹을 년이.”

   “푸흐흫♡ 화났어?♡ 때릴 거야?♡ 때찌때찌할 거야?♡”

   

   메스가키 스킬의 고양감을 따라 재잘재잘대던 나는 터져버릴 것처럼 벌개진 그의 얼굴을 보며 그의 분노가 곧 임계점을 넘을 것임을 확신했.

   

   “천 것의 피를 이은 망나니 주제에 감히.”

   

   …뭐?

   

   “사실이잖나. 출신도 불분명한 천것에게서 태어난 꼬맹아.”

   

   이 새끼가 지금 누굴 건드리는 거야?

   

   “외모 하나만큼은 잘 타고 났나? 왕국의 영웅을 꼬시려면 이만한 얼굴은 됐어야 했을 테니.”

   

   얼굴에서 미소를 지워버린 나는 아무 말 없이 몸 안의 신성을 끌어올렸다.

   

   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자 발리안이 자기가 이겼다는 것처럼 다시금 징그러운 웃음을 지었다.

   

   허나 그 웃음도 잠시였다. 내 살벌한 분위기에 돼지새끼가 다급히 뭐라뭐라 소리를 쳤다. 대충 자길 건드리면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모든 말을 무시한 채 입을 나불대는 대신 주먹 위에 신성을 끌어 모았다.

   

   그를 본 돼지 새끼는 위기감을 느낀 듯 자신의 앞에 마법을 펼치려 했지만 그 마법진은 완성될 수 없었다.

   

   빠르게 뻗어나간 내 주먹이 마법진을 박살냄과 동시에 돼지 새끼의 축 늘어진 배를 후려쳤으니까.

   

   “끅. 끄흐윽.”

   

   고통을 견딜 수 없었는지 돼지 새끼는 배를 부여잡으며 바닥에 엎드렸다.

   

   마침 돼지의 머리가 자리한 위치가 참 좋았기에 나는 구둣발로 놈의 뒤통수를 짓밟으며 입을 열었다.

   

   “다시 꿀꿀대줄래?♡ 내가 귀가 좀 안 좋아서 잘 못 들었거든~♡”

   “끕. 끄읍.”

   “정말♡ 꿀꿀대란 말은 비유잖아♡ 이런 것도 못 알아 처먹으면 어쩌자는 걸까?♡”

   “끄으읍.”

   “가축이 되기로 결정해버린 거야?♡ 잘 어울리긴 하는데 꿈은 나중에 이뤄줬음 좋겠어~♡ 난 사람이랑 대화를 하고 싶거든~♡”

   “…”

   “아~♡ 미안~♡ 입으로 청소하느라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네~♡ 좋아서 부들부들대길래 더 해달란 건 줄 알았지~♡”

   

   머리를 짓밟던 발을 떼어내어 발 끝으로 턱을 들자 공포에 질려 창백해진 돼지새끼의 얼굴이 보였다.

   

   “퇴물 아저씨♡ 진짜 좆 달린 거 맞아?♡ 아저씨한테 달린 게 불쌍한데?♡ 중성화 수술 해줄까?♡”

   “나. 나는. 클록 백작가문의.”

   “어~쩌라고♡ 가축처럼 생긴 아저씨가 자기어필 해봐야 징그러울 뿐이거든?♡”

   

   더 이상 대화해봐야 짜증만 날 것 같아서 돼지새끼의 얼굴을 걷어찬 나는 구두 끝에 피가 묻은 걸 보고는 짜증이 나서 신발을 벗어 돼지새끼의 머리 옆에 내던졌다.

   

   아악. 열 받은 게 가시질 않네. 이딴 쓰레기 자식이 주제도 모르고 누굴 언급하고 있는 거야.

   

   좀 더 팰까? 오줌 지리면서 살려달란 말을 할 때까지.

   

   “루시 알른. 제발 좀 진정해라.”

   “저 딱히 화 안 났는데요? 불쌍왕자님께선 안목이 너무 부족하시네요.”

   “주변을 봐라. 다들 무서워하고 있지 않으냐.”

   

   아서의 말을 듣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는 슬그머니 고갤 들어서 주변을 살폈다.

   

   내가 처음 이 곳에 왔을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날 바라봤고.

   

   누군가는 두려움을 담아 날 바라봤으며.

   

   누군가는 놀람을 담아서 날 바라봤다.

   

   그 중에서 내게 접근하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슬금슬금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어. 할아버지?’

   <왜 부르느냐.>

   ‘어떡하죠?’

   <어떡하긴 뭘 어떡해. 네가 계획하던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았느냐.>

   ‘저 이런 계획 한 적 없는데요!?’

   <명분이 생기면 깽판을 치겠다고 어제 말했을 텐데?>

   ‘그…으건 그랬지만! 지금 분위기가 아무리 봐도 안 괜찮아 보이잖아요!’

   

   내 평판이 또 다시 나락에 떨어질 게 훤히 보인다!

   

   망나니가 제 성질을 못 버렸다고 뒤에서 뭐라 그럴 게 훤히 보여!

   

   할아버지 말대로 계획이 잘 풀리긴 했네.

   

   이제 더 이상 누구도 날 막 대할 수 없을 테니까 말야!

   

   입술을 곱씹으며 자기합리화를 하던 나는 뒤편에서 들려온 거품무는 소리를 듣고 슬며시 주변을 살폈다.

   

   주변 아이들의 눈에 새겨진 공포가 더 강해졌다.

   

   흐아아앙! 나락 끝에 더한 나락이 있다는 걸 이런 식으로 알고 싶진 않았는데!

   

   저 돼지새끼를 참교육해준 데에는 일말의 후회도 없지만 조금은. 아주 조금은. 장소를 골라야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에이! 몰라!

   

   될대로 되라지!

   

   어차피 저질러 버린 일!

   

   오늘은 그냥 막 나가 버릴 테다!

   

   “흥.”

   

   아서의 손을 떼어내고 복도의 인파를 향해 다가간 나는 맨 앞에 선 남자애한테 날 선 목소리를 냈다.

   

   “뭘 그렇게 쳐다 봐? 너도 저 돼지처럼 꿀꿀 대고 싶은 거야?”

   “…네? 아뇨! 그. 그럴리가요!”

   “그럼 비켜. 너 같은 허접 때문에 내 귀한 시간이 낭비되고 있잖아.”

   “넵!”

   

   나는 인파가 갈라지는 것을 구경하며 고개를 뻣뻣이 세웠다.

   

   다들 비켜라!

   

   망나니 루시의 귀환이다!

   

   건드리는 순간 인격을 짓밟아줄 테니 알아서 사리도록!

   

   “알른 영애.”

   

   차디찬 목소리 속에 담긴 귀족적인 어투를 들은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그 곳에는 부채로 얼굴을 가린 조이가 있었는데 그녀의 눈빛에는 평소의 얼빵함이 아닌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

   

   조이의 본성을 잘 아는 나조차도 굳어버릴 정도로 싸늘한 단호함이 말이다.

   

   화…난 건가? 아니지? 그냥 분위기 잡는 거겠지?

   

   “멈추도록 하세요. 떠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

   

   발을 멈추고 팔짱을 끼는 걸로 알겠단 의사를 표시하자 조이가 내게서 시선을 떼고 다른 이들 쪽으로 고갤 돌렸다.

   

   “다른 분들은 떠나도록 하세요. 이미 수업은 시작됐습니다.”

   “저어. 파트란 영애. 지금 이 상황은.”

   “떠나라고 분명 말씀드렸을 텐데요. 제 말이 우스우신가요?”

   “아닙니다! 바로 떠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와아아. 이렇게 보니까 조이 진짜 무섭네. 평소에 내 옆에 있을 때랑 완전 딴 판이야. 사교계의 조이는 이런 느낌인 건가?

   

   구경을 위해 몰려들었던 인파가 순식간에 흩어지는 걸 확인한 조이는 한숨과 허리를 숙이더니 하얗고 보드라운 손으로 내 뺨을 붙잡아 당겼다.

   

   “알르으은 영애. 대체 왜 모두가 보는 곳에서 사고를 치는 건가요오오오.”

   

   한탄하듯 목소리를 내는 그녀는 내가 아는 얼빵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다시 늦어서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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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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