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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

       현재, 아실은 명백하게 우리의 작전에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 이용하는 입장에서 조금 미안하게 됐지만, 피차일반이다. 얘도 데카르트의 권력을 원해서 온 게 아닌가.

         

       “표정이 좋지 않으세요. 괜찮으신가요?”

         

       태연하게 묻는 프란체. 그녀의 목소리에 악의라곤 눈꼽 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아실의 부릅뜬 눈동자에선 악의가 가득했다.

         

       “…지금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는 척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진짜 모르시는 겁니까?”

         

       검지로 볼을 톡톡 건드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프란체.

         

       “죄송해요.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네요?”

         

       아실의 표정이 악귀처럼 구겨졌다. 프란체는 아까까지만 해도 검술을 계속 언급하면서 아실이 그동안 꽁꽁 숨겨왔던 지독한 역린을 살살 긁어냈다.

         

       그러나 프란체는 아실의 분노를 마치 뱀처럼 움직이며 회피하고 있다. 아실은 더욱더 열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저를 너무 무시하시는 거 아닙니까? 데카르트 공녀. 당신이 저를 모욕하기 위해 이상한 화법을 사용하며 돌려 말하고 있는 건 알고 있습니다. 이래도 계속 회피하실 겁니까?”

         

       프란체는 뭐가 문제냐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너무 과열되셨어요. 우선 진정하시는 게 어떠세요?”

       “지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당신의 의도를 전부 알았는데?”

         

       표정관리가 안 되어 계속해서 팔자가 꿈틀거리는 아실. 여전히 목에는 핏대가 세워져 있다.

         

       “제 의도요? 제 의도가 뭔데요?”

       “기사 가문에서 검술을 못하는 저를 모욕하셨잖습니까!”

       “어, 제가 모욕을 했다고요?”

         

       프란체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음. 그래요. 백번 양보해서 모욕을 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기사 가문에서 검술 못하는 게 죄까지 가나요? 못할 수도 있지. 사람은 사람마다 장점이 다 다른 것이니까요. 꼭 기사 가문이라 해서 검을 잘 써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오, 뭔가 여주인공이 남주를 위로해줄 때 하는 말 같은데. 아실의 반응은 어떨까.

         

       “당신은 모를 겁니다. 기사 가문에서 검을 못 쓰는 제가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저는 그래서 제 장점을 만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습니다. 이 가문에서 배척당하지 않기 위해서.”

         

       몹쓸 취급 받는 기분은 프란체가 가장 잘 알지.

         

       “아……. 그것 또한 안타까운 이야기네요.”

         

       프란체가 시무룩해졌다. 프란체가 가장 잘하는 연출. 동정을 받은 아실의 얼굴이 다시 구겨졌다.

         

       “그러니까, 그딴 표정 지으면서 저를 동정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동정이 뭐 어때서요? 안타까운 얘기를 들으면 측은해질 수도 있죠.”

         

       아실이 입술을 머금고 눈에 힘을 줬다. 하늘을 바라봤다. 애써 이성을 유지하려는 듯했다. 여기서 프란체가 결정타를 날려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싸움이 시작될 테니까.

         

       “검을 얼마나 못 쓰시길래 그러세요? 설마 병사 하나 못 이기시는 건 아니죠? 그래도 기사 가문으로 유명한 프라이덴의 삼남이신데.”

         

       프란체가 다시 한번 역린을 건드렸다. 아실은 극도로 검에 대한 재능이 없다. 아니, 그냥 몸을 쓰는 일은 아무것도 못 한다. 다행히 사무적인 일은 잘하는 편이다만, 이 세계에서는 무력이 더 중요한 법이다.

         

       “더이상의 모욕은 못 참겠군. 데카르트 공녀.”

         

       아실의 목에 핏대가 두둑하게 올라왔다. 팔자는 계속해서 꿈틀거리고, 눈빛에는 적의가 가득했다.

         

       “정말 미친년이 따로 없었군. 대가리가 어떻게 된 게 틀림 없어.”

         

       시작됐다.

         

       “…지금 말 다 하셨나요?”

       “말 다 했으면 어쩔 거지?”

         

       쾅! 아실이 테이블을 힘껏 내려찍었다. 찻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유리 조각이 바닥의 곳곳으로 흩어졌다.

         

       “당신이 페르시아 가문과 약혼이 깨진 이유를 알겠어. 이렇게 성격 더럽고 결함 있는 여자라는 걸 페르시아 소 공작도 알아차린 거겠지. 얼마나 당신이 싫었으면 동성애자라는 소문까지 났을까?”

         

       프란체가 눈을 얕게 뜨고 아실을 노려봤다. 저런 거에 흔들리면 안 돼. 목적을 잊지 말라고.

         

       “공작령에 오기 전부터 당신을 어떻게 갱생시킬까, 생각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구제 불능이야. 데카르트의 수치. 나와 혼담을 나누게 된 이유도 사실 공작가에서 쫓겨나는 신세라 그런 거 아닌가?”

         

       아실의 계속되는 독설. 프란체는 심호흡한 뒤 고요함을 되찾았다.

         

       “할 말 다 하신 것 같으니 저도 한마디 하겠습니다.”

         

       드르륵. 프란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의자가 뒤로 물러났다.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아실을 응시했다.

         

       “검술 실력이 하품이 나올 정도로 형편없으셔서 그런가? 말씀하시는 것도 하찮으시군요.”

         

       아실이 “뭐?”라고 말하며 눈썹을 좁혔다.

         

       “그렇게 속이 좁고 화를 못 참으면 나중에 어떡하시려고요? 아니, 프라이덴 가문에서 가르친 건가? 검밖에 쓸 줄 모르는 가문답게 무식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네요.”

         

       속사포처럼 내뱉는 모욕에 눈이 동그래진 아실. 프란체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프라이덴 가문에서 이뤄지는 교육 수준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군요. 당신은 후작령을 관리하신다고 하셨죠? 보지 않아도 영지의 상태가 눈에 들어옵니다. 당신처럼 형편없고 하찮은 수준이겠죠.”

         

       프란체가 세 번째 역린을 건드렸다. 가문 욕에 모자라서, 아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영지 욕까지.

         

       “이, 미친년이!”

         

       쿠당탕! 아실이 화를 참지 못하고 테이블을 엎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미친년이군. 인신공격하는 것도 모자라 가문 욕까지 하다니. 앞날은 생각하고 말하는 건가?”

         

       그에 반응해 피식 웃는 프란체.

         

       “시작은 당신이 먼저 하셨잖아요? 저는 그에 응한 것뿐이랍니다.”

       “원인은 당신에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건가? 내가 이렇게 폭발한 이유는 당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데?”

       “글쎄요. 저는 사실대로 말한 것뿐이고, 여기에 과민반응해서 흥분한 건 당신이잖아요?”

         

       프란체가 고개를 뻣뻣이 들고 아실을 비웃었다.

         

       “자의식 과잉이라는 말을 아시나요? 당신은 피해망상에 절여있어요. 부디 그 추악한 열등감은 혼자서 안고 갔으면 좋겠군요.”

         

       빠득. 이를 악물며 프란체를 노려보는 아실.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시종들이 눈치챘는지, 우리도 모르게 에덴 데카르트를 불러왔다.

         

       “…완전 난장판이 따로 없군. 이게 무슨 일이지?”

         

       아실과 프란체가 동시에 에덴을 바라본다. 프란체는 무표정. 아실은 관리가 안 되어 잔뜩 화가 난 얼굴이었다.

         

       “데카르트 소 공작. 이 혼인은 무산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이런 미친년이랑은 혼인 못 하겠다는 말입니다.”

         

       에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냐, 프란체.”

       “그저 프라이덴 영식의 자의식 과잉으로 생겨난 문제랍니다.”

         

       아실이 발끈했다.

         

       “끝까지 그렇게 나올 생각인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에덴을 바라보며 소리치는 아실.

         

       “데카르트 소 공작! 공녀가 제 가문과 저를 모욕했습니다. 저는 이런 혼인은 진행할 수 없습니다!”

         

       쯧, 아실은 혀를 차며 발을 돌려 성큼성큼 정원을 나갔다. 에덴이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냐.”

       “대화를 나누던 도중에 갑자기 프라이덴 영식이 흥분했을 뿐이에요.”

         

       하아, 에덴이 큰 한숨을 내쉬었다.

         

       “이봐, 노예.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고?”

       “예. 갑자기 프라이덴 영식께서 화를 내셨습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에덴과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대화가 잘 이어나가고 있었습니다만, 프라이덴 영식께서 무언가 거슬렸나 봅니다.”

       “무슨 대화를 했지? 내가 알기론 프라이덴 영식은 함부로 화를 낼 만한 사람이 아닌데.”

       “검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공녀님께서는 검을 잘 쓰는 남성분이 취향이라고 하셨을 뿐입니다.”

         

       에덴이 눈을 얕게 뜨고 프란체를 노려봤다.

         

       “네가 검을 잘 쓰는 남성이 취향이라고? 처음 듣는 소리다만. 어떻게 된 거지?”

       “취향이 바뀔 수도 있는 거죠. 갑자기 제가 사치를 부리지 않고 사업을 하고 싶은 것처럼요.”

         

       프란체의 말에 고개를 내젓는 에덴. 지금 이 상황 자체를 이해할 수 없겠지.

         

       “일단은 알겠다. 이 일은 내가 해결할 테니 들어가라.”

         

       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비키는 프란체. 나는 그녀를 따라갔다. 뒤를 돌아보니 에덴의 명령으로 시종들이 난장판이 된 정원을 치우고 있다.

         

       가는 길에 말했다.

         

       “잘 풀리긴 했네요.”

       “그러게. 근데 정말 저렇게 다혈질로 나올 줄은 몰랐네.”

       “그는 열등감이 심하니까요.”

         

       프란체가 걱정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가문의 문제로 번지지 않을까?”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아실은 자존심이 강하고 열등감이 심하다. 데카르트 공녀에게 모욕을 당했다는 것을 굳이 알리고 싶진 않을 거다. 그에게 있어서 이번 일은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이기에.

         

       가문에서나 사교계에서 얘기가 나오면 프란체가 소문과 똑같이 미친 여자라서 거절했다고 하겠지. 거기다 사교계에 이 정보를 널리 퍼트려 그녀의 혼처를 끊어낼 것이다.

         

       ‘혼처가 끊어지는 게 잘된 일인지 모르겠는데.’

         

       뭐, 나중에 내가 세운 계획이 다 성공하고 마무리되면 프란체는 원하는 남자를 골라서 결혼할 수 있을 거다. 그만큼 강한 권력자가 될 테니까.

         

       “후우. 네가 그렇다면 괜찮겠지.”

       “예. 그러니 크게 신경 쓰지 마십시오.”

         

       나는 프란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할 일도 다 끝났겠다, 이제 카자르의 집으로 향하시죠.”

       “그래, 그러자꾸나. 마법이라도 배우면서 과열된 기분을 좀 식혀야겠어.”

         

         

       * * *

         

         

       프란체의 혼담이 깨지고, 에덴은 곧장 공작의 집무실로 찾아갔다. 문을 세 번 노크한 뒤 덜컥. 대답도 듣지 않고 열고 들어갔다.

         

       “공작님.”

       “무슨 일이더냐.”

       “혹시 공작님께서 계획하신 겁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에덴은 눈을 얕게 뜨고 공작을 노려봤다.

         

       “프란체의 혼담이 깨졌습니다. 서로 싸움이 일어났더군요. 프라이덴 영식은 자신과 가문이 모욕당했다며 돌아갔습니다. 제 추측상 프란체가 일부러 프라이덴 영식의 화를 돋군 것 같더군요. 혹시 공작님이 명하신 겁니까?”

         

       탁. 공작이 손에 들린 만년필을 놓았다. 고개를 올려다보며 에덴과 눈을 마주쳤다.

         

       “프란체에게 그런 명을 내린 적 없다. 단순히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았을 뿐이겠지. 아무리 정략혼이라도 그런 경우는 있다.”

       “그럼 프란체가 혼자 생각한 일이란 겁니까? 이대로면 가문끼리의 문제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그냥 듣고 넘길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에덴은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프란체가 대놓고 프라이덴 후작가를 모욕했다. 물론 서로 모욕했기에 쌍방과실로 인정되지만, 혼담을 보내온 것은 이쪽. 프라이덴 후작가에서 물고 늘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싸움으로 혼담이 깨진다는 것은 데카르트 공작가의 위신을 떨어트리는 일이다. 근데 공작님이 이걸 그냥 넘어간다고? 에덴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거라. 크게 번지진 않을 거다.”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네가 알 필요는 없다.”

       “…….”

         

       대답해주지 않는 건가. 매번 이런 식이다. 후계자인 아들을 대체 뭐로 보는 것인가.

         

       “대화가 통할 것 같지 않으니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프라이덴 후작가와의 일은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공작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에덴은 고개를 내저으며 집무실을 나왔다. 쿵.

         

       “후우.”

         

       성큼성큼 집무실로 돌아가던 그때. 근처에 있던 라인이 에덴의 얼굴을 확인하곤 말을 걸어왔다.

       

       “무슨 일인데?” 

       “프란체가 혼담을 깨트렸다.”

       “뭐? 그년이 기어코 사고를 쳤구만.”

         

       라인이 헛웃음을 흘렸다. 에덴이 물었다.

         

       “프란체는 지금 어디에 있지? 알고 있나?”

       “그년 아까 어디로 나가던데.”

         

       일부러 자리를 피한 건가. 자신을 찾아올 거란 걸 알고.

         

       “뭐, 도와줄 거 있어?”

       “없다. 너도 돌아가 보도록.”

       “재미없네.”

         

       라인이 등을 돌렸다.

         

       “…….”

         

       에덴은 생각에 잠겼다. 프란체가 어느 순간부터 이상해졌다. 원래라면 절대 벌이지 않았을 일도 만들고 있고, 사업까지 진행하며 항상 하던 사치도 그만뒀다. 공작가를 빠져 나간다는 계획도 사라진 듯했다.

         

       ‘대체 언제부터지?’

         

       지나간 날들을 되새겼다. 그리고 정답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때부터군.’

         

       바렌베르크의 왕족, 진 바렌베르크를 노예로 데려온 시점부터.

         

       ‘그 녀석에게 뭔가 있다.’

         

       에덴의 얼굴이 싸늘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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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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