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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19

       

       

       히가시노리 연구소는 여러 채의 건물이 있는 종합 연구소였다. 이화학 연구소, 마력공학 연구소, 이계생물학 연구소 등 여러 분야가 합쳐진 종합 연구소.

       

       이만한 규모라니. 과연, 이곳이 대동아공영회가 자랑하는 과학 기술의 총본산인 걸까? 

       

       다만 조금 의외였던 것은, 연구소는 진입로에서 느꼈던 으슥하고 무섭던 첫인상과는 달리, 가까이서 보니 말끔하고 정상적인 외관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럴만도 한게, 애초에 어디 섬이나 산골짜기에 몰래 틀어박혀 있는 시설도 아니고, 아무리 외곽이라지만 경성부 내에 있는 연구소니까. 

       

       서봉도마냥 대놓고 이상한 것을 만들어내지는 않겠지…….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어딘가 구린 것이 있을 것이다. 

       

       『후훗. 둘이서 견학이라니. 소학교 시대의 원족 같기도 하고, 연인 사이의 아베크 같기도 하네요. 그렇지요?』

       

       연구소 부지 안으로 걸어들어가자 렌까는 마치 소풍이나 데이트를 온 것 같다며 들뜬 어조로 말했고, 나는 렌까에게 물었다. 

       

       『너도 여긴 처음이야?』

       『실은, 예전에 한 번 와본 적이 있답니다.』 

       

       와본 적이 있다라. 그러고 보면, 예전에 학교 신사 지하에서 히가시노리 박사와 처음 마주쳤을 때, 렌까는 이미 박사와 구면이었었지. 나는 렌까에게 떠보듯 물었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여기도 개혁 대상이야?』

       『후훗. 저도, 아무 곳이나 개혁하지는 않는답니다?』

       

       렌까는 연구소의 전경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곳은 대동아공영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핵심 시설이에요. 그리고, 정도를 넘는 연구는 하지 않는답니다. 인류와 사회에 공헌하기도 하고요.』 

       

       내가 알기로, 학교에서 죽은 학생들의 영혼을 수집하는 령입자흡인기를 만든 것이 이곳인데, 정도를 넘는 연구는 하지 않아……? 렌까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곳을 이끄는 히가시노리 박사 역시, 대동아공영회의 핵심 인물이라서 예전부터 종종 봐왔지만 믿을만한 사람입니다. 사회성이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그것은 지식 계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성이죠.』 

       『아. 그래 보이더라.』

       

       그건 그랬다. 뭔가…… 자기가 아는 분야를 주절주절 설명하면서 연신 히죽히죽 기분나쁘게 웃는데, 송병오 녀석과는 또 다른 부류의 설명충 오타쿠로 보였다. 

       

       아무튼, 렌까는 이 연구소와 박사를 꽤나 신뢰하는 것 같네. 우리는 연구소의 주 건물에 들어섰고, 미리 연락이 되어있었던 만큼 곧바로 히가시노리 박사가 튀어나왔다.

       

       『흐힛. 시마즈 아가씨! 그리고…… 시, 시라바야시 생도.』

       

       정장 위에 흰 실험복 가운을 걸치고,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두꺼운 안경알 아래로도 눈그늘이 짙은 히가시노리 박사가 히죽거리며 인사를 건넸고,

       

       『오랜만입니다, 하카세(박사).』

       

       렌까가 가볍게 인사를 받았다. 그나저나, 오늘의 견학 가이드도 박사 본인이 직접 해주는 건가. 그렇잖아도 밤을 샌 듯 보여서 피곤해 보이는데 꽤나 열성넘치는 사람이네.  

       

       『시마즈 당주님의 따님인 시마즈 렌까 아가씨와, 그 당주님과 회장님으로부터 인정받은 시라바야시 생도! 두 사람에게 본 연구소를 보여줄 수 있어 기쁩니다. 흐흐…… 자아, 그럼—』

       『잠깐만요, 박사. 그 전에,』

       

       렌까는, 가이드를 시작하려는 박사에게 대뜸 물었다. 

       

       『그저께 밤, 학교의 지하에서 시라바야시 상을 본 것이 맞나요?』 

       

       ……아니, 렌까야 잠깐. 그거 아까 끝난 얘기 아니었니? 다행히, 히가시노리 박사는 그저께 이야기했던 그대로 렌까에게 설명해 주었다. 

       

       『예? 아아, 그렇습니다! 저도 놀랐지요. 아마, 시마즈의 당주께서는 현장 상황이 잘 되어가는지 궁금하셨나 봅니다. 그래서 시라바야시 생도를 보내온 것이겠지요. 흐……』 

       『흐—음. 사실인 듯 하군요.』

       

       렌까는 턱에 손을 받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에게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의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과연 시라바야시 상의 말에 거짓은 없었네요.』 

       

       ……그게 의심한 것이 아니고 뭔데. 뭐, 아무래도 좋다. 이것으로 내 알리바이는 확실해진 것이니까. 

       

       이제 마음 편히, 사회성 부족한 히가시노리 박사의 가이드를 따라 이곳을 견학하며 염탐을……

       

       『아, 시마즈 아가씨. 혹시 그거, 시마즈 제작소의 신작품입니까?』 

       『예?』 

       『부하 인자(忍者)에게 입힌다는 옷 말이죠. 엊그제 시라바야시 생도와 대동했던 여자 인자가 입고 있던, 신축성이 탁월해보이면서도 튼튼해 보이는 옷이 굉장히 흥미로웠—』

       『시라바야시 생도와, 대동했던, 여자라고요?』

       『예. 여자 인자 한 명이 함께 있었습니다만……?』

       

       ‘아니, 이 사회성도 눈치도 없는 새1끼가! 그걸 왜 지금 얘기하냐고!’

       

       큰일났다. 나도 차마 여기까진 생각 못했다. 설마 히가시노리 박사가 그저께 본 홍옥례의 얘기를 꺼낼 줄이야…… 다른 것 때문도 아니고, 고무타이즈수트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이제와서 홍옥례가 나와 동행했다고 밝힐 수는 없는 일이었다. 렌까 정도 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홍옥례의 뒷조사를 시작하면, 홍옥례가 태극단이라는 것도 금방 탄로나고 말 터. 이대로라면 홍옥례가 위험해지는 것은 시간문제……!

       

       그런데,

       

       『그때 시라바야시 상과 함께 있던 사람이, 오스에였던가요?』 

       『예에? 오스에가 누군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의 부하 인자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군요. 오스에는 저에게, 자신은 학교까지 동행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는데……』

       

       ‘어?’

       

       렌까는 내 동행인을 오스에로 단정짓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부하로 쓰는 여자 인자라고 하면 당연히 오스에가 가장 먼저 떠오를 테니까.

       

       내가 히가시노리 박사에게 홍옥례를 여자 인자라고 소개했던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던 것일까? 

       

       그래.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이렇게 된 거, 나중에 오스에랑 둘이서 함께 말귀를 맞추기만 하면 되리라. 나랑 오스에가 동행했다가, 이런이런 이유로 거짓말을 했다는 식으로 말을 맞추면……

       

       『이상하군요. 오스에가 왜 저에게 거짓 보고를 했을까요? 뭐, 좋아요. 오스에 본인에게 물어보면 되겠죠. 오스—』

       

       ‘이런!’

       

       렌까는 지금 당장 오스에를 부르려 했다. 설마하니 오스에가 여기까지 따라왔던 건가? 아직 내가 오스에와 말을 맞추기 전에 렌까가 오스에를 불러서 교차검증을 하는 것만은 막아야 했고, 그래서 나는, 

       

       『읍읍?』

       『박사! 잠시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손으로 렌까의 입을 틀어막고는, 박사에게 잠시 양해를 통보한 뒤 렌까의 손을 낚아채고, 박사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복도 모퉁이의 구석으로 렌까를 끌고갔다. 그렇게 렌까를 벽에 기대어 세워두고, 

       

       —쾅!

       

       그녀의 얼굴 옆의 벽에 손바닥을 강하게 짚으며 말했다.

       

       『너 말야.』 

       『힛, 히잇? 시, 시라바야시 상?』

       『내가 너 이외의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것을 싫어하지. 그렇지?』 

       『핫……! 무, 물론……』 

       

       렌까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대답했다.

       

       『당신이 다른 여자와 어울리는 것이, 그, 그다지 좋지는 않습니다만…….』 

       

       역시, 내 쪽에서 강하게 나가면 렌까는 순간적으로 약해지는구나. 지금이 기회였다. 

       

       『그렇겠지. 그래서 내가 오스에한테 거짓말을 시켰던 거야.』 

       『그래서, 라뇨……?』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준비해두었던 답변을 또박또박 꺼냈다.

       

       『그때 나는 오스에랑 함께 있었던 것이 맞아. 걔가 나를 따라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해서 함께 다녔어. 그 때, 내가 갖고 있던 타이즈를 오스에한테 입혔었고. 그런데, 나랑 오스에가 단 둘이 학교에 갔었다는 사실을 네가 알면…… 네가 오스에를 추궁할까봐, 거짓말을 시킨 거야.』

       『……예?』

       

       렌까는 의문이 섞인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고, 나는 그런 렌까를 다정한 눈길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스에도 일단은 여자잖아. 물론 나는 오스에를 이성으로 여기지는 않지만, 네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거짓말을 시킨 거야. 나는……』

        

       나는 렌까의 턱을 손으로 받치며 말을 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너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 대답을 들은 렌까는, 

       

       『후앗……!』 

       

       얼굴이 빨개져서는, 전신에서 뜨거운 열기를 마구 내뿜었다. 렌까는 고개를 돌리고 말을 더듬으며 한 마디 내뱉었다. 

       

       『어, 언제부터 그렇게까지 저의 것을 신경쓰셨나요!』 

       『오래 전부터. 너는 나에게 무척 소중한 사람이니까.』

       『으읏. 읏.』

       

       렌까의 눈이 핑글핑글 돌았다. 

       

       ……사실, 나도 아까부터 이런 오그라드는 대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것이 렌까에게 잘 통한다는 것을 안 이상, 하지 않을 이유도 없겠지.

       

       잠시 부끄러움과 당황으로 혼란을 겪던 렌까는,

       

       『자, 잠깐 거리를.』 

       

       하고 말하며, 힘이 들어가지 않은 손으로 나를 살짝 밀어내었다. 나는 순순히 거리를 벌려 주었다.

       

       『후우……! 후아……!』

       

       렌까는 고개를 돌리고 손부채질을 하며 열기를 식혔다. 잠시 후, 한층 진정했는지 다소 열기가 식은 렌까는 나에게 말했다.

       

       『하, 하지만 역시, 오스에를 불러서 물어봐야겠어요.』

       『좋아.』

       『오스에.』 

       『……예. 말씀하십시오.』

       

       렌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바로 뒤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나타난 오스에. 역시, 여기까지 따라왔구나. 

       

       『오스에. 방금의 말, 사실이야?』  

       

       렌까가 물었다. 주군의 질문에, 오스에는 뭐라고 대답할까…… 물론, 오스에 역시 방금 내가 또박또박 설명한 변명을 모두 들었을테니, 자기가 곤란해지지 않으려면 내 말에 맞장구쳐주는 수밖에 없겠지.

       

       『……졸자, 정직히 아뢰겠습니다. 시라바야시 도노의 말이 전부 맞습니다.』

       

       내 생각대로였다. 렌까는 잠시 생각하다가 나에게 말했다. 

       

       『흐음! 뭐어, 좋, 좋습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스에와 함께 있었던 것 정도는 안심이지요. 아니, 다른 여자와 있던 것보단 오히려 다행이랄까요!  두, 두 사람이 공모해서 저를 속인 것 정도는, 저를 위해서였다는 성의를 봐서 관대히 넘어가 드리죠!』  

       

       휴우. 역시, 렌까는 오스에만큼은 믿는구나.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렌까에게 말했다.

       

       『그래. 그러니 혹시라도 오스에를 탓하거나 추궁하지 말아 줘. 오스에는 누구보다 너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너만의 충성스러운 부하야. 그런 오스에한테 거짓말을 시킨 내가 잘못한 거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내 뒤에서 나만 겨우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못한 것은 아시는군요. 어디의 누구 때문에 졸자가 주군에게 거짓말을…….』

       

       뭐, 왜, 뭐. 거짓말쟁이 공범이 되어서 억울한가본데, 거짓말이든 뭐든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라고. 렌까는 다시금 오스에를 불렀다. 

       

       『오스에.』

       『예.』

       『너 역시 나를 염려하는 마음에 거짓을 고했겠지만, 이제 그러지 않아도 돼. 나는 누구보다도 너를 믿으니, 네가 시라바야시 상과 단둘이 있어도 너를 의심하지는 않을 거야.』

       『……졸자, 주군의 관대함에 감사드리옵니다.』

       『그래. 이제 밖에서 기다리도록 해.』  

       

       오스에는 다시 모습을 감췄다. 오스에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뒤, 렌까는 문득,

       

       『……풋.』

       

       하고 입을 가리며 웃고는, 다른 손으로 주먹을 쥐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외쳤다.

       

       『아라, 맛따크(정말이지)!』 

       『……?』

       『아무것도 아니었잖아요! 당신과 제 부하가 함께 다녔다라는, 그런 사소한 일을 가지고 두 사람 모두, 저 때문에 마음 속으로 조마조마해서, 머리를 맞대고 거짓말까지 지어냈던 건가요? 설마하니 제가 질투라도 할 것이 두려워서?』 

       

       나는 머쓱한 듯 뒤통수를 긁으며 대답했다. 

       

       『으응. 그렇게 됐다.』 

       『킥킥…… 귀여운 사람! 자아, 견학으로 돌아가죠!』

       

       렌까는 홱 몸을 돌려, 가벼운 발걸음으로 복도를 앞서나갔다. 그제서야 모든 의구심이 완전히 풀렸다는 듯 기분이 굉장히 좋아 보이는 렌까는,

       

       『흥흥~♪』

       

       보기 드물게 콧노래까지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래. 네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쁘다. 

       

       뭐, 이렇게 어찌저찌 잘 풀리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되긴 하는데…… 그나저나, 이렇게 되니 내 마음 속 양심으로부터 렌까가 조금 불쌍하다고 느껴지기는 했다.

       

       굳게 의지하는 파트너인 나에게도 속고, 충성스러운 부하인 오스에한테도 속고…… 

       

       렌까야, 또 속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거짓말쟁이가 또’라는 소제목은, 주인공이 또 렌까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의미와, 렌까를 속이는 거짓말쟁이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는 의미를 담아 중의적으로 지어졌습니다.

    그치만…… 우리 렌까 애껴욧……!ㅠㅠㅠㅠㅠㅠ

    한편 더 올라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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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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