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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2

       투둑.

         

        거미줄이 힘없이 끊겼다.

         

        네필라 쥐라시카는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거미가 죽었다.

         

        그래.

         

        단지 거미 한 마리가 죽었을 뿐이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아무렇지도….

         

        콰드드드득.

         

        이를 악물었다.

         

        네필라 쥐라시카는 나 때문에 죽었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데스롤을 할 때 놔주지 않았다면.

         

        네필라는 살 수 있었을 거다.

         

        딜로포사우루스의 공격이 멈췄다.

         

        놈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최소한의 휴식만 취한 채,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으니 상당히 지쳤을 거다.

         

        “그르르르르르….”

         

        ‘꼬리 자르기.’

         

        잘린 꼬리를 네필라 쥐라시카의 옆에 두었다.

         

        꼬리를 자르고 얻은 건 압도적인 속도였다.

         

        진화를 한 이후, 꼬리 자르기를 자주 사용하지 않았다.

         

        속도가 빨라진다는 건 굉장한 이점이다. 하지만 꼬리는 잘린 즉시 수복되는 게 아니었다.

         

        꼬리가 자라는 동안 균형을 잡기가 어려워진다는 거다. 거기에 효율적인 공격 수단이 하나 사라지기도 했고. 그렇기에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쓰지 않은 것이다.

         

        득보다 실이 크기에.

         

        덩치가 작을 때면 모를까, 악어왕도마뱀이 된 내가 두 발로 서기 위해서는 꼬리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꼬리가 잘린 지금의 나는 달팽이관이 고장 난 채로 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파바바바밧!

         

        다리가 찢어질 거 같다.

         

        균형을 잡을 수 없어 몇 번이고 넘어질 뻔했다.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날 감싼 네필라가 훨씬 아팠을 텐데.

         

        빠른 속도로 놈에게 접근했다.

         

        양손으로 교차시켜 놈의 목을 노렸다.

         

        카강!

         

        용조수와 용조수가 맞붙었다.

         

        검을 든 검사의 싸움처럼, 하나하나가 상대의 목을 노리는 살초였다.

         

        채챙!

         

        놈은 확실히 힘이 빠진 상태다.

         

        날 처음 마주 했을 때 만천화우 같은 큰 기술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분명 그 대가가 적지 않았기 때문일 거다.

         

        볏과 그 주변에 나 있는 털들이 전부 빠져 있었다.

         

        놈의 털은 무기기도 했지만, 동시에 목을 보호하는 방어구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놈의 다리 역시 거의 망가진 상태였다.

         

        공중으로 도약한 후에 암기와 독을 쏟아내는 만천화우.

         

        암기의 각도를 조절하기 위해 놈은 몇 번이나 땅에 착지한 후 다시 공중으로 도약 했었다.

         

        다리가 다친 상태에서 그 정도의 도약을 했으니 다리가 멀쩡할 리가 없었다.

         

        한쪽 팔 역시 맛이 간 상태.

         

        이쪽의 부상도 만만치 않지만, 놈보다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이길 수 있다.

         

        놈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오른쪽 다리다.

         

        서 있는 게 기적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상처가 심각하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집요하게 놈의 다리를 노렸다.

         

        카캉!

         

        캉!

         

        놈은 다친 몸이었지만 놀랍게도 잘 막아내고 있었다.

         

        카가가각!

         

        불꽃이 튈 정도로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놈은 자신의 약점인 다리를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된 상태였다.

         

        그 말은, 다른 곳이 비었다는 것.

         

        뻐어어어억!

         

        놈의 대가리를 강하게 후려쳤다.

         

        비록 다리는 아니라지만 유효타는 확실했다.

         

        내가 가진 중량을 전부 쏟아부은 공격이었으니까.

         

        “끼에에엑!”

         

        놈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기회다.

         

        지금 마무리 지어야 한다.

         

        스아아아악!

         

        엄청난 양의 독이 분사됐다.

         

        일전에 보았던 독 안개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강한 독이었다.

         

        남아 있는 체력으로 할 수 없는 기행이었다.

         

        저 정도 독기는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만천화우에도 이 정도의 내공이 실려 있진 않았다.

         

        독인.

         

        아니, 독룡이라는 표현이 전혀 과분하지 않을 정도의 힘이 느껴졌다.

         

        갑자기 이런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

         

        힘을 숨기고 있던 걸까?

         

        아니,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런 극한의 상황에서까지 힘을 숨길 리가 없었다.

         

        만천화우도 바로 쓰지 않았던 것처럼 이 기술에도 대가가 따를 게 분명했다.

         

        이 압도적인 힘.

         

        만전의 딜로포에게서 느껴진 힘을 훨씬 상회하는 이 기운.

         

        생각할 수 있는 건 단 하나였다.

         

        선천진기.

         

        놈은 생명력을 불태우고 있었다.

         

        미래를 바치지 않으면 당장 죽을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한 거다.

         

        치이이이익.

         

        놈의 몸에서 떨어진 독이 땅을 녹였다.

         

        내 발톱이 저기 닿는다면 그대로 녹아버리고 말겠지.

         

        그래서.

         

        그게 문제가 되나.

         

        까드드드득.

         

        이를 세게 악물었다.

         

        죽더라도 놈과 함께 죽을 생각에.

         

        두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영험한 기운이 몸에 감돕니다.]

         

        뜨거운 기운이 느껴진다.

         

        [영험한 기운이 충만해집니다.]

         

        그동안 내가 취했던 힘들이 한곳으로 모였다.

         

        [영감이 소모됩니다.]

         

        미식을 통해 얻은 영감도.

         

        [신성이 소모됩니다.]

         

        미약한 신성도.

         

        아직 소화하지 못한 영약과 내단의 힘이 단전에 폭발적으로 쌓이고 있었다.

         

        [영험한 기운이 신체의 한계를 넘어섭니다.]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린다.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놈의 독을 버틸 수 있는 강한 신체?

         

        아니.

         

        지금껏 당한 부상을 모조리 회복하는 재생력?

         

        아니.

         

        놈을 쳐 죽일 압도적인 무력.

         

        파바바박!

         

        온몸에 새로운 갑주가 덮이기 시작했다.

         

        흑에 가까운 어두운 청록색이었다.

       

       그것은 방어를 위한 갑주가 아니었다.

       

       적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날카로운 칼날이었다.

         

        그동안의 진화와는 또 다른 느낌.

         

        체력이 회복되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동안 쌓아뒀던 모든 힘이 내 몸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눈앞의 적을 쳐 죽이기에 최적의 형상으로.

         

        “크아아아아악!”

        “크르르르….”

         

        놈은 빠른 속도로 뒤로 물러섰다.

         

        선천진기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물러났다는 건, 본능에 따른 행동일 거다.

         

        꾸드드득.

         

        내 비늘은 계속해서 변화했다.

         

        더욱 무겁고, 더욱 날카롭게.

         

        [「용린 LV5」를 획득합니다.]

       

       용린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움직이는 것이 벅찬 수준까지 와버렸다.

         

        내게 허락된 건 단 한 번의 공격이었다.

         

        지금의 내 힘은 일시적인 것이다.

         

        놈이 선천진기를 사용했듯, 내 몸에 있던 영약들의 힘을 끌어모은 것이다.

         

        단 한 방.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저 독룡을 끝장내야 한다.

         

        그리고 그건 딜로포사우루스 역시 마찬가지일 거다.

         

        선천진기를 사용하고 있으니 오래 끌어봤자 좋을 거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을 거다.

         

        이 상태로 시간이 지나면 개죽음이 될 게 뻔하니까.

         

        이제 결착을 지을 시간이었다.

         

        “크라아아악!”

         

        독룡이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놈이 움직일 때마다 대지가 녹았다.

         

        선천진기가 줄어드는 게 눈에 보일 수준이었다.

         

        독기가 계속해서 강해졌다.

         

        용린으로도 막을 수 없을 수준까지 강해졌다.

       

        딜로포는 선천진기를 불태우며 무지막지한 독기를 만들어냈다.

         

        단 한 번.

         

        이번이 내게 남은 유일한 기회다.

         

        떠올려라.

         

        내가 본 존재 중 가장 강한 자를.

         

        ‘도마뱀아.’

         

        마땅히 배운 게 없었다.

         

        무공이란 걸 배웠을 리가 없었다.

         

        내가 아는 무공이라곤, 심심해서 읽은 무협지 몇 권이 전부였다.

         

        쾌, 환, 중의 묘리가 무엇인지.

         

        직선과 곡선이 무얼 뜻하는지.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도마뱀으로 태어나서 무얼 읽고, 무얼 공부하겠나.

         

        ‘작은 도마뱀아.’

         

        내가 아는 가장 강한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아무것도 읽지 못했고 아무것도 공부하지 못했다.

         

        ‘백골이 사방에 굴러다닌다.’

         

        백골은 늘 내 주변에 있었다.

         

        ‘옆집의 꼬마가 오대세가를 건드린 죄로 죽었다.’

         

        네필라 쥐라시카가 날 지키려다 죽었다.

         

        ‘배가 고프다. 목이 마르다.’

         

        항상 배가 고팠고 목이 말랐다.

         

        ‘누군가의 한탄이 가득 찬 일기와도 같았다.’

         

        그녀는 나와 같다.

         

        백연영은 배우지 못했음에도 경지에 이르렀다.

         

        내 스승이 어떻게 했더라.

         

        그래.

         

        이렇게.

         

        [「역발산기개세」를 일시적으로 획득합니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쿠웅!

         

        힘은 산을 뽑고 기운은 세상을 뒤덮는다.

         

        꾸드드드드드득!

         

        압도적인 내공이 적을 짓눌렀다.

         

        독룡의 속도가 점차 느려졌다.

         

        손가락 하나 하나에 힘을 주었다.

         

        꽈드드드득!

         

        내 모든 힘이 한 곳으로 집중됐다.

         

        용조수.

         

        용의 발톱이라는 표현에 한치의 부족함이 없는 형태가 완성되었다.

       

       

       

         

        그럼에도 부족하다.

         

        당연한 소리지만, 나는 구음진경을 읽어본 적이 없다.

         

        내 스승도 읽지 못한 걸 내가 어떻게 읽었겠나.

         

        내가 본 것은 동굴에 그려진 벽화.

         

        그리고 스승이 펼친 초식.

         

        스승이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백연영에 대해 잘 모른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무공 몇 개를 배웠을 뿐이니까.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의도로 날 가르쳤는지 모른다.

         

        다만 한 가지 사실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말한 백연영의 구음진경이 그녀의 세상이라는 것을.

         

        배가 고파 죽은 시체, 목이 말라 죽은 시체, 명문가를 건드려서 죽은 시체.

         

        거리마다 한탄이 끊이지 않았을 거다.

         

        그것이 그녀의 한이요, 동기였다.

         

        꽈드드드득.

         

        나의 구음진경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휘두르는 팔.

         

        이것이 나의 구음진경이며.

         

        콰아아아아아앙!

         

        구음백골조다.

         

        쩌저저저저적!

         

        다섯 손가락이 독룡의 머리를 무참히 부숴버렸다.

         

        *

         

        끝났다.

         

        모든 게 다 끝났다.

         

        거미야.

         

        미안해.

         

        그래도 네 원수는….

         

        “곡지.”

         

        네필라 쥐라시카가 있던 곳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딘가 익숙했다.

         

        곧바로 고개를 돌려 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수삼리, 천정.”

         

        당소영이었다.

         

        어깨에 투스와 푸스를 올려둔 당소영이 네필라 쥐라시카에게 침을 꽂고 있었다.

         

        “중완, 천추, 신궐.”

        “게게게게게겍!”

         

        당소영은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고 대혀어어어업!”

         

        시선과 손을 네필라 쥐라시카에게 고정한 후 큰소리로 외칠 뿐이었다.

         

        “내단! 내단을 가져와요!”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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