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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9

   그날, 검존에게 익시온을 돕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이후.

   크라슈는 오랜만에 그와 다시금 검을 마주하게 됐다.

     

   그래서일까.

   크라슈는 순수한 흥미가 들었다.

     

   과연, 자신의 검술은 그날 이후 얼마나 성장했는가.

     

   ‘솔직한 말로.’

     

   성장이라는 말은 무색하긴 하다.

     

   크라슈는 결국 마지막까지 화력에 화력을 더해 아벨라를 무찔렀으니까.

     

   그에게는 검은 화력을 쏟아내는 수단이었을 뿐.

   검 대 검으로 상대를 쓰러트린 적은 드물었다.

     

   ‘지금 내게는.’

     

   그 자랑인 화력도 변변치 못하다.

   그렇다면 괴존을 쓰러트리기 위해 자신이 할 일은 무엇인가.

     

   ‘검을 늘려야 한다.’

     

   괴존의 검을 받아내기 위해 그의 검을 파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또 같은 결과를 맞이할 뿐이다.

     

   그러니 크라슈는 검존을 향해 검을 겨누고 섰다.

     

   “오랜만이군.”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음에도.

   그는 이미 기척만으로 크라슈임을 알았는지 입을 열었다.

     

   “그때 내가 보여준 검으로 깨달음은 얻었나.”

     

   아쉽게도 얻지 못했다.

     

   “이번에는 얻겠습니다.”

     

   크라슈가 그 말과 함께 바닥을 박차 엔마이아 산 정상을 가로질렀다.

     

   차가운 공기가 몸을 감싼다.

   희박한 산소, 중력으로 인해 평소보다 가벼운 몸.

     

   그 속에서 크라슈의 잿불은 거세게 피어올랐다.

     

   타오른 잿불과 함께 크라슈의 검이 대기를 갈랐다.

   울려 퍼진 파공성과 함께 크라슈의 검이 검존의 검과 맞부딪친 순간.

     

   퉁-

     

   크라슈가 휘두른 파괴력과는 다르게 자그마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고요한 호수 위에 조약돌을 던진 듯한 반응.

   작게 일어난 파문이 검존의 주위로 뻗어 나가며 금세 사라졌다.

     

   이 느낌.

   괴존과 검을 맞부딪치려 했을 때도 이 느낌과 비슷했다.

     

   마치, 같은 세계에 서 있는 게 아닌 서로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기묘한 감각.

     

   크라슈의 얼굴이 굳었다.

     

   ‘대체.’

     

   괴존과 검존은 어떤 세계를 보고 있는 걸까.

   두 사람이 보는 세계를 아직 보지 못한 크라슈는 검을 당겨 쥐었다.

     

   그리고 크라슈가 그동안 몸에 익혀온 검술식을 이어 나갔다.

     

   크라슈의 검은 두 가지 형태로부터 비롯된다.

     

   하나는 크라슈의 타고난 눈치와 발하임 서고에서 발견한 비기, 제 육감을 통해 다루는 둔검.

   상대의 공간을 제약해 나가며 끝내 상대를 끝에 몰아세우는 둔검은 크라슈와 굉장히 잘 맞았다.

     

   두 번째로 그런 둔검에서 파생된 검술식이 있다.

   본래 상대의 검을 받아내는 둔검에서 오히려 상대의 공간을 먼저 선점하는 검.

     

   패검.

     

   호쾌하게 휘두르는 크라슈의 패검은 상대를 폭풍같이 몰아세운다.

     

   그러한 패검에 더해지는 검황의 비기, 검광은 크라슈에게 힘을 한층 더 실어준다.

     

   여기에서 검광과 함께 전신의 화력을 끌어올려 토해내게 되는 마지막 비기, 멸화침식이 크라슈의 전투 방식이 되겠다.

     

   그러나 괴존에게는 이러한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의 검은 제 육감으로도 보이지 않았고, 크라슈는 순식간에 가슴을 베여야 했다.

     

   이는 아무리 주의를 한다 해도 보이는 세계가 다른 감각이었다.

     

   “아직 이쪽 세계에 발을 들이지 못했군.”

     

   그러는 순간 검명 사이로 검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쪽 세계.

   그게 무엇일까.

     

   “이 세계에는 여러 가지 빛들이 보인다.”

   “빛, 말입니까?”

   “보이는 자와 보이지 않는 자, 둘 사이에 간극은 무슨 짓을 해도 좁히지 못한다.”

     

   그 순간 검존의 검이 휘어졌다.

     

   크라슈의 제 육감이 반응하기도 전.

   검존의 검은 어느새인가 크라슈의 옆구리를 후려치고 있었다.

     

   “거흑!”

     

   숨을 거칠게 토해낸 크라슈가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다.

   그러나 고통에는 익숙하다는 듯 크라슈는 즉시 자세를 바로 하며 검존에게 달려들었다.

     

   조금 전.

   검존의 검이 기묘하게 보이지 않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크라슈는 영문을 몰랐다.

     

   “빛이라는 게 뭡니까.”

   “전투의 동화.”

     

   이해 못 할 소리를 하기는.

   그보다 귀가 들리지도 않는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대답하는지 모르겠다.

     

   “무아지경이란 말을 알고 있나.”

   “많이 들어봤죠. 비슷한 걸 몇 번 겪어본 기분이기도 하고요.”

   “무아지경 속에서 잡는 한 줄기의 순간은 빛을 볼 수 있는 기회기도 하다.”

     

   그 빛이라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어찌 본단 걸까.

   그래도 무슨 소리인지는 알겠다.

     

   “무아지경이 될 때까지 검을 휘두르면 뭔가 보인다는 소리죠.”

     

   죽어라 검을 휘둘러라.

   아주 간단명료하다.

     

   “너라면 이미 비슷한 세계를 보았을 수도 있다.”

     

   크라슈는 그 말이 무슨 소리인지 조금은 알 거 같았다.

     

   크라슈가 아벨라를 베었던 그날.

   그때 보았던 세계는 분명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에 있었다.

     

   하늘에 무수히 수놓은 별과 신, 그리고 세계를 뒤덮은 성위 마법까지.

   그 세계 속에서 크라슈가 본 것은 무엇인가.

     

   그걸 알아내기 위해 다시금 그 세계로 빠져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딱 하나 조언하자면.”

     

   검존의 목검이 어느새 또 한 번 크라슈의 목 바로 앞까지 들이밀어졌다.

   꼼짝 없이 목이 찢길 뻔한 크라슈가 식은땀을 흘리자, 검존이 검을 다시 회수해 갔다.

     

   “스스로가 별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스스로 발광이라도 하라는 건가.

     

   “발광(發光)은 몰라도 발광(發狂)은 못 할 거 없죠.”

     

   크라슈가 숨을 당겨 쉬었다.

   검을 휘두르는 속력을 늘려 나가며 동시에 화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검존은 무아지경에 빠지면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것을 보기 위해 크라슈는 지금부터 육체와 정신을 몰아 넣기 시작했다.

     

   크라슈는 검에 별다른 재능이 없다.

   평생의 노력으로 남들보다 조금 나은 수준.

     

   그 정도의 재능이다.

     

   단, 딱 하나.

   독종같이 죽기 살기로 노력하는 것만큼은 자신 있다.

     

   설령 그것이 자기 몸을 깎아내리는 일이 될지라도.

   크라슈는 망설임 없이 자기 몸을 불구덩이에 던질 수 있는 놈이었다.

     

   그러니 지금.

   크라슈는 저 스스로 정신과 육체를 몰아 넣어갔다.

     

   지난날, 몇 번을 자신의 정신 속 호수에 몸을 던져 봤던가.

     

   어쩌면 무아지경이야말로 크라슈가 가장 빠르게 빠져들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크라슈의 정신이 어느새인가 정신의 호수 속, 깊은 곳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검존의 검이 어째선가 귀에서 멀다.

   그러나 크라슈의 검은 착실하게 검존의 검에 맞서고 있었다.

     

   정신은 호수 속에 빠져들지언정 육체는 멈추지 않았다.

   정신과 육체 사이에 피어난 괴리감과 별개로 크라슈의 몸은 더더욱 집중 상태에 들어갔다.

     

   검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설마하니 무아지경에 빠지라고 했다고 해서 이렇게나 빨리 빠져들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다시 봐도 대단한 정신력이군.’

     

   분명 크라슈의 검은 검존에게 있어 형편없는 검이다.

     

   그러나 검존이 과거, 크라슈에게 익시온의 상대를 맡기고, 기꺼이 물러섰던 이유.

   그것은 다름 아닌 크라슈 본인이 지닌 정신력에 있었다.

     

   크라슈는 자신의 검술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이는 검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런 그를 왜 검존이 인정하고, 자신의 검술까지 보여주며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왔는가.

     

   그것은 검존이 크라슈에게 보았던 한 가지 가능성 덕분이다.

     

   회귀와 여러 과거를 통해 한계까지 벼려진 정신력.

     

   검술.

   더 나아가 무술이란.

     

   온전한 정신과 온전한 육체를 지녔을 때 그 힘을 발휘하는 법이다.

   결국 육체와 정신력이라는 것은 정비례한다.

     

   즉,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꺾이지 않는 정신력이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꺾이지 않는 육체를 가졌음을 가리킨다.

     

   채엥!

     

   검존의 검을 받아친 크라슈의 눈동자가 잿빛으로 선명히 빛났다.

   그러한 눈동자 사이로 일순간 질주한 붉은 빛이 짙은 살의를 내뿜었다.

     

   크라슈의 몸에 깃든 천살성이 서서히 그의 육체에 생겨나고 있는 새로운 변화를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재촉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검존이었다.

     

   채엥!

     

   검존의 검이 무수한 궤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크라슈의 검은 알게 모르게 검존의 궤도를 어느샌가 따라가고 있었다.

     

   분명 크라슈는 검존이 보고 있는 세계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검존에 의해 그의 검은 그러한 세계를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쫓아가고 있었다.

     

   크라슈의 몸속 여기저기.

   자리 잡은 신기가 꿈틀거리며 검의 궤도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기가 향하는 곳은 크라슈의 중심.

   크라슈가 빠져든 정신의 호수였다.

     

   정신의 호수 속.

   신기의 빛이 하나둘 반딧불이마냥 안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이를 인식한 크라슈는 본능적으로 신기를 점차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어느새인가 정신의 호수 속에는 신기가 가득 메워져 나갔다.

     

   크라슈는 조금 전 검존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스스로 별이 되라는 그 말.

     

   크라슈가 아벨라를 베던 그날.

   그는 아벨라를 베기 위해 하나의 신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물의 신은 말하였다.

   하늘 위, 별들만큼이나 신은 무수히 많다고 말이다.

     

   신과 별.

   이 두 가지를 떠올리던 크라슈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그렇구나.’

     

   크라슈가 신기를 더더욱 끌어 올렸다.

   그러자 정신의 호수 속을 채운 신기의 반딧불이가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점차 더 빨라져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고, 어느새인가 크라슈의 주위에 신기가 발산하는 빛이 가득 메워졌다.

     

   ‘한 개의 별이 되라는 말.’

     

   이 세계는 삼라만상의 위에 존재한다.

   그러한 삼라만상의 암흑 위에서 살고자 한다면 자신을 빛내는 방법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크라슈의 내면에 깃든 신기가 하나의 별이 되어 그 빛을 거세게 토해내기 시작했다.

     

   크라슈의 안을 가득 메운 별빛이 밖으로 발산된 그 순간.

   크라슈의 눈이 기어코 뜨여졌다.

     

   검존의 검이 움직인다.

   본래는 어떠한 것으로도 인식하지 못했던 그 검이 명백히 보였다.

     

   검존의 검은 별빛에 뒤덮여 있었다.

   그 빛은 검존이라는 별이 내뿜는 빛이었다.

     

   그의 별빛이 너무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기에.

   크라슈의 인식조차 빛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지금.

     

   크라슈에게서 쏟아진 별빛이 검존의 별빛과 맞부딪치며.

   검존의 검의 존재를 명확하게 인식했다.

     

   스스로가 고유의 별이 된 이들.

   크라슈가 성계(星界)의 영역에 진입한 순간이었다.

     

   카아아아앙!

     

   드디어 검존의 검을 직접 막아 낸 크라슈가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별빛과 함께 잿불이 일렁였다.

     

   “이런 세계를 보고 있던 겁니까.”

     

   머리가 지끈거린다.

   검존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별빛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너도 보지 못한 세계는 아닐 것이다.”

     

   그 말 대로다.

   크라슈가 신의 영역에 오른 그날, 그는 신계와 그 세계 너머의 신들을 인식했으니까.

     

   그들은 모두 하나의 별이었다.

     

   만약, 크라슈가 이날 신의 영역에 오르지 않았더라면 이번에도 깨우치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검존 님, 말고는 또 누가 볼 수 있는 겁니까.”

     

   이런 세계를 보고 있으니, 어느 사람도 검존을 꺾을 수가 없었겠지.

   애초에 검의 인식조차 불가능하니까.

     

   ‘그때 샬롯은 이런 세계에 도달한 거였구나.’

     

   그녀가 끝내 검존을 꺾을 수 있던 것은 그녀 또한 결국 성계의 영역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순수한 재능만으로 성계의 영역에 도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달은 크라슈는 헛웃음을 삼켰다.

     

   “글쎄.”

     

   검존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엔마이아 산 아래를 물끄러미 보았다.

     

   “무황 정도였겠군.”

     

   자신의 아버지가 언급되자 크라슈는 이해했다.

   아버지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그리고 그만큼 이런 세계를 볼 수 있는 이들이 드물다는 소리기도 했다.

     

   “이제는 최소 조건은 갖췄나.”

     

   검존의 질문에 크라슈가 달띤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예, 덕분에요.”

     

   검존 덕분에 성계의 영역에 눈을 떴다.

   이제 괴존의 검도 맞설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몇 개 더 가르쳐 주지.”

     

   이걸로 끝이 아니었나.

   검을 집어넣으려 했던 크라슈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무시하고, 검을 틀어쥐었다.

     

   대신, 크라슈의 입에는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그 또한 강해지기 위해 무수히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이제는 누구보다 강해지는 기쁨을 잘 알고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주 죽기 직전까지 모조리 배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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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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